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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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는 소문은 있으나, 초고령자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선진국의 노년은 돈은 있으나 고독하다는데,

한국의 노년은 돈도 없이 고독하다.

폐지줍는 노인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노년.

 

이웃집 할머니 애디가 이웃집 루이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9)

 

이런 상황을 벌여 놓자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간다.

삐죽거리며 애디의 집으로 간 루이스.

밤에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

배우자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를 공유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갖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13)

 

이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앞문으로 올 것을 요구한다. 당당하게.

스토리가 지나치게 쉽게 미끄러진다 싶더니, 역시 걸림돌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고쳐줄 수는 없잖아요.

늘 고쳐주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죠.(156)

 

길지 않은 이 이야기는 노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삶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 비해 하염없이 작아 보이는 사람이라면,

아직 젊은데, 살아갈 날들이 캄캄해서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또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날마다 모르겠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을 읽으며 삶의 향기를 되살리는 일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고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다만, 삶의 방향과 속력을 스스로 깨닫고 느끼며 사는 것,

그렇게 느끼며 향기나 악취를 견디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며 사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밤에, 우리의 영혼은...

이런 제목은 아스라한 여운을 남긴다.

'밤'은 '노년'이기도 하다.

조금 쓸쓸하고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기도 하는, 울적하기도 하고 술이라도 한잔 생각나는 시간.

 

우리 영혼은, 언제든,

위로받고 싶어한다.

그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 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와 엮어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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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12-1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를 줄 수 있는것은 자신뿐!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글샘 2016-12-15 23:44   좋아요 0 | URL
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는 게 나이먹는 일인가 싶습니다.
 
모파상 단편선
기 드 모파상 지음, 이정림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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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드 쉬프...는 비계덩어리라는 말이다.

모파상은 장편 6편, 단편 300편 이상을 쓴 작가로, 43세에 죽는다.

죽기 전에는 정신 이상으로 고생하고...

 

모파상이 태어난 것은 1850년

프랑스는 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여러 차례 보수반동의 시대가 밀려오기도 했다.

혁명은 한번으로 완수되지 않는다.

반동의 시대가 오고 다시 혁명의 시대가 밀려들게 마련.

 

보불 전쟁 와중에, 피난 마차 안에서 불 드 쉬프는 무시당하지만,

음식을 제공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숙박지에서 프로이센의 장교가 불 드 쉬프를 볼모로 삼아 마차를 출발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비계덩어리는 다수를 위해 희생양이 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녀를 모멸감에 싸여 울게 만든다.

 

그때 휘파람으로 불리는 '라 마르세이예즈'

 

조국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이여,

인도하라, 떠받치라, 복수하는 우리 팔을.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그대들의 수호자와 함께 싸우라.(73)

 

자유를 수호하는 민중의 노래,

복수하는 자들의 두려움을 안아줄 노래.

그 노래는 결국 모든 사람의 자유를 수호할 수는 없었던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듯... 씁쓸하다.

 

인간 세상은 참 보잘것이 없다.

아무리 이념이 크고 그럴싸 해보여도, 실질은 구질구질하다.

그런 현실을 '비계덩어리'로 불리는 창녀를 소재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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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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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빠상은 '목걸이'로 유명한 단편 작가이다.

이 소설은 중편 정도에 해당한다.

 

삐에르와 장 형제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문제는

어머니의 문제와

유산의 문제였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동사도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을 형용할 형용사도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들을 발견할 때까지 그 단어, 그 동사, 그 형용사를 찾아다녀야만 하며,

어려움을 피해가려고 적합하다 할지라도 속임수와 언어의 광대짓에 도움을 받아서는 결코 안된다.

희귀용어 수집가보다는 뛰어난 문장가가 되도록 노력하자.

다양하며, 다른방식으로 구축되고, 교묘하게 끊어지고 소리의 어우러짐과 재치있는 리듬으로 풍성한 문장들은 더 쓰자.(소설, 28)

 

이 소설은 스토리 라인이 단순하고, 등장인물도 간명하다.

그리고 내적 독백보다는 표정, 대화를 통해 묘사하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흡인력 강한 이야기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좋은 소설은 이런 것이다, 하면서 보여주기라도 하듯,

쓸데없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물들이 최소한의 갈등으로 부딪치지만

그 파장의 울림은 크고 오래간다.

 

재능은 오랜 인내이다.(26)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봄직한 작가다.

그의 짧은 소설론 역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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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예찬 - 넘쳐야 흐른다
최재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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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란 한 종으로만 이뤄진 집단을 일컫는다.

사회의 성원들은 일단 각자에게 득이 되기 때문에 모여들지만

함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온갖 이해관계에 휘말리게 된다.

사회 생물학은 바로 이런 관계의 역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89)

 

최재천의 '넘쳐야 흐른다'는 마음을 담은 책.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간사와 유사한 면을 유추하여 쓴 간단한 이야기들이다.

 

성공하려면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최고 수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라.

교류하고 고립되지 마라.(마이클 조던, 186)

 

삶은 경쟁이고 투쟁이고 승리를 바라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모든 면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애를 위해 선물을 하기도 하고,

이익을 위해 뇌물을 주기도 한다.

유전자를 남겨주기 위해

이기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모든 것을 베푼다.

 

유엔에서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를 하는데,

웰빙과 일빙 ill-being 의 비교가 있다.

일빙이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고 느끼는 무기력함, 빈약한 사회관계망, 물질적 빈곤,

허약한 건강상태, 사회 불안의 다섯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상태이다.

이 반대가 웰빙을 담보할텐데,

특히 건강과 사회 안전은 자연생태계의 건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54)

 

아픈 사회에 살고 있는 일빙의 일원으로서...

기억나지 않습니다...로 일관하는 재벌 총수들을 바라보는 무기력함,

독거노인으로 대표되는 사회관계망,

빈부의 격차 심화로 인한 빈곤의 고도화,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격차가 큰데 의료보험 역시 일반보험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사회 불은은 불문가지...

 

위대한 예술은 정원의 화초가 아니라

자기 모순을 딛고 피어나는 잡초.(175)

 

촛불들은 화초가 모인 것이 아니다.

잡초들의 의견은 제각각이고 다 다르지만,

그 모순 속에서 작지만 일관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예술로 승화되는 사회상과 비견되는 것도 멋지다.

 

리더는 reader이자 thinker이자, trailblazer(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휘자는 청중에게 등을 돌려야 하지만

국가의 지휘자는 국민의 눈을 들여다보며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미래가 이 암울한 현재보다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263)

 

이런 대목을 읽노라면 좀 서글퍼진다.

약물중독자가 책을 읽을 리도 없고, 생각이 있을 수도 없으며, 길은 알 수도 없을 것이므로...

국민에게 등을 돌린 지휘자 같은 그의 탄핵을 앞둔 날들은

독한 것들의 암중모색과

약한 것들의 처절한 저항이 충돌하는 나날들이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탄핵을 시켜도 절반도 이긴 것이 아니다.

잡초들을 짓밟던 자들의 군화 밑창을 뚫고

고개 꼿꼿이 들고 저항하는 날들이 더 지속되어야 승리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도올의 일갈이 명쾌했다.

지금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들은 다 가짜라고.

원래 가짜는 어렵고 복잡하다고...

 

거품으로 가득했던 이명박근혜의 시대가 퇴조하고 있다.

거품으로 가득했던 새누리당의 거품이 가라앉고 있다.

 

촛불의 거품으로 세상은 더 부글거려야 한다.

양이 질로 전환되기까지는 끝없는 열기가 축적되어야 하고,

이전 상태를 부정하고 새로운 상태를 지양하는 존재는

계속 부글거리면서 거품을 뿜어내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한 순간,

거품은 사라지고 상태가 고양되기도 하는...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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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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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추나'이다.

'추나' 요법이라 하면 글자의 뜻으로는 '밀고 당긴다'는 의미이고,

동양 의학에서는 척추 관절이나 근육 등의 이상을 바로잡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중국어 사전을 찾으면 '뚜이나'는 '마사지하다, 안마하다'는 의미란다.

 

가장 천한 자본의 나라 한국에서는

마사지... 하면, 퇴폐 업소를 떠올리게 한다.

창녀촌을 불법으로 몰아내면서,

번듯하게 개업한 창녀들의 술집을 번성하게 하는 것은,

마치 농촌을 무너뜨려 아파트 촌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법인데,

이 책의 마사지사는 말 그대로 맹인들의 마사지 공간을 말한다.

 

점자를 위한 워드 입력 봉사를 하는 아이와 면접 준비를 하면서 질문을 던지니,

처음엔 그냥 갔는데, 거기서 맹인이 서비스의 정신과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을 직접 보고

봉사 시간 채우는 것보다 그 일이 훨씬 의미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답을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한국은 장애인 출현률이 극히 낮은 나라이다.

통계로 보면 선진국의 10%에 비해 한국은 4% 정도에 못 미친다.

펠프스도 한국에 태어났으면 문제아로 낙인이나 찍혔을 거라는 농담도 씁쓸하다.

중국인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보다 얼마나 나으랴 마는...

이 소설은 맹인들의 삶에 대하여 따스한 시선으로 기술한다.

어지간한 애정이 없이는 이런 책을 쓰기 어렵다.

 

비페이위의 소설은 여러 편이 번역되었는데 인연이 없다가 이번에 읽었는데, 참 좋다.

 

결혼식은 아주 간단히 치를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예쁘게 꾸며봤자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인의 결혼식.(41)

 

맹인으로서 직업을 구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마사지사의 일을 배우게 되지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기 쉽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갈등도 겪고 해소해 나가기도 한다.

 

그녀는 말에도 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푸밍의 말은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절로 머릿속이 환해졌다.

자신의 마사지 실력이 좋지 않았던 원인이 마음가짐에 있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썼고, 너무 조심스러웠고 너무 주저했다.(116)

 

피아니스트 출신 두훙의 이야기다.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127)

 

맹인이 아닌 이들에게 언어의 <분절적 음운 요소> 외에도,

<비분절적 음운>이 의미를 정확하게 해준다.

표정이나 주변 상황이 그런 것이다.

맹인의 경우, 이 상황을 볼 수 없으니, <분절적 음운> 외에 <반언어적 요소>인 <어조, 높낮이, 어투, 고저나 음량> 등이 더 큰 요소일 수 있겠다.

이렇게 이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읽게 해준다.

신선하고, 가슴 저릿한 아픔이 있다.

 

내가 분노하는 페이스북의 뉴스는 맹인들에게 접할 수 없는 구역일 것이고,

인터넷 기사 역시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비페이위의 책들이 위화와 비슷한 시기의 중국을 그리고 있다 하니,

모옌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리는 인간의 운명을 그리는 작품들일 듯 싶은데,

그이 문체는 따스하다.

소재가 달라지면 신랄하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의 <위미>, <청의>, <평원> 등도 찾아보고 싶다.

 

이 세계를 사용할 뿐, 이해할 수는 없었다.(181)

 

붉은 그리움과 푸른 시름,

푸름은 무성해지고 붉음은 시드는 것을...

'아름다움'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 문제.

 

아, 어쩔 수 없는 이해의 절벽이 장애의 한켠에 놓여있을 수 있겠다.

 

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말은 특별한 때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되새겨서는 안 된다.

되새기면 의미가 커진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엄청난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219)

 

사랑에 있어서는 한 마디 말이 불씨가 된다.

분노의 경우에도 그렇다.

불씨는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머저리도 있지만,

들불의 불씨는 바람에 요원의 불길이 된다.

 

인류는 시간을 상자 안에 넣어두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째깍이게 했다.

시간 앞에서는 모두가 맹인이다.

시간의 진실된 모습을 보려면 방법은 하나뿐.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은 그 자신의 눈이 방해물이 되어 영원히 시간과 더불어 한 몸이 될 수 없다.(208)

 

좀 어렵다.

그렇지만, 시계를 쳐다보는 이의 시간과 째깍 소리의 시간은 다를 수 있겠다.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게 하는 사고를 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소설.

 

그는 사랑의 뒷면에서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꼭 점자 같다.

글자의 뒷면이라야 그것을 만질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듯이.

(점자는 점필로 오목새김하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고,

읽을 때는 뒤집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감, 317)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반대쪽이고, 방향도 거꾸로라는 것.

사랑을 이해하는 것과 잃는 것 역시 그렇다는 것.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흘리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회식 도중 쓰러진 사푸밍을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하게 한 동료들 중

맹인이 아닌 가오웨이를 맹인인 줄 착각한 간호사.

 

간호사는 문득 그녀가 자신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선,

지극히 일반적이고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시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간호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무서워서,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485)

 

맹인들로 이루어진 위문단 사이에서 발견한 가오웨이를 보고 질겁을 했다는 것은,

전철 상록수 역 같은 곳에서 동남아 사람들 사이에 자신만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섬찟,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일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한계.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한계.

 

마사지사들의 삶을 통하여

사람의 시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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