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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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슴에 무지룩하게 얹혀져 있던 것의 실체를 알고 나니 맘이 훨씬 홀가분해 졌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불합리한 사고를 합리적인 사고로 전환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여날 때가 있는가 하면, 정말 무거운 중량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무의식과 의식을 통틀어 원죄처럼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요즘 왜 이렇게 살까. 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80년대의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고 포스트 모던한 90년대를 살아오면서 통쾌한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고, 뭔지 모를 거미줄이 마음속에 켜켜로 쌓인 느낌이었다. 김규항의 B급 좌파를 읽으면서 내가 본 것을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왜 내 눈에는 벌거벗은 임금님만 보이는 걸까를 헛되이 고민한 줄 알겠다.

포스트 모던한 시대의 소설들에서 내가 느꼈던 열패감은 전향한 박노해를 까는 그의 시선으로 볼 때 지극히 정상적인 합리적 사고였던 것이다.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존경했던 박노해가 감방에서 나오면서 보여준 변화는 김지하의 그것보다 훨씬 혁명적이어서 그의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아직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꽂아 두고 있었다.

구사대도 모르는 교양인을 비판하는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고3 제자가 '선생님 그 책 읽어 보셨어요?'하고 물어서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추천서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물어본 거였다. 그 아이의 시선에 덮인 또 하나의 그물.

우리는 늘 내 시선과, 남의 시선으로 같이 살아간다.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선만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폐적 성향을 보일 것이고, 남의 시선만을 의식한 삶은 '홧병'으로 귀결되기 십상일 듯.

이런 말이 있었다. 새는 좌우의 양 날개로 난다.고. 마치 이 말은 우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양 들릴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처럼 보수 극우가 오랜 세월 득세한 무덤과 같은 세상에서는 작가같은 B급 좌파 조차도 엄청난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새는 극우만으로는 날 수 없다. 좌파의 건강한 시각이 건강한 국가의 견제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파시스트를 저주하고, 중산층을 까고, 지식인을 비꼬고, 근로 대중을 지지하는 작가의 삶도 진보적 이념에 못미치는 보수적 삶을 산다고 B급이라 이름했단다. 그의 글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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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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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콘트라베이스라는 관현악단의 작은 역할을 맡은 연주자가 내뱉는 푸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중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쳤던 현이의 연극, 내가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북치는 역할을 맡았던 영수(? 뭐 그런 흔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피천득의 플루트 연주자가 떠올랐다.

현이의 연극은 작은 역할을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고 대견하게 여기는 엄마의 마음을 썼고, 영수의 기악합주는 '작은 역할도 성실히'의 이면에 담긴, 무조건적인 복종이 담겨 있는 선동과 세뇌의 이야기였고, 플루트 연주자는 콘트라베이스, 바순, 팀파니, 플루트 연주자들처럼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항상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 가치있다는 생각을 잔잔한 목소리로 전해 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 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는 피천득의 수필을 읽노라면, 세상을 팍팍하게만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고 여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을 읽고 나면, 그런 여유보다는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가엾은 소시민적 삶이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알-싸-하다.

<향수>에서 인간의 세계와 동떨어진 그르누이를 창조한 그는 , 인간 속에 파묻혀서도 고독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의 독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울먹이다가, 용기도 가져 보지만, 다시 우울해지고, 미칠 듯한 비명을 지르는 한 사내를 통해서 현대인의 울적하고 우울한 심사를 대리 분출시키려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의 해박하기 그지 없는 전문적 묘사가 탁월한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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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가 있는 풍경 - 인도사학자 이옥순의 인도문화기행
이옥순 지음 / 책세상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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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란 것의 기준은 정하기 어렵지만, 인도에 대해서는 편견이 많다는 것이 객관적인 의견 같다.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천민 자본주의의 못살고, 더럽고, 끈적거리는 인간들의 나라로 여기는 시각과, 상당한 철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행복한 나라라고 여기는 감상적 시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읽은 책은 류시화의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는 인도와 같이 살 수 있기에 인도를 후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강석경의 인도 기행>은 한편으론 객관적으로 보이면서도 시야가 좀 좁아보였다.

이옥순의 기행은 어느 정도 개인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만, 역사학자의 글 답게 역사에서 추출한 객관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과 살갑게 나눈 정감들이 부족함을 본다면 이것도 객관적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함량미달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84년 12월 3일, 미국 국적의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실수로 가스 누출 사고로 70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아직도 수십만이 고통받고 있으나, '운있는 자는 죽었고 운없는 자는 살았다'고 할 정도로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에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배터리가 활발히 유통되는 것을 본다면 맥베스의 말마따나, 인간에게는 진지함이 없는 것일까.

스와데시가 없는 스와라지(자치)는 의미가 없다면서 물레를 돌리던 간디의 저항이 아직도 계속되어 콜라를 이긴다는 인도에서 비록 쌀알로 새긴 예술(콜람)은 사라져 가지만, 그들의 천천히 가는 역사에서,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려와 이젠 지향점도 속도감도 잊어버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도 많지 않을까.

인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는 몰라도 인도를 향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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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화처럼 아름다운 동화 4
김기덕 원작, 김문영 지음, 안승희 그림 / 샘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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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멋진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경치라도 감상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마쳤을 때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 수 있다니... 이제 김감독은 더이상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국보 1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내려다 보는 세상을 더이상 그리려 한다면 그것은 외계인의 시각 외의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한 영화입니다. 혹시 책으로 나와 있나 해서 찾아 보았는데, 영화만큼 감동적일 수 없었습니다.

예쁜 엽서같은 화면 구성, 마음 속에 그득한 욕망과 업보의 숨바꼭질, 자연과 인생의 흐름, 그리고 다시 봄, 윤회와 업보...

불교적인 삶과 죽음의 흐름과 어우러진 정선아리랑은 김감독이 우리 문화의 정수를 얼마나 명확히 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로 그득 넘쳐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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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1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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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ompass of Zen.이었다. 禪의 나침반이다. 우리가 길을 찾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많다. 이정표, 나침반, 지도, 등대... 등등. 가장 좋은 방법은 안내인을 데리고 다니는 길이지만, 모든 길에 안내인이 따라 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임에랴.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게 될 존재인지... 오직 모를 뿐.을 깨닫는 여정은 지도처럼 오른쪽 왼쪽, 동서남북으로 구체적으로 길을 가르칠 수도 없고, 이정표처럼 앞으로 삼십리 남았다고 알려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등대처럼 먼저 간 이가 있어 나를 보고 그대로 찾아오면 된다고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등대는 항구에 아주 가까이 가서야 만날 수 있는 존재이지, 아직도 망망대해 한 복판에 서 있는 나로서는 등대같은 스승들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조사들의 선문답은 등대 정도일텐데, 내게는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물음과 답들이다.

오로지 나침반에 의지하여 길을 나서야 하리라.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오직 모를 뿐. 가을 하늘과 시냇물처럼 오직 투명한 정신을 유지하여 나를 찾아 나서야 할 가을이다. 여름방학부터 조금조금씩 교과서 읽듯이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무엇 하나 남은 것이 없다.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 선불교의 차이가 설명된 것도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고, 오직 텅빈 마음 뿐이다. 어찌 보면 空한 것을 잡았으니 잘 된 것이리라.

그러고도 이 리뷰를 쓰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니, 색을 찾으려 함인가. 이 책의 가르침과 길들을 나침반 삼아, 나를 궁구해야 할 것이다. 숭산 스님의 설법들을 현각스님이 잘 정리해 놓았다. 숭산 스님은 현각이라는 길동무를 만나 이렇게 좋은 책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그 곳에 있었던 분이었음에랴. 세상 종교가 절값 올리려 싸우고, 총무원장 자리 놓고 피를 뿌릴 때, 수십일 단식한 몸으로 산맥을 토막내지 말라고, 그것이 스스로 그러한 원리의 답이라고 자기 몸을 던지시던 분도 계셨음을 기억할 일이다.

본래 무일물인데, 인간은 세계를 끝없이 도륙하려 하는구나. 이번 태풍 '매미'의 충격으로 가로등이 휘어지고, 수십년 묵은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인간에게 경고하거늘, 인간의 오만함은 갯벌을 막고 산을 토막내면서 자연에 바벨탑으로 도전하고 있으니...

조금은 전문적인 불교 입문서라고 보면 되겠다. 서양의 불교 신자들에게 한국 불교를 가르치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이라니, 우리가 읽기에도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다. 불교 경전도 어려운데, 제행무상, 색즉시공, 게다가 선의 경지가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묵묵히 읽고 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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