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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Never let me go...는 노래 가사다.
나를 가게 하지 말라는 간절한 호소는, 가기 싫다는 마음의 에두른 표현이다.
떨어지기 싫지만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의 어쩔 수 없음이 다가선다.
그런데 <남아 있는 나날>의 이시구로를 기억하는 나에게
그의 SF라니... 좀 신선할 뻔 했으나,
글을 읽어 나가면서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독자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호흡대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작가의 호흡을 노벨상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떤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고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그 여자는 혹시 뭔가가 자신들을 떼어 놓을까봐 두려워서
아기를 가슴에 꼭 안고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고 하고 노래..."
이렇게 해석하는 캐씨와는 달리 마담의 해석.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로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372)
4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인데, 스토리랄 것도 없다.
다만, 클론의 세상을 상상하던 21세기 초반에,
한국도 황우석의 무지갯빛 사기에 놀아나던 시점에,
클론들의 감정과 그들의 성장에 대하여,
그리고 기증자가 되고, 간병사가 되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화끈하지 않지만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이다.
인간적이고 교양있는 환경에서 사육된다면
학생들 역시 일반인들처럼 지각있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
헤일셤 이전에 클론들은,
그저 의학 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단다.(358)
으스스한 헤일셤의 생활들을
그들의 미술 작품을 화랑에 가지고 가는 것들을 이렇게 바라보니 참 서글프다.
가즈오의 이 책을 도서관 <일본 소설> 칸에서 찾았는데,
아마 가즈오가 계속 일본에서 성장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 류의 소설을 쓰지 않았으려나?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커플은
운영자들이 진위를 가려내
몇 년간 함께 지낸 다음 기증을 시작.(214)
이런 풍문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래서 몇 년간의 유예를 얻기 위하여 클론들은 움직인다.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미래가 정해져 있지.(118)
가즈오의 소설을 읽는 호흡은 함께 느려진다.
그런데 풍성하고 풍부한 글맛을 느끼는 경험보다는
건조하고 메마른 나날을 만나는 경험이었다.
<남아 있는 나날>과 같은 호흡의 문체여서
내 독서 습관과는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