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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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 장르 소설을 읽는 것은

해피엔드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악은 소멸되고, 정의는 구현된다.

아니 적어도 현실처럼 막막하지는 않도록 세상은 밝아진다.

 

그렇지만, 해피엔드는 또 작위적이고 그만큼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도로 해피엔드에 사요나라를 고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중동무이,

인물이 뭔가 좀 사건과 엮이는 순간 스토리가 끊기는 것은

습작의 맹아들을 묶어 놓은 느낌이 들게 한다.

 

'벚꽃 지다'라는 이야기의 제목에 얽힌 일본어.

 

일본에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꽃이 피다'

떨어졌을 때 '벚꽃이 지다'라고 돌려말하는 표현이 있다.(63)

 

입시에 대한 비정상적 몰두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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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꼴라,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로드스꼴라 지음 / 세상의모든길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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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에 관심을 가지니 남미도 눈에 들어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좋은 공기~란 뜻도 보이고...

 

남미는 큰 대륙이지만, 우리와 같이 슬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발견 discovery'은 '은폐 cover'의 역사이기도 하다.(163)

 

엘 콘도르 파사... 콘도르는 지나가고...

남미의 투쟁의 역사 또한 눈물겹고 지난하다.

미국이라는 암종은 남미에서도 잔인한 화인을 남겼다.

 

여행을 통한 대안 학교.

길 위의 떠돌이 별들... 떠별들의 눈빛은 총총하다.

물론, 피곤에 찌든 날들이 더 많았으리라마는,

인생은 그런 것 아니던가.

 

남미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고,

지리, 역사,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지를 생각하는 여행을 읽을 수 있어 좋다.

 

SIN PRISA, SIN PAUSA

서두르지 말고, 멈추지도 말고...

 

이런 것이 인생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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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종의 기원 -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드는 직진의 삶
박주민 지음, 이일규 엮음 / 유리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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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이던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이 주축이던 노무현시대가 저물고,

그들이 탄핵의 촛불 바다에서 여전히 일렁였으리라.

박주민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빛이 보인다.

 

세월호는 총체적으로 썩은 국가의 환부였다.

그 좌절과 눈물 앞에서

썩어빠진 정권과 재능없는 권력자는 비열한 모습으로 일관할 때,

박주민이 맨 앞에서 졸고 있었다.

 

이제 은평갑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드는 데까지 앞장선 스타 정치가가 되었다.

 

거지갑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외모에 관심두지 않고,

가진체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래로 아래로

자기가 필요한 자리를 향해 몸을 던진다.

수도자같은 사람이다.

 

고시도 오래 준비하지 않았단다.

시험 공부 쪽으로는 천재인 모양이다.

그런데도 자기의 영달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자기 몸을 던진다.

그의 책은 문고판이어서 손에 쏙 들어가고

재생용지여서 가볍다.

 

그렇지만 어떤 번들거리는 수사로 가득한 글들보다

정직하고 무게가 있다.

 

온갖 적폐가 넘치는 곳에

민주주의 숨통을 막는 곳에

법조인으로서 그가 함께 하고 있으니...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고꾸라져 자고

국회에서도 처박혀 자고,

안경이 거의 벗겨지려는 찻간에서도 잘만 잔다.

오죽하면 경찰과 유가족의 대치선상에서도 졸고 있다.

 

새벽이면 헬스장에가서 체력 관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

그는 아프면 안 된다.

 

유시민이나 조국처럼 멋진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강하면서 낮은 곳에 처할 줄 아는 물같은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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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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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모를 공포를 그린 ‘안개‘는 으스스하다. 공포에 대하여 몰입한 작가의 측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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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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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이/가'는 주격조사이지만, '은/는'은 보조사이다.

'은/는'은 한정적이고 대조적인 의미를 부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조사 하나로,

바깥은 사람들이 덥다고 땀흘리는,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활기가 가득한 여름이지만,

이 안쪽에는 옹송거린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작가가 그리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임을, 강조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스노볼을 쥔 느낌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

 

지난 세월동안, 한국에서 사는 일은 스노볼 속에서 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 피난민(전재민)으로 사는 일이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서 3,40년을 사는 일이나,

국가의 폭력으로 집행당한 사형이나 감옥 생활,

억울한 죽음과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긴 피해들,

교과서에선 4계가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노래하지만,

언제나 꽁꽁 얼어붙은 스노볼 안 사람들에겐 바깥의 여름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국가 권력이 억누르고, 용산 참사의 비극을 무시하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는데 눈이 시뻘갰던 자들의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시차는 갈수록 커져왔더랬다.

 

김애란의 '비행운'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신산한 말단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37)

 

입동이란 제목이 서늘하다.

입동이면 아직도 서슬푸른 한겨울이 버티고 있는 시절이다.

이 겨울을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아이가 죽은 집을 도배하다 만난 아이의 글자.

그것처럼 남편이 제자를 구하다 죽은 상황에서 받게 되는 제자의 누나 편지.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265)

 

스노볼 속의 세상에 이런 훈김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 그의  소설이다.

소외되어 차가운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그는 몸으로 그려 보인다.

묘사는 그런 힘이 있다.

 

목울대에 따갑고 물컹한 것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당신을 보낸 뒤 줄곧 궁금해한 무엇과 만난 기분이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편지지 위 글자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 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265)

 

문장에서 세월호를 만나고, 유가족을 만나고, 최근 몇 년의 내 눈물을 만난다.

 

세상에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시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때는 너무 화딱지가 난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199)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된다.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예요.

각 시기마다 무지 또는 앎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큰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194)

 

교회 안엔 맍은 빛이 있었다.

여러 빛 덩이가 멍물멍울 어둠 속을 떠다녔다.

이윽고 아이들은 노래했다.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축축하고 맑은 혀로, 어떤 음은 허공에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다 고꾸라지고,

어떤 음은 누군가의 단독 비행을 좇다 기꺼이 함께 낙하하고,

모두가 막 사라진 음의 행방을 신경쓸 찰나

그 소멸을 위로하듯 여러 개의 음이 다시 풍등처럼 날아올랐다.

재이 목소리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알전구처럼 가늘고 투명했다.

높은음을 낼 때 성대 속 필라멘트가 노란 빛을 내며 파르르 떨리는 듯 했다.(195)

 

절할 때 '가리는 손'이 있고 '가려지는 손'이 있다.

명절날이 다르고 상갓집에서의 예가 다르다.

삶은 늘 다른 것들 속에서 판단하며 진행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가끔은 '틀니나 딱딱대며 사는 늙은이들(틀딱)'의 말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가슴을 드러낸 채 눈물을 뚝뚝흘리던 내 모습과

산바라지 하러 온 엄마가 한 달 내내 끓여준 미역국,

집안을 가득 채운 우럭 비린내도

그땐 내 젖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희뿌연 액체가 꼭 뼈 국물 같았다.(189)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나 나올 수 있는 문장이다.

노량진에서 '건너편'을 욕망하면서 살아본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도 있다.

 

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97)

 

이수와 도화. 배나무와 복숭아꽃...

그 튼실한 남성과 화사한 여성이 시들어가는 곳,

해오라비 갯가에 깃들이는 '노량진'에는 공시생들이 김밥에 목이 메이며 살아간다.

 

도화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법을 존중했다.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신뢰했다.(90)

 

그녀는 교통방송을 진행하는 교통경찰이다.

우리는 모두 그녀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하지만, 세상이 지나치게 추운 겨울 왕국일 때,

바깥은 여름이지만, 스노볼 속 시차처럼 훈기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세상일 때,

'非-행운'의 연속인 삶 속에서 지쳐버리기 십상인 게다.

 

김애란의 따스한 눈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스노볼 속에서 덜덜 떠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뼘만큼이라도 입김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

 

이 여름, 폭염속에서 헐떡일 때, 서늘하게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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