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로마의 일인자(3권)

2. 풀잎관(3권)

3. 포르투나의 선택(3권)

4. 카이사르의 여자들(3권)

아직 5,6,7부가 번역되지 않았다.

 

몇 번 시작해볼까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손에 잡기 어려운 책이었는데,

방학을 기회로삼아 시작해 본다.

 

소설가 콜린 매컬로의 작품으로 굉장한 소설인데,

역시 역사가의 일과 소설가의 일은 이렇게 같으면서 다르다.

신문 기사로 읽는 최순실보다 소설로 읽는 <여인 천하>는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지...

 

낡은 체제의 끝이라는 로마의 후기,

욕망으로 가득한 정치가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숨쉬는 듯 달려든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것이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가니,

로마의 공화정 말기가 어디쯤인지 가물가물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인물이 살아 있으니, 마리우스와 술라의 모습과 언행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시작이 힘들지, 발동이 걸리면 중독성이 있을듯하다.

 

1부의 한 권만 읽었을 뿐인데,

2부의 <풀잎관>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는지, 기대가 크다.

 

아, 배울 것은,

술라가 배워야 하지만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

술라는 때때로 충분히 배울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자신의 상관이라는 행운을 떠올리면 이내 마음이 놓였다.

마리우스는 아무리 바빠도 술라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무지를 이유로 술라를 하찮게 보는 법도 없었다.(459)

 

여럿의 행운이 등장한다. 3부의 <포르투나>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가들의 이야기인 만큼, 정치판에서 행운과 부조리가 동의어로 쓰이는 상황이 끄덕여지기도 하고,

혐오감에 욕지기도 치민다.

술라같은 열등감에 뻗친 자들의 말로는 결국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공포정치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문제는 마리우스, 내가 자네한테 느끼는 호감을 술라에게선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네.

그에게는 내 신경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게 정확히 뭔지 도무지 모르겠네.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언제나 공정하고 편견이 없어야 하는데 말이네.(441)

 

술라의 행적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카이사르와 마리우스는 정확히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직관적으로 그의 비열함이 감지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간파해 보여주는 것이 소설의 힘이다.

 

로마인들은 태양과 바람, 비와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을 모래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422)

 

로마에 비해 약소국인 누미디아인들의 이야기.

약소국 사람들에게 태양과 바람, 비는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것이 역사던가.

이 소설의 장점이라면, 로마의 시각이 아닌 바깥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은 모래들 역시 한 호흡 로마와 함께 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법이란 사람을 획일적으로 찍어누르는 거대하고 육중한 석판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획일적이지 않으니까요.

법은 사람을 덮어주며 각 개인의 독특한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드러운 담요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로마 시민은 바깥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특히 우리의 법과 법정은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261)

 

드루수스의 연설이다.

로마법이 가지는 힘이 느껴진다.

이 시대에 금이가는 시기를 읽자니 가슴이 애린다.

 

짧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또 한 경계가 만들어지는 시기를 살고 있다.

해방 이후 대 혼란기를 거쳐 <친미 이승만 독재기>의 암흑을 살아내었고,

4.19의 혼란기를 거쳐 <박정희 독재>의 시기를 견디었으며,

광주의 함성과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의 엄혹한 시기를 살아남았다.

합당으로 권력을 잡았으나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는 금세 지나고,

다시 <이명박근혜>의 자본 독식의 세상을 보고 있다.

이 나라의 운명은 <포르투나>의 여신이 윙크를 해줄 것인지, 아니면 다시 <반기문-뉴라이트>의 친일 정권의 치하에서 굴욕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인지, 한겨울을 보내는 시기를 살면서,

제발 법이 법같이 서기를,

민주주의는 박근혜나 이재용 앞에도 같이 서기를,

공화국의 이념에 좇아 좀 더 희망이 남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는 의미를 찾아 본다.

 

알라딘의 '책 소개'가 아주 간명하고 훌륭하다.


권력의 공백기에 펼쳐진 인간의 욕망과 암투
이 작품은 권력의 분리와 견제의 원칙 속에서 500년간 지속돼오던 로마 공화정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오로지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신진 세력 간의 모략과 암투, 욕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기원전 110년을 첫해로 설정한 이 작품은, 전통적 귀족 출신이지만 돈이 있어야 후대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독재관 카이사르의 조부)가 아직 어린 자신의 첫째 딸을 돈은 많지만 천민 출신으로 권력을 잡기 힘든 나이 많은 마리우스에게 시집보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권력과 재력이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정략결혼으로 이 두 가문은 혼란스러운 로마 공화정 말기에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가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귀족 출신이지만 난잡한 생활을 하던 술라도 카이사르 집안과 관계를 맺고 마리우스 아래에서 권력의 중심부로 서서히 진입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 그리고 유구르타
이 책은 크게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 세 인물과 그 집안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로마의 속국인 누미디아 왕 유구르타, 마리우스의 정적 메텔루스 등 다양한 인물들을 로마의 성장과정과 함께 그리고 있어 흥미롭고 입체적이다. 또한 리더의 오만과 그릇된 판단으로 10만 대군이 게르만족에게 몰살당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처음의 협상부터 전쟁 상황, 처참한 최후, 그리고 시체의 처리문제 등까지 전쟁사, 행정, 권력이동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다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의 형식을 갖추기 이전의 사념이 툭,

부려진 느낌이다.

일본의 하이쿠가 그 감정을 시어의 절제와 아와레(슬픈 정서 같은)에 너무 집착했다면,

그런 절제 자체가 의미없다.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고비들에서

그가 주워올린 시들은,

마치 가을걷이 다 마친 들판에서 주워돌리는 '낙수'를 줍는 일과 같다.

 

삶은 부질없다.

그렇지만 또 우리는 삶에 집착한다.

그 끝간데 모를 간극 사이를 부유하는 우리 삶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추인다.

마치 번갯벌 비칠 때 잠시 보이는 화려한 그림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런 식이다.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시일 듯.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인간의 작음은 이렇고,

 

한번 더 살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죽은 붕어의 뜬 눈

 

삶의 무상함은 이렇다.

그렇지만, 또 세상은 찬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그의 시에 찬탄이 많은 이유다.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천재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천재였다면

그런 행복 몰랐으리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여

아마데우스여

이하여

조선의 무명 천재들이여

 

아, 책읽는 기쁨을 이렇게 썼다.

알아가는 즐거움을 감탄한 것이다.

 

인생의 짧은 속에서

의미라고는 뭔가 배우고,

보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일,

그것이라는 이야기를 주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읽지 못한 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들렌 냄새에서 시작한다.

 

나는 아직도 갓 구입했던 '수학의 정석'의 아릿한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여느 책들과는 다른 재질의 종이여서 특이한 냄새가 났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 책방을 냈다.

간판쟁이 아버지가 간판도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장사는 힘들다.

그런 과정을 일기로 남겼다.

 

여행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벼운 책을 읽었다.

책의 일기들은 나날의 일상이라 가벼웠지만,

주인장의 마음이 읽혀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여행지의 풍경들이 관광객에게는 가볍고 흥겨운 것이지만,

그곳 상인들에게는 일상의 밥벌이인 것과 마찬가지리라.

 

말간 눈 동그랗게 뜨고

조용히 다가가

누인 풀을 조심스럽게 훑어

골라 먹고

사라진 숲은 고요하다.(책방의 사슴)

 

이런 글은 고요한 책방 냄새를 떠오르게 한다.

 

인테넷에 들어가면 사건 사고가 뚫린 하수구처럼 쏟아진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분노, 경멸, 비하, 시기 같은 감정들이 얼굴없는 괴물인 가오나시를 만든다.

그저 상대의 감정을 처절하게 짓밟는 진흙탕 싸움,

노트북을 닫았다가 다시 열면 가오나시가 입을열고 있다.(115)

 

김기춘의 무리들이 이런 일을 더 부추기도록 작전을 짰다 하니 참 무서운 일이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배수아, '1979' 중, 198)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읽고 있다.(199)

 

책의 효용은 별것 없다.

함께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길 바랍니다.(241)

 

글쎄, 그건 좀 무리한 요구일지도... ^^

 

당신이 시장입니다. 마을을 부탁합니다.

 

서울 시장이 남긴 문구란다.

마을이 살아야 하는데,

대기업만 살자고 마을을 다 죽였으니...

망상의 시간들이 흐른다.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적어도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그리고, 책은 미망의 순간들을 좀더 깨워준다.

 

그래서, 난 올해도 꾸준히 읽을 것이다.

꾸준함은 힘이 셀 터이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7-01-14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수아님의 1979는 따로 출간이 된 게 아니고 AXT에서만 볼 수 있나요? 검색을 해보니 책은 없고 AXT 2015 7/8월호가 뜨네요. 전문이 읽고 싶어서 여쭤 봅니다.

글샘 2017-01-14 16:24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는 이책에서 본거라.
 
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얼음, 7)

 

이 책은 추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 그는 몹시 외롭다.

그가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얼음물에 몸을 적시는 일.

스스로를 가혹하게 매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가혹하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은 의미없다.

이 책은 얼음 - 숲 - 바다 - 동지로 전개된다.

꽁꽁 얼어붙은 주인공이 숲에서 딸을 만나고, 바다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한다.

결국은 꽁꽁 얼어붙는 동지가 되는 일이 수미상응하는 듯 하지만

처음의 추위가 '외로움도 깊어라'하는 탄식이었다면,

마지막의 추위는 '함께' 였으므로 웃으며 보내는 날들이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동지, 409)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고, 심하게 늙다 보면 병들어 죽게 마련이다.

더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리고 삶의 궤적에는 다른 사람의 엉뚱한 팔을 자르기도 하고,

훌쩍 아내를 떠나버리기도 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하는 것이지만,

어떻게든, 그 지점까지 오는 것. 그게 삶이다.

 

이 소설을 가만가만 읽고 있노라면, 눈이 하얗게 쌓인 추운 섬에서,

동그마니 앉은 노인을 상상하게 되고,

나의 삶 역시, 어느 지점까지는 가게 될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악마는 소리를 지르는 반면,

신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위안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사실 자체가 위안이라는 걸 깨달았어요.(370)

 

날마다 지옥임을 확인시켜주는 뉴스가 풍년인 와중에,

기름장어라는 이가 정치판을 휘젓고 다닌다.

악마의 소리는 웅변이고, 신의 소리는 속삭임이라니...

삶은 위안보다 분노의 연속이기 쉽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그 어느 지점까지 살아가는 것이 삶인 것을...

작은 목소리지만, 신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함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또한 어려운 길인지...

 

의사에게 엉뚱한 팔이 잘린 외팔이 앙네스와의 만남도 지옥이다. ^^

그렇지만 그 지옥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삶은 그런 모양이다.

 

평범한 사람이란 없어요.

그런건 정치가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일그러진 세계상이에요.

그들은 우리를 독자적인 개인이라고 주장할 의지도 없는,

수많은 대중 속에 포함된 그저 그런 한 사람으로밖에 여기지 않아요.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평범함에 대해 필사적으로 이야기하지요.

평범함이란 사람들을 무례하게 다루는 정치가들이 대는 핑계에 불과해요.(181)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던 딸 루이제는 정치적이다.

아무 힘도 없으나, 누드 시위를 하고,

목소리를 낸다. 마치 촛불 하나와 같다.

 

몇달 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던 국제 구호선의 승선자중 몇 명이 이스라엘 해병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 작품의 저자도 그 구호선에 탑승한 682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옮긴이의 말 중)

 

철저히 정치적인 사람만이 세계를 읽는다.

숨쉬는 일조차 정치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피해를 입고 보면, 숨쉬는 일이 비정치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임을 알 것이다.

 

루이제는 당신이 숲을 지나 와주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내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숲의 오솔길이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기 쉬운 법이라오.(167)

 

자코넬리로 불리는 구두쟁이의 말이다.

신발은 그 사람의 보행 습관을 그대로 흉지게 담아 내듯,

우리 육신이나 모습 역시 우리의 삶의 궤적을 담아 낼 것이다.

걷고 있으면서도 매일 의심하듯, 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게 되는 삶에 대하여...

차가운 공기를 읽으며 따끈한 커피를 마시는 일은 아름답다.

 

"비올 때가 가장 아름다워.

조용히 내리는 스웨덴의 여름비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어.

다른 나라에는 멋진 건물 또는 현기증을 일으키는 산과 계곡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름비가 있지."

"고요함도."(122)

 

하리에트와 주인공의 대화다.

삶은 결코 아름답지만도, 화려하지만도 않지만,

짧은 순간, 아름다움을 담기도 한다.

어쩌면 짧은 순간이어서 더 탐닉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름비 내리는 스웨덴처럼,

잠시의 고요함처럼.

 

<키미노 나와>(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誰そ彼( たそがれ) 타소가레..라는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황혼이라는 '타소가레'는 일본노래인 와카에서 등장한다는데, '게 누구요?' 정도의 의미다.

상대방을 명확시 인지하기 힘들어지는 시간.

 

 

신카이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역시 비내리는 공원을 배경으로 삼았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은 정말 완전히 망가질 뻔했어.

내가 이해할 만한 말을 당신이 해주길 바랐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가벼워졌다.

거짓말은 중량과도 같다.

처음에는 전혀 무게가 없는 듯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하리에트는 시트를 턱까지 끌어 올렸다.

"추워?"

"평생 추웠어. 온기를 찾아 사막과 열대 지방으로 가기도 했지만,

하지만 내 안에는 늘 작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어.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를 끌고 다니지.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또 어떤 사람들은 불안을.

내가 끌고 다닌 것은 고드름이었어."(101)

 

하리에트는 숲 속 연못을 보고 싶어한다.

"내가 살면서 들은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었어.

정말 유일하게 아름다운."

내 머릿속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한 느낌잉ㅆ다.

나는 악기들 한 가운데 앉아 있었고

내 옆에는 현악기들이, 바로 뒤에는 관악기들이...

"사람들은 늘 약속을 받지, 

사람들은 이런 약속 중에 몇 가지나 기억하고 있을까?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황혼 무렵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늘과도 같아.

나이 들수록 더 확실하게 느껴."(56)

 

책 속에서 나를 만난다.

나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긴채로,

그렇지만, 둘은 약속을 지키게 되고,

작은 하나하나의 약속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이라니...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암사자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탈리아 구두로 읽었던 헤닝 만켈의 소설이다.

스케일이 남다르다.

몇 년 전, 노르웨이에서 극우 인종주의자의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는데,

세상에는 아무리 평화로운 곳이라도 또라이들이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러시아의 테러 전문가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의 갈등,

그리고 보안이 허술한 북유럽을 아우른 이야기는 헐리우드식 장르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제목인 하얀 암사자는 잠시 등장하는 배경에서 기인한다.

그렇지만 제목으로 쓰인 그 암시에는 '하얀 색'과 '여성'의 문제도 담고 있는 듯 하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실종과 살인 사건,

그 연관성에서 찾게 되는 그야말로 로컬에서 시작하여 글로벌한 사건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저 악이 나쁘다는 것보다는,

악이란 존재들은 두루두루 권력자들과 관계를 맺은 이권들이 맺는 형태라는 사회적 문제 제기도 유럽스탈인 듯.

 

죽은 뱀 한 마리,

뱀의 머리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뱀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아공도 이러한 형국이었다.

죽어서 이제는 무덤에 묻혀 있다고 생각되는 많은 옛것들이

여전히 살아있었다.(178)

 

아프리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조선의 노론 권력은 아직도 살아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작위를 얻던 것들이, 이승만을 등에 업고 아직도 떵떵거리고 살아 있다.

지폐에는 조선인들을 그려 넣고, 아직도 나랏님 하나를 감방에 보내는게 참 어렵다.

 

다이내믹하기도 하고,

눈 앞에서 참혹한 비극을 용산에서, 평택에서, 그리고 팽목 앞바다에서 봐야 하는 땅이기도 하다.

이제 하얀 암사자의 땅을 짓밟고 이권 다툼이나 하는 세상 따위 좀 저세상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

 

요즘 한창 인기인 <너의 이름은...>이란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불행한 과거라도,

현재의 촛불이 빛을 비추어 조금이라도 밝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세월호가 잠긴 것이 천 일이 넘었다.

곧, 용산의 불길을 본 것이 8년이 되어 간다.

반기문이 왔다고 좋아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다.

세상 참 잠시 후를 예측하기 힘든, 요지경 속이다.

 

164. 만델라가 30여 년간의 투옥생활을 마치고... 그는 27년 여를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게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