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정래. 태백 산맥의 해방 공간과 아리랑의 근대사, 한강의 현대사로 1세기를 아우르는 굴곡의 한국사를 정리한 분이다. 그의 이념 지향이 어떠한지는 알 바 없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태백 산맥에서 아리랑, 한강으로 갈수록 긴장감은 낮아지지만, 욕심은 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소련이 무너지고도 십 년이 넘은 이제... 조정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한다.
그가 다루지 않은 <분단>이란 시공간적 억압 구조 속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한 남파공작원의 감옥 생활과 전향 후의 삶이 없는 삶을 소재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시작하든 <인간에 대한 탐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시간 수순으로 쓰여지든, 심리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든 말이다.
그 인간이 문제적 상황에 빠져있을수록 소설의 긴장감을 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긴장감도 애초에 부정당할 만큼 무서운 상황일 때에는 거리감과 이물감이 감동 사이에 끼어들어 감상을 방해하기 십상인 것도 있는데, 바로 분단 이후 간첩이란 이름으로 감옥에 갇혔던 장기수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분들의 삶은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한 그것이었다.
사선을 넘어 다다른 인간들의 땅, 남조선에는 그들이 발디뎌 재길 곳 한 점도 없었다. 철저한 신고 정신에 의해 감옥으로 가고, 무기수로 언도되어 갇혀 있다가, 폭력배들에 의해 사상 전향을 강요받아왔던 날들... 그 날들을 인간의 삶이라고 차마 이름부를 수 없었다. 김하기의 소설이 그랬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그랬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남북 화해 모드는 그분들을 인간의 세상으로 내뱉게 만들었다.
본인의 뜻이든 아니든 내뱉어진 인간 세상은 그분들이 보기에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 전혀 아니었다.
그곳 역시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호관찰이 지속되고, 온갖 협박과 회유, 생활의 불편이 앞을 가로막았다.
소련의 몰락과 북조선의 가난은 그들의 이념과 희망을 단칼에 싹을 잘라버릴만큼 냉혹했다.
그분들이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 과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시민 단체와 아이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인가?
아이들을 끊임없는 경쟁의 컨베이어 벨트로 내몰고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풍토에서, 국가와 자본이 권력과 금력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인간은 희망인 것일까?
그래서 작가는 제목에 연습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해답은 없지만, 인간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연습>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