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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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오스카 라퐁텐이란 독일 사람의 책인데, 여기서 인용한 듯.

간혹 이상한 사람들은 노무현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좌도 우도 아니다. 좀 무식한 정권 같다. 뭔가를 모르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린 것은 맞는 듯.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수와 우익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진보와 좌익도 다르다. 한국의 우익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고, 한국에서 보수는 별로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적인 좌익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킬 건 지키자고 하면서, 때론 움직이는...

정운영은 그런 사람이다. 보수주의자의 자리를 차분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 그렇지만 워낙 우익이 발호하는 현실에서 그는 왼쪽의 심장을 기억한다.

근데, 심장만 왼쪽에 있나? 우리 밥통도 왼쪽에 있다. 그래서 먹고 살자고 싸우는 사람들은 뜨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중국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에 든 좌우합작의 큰 뜻을 정운영은 아름다이 생각할 줄 아는 열린 가슴을 가진 지식인이다. 진정한 지식인의 표본이랄까.

장영희 선생의 글을 읽고 울 줄 아는 멋진 남자. 그는 천상 보수주의자다. 뜨거운 심장을 간직한...

정권의 공공 개혁 부재를 말할 줄 아는 사람. 그래. 나도 공무원 자꾸 늘어나는 데는 걱정이 된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천상 보수주의자다. 겁쟁이.ㅋㅋ

반데를레이 리마가 아테네 마라톤에서 광신도 탓에 3위를 하고도 웃던 미소를 사랑하는 보수주의자.

보수를 느긋하게 보수하기를 바라는 그를 닮아, 나도 당당한 보수주의자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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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석춘의 편지 2006/11/21 10:56 
  http://wnetwork.hani.co.kr/songil/4591  
   “민노총과 전교조는 파업이나 연가투쟁을 위해 회사에 나가고 학교에 나가는 사람들 같다. 본업이 파업과 연가투쟁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조직의 말로가 무엇인지, 또 이런 조직의 행패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과 울분이 어떤지를 똑똑히 보고 절절이 느껴 왔다.”

  <조선일보> 11월21일치 사설의 맺음말입니다. ‘민노총·전교조의 말로와 국민과 나라의 고통’이란 사설 제목도 ‘장중’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주노총이 11월 22일, ‘민중 총궐기의 날’에 총파업을 벌이고 전교조도 연가투쟁을 벌인다는 게 전부입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 총파업이나 전교조 연가투쟁은 내부 호응도 별로”라며 조롱합니다. 이어 집행부를 겨냥합니다. “조선·동아일보나 교육부에 굴복해선 안 된다며 밀어 붙인다”고 ‘고발’합니다.

  같은 날 <동아일보>사설 제목은 “전교조 연가투쟁 법대로 처리해야”입니다. 이 신문이 전교조만 ‘특별대우’한 까닭은 마지막 단락에 나옵니다.

  “전교조가 12월 23일까지 벌이겠다는 ‘대중매체 바로 읽기’ 계기수업도 우려를 자아낸다. 좌편향 이념단체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전교조는 이런 수업을 할 자격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해 온 전교조가 이 수업을 통해 한미 FTA 문제를 다루겠다니 의도가 의심스럽다. 학생들에게 대중매체를 바로 보게 하겠다는 구실 또한 뜬금없다. 당국은 이 수업을 제지해야 한다.”

  도대체 이 나라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없는 신문들이 추측과 예단에 근거한 천박한 주장을 서슴지 않고 사설로 내보냅니다. 공화국의 여론을 끝없이 색깔과 저주의 틀로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저 가방끈 긴 윤똑똑이들의 기름진 ‘사설’보다 노동현장에서 기름 묻히며 지며리 일해 온 한 ‘철의 노동자’ 호소가 더 돋보이는 까닭은. 그 호소가 실린 <금속노동자>는 전국금속산업연맹이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부자신문들만큼 많이 발행되지 못하기에 여론 형성력은 약합니다. 하지만 오늘 미약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김종석 노동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부터 회고합니다. 1987년 그는 “전경 3천명과 2천명의 구사대와 싸우면서 죽기로 싸우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투석전을 하다가 전경과 구사대에 밀려 공장안으로 쫓겨 들어가 2박 3일의 공장점거농성투쟁을 할 때, 산소통 20개를 정문 앞에 쌓고 기름을 부었답니다. “돌에 맞아 흐르는 피를 한 손으로 막고 싸우는 동지를 보며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싸우다 죽자’라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과는 “구속자 하나 없이 우리 요구 100%를 따냈다”고 증언합니다.

  철의 노동자는 그로부터 10년 후를 회고합니다. 1996년 연말에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버스를 타고 국회에 들어가 노동법을 7분 만에 날치기 통과”한 만행입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되새기며 토로합니다.

  “도심을 투쟁의 물결로 채웠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 위대한 투쟁 다시 만들어 5%도 안 되는 가진 자들의 세상을 바꿔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철의 노동자는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또 10년 후. 2006년 노무현 정권은 민중의 삶을 파탄시키는 한미FTA협상을 추진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법안, 그리고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확산법, 로드맵의 칼날은 우리 정규직 노동자 가슴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비정규직으로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내치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도 노 정권과 한나라당, 언론이 한 목소리로 노동운동을 매도해온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절박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FTA와 비정규법, 로드맵 법안들이 현실화된다면 20년 전 산소통을 쌓았을 때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될 것이 너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조선일보>가 살천스레 조롱하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하지만 철의 노동자는 결코 싸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이틀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다부진 결기를 세웁니다.

  민주주의는 투쟁 없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 되레 낯선 이 허울뿐인 ‘공화국’에서, 한 철의 노동자 글을 읽으며, 기자로 살아가는 게 더없이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2020gil@hanmail.net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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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석춘의 편지 2006/10/23 13:04 
  http://wnetwork.hani.co.kr/songil/4184  

 “교원평가로는 결코 학교를 살릴 수 없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장혜옥 위원장의 신념입니다. 10월 20일 전교조가 교원평가 공청회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장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장 위원장은 1977년 경북 안동에서 교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안동은 연고가 전혀 없는 땅이었습니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가장 먼 지역을 골랐답니다. 무조건 기차를 탔던 게 인연이었지요. 1989년 해직되면서 전교조 일에 더 열정을 쏟았고, 2003년 수석부위원장을 거쳐 2006년 4월에 12대 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장 위원장을 만난 그날 전교조 집행부는 교원평가 공청회에서 연행될 각오를 하고 대책을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교원평가 반대투쟁에 10월23일자 <조선일보>는 사설로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실제로 전교조는 안티만 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제법 퍼져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장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교육 현장에서 무사 안일한 교사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삼분의 일 정도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교원평가제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요. 무사 안일한 교원들을 비호하는 것이 바로 교장 중심의 봉건적 학교체계입니다. 30여년을 투자해 교장이 된 사람들은 자기에게 충성을 강요하지요. 충성도에 따라 인사권을 휘두릅니다. 성폭력 교사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비상식적 행태가 벌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 거대한 봉건적 구조를 바꾸지 않고 교사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논리가 선명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체계의 변화가 요원해 보이는 상황에서, 교원 평가는 안일한 교사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장 위원장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현행 교장 중심의 학교 체계를 그대로 둔 채 교원평가를 도입하면 문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교수 수업 평가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듯이, 교사 평가에 학생들이 참여하면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대학과 초중고의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대학과 달리 초중고에 입시 중심의 교육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평가 항목을 다양화해도 궁극적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평가 기준은 성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될 때 학교는 입시 중심이 가속화할 것입니다. 학생들 사이에, 교사들 사이에, 학생과 교사 사이에, 모든 기준이 경쟁이 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지식만이 아니라 품성, 자질, 인간관계 들을 함양시켜야 하는 데 그런 교육은 뒷전으로 더 밀릴 수밖에 없지요. 경쟁과 효율, 수월성이 학교를 지배하게 되는 게 명백한 데 그걸 방관할 수 없습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학교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장 위원장은 학교자치와 교장 선출제를 답으로 제시했습니다.

  “학교에 학생회와 학부모회, 교사회를 법정기구화해야 합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참여는  법적 근거가 없을 때  한계가 뚜렷해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학교 자치, 교육 자치가 핵심적 과제입니다. 그것이 시행된다면 교장중심의 봉건적 학교 체계를 바꿀 수 있어요. 학교 자치와 교장 선출제 도입이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장 위원장은 “전교조가 안티(반대)만 한다”는 비난이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구신문의 논리가 의외로 많이 퍼져있어요. 전교조는 이미 <공교육 새판짜기>라는 자료집으로 공교육 개편의 대안을 마련해놓았지요. 교과과정 개편안도 제시했어요. 우리가 정부 투쟁만 한다는 것은 사실과 달라요. 지금도 전교조 집행부는 3대7정도로 역량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3이 법제화 투쟁이고 7이 참교육이지요. 공교육 개편안을 만드는 데 분회, 지회에서부터 5만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했어요. 참교육 실천을 위해 분회, 지회마다 교사들 스스로 교양 강좌를 조직해나가고 있습니다.”

  전교조 가입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장 위원장은 수구신문의 과장 보도라고 단언했습니다.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이스트플랫폼 http://eplatform.or.kr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교사 삼분의 일이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학교, 그리고 그런 교사들을 비호하는 교장중심의 학교체계를 개혁하려는 전교조 앞에는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줄달음치는 기득권세력과 그들을 대변하는 수구언론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죽어가는 학교를 살리는 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토론이 절실한 때입니다. 뚜렷한 근거 없이 전교조를 비난할 때는 결코 아닙니다.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666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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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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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란 꽃을 처음 들은 것이 남도 답사 일번지를 적은 유홍준의 글에서다. 담장을 넘은 능소화의 매력을 유홍준이 적었을 때, 그 꽃이 몹시도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흔히 보는 꽃이지만, 능소화 줄기 따라 조두진이 이야기 하나를 엮어 냈다.

[도모유키]에서도 조선인의 눈이 아닌 일본인의 눈으로 임진왜란을 지켜보는 신선함을 보여 주더니,
[능소화]에서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이 재미있으면서도 순애보를 읽는 맛을 보여 준다.

이야기가 어렵지 않고, 평범한 스토리여서 읽기 편하다.

멋을 한껏 낸, 꽃줄기 처럼 축축 늘어진 서체와 붉은 꽃잎들로 짓이긴 듯한 표지와 매혹적인 광고 글들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 아닐까 싶다.

조두진은 아직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작가기에, 별을 하나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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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iko 2006-11-2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를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도입 부분에서는 그다지 호기심을 자극 하지 않았는데 편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거짓일까?
저는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고요....
그 무덤의 주인이 주인공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글샘 2006-11-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뚝 떨어져버린 능소화처럼 선연한 느낌의 소설이었죠.
반갑습니다. 쟈스민님. 무덤의 주인이 누구든, 그렇게 믿고 싶죠...ㅋㅋ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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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 산맥의 해방 공간과 아리랑의 근대사, 한강의 현대사로 1세기를 아우르는 굴곡의 한국사를 정리한 분이다. 그의 이념 지향이 어떠한지는 알 바 없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태백 산맥에서 아리랑, 한강으로 갈수록 긴장감은 낮아지지만, 욕심은 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소련이 무너지고도 십 년이 넘은 이제... 조정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한다.

그가 다루지 않은 <분단>이란 시공간적 억압 구조 속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한 남파공작원의 감옥 생활과 전향 후의 삶이 없는 삶을 소재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시작하든 <인간에 대한 탐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시간 수순으로 쓰여지든, 심리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든 말이다.

그 인간이 문제적 상황에 빠져있을수록 소설의 긴장감을 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긴장감도 애초에 부정당할 만큼 무서운 상황일 때에는 거리감과 이물감이 감동 사이에 끼어들어 감상을 방해하기 십상인 것도 있는데, 바로 분단 이후 간첩이란 이름으로 감옥에 갇혔던 장기수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분들의 삶은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한 그것이었다.

사선을 넘어 다다른 인간들의 땅, 남조선에는 그들이 발디뎌 재길 곳 한 점도 없었다. 철저한 신고 정신에 의해 감옥으로 가고, 무기수로 언도되어 갇혀 있다가, 폭력배들에 의해 사상 전향을 강요받아왔던 날들... 그 날들을 인간의 삶이라고 차마 이름부를 수 없었다. 김하기의 소설이 그랬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그랬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남북 화해 모드는 그분들을 인간의 세상으로 내뱉게 만들었다.

본인의 뜻이든 아니든 내뱉어진 인간 세상은 그분들이 보기에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 전혀 아니었다.

그곳 역시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호관찰이 지속되고, 온갖 협박과 회유, 생활의 불편이 앞을 가로막았다.
소련의 몰락과 북조선의 가난은 그들의 이념과 희망을 단칼에 싹을 잘라버릴만큼 냉혹했다.

그분들이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 과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시민 단체와 아이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인가?

아이들을 끊임없는 경쟁의 컨베이어 벨트로 내몰고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풍토에서, 국가와 자본이 권력과 금력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인간은 희망인 것일까?

그래서 작가는 제목에 연습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해답은 없지만, 인간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연습>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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