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한문 소설 : 어이쿠, 이놈의 양반 냄새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1
이시백 엮음, 최선경 그림 / 나라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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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글은 선문답에 가깝다.

특히 그의 민옹전은 그러하다.

 

무엇이 가장 두렵습니까?

두려운 것은 나 자신만한 것이 없다네.

무엇이 가장 맛있습니까?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지.

신선을 보았습니까?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지. 부자는 세상에 늘 매달리지만

가난뱅이는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신선이지.

불사약을 아십니까?

밥을 먹으면 지금껏 살았으니 밥이 불사약이오.(65)

 

그의 이야기를 보다 온전히 전하려 만든 품이 느껴진다.

허생전을 '옥갑야화'로 소개하는 것도 그러하다.

 

청나라가 대륙을 지배하여

4대를 거치면서 문화로 다스리고

무력으로 방비하여 백 년 동안 안정을 누리고

세상이 온통 평안나고 조용하니

이 또한 하늘이 천명을 주어 보낸 일꾼.(123)

 

북벌이니 뭐니 어수선하던 말들만 많던 시기에

세상을 바로 보는 선비의 눈은 시리게 밝다.

 

허생이 이완 대장에게 밝히는

세 가지 계책 역시 그러하다.

 

비루해 보이지만 인격을 갖춘

예덕 선생, 광문자의 삶을 높이는 것도 멋지다.

고등학생이면 읽어야 하는 고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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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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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원폭을 두 방이나 투하한 미국의 행태.

전쟁을 일으킨 주범, 천황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고,

일본의 전쟁 범죄 중 최악인 731 부대의 실적 같은 것을 가로채고,

조선의 해방을 저지하고, 일본을 동아시아의 교두보로 삼은 것.

 

그래서 일본인이 얻게된 생각은,

범죄집단으로서의 철저한 반성은 없고,

원폭 피해자로서의 분투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은 증발하고 피해자 의식으로 가득한 것.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複數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93)

 

국가와 개인의 분리를 꾀하는 것은

패전 국가에서 도망치려는 것인지...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요.

두려워서 도저히 안 마시고는 못 배기겠단 말입니다.(125)

 

술과 마약으로 도망치는 전후 일본인의 성격.

일본의 데카당스의 대표자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그 시대의 인물들이 가졌을 법한

의식의 공백, 진공 상태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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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독서 -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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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처럼 독서로 뭐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려면, 독서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독서의 괴리는 중,고등학교의 문제풀이식 교육에 있다.

어린 시절 책읽기를 즐기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는 아침 읽기라든지, 독후감 쓰기 등의 지도를 통해 비교적 즐겁게 책을 대한다.

초딩용 동화 같은 독서자료도 풍부하다.

 

그런데 중학생부터는 학원에서 문제를 풀게 할 뿐,

날것 그대로의 시와 소설을 읽게 하다 보니 아이들은 독서에 흥미를 잃는다.

오로지 점수, 점수를 가지고 줄을 세워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다 보니

과목에 맞는 독서를 할 경험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목별로 책을 읽히고, 레포트를 쓰게 하고,

토론을 시키는 것이 학교에서 정착된다면,

그리고 훌륭한 교과서를 편찬하여 읽기 자료로 제공한다면,

책읽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입시 제도는 그대로 오로지 경쟁, 경쟁으로 놔두고

아이들을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로 돌리면,

당연히 그 시간에 경쟁 준비에 몰두할 것이 뻔하다.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는 결코 독서인구를 만들 수 없다.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기, 대학가 서점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야학까지 책이든 문건이든 과외 독서 활동을 중심으로 의식을 길렀으니...

 

박근혜나 김영삼이 책을 읽지 않아서 망한 것은 아니다.

철학이 없어 그랬을 뿐이다.

싫어하는 모든 것에 비독서를 붙이는 일은, 독서 풍토 조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힘이 없을 때 참는 것은 비루한 짓이 아니야.

당장 힘이 없는데도 들고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무모한 것.(213)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214)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런 면모는 신중하고 배울 점이 많다.

 

한국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천민 자본주의의 척박한 환경에서

지금 만큼이나마 출판계가 판을 펼친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기의 독서 열풍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독서교육의 방향과 출판 시장의 투명성이 지속적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체호프의 '내기'는 재미있는 소재다.

젊은 변호사는 15년간을 독방에 있는 조건으로 200만 루블이란 큰 돈을 건다.

독방에서 책을 읽는 변호사는 15년을 채우지만, 은행가는 그를 살해하려 든다.

변호사의 이야기는,

 

십오 년 동안 나는 그대가 준 책 속에서 향기로운 술을 마셨고

세계일주도 했고, 미녀들과 놀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됐다.

죽으면 그만인 이 세상에서

뭐 그리 아등바등 살고 있늕 나 원 참,

내가 당신들의 삶에 경멸을 표하기 위해

내겐 하찮게 돼버린 200만 루블을 거부한다.

그 돈에 대한 내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위해

약속된 시간보다 다섯 시간 전에 여기를 나가 버린다.(189)

 

천 년을 과거제도로 인재를 선발하던 습관은

독서를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지만,

그 독서가 문화 국가를 만들지는 못했다.

 

왜 선진국의 교과서를 본따지 못할까?

왜 교육 관료들은 선진국의 좋은 점은 보지 않고,

경쟁 일변도의 기본틀을 무너뜨리지 못할까?

과연 독서가 인품의 기준이 될는지는... 한국의 유학파 관료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만 든다...

 

잡스는

때로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248)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설할 수 있는 분위기...

학교도 안 다니던 체육 특기생으로 가득한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2002년 진보적 지식인 김규항은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에 정말이지 무관심하다고 비판(271)

 

시대가 달랐다. 그 시대 페미니즘 논의는 지식인 계층에서 유럽식 언명에 머무른 시기였다.

지금처럼 봇물터지듯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던 시기가 아니었는데 비판하는 것은 불합리다.

 

독서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독서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된 독서 지도가 아닐까 싶다.

맵으로서의 지도도 필요하고

디렉션으로서의 지도도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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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섭 2017-11-2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라당정권비판서적 느낌입니다 현여당에서 밀어주는책같은.박근혜 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상당부분 차지하고 부정적인결과에 관해선 독서의부족이원인.김어준씨관련내용에서도 김어주본인은 독서를좋아하진않고 여행을 많이한것이 본인에게 많은도움을주었다고했음에도 저자는 독서가바로 소설속주인공과의 여행이기때문에 독서는 여행과 일맥상통한다며 기 승 전 독서! 라는 조금은 이해하기어려운논리.좋은 얘기도 많지만 개인적으론 모든좋은결과에는 독서의영향이라는논리와 한곳으로만치우친 정치권얘기에 너무 현여당에 잘보이기식 서적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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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책이고,

비명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그 비명이 숨겨진 구조가 담담하게 쓰여진 책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슬픈 모습이 투영된 책이다.

 

책 마지막 부분의 평가를 보면, 남자와 여자의 평이 전혀 다르다.

강명숙, 김별아 서영인, 윤성희, 정여울의 평가는 공감의 언어로 가득한데,

정흥수, 주원규, 한창훈, 황현산의 평가는 추상적이고 막연했다.

우연히 여성 작가가 앞에 남성 작가가 뒤에 놓인 것은 가나다의 일인데, 그리 되었다.

 

고등학교까지 이성교제는 불온시 당하고

날라리들이나 까부는 것으로 치며,

심한 경우 순결 교육 따위로 아이들을 괴롭히다가,

대학생이 되면 한국의 비정상적 음주벽 앞에서 자유와 방종은 뒤섞이게 되는데...

연애와 성폭행의 애매한 경계선은 제정신일때조차 희미한 것인데,

술에 취한 뒤의 엠티 같은 곳에서는 사고 나기 십상인 것이다.

 

해마다 엠티 장소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저질러졌다는 뉴스가 나고,

명문대 학생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식이 들려오는데도,

아이들을 아직도 순결교육 안에 묶어두는 것은 심히 불안정한 공간이다.

 

데이트 폭력이나 엠티 등에서의 성추행, 성폭행은 예방할 수 있고,

충분히 교육해서 예방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애매한 수준에서 시작된 성적 관계가

사랑이라는 막연한 미명 아래 폭력으로 치닫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인가요?

거부의사를 밝히셨나요?

도중에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 있으세요?

싫은 기색 비친 적 있으세요?(45)

 

강간과 준강간(?)의 경계에서 상담사가 하는 말은 더 큰 상처를 준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는 교육은,

대학생이 된 상태에서 연애 감정과 성적 충동,

절제보다는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는 책임지지 못할 결과로 이어지기 쉽게 된다.

 

지도교수는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사람이었다.(263)

 

여성이든 남성이든 의식은 다를 수 있다.

남성이라도 오픈된 마인드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여성 역시 갑갑한 인성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현실에서 현실은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제대로 살겠다는 목표, 달라지겠다는 목표,

더이상 과거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목표,

잘못한 건 가해자들인데

왜 피해자들이 숨고 괴로워하며 살아야 합니까.

누리지 못한것들 다 챙겨가면서 즐겁게 살아도 부족해요.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해요.(286)

 

세상이 달라져야 하지만,

관성은 쉽게 멎지 않는다.

조두순이도 술먹고 심신미약이라 봐준다는 판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수밖에...

 

과장된 행동도 많이 하고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을 모두 사랑해버리죠.

그건 외로운 게 아니라 화가 나있는 거예요.(292)

 

외로운 사람들은 세상에 화가 나 있으면서, 과장된 친절을 표출한다.

그런 사람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진공 청소기'라면서 피해자로 만든다.

 

강제로 관계를 맺게된 후

이 상황이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울었어.

내 삶이고 내 몸인데,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어.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믿어 주겠어.(320)

 

스무 살 어린 아이들이 무얼 알겠는가.

그것도 고3까지는 무균실에서 책만 읽게 해 놓고는,

사회의 구습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일은 잔인하다..

 

기성 세대 모두가 가해자이고,

이제 기성 세대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뜨지 않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은 지옥이다.

눈뜨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막 가득한 세상은 '눈먼 자들의 지옥'도를 그릴 뿐이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재미 없고 끔찍해도,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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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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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예민해?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그래?

일바만 겪는 일 갖고 오버하지 마.

피해의식 있는 거 아냐?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해야해?

왜 유난이야?

내가 보기엔 아닌데?(31)

 

언어는 생각이 결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론보다

언어의 측면을 곰곰 따져본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위의 질문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남자든 여자든)이

흔히 내뱉기 쉬운 말들이다.

큰 고민없이 살면,

내가 예민한 건가?

나만 유난인 건가? 하는 자책에 빠지기 쉽다.

 

이번 한샘의 사건을 보나,

이 책의 발단이 되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나,

여성이 추행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것이 어제 오늘은 아니지만,

그것을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거나,

혐오는 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흑인이 아닌데 흑인이 겪은 차별을 알고 싶다면

백인에게 들어야 합니까?

또 그 경중은 누가 정해야 합니까?(47)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나 학습이 없이

인터넷 댓글 정도로 판단하게 된다면,

페미니즘이 유별난 일 정도로 치부될 가능성은 크다.

 

페미니즘 강연을 듣는 사람은

이미 공감하고 들을 필요가 거의 없는 사람들일 개연성이 높다.

 

가부장제 때문에 남성도 힘들다고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면,

그래서 가부장제를 없애자는 건지,

다 힘드니 다같이 참자는 건지 확인(57)

 

군대 갔다왔다면서 논점을 흐리는 대화들 역시 그렇다.

여성들은 비싼 선물만 요구한다면서 김치녀라 욕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겉보기엔 그럴싸해보이지만

철저히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구조가 교묘하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볼 땐 안 그래.(65)

 

이런 대사 속에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흔적.

한국은 차별 최상위권에 드는 나라였으니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서양에서도 <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리베카 솔닛의 책이 있듯,

세상은 차별을 없애는 데 지극히 소극적인 구조다.

 

사랑해야 할 사이인 상대방의 비명을 들으면서 그냥 살거나,

진짜로 남녀가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거나.(70)

 

여지껏 상대방의 비명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까지 만들면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단속을 했다면,

이제 시끄러운 시기를 충분히 거쳐야 하는 시대임을 밝혀야 한다.

 

그냥 네가 참아.

그냥 좋게 넘어가.

너만 손해야.(89)

 

이런 언어로 피해자를 조용히 시키는 것을 <2차 가해>라고 한다.

'남자답지 못하게'라든가,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같은 것은 모두 2차 가해의 예비음모쯤이었다.

언어는 중요하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지동설이 당연시된 것이 수백 년이지만, 아직도 해는 떠오르고(일출, sun-rise)  있으니 말이다.

 

직장내 성폭력은 이 일이 알려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생긴다고 합니다.(91)

 

즉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두려워한다면 막을 방법이 있다는 것.

 

각자 원치 않는 상황에 단호하게 행동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내야할 때 정작 나오지 않는다.(93)

 

그렇지만, 작가도 경험했듯,

무대포인 남자가 반말로 슬근슬근 농지꺼리를 걸어올 때

열몇 명의 여성으로서도 쉽게 대응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직장 상사나 학교 교사일 때에야...

 

"당신은 너무 고고한 척한다. 대체 얼마나 더 노력하기를 바라는 것이냐?"

혈서를 쓰고 따라다니고, 멋대로 선물을 안기고,

결국 죽이겠다고 기다리다 실패하고, 협박하고,

이후 자신의 소설에 박녹주와 연애를 했다는 내용을 멋대로 써놓은 김유정이

거절당한 뒤 내뱉은 말.(112)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백년 전과 사람의 뇌 구조는 많이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채 한남충이란 말이 등장하자마다 '남혐'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되고

곧바로 사회 문제로 부각된 현 상황은,

'김치녀'를 위시한 온갖 여성 혐오 발언이

오랫동안 문제없이 존재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노릇.(141)

 

메갈이나 남혐에 대하여 심각한 사람도 있다.

이번에 김주혁이 죽었을 때도 '한남충 하나 죽었다'고 쓰는 무정함은 혼나도 싸다.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각을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언어적 측면인 것은 당연한데,

이 책의 가치는 거기 있다.

이 책은 무슨 정희진 류의 이론서도 아니고,

유명한 서양 인사의 연설문도 아니지만,

한국어에서 쓰이는 언어의 문제는 재고가 필요하다.

 

네 앞에서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는

불평이 들린다면 좋은 신호입니다.

원래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는 거니까요.(183)

 

한국이 정말 여성이 살기 안전한 나라이고,

구직이나 급여에서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시끄러워져야 하고,

이런 책에 반발심이 드는 이들에게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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