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란 무엇인가 - 뉴미디어총서 3
사이드 필드 지음, 유지나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희곡은 많이 읽어 봤지만, 시나리오는 구해 읽기가 어렵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자랐던 시절에는 시나리오는 교과서에 있지도 않았고요. 최근들어, 10년 전 서편제의 100만 이루로 쉬리의 600만, 친구의 800만, 이런 한국의 블록버스터가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면서 가문의 영광같은 코믹물도 500만을 넘기고요, 역시 영화의 감동작은 살인의 추억 아니겠습니까.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두 시간 내내 심장이 벌떡거려서 혼났습니다. 한국 영화의 발전에 소름끼쳐하면서 말이죠. 사실 쉬리 유명해 지고 나서 혼자 보면서 시시해서 혼났고, 친구도 유명해 진 뒤 보면서 내 나이 또래나 공감할 이야기에 젊은 고딩들이 쏠린 걸 보고 하품난다고 여겼는데...

한국 영화의 발전 밑바닥에 있는 시나리오의 공부에 참 좋은 책이더군요. 전에는 시나리오 관련 책을 뒤적거려도 너무 전문적이라서 강의를 듣기 위한 책이란 냄새가 많이 났는데(사실 강의용 책은 허술해도 되잖아요. 강의에서 메워야 하니깐, 강의용 도서는 엉성한 게 정상이고) 판매용 도서에는 완벽한 설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많은 시나리오 관련 서적 중에 이처럼 내 맘에 꼭 드는 설명은 처음 만났답니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시나리오를 같이 읽어 나가면서 이 책을 읽어서 그런 도움을 받은 거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계속 읽으면서 이 책을 읽으니깐, 정말 좋은 책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책과 좋은 선생님의 공통점. 좋은 선생님에게서 배우면 그 과목 공부를 잘 하고 싶잖아요. 좋은 책을 읽으면 그대로 따라 살고 싶고. 이 책을 읽으면서, 시나리오도 읽고, 또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거든요. 물론 적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깐, 한 번 해 볼 겁니다. 선생님 말대로 좋은 시나리오가 첫 작품에 나올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책 만난 기념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길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그녀는 강아지를 사랑한다. 자기 새끼로 여기고...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애완견을 출입시킬 수 없는 곳에도, 자기 새끼는 출입시킬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는 세상으로. 그녀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살아온 시대가 겹쳐지므로 우리 386세대가 가진 정서의 상처와 감정적 세련되지 못함과 이념적 과격성과 논리적 만족을 위한 탐구가 상당 부분 공감 가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 위대한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하부 구조는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우리의 하부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식민지 경제에서 원조 경제에로, 자본주의 신식민지 시대에서, 자본주의 신경제주의로, 공산-자본주의의 대립의 시대에서, 화해의 마스크를 둘러쓴 페레스트로이카와 노스트글라스(개혁, 개방)을 빙자한 공산주의 몰락의 시대로 경제적 하부 구조가 변하면서, 우리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던 상부구조로서의 문학의 가치는 신경제정책(자본주의적 패권주의의 다른 이름)을 외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저주스런 군홧발 아래서, 거대한 수레바퀴에 대항하는 어리석은 당랑(사마귀)이 되지 않으려고 착각하면서, 병신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각각의 인간은 파편화된 채고. 남들이야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건, 노숙자 몇 쯤 굶어 죽건 말건... 나는 개 한 마리 안고, 중국으로 가기도 하고, 먼 길 떠나서 정신적 자위를 하며(혹자는 이런 걸 플라토닉 러브라고 했던가? 플라스틱 러브라 했던가.) 헛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느 땅에 살아간들, 그 나라가 물리적 거리가 얼마나 된들, 정신적인 왕따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우리 나라를 정말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멀고 먼 길을 떠나서도 애증에 한스런 푸념으로만, 유리창 밖 어슴프레 떠오르는 새벽 불빛에 떠오르는 마네킹 대가리들 보면서나 월하에 공동묘지 얽힌 전설을 떠올리며 살거나.

참 슬프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처절하게 슬퍼보이지 않는데, 나 혼자 슬퍼서 가슴 젖은 오후... 이십년 전 농활 가서 쫒겨나면서 흘리던 눈물이 아직도 가슴에 젖어 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닮은 점이 많은 소설이라고 읽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름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지만...몇 년 전인가, 하루키이 소설을 읽고 당황한 적이 있다. 일본과 우리의 거리가 엄청나구나. 이런 소설이 일본인들의 마음에는 어필할 수도 있구나, 하고. 그렇지만, 바나나의 소설은 정말 작은 이야기이다. 이 글들을 읽다 보면, 나의 운명, 삶과 이 세상, 죽음과 저 세상,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로운 것들의 의미 같은 것들을 불현듯 만나게 된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지만, 그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삶의 조각들에서 우리는 어떤 삶이 가치롭다고 단정지으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우울함을 보여주어 상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절망을 비쳐 주면서, 사는 것의 희망을 언뜻 번뜩이기도 한다.

절망하지 않은 사람이 갖는 희망은, 절망해 본 사람이 갖는 희망과 의미가 다른 것이므로,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후자의 희망을 잘 보여주는 거다. 매일 희망을 가졌다가, 절망하고, 다시 절망을 벗어나 희망차려고 힘쓰는 사람에게는 가끔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휴식할 여유가 없다고 핑계대면서 아무 대책없이 피곤에 찌들려 절망 속에 살다가, 희망 속에 잠든다. 일본인의 가벼운 삶의 터치가 죽음과 운명이란 무거운 주제와 조화를 이룬 뛰어나지 않지만, 삶에 대한 무당(巫)적 해석이 강한 소설이다. 일본의 전형적인 인생관이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바나나의 별 거 아닌 소설을 원문으로도 읽고싶다. 일본이 잘 보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관책진(禪關策進) - 이것이 선의 길이다
광덕.운서주굉 지음 / 불광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운서주굉은 중국 항조우(현재 절강성) 인화현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이미 사전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박학하였으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시대는 명나라 말기의 스님이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맨 앞에 '선입문'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선입문에는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불성이란 무엇인가. 인간 상실과 그 회복의 과제에 대하여, 인간 회복의 문제점, 교와 선, 선의 논리, 선의 화두의 본질, 화두 참구의 기본 요건, 선의 공덕, 선의 효용, 선의 자세와 호흡법 등이 있다. 간단하게 초심자가 읽기 좋은 글이다.

본론에는 여러 조사들의 법어가 실려 있다. 간혹 지나치게 간단하기도 하고, 간혹 심오해서 머리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선의 세계란 이해의 세계가 아니지 않은가. 머리를 맑게 하면서 마음의 무구를 찾아 떠나는 선의 여행에 좋은 동반자이다. 이 책의 세로쓰기는 오히려 신선하다. 오랜만에 세로읽기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만끽하면서 두툼한 책의 향기에 빠져들면, 한여름의 무더위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의 끝. 희망의 끝. 그 모든 끝. 이 소설집의 말미에 역자 김남주씨는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한 외로운 사내의 시선을 느끼며, 긴장하며, 아리게 쓰는 글을 읽으면서 통찰을 읽어 낸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안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문학은 '상처를 통해 풍경으로 건너갈 때' 나오는 것일까. 오 헨리 류의 반전과 모파상의 깜짝 놀라게 하는 역전 기법을 쓰고 있는 '벽'과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같은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시니컬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세상은 그에게 권총 하나만 남기고 떠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는 비둘기같은 시민으로 몰락한 휴머니스트였지만, 마음 속엔 어떤 열정 같은 것을 갖고 있고,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류트에 대한 동경을 싸구려 선술집 가슴 설렘으로 치부시키고, 어딘가에 가서 죽음을 맞는 갈매기들을 동경한다. 저 먼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드는 심정으로. 그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서, 줄곧 유치환의 시 <깃발>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