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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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읽어도 보아도 무슨 소린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김규항이 '급진적인 고양이'라는 추천사(?)를 적어 줬다는 거다. B급 좌파, 아웃사이더, 쾌도난담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김규항의 관심사가 됐다는 것은 일견 참 색달라 보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의 표지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서, 다 보고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획일적인가.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신입사원을 눈꼴사나워하고, 추석같은 명절이 되면 의무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북적거려야 하고(그 밥하고, 음식하고, 상 차리는 여자들은 차롓상에 인사도 못 하는 걸), 동창회 같은 데나 부서 모임 있으면 빼먹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참석하지 않으면 귀가 근질거려 못 산다. 얼마나 욕들을 해 대는지... 정말 그 사람이 그만치 모자라는 인간이었던가. 우리는 그에게 전혀 관심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속을 뒤집어 보면, 늦게 퇴근하는 직장 상사는 집에 가도 애들도 다 커서 학원갔다 늦게 오고, 아내와도 뾰족한 취밋거리가 없어 밍기적 거리다가 늦기 일쑤고, 명절에 모여서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스톱 치기와 음식 먹기(술 포함), 텔레비전 보고, 아이들은 컴퓨터 하거나 피시방 가고... 뭐가 있나? 동창회는 돈 잘 벌고 있는 놈 돈자랑 하고, 그놈들 마누라들도 지들대로 돈자랑하고... 회사 부서 모임이라고 가봤자, 죽어라 술 마시고, 상사들 욕이나 하고, 남들 욕하고... 간혹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 나오면, 뒷날은 오리무중.

획일적인 사람들의 사회를 뒤따라 가지 못하면 뭔가 모자란 듯이 느껴야 했던 획일성을 통렬히 (사실 통렬하진 않고 은근히;;) 풍자하는 이 만화의 표지 그림은, 책을 다 보고서야 의미를 느끼게 된다. 획일적인 교육기관(옥상에 있는 놈은 곧 뛰어내릴 지도 모른다. 왼편에 쪼그리고 앉은 놈은 실패한 놈 같지?), 연단에서 잘난 척 하는 녀석은 몇몇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몇몇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누구누구는 들은 척도 안하는 소리들이다. 스노우캣처럼 종이상자 뒤집어 쓰고 듣지고 않고, 자기 보고 싶은 쪽만 볼 수도 있어야 자유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웅변이 들린다.

우리 나라의 어색한 지역 주의나, 학벌, 해병대 주의(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같은 것들이 실상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우리는 어른들이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너무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많은 선생님들 중에 뭔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손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처녀 총각이었고... 아줌마 아저씨들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간혹 혼자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권윤주씨의 어눌한 표현에 적극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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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이 있는 풍경 - 삼국유사 사진기행
김대식 글, 사진 / 대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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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터 옆에 차를 세우면 좋은 점이 많다. 가까이 분황사 탑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분황사 터 안에 핀 작은 꽃들이 참 정감 넘친다. 분황사 옆의 황룡사 터는 신라인들의 장엄한 불심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달궁터나 임해전지처럼 왕족들의 추회만이 아닌, 온 신라인들의 원력이 여기 담겼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옛날, 지금처럼 크레인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황룡사 구층탑을 세웠던 뜻은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경주를 걷는 것은 이야기 속의 세계를 떠도는 일이다. 많은 유물들이 박물관 안에 비장되어 있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서 밝힌바와 같이 경주는 평생 살면서 구경해도 다 하지 못할 산책로다. 삼국유사를 줄줄이 읽으려면 정말 어렵다. 이런 글들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큰 의문 하나를 풀었다. 일연 스님이 단군신화와 함께 설화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삼국 유사의 뒷면을... 몽고의 80년에 걸친 국토의 유린을 복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일한 길은 상상속의 세계를 떠도는 길뿐.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정말 wonderland이다. 신과 부처와 꿈과 현실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속에서 우리는 앨리스가 되어 우리 나라를 산책한다. 그러다 보면, 앨리스는 절망하고 좌절하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삼국유사의 존재 이유를 많은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보면 좋겠다. 사진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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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기우스 신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느낌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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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늘 생각하던 문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쉬운 이야기로 풀어 쓴 책이다. 줄거리가 너무 평면적이라 할 정도로 단순하고, 세르기우스 신부의 두 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성은 입체적으로 갈등하지 않는다. 참으로 쉽게 부와 명예를 던져버리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세르기우스. 그러나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나 '낭중지추'의 고뇌를 짊어지게 된다. 결국 진실한 삶은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란 이야기다.

우리는 인정받고, 능력을 칭찬받으면 얼마나 오만해 지기 쉬운가. 남들의 칭찬 한 마디에 자기 본성을 잊고 가슴 팔딱거리며 자기를 잃기 쉬운가. 세르기우스 신부님은 욕망을 잠재우려 손가락을 자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생활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면 진리와 거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그러나 그런 것은 또 하나의 범죄처럼 느껴진다. 정말 산다는 것은 苦다. 십 년 전에 촉망받던 의사, 변호사들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뉴스가 들렸다. 그 뒤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니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라고 고뇌에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톨스토이의 글은 아무리 길어도 어렵거나 식상하지 않다. 마치 매일 걷는 길을 산책할 때 느끼는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낯선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매일 만나는 장면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안한 순항. 즐거움의 종류도 참 여러 가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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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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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finding flow'이다. 그리고 일종의 생활의 지침서이다. '흐름을 찾아서'란 제목과 '몰입의 즐거움'은 과정과 결과의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삶의 경험과 일과 여가, 인간간의 관계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흘러가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는 건 왜일까. 저자는 몰입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몰입한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니깐.

그러나 몰입이 인간 행동의 중요한 한 특징임을 밝히고 있다. 인간은 무엇엔가 몰입할 때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재단해 나갈 때 삶의 보람을 느낄 것이라는 거다. 그는 확실히 서구적 세계관을 가졌다. 자연의 흐름은 엔트로피(무질서의 방향)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을 거스르는 것을 덕(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낙하가 선인데, 상승이 선인 모습은 서양의 분수의 미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上善若水임을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동양의 노장 철학은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흐름이고, 물은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수 대신 폭포를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질서정연함보다는 무질서한 방향으로 쏠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무질서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놓아 버리는 '해탈'의 즐거움도 간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선(禪)'이라고 하는 '몰입의 기법'의 역사가 아주 길다. 그러나 '좌선'은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방법, 과정인 것이다.

삶의 흐름을 좇다 보면 그 결과가 몰입이 아니라, 몰입(좌선)의 과정에서 행복한 결과(이것이 선이자 삶의 목표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는 확실히 서구적 시각이 효과적이지만, 그것을 종합하는 힘은 동양의 노장의 힘이 큼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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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간 예수, 영화관에 간 부처 - 한 문화 신학자의 종교 가로지르기
김승철 지음 / 시공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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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도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기독교와 불교의 관점을 연구한 신학자가 쓴 문화 칼럼이다. 단순한 미술과 영화 뿐만이 아니라, 문학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진 작가의 글이다. 이 책은 재미나게 폭 빠져서 읽기는 좀 어렵다. 어쨌든 주제가 신학이고, 우리의 삶과 연관된 궁극적 질문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적합한 용도를 찾는다면, 잠을 부르는 것이라고 느꼈다. 정말 많이 졸면서 읽었다.

욕망이 길을 만들어 놓았구나. / 끝없어라, 끝없어라. / 나로부터 갈래갈래 뻗어나갔다가 / 내 등뒤에 어느새 와 있는 이 길은.(황지우 시)

이런 우리의 욕망에서 시작하여, 이국 땅 터키에서 한국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며 쓴 마종기의 시.

... 근처를 빙빙 도는 터키인 남편에게 눈치 보여, 황망히 떠날 준비를 한다. 잘 사세요. - 네 안녕히 가세요. 터키 땅에까지 와서도 우리들의 인사는 안녕히 어디로 가라는 것이구나... 혼자뿐이라고? 바보! 혼자... 문득 부진한 갈대밭이 된 에페소의 성 밖으로 가는 비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

고독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얼더듬다,

이 몸은 보리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이다. 때때로 갈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는 神秀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도 대가 아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낄 것인가. 라는 慧能의 선종을 드러내 비추기도 하고

무염시태(죄 없는 잉태), 평생 동정, 몽소승천(죽어 하늘로 올라감)하신 마리아의 상징성에서 기독교의 공경심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성모 마리아는 흠숭지례(欽崇)의 대상이 아닌 상경지례(上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성모 마리아의 렛잇비, 존레넌의 '이매진 노 릴리젼'과 바흐의 커피 칸타타까지 재미난 이야기꾼인 동시에,

내 바라건대 벚꽃나무 아래서 죽고 싶어, 음력 이월 어느날 만월 무렵에./

속세의 마음이 없는 몸에도 저절로 가을의 정취가 느껴져 온다.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물가의 가을 저녁에.

같은 사이교의 와카와

종소리 스러져 벚꽃향기 울리는 저녁이어라./
죽지도 않은 여행길의 마지막 저무는 가을./
백골 될 것을 마음 속에 바람이 스미는 이몸./
흰색을 많이 쓰는 화가가 겨울 해변에 서 있다.

같은 바쇼(芭蕉)의 하이쿠들도 이 작가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한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삽화들이 작가의 의도를 절반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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