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당선이라는 외교적 개가는 그동안 국민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소산이다. 그 영광은 모든 국민에게 돌려야 마땅하다.”반 장관은 이날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주한 대사 부부 120여 명이 모인 외교사절 환송 만찬에 참석해 “유엔이 맞고 있는 전통, 비전통적 도전들은 몇몇 힘 있는 나라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으며 책임 있는 모든 나라가 함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나는 반 장관이 유엔으로 들어가는 것이 못내 찜찜하다.

그에 대해서 추호도 아는 바가 없으며, 전혀 관심도 없지만, 그의 저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뼛골을 쑤신다.

나는 그 영광을 받기 싫다. 제발 나에게 <국민>이란 이름을 걸고 영광을 보내지 말기 바란다.

하얏트 호텔에 모인 주한 대사 부부들은 전쟁이 나면 지들 나라로 튈 준비가 되어있겠지만,

(<미국>이 주인인) 유엔이
(맨날 온갖 전쟁을 벌이는 군산 복합 국가인 탓에) 맞고 있는
(그래서 아랍 국가들은 미국을 공공연한 주적으로 삼는) 전통,
(9.11테러나 북한의 핵 실험같은) 비전통적 도전들은,
몇몇 힘 있는 나라(즉,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전쟁에 왕관심이며 그 이름도 음란하고 욕정적인 자위대를 강화하려 생지랄을 떨고 있는 네오파시즘국가 일본)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으며,
책임 있는 나라(예를 들면 한국 같은) 모든 나라가 함께해야 한다.

로 들리는 그의 고별사는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이승복은 신고 정신이 투철한 탓에 아가리가 찢어져 죽었다고 백윤식이 씨부렸건,
이승복을 만든 신문이 애초에 있지도 않은 일을 날조한 것이건,
반 장관이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으로 어려서부터 영어 신동이었건,
이 땅에 다시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제발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지 않기를...
아, 정말 애국이라는 말로, 국민이라는 말로 사고를 고정시키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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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1-12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는 최근 현지 방문조사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레바논 평화유지군에 한국군을 보내달라는 UN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내부방침을 정했습니다.

파병 규모는 1개 대대급 400명 정도로 알려졌으며 부대는 보병 중심으로 구성하되 일부 공병과 의무병력을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런, 씨바... 글 쓰고 나서 보니 다시 이 지롤이다. 그만, 살기 싫다.ㅠㅠ

혜덕화 2006-11-1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한 소식이군요. 지구 한 쪽에선 제 1차 대전의 종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또 한 쪽에선 총성이 멈추지 않다니......

글샘 2006-11-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베트남에 삼십 만 명의 젊은이를 보낼 때, 영국은 여섯 명을 보낸 걸로 보면, 한국이 얼마나 전쟁에 열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레바논에도 가도, 이라크에도 가고... 한국이 점점 싫어집니다.
 
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지옥>을 이야기한다. 조승우가 돈에 불을 지르고, 김혜수가 살인을 사주한 것이 들통나고, 그 와중에 손등을 찍힌 아귀같은 괴물은 조승우가 돈을 따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지옥은 영화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란 해괴한 나라에는 3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불법 인간>이다. 인간이면 인간이지 불법 인간은 뭔가. 법적으로 허가받고 태어난 인간도 있던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서 합법적이고,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부탄, 네팔, 태국에서 온 순박하고 큰 눈의 그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지 못했고, 산업연수생이란 저임금의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일본놈들의 짝퉁 법률>에 의해 밀수입되고 있으며, 이 땅의 빌어먹을 <평화로운 민족, 남을 한 번도 침략할 능력이 없었던 민족성>은 그들에게 갖은 폭력과 야만을 자행하고 있더란 말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이 알량한 나라가 IMF라는 미국의 세례를 입은 후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란 미명하에 들어온 수십만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노동현장에서 70년대 우리 선배들이 당했던 피해를 고스란히 답습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언론은 그들의 소식을 애써 외면하며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만을 앞장세웠고, 그들의 권익 투쟁은 늘 공산주의를 이롭게하는 이적행위였고, 불온하기 그지없는 말많은 빨갱이들의 짓거리였다.

이제 그 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짓밟힌 인권이 있고, 그것을 유린하며 단물을 빨아먹는 자들이 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 표정을 짓고 퇴근을 한다. 노동자들의 기숙사 문을 잠근채...

간혹 어린이 대공원 같은 곳에 가면 삼삼오오 놀러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비싼 놀이기구를 탈 돈을 쓸 수 없는 듯, 우리 아이들은 물고기에게나 던져주는 용도의 뻥튀기를 나눠먹으며 놀이기구 타는 아이들을 보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재작년 고3 아이들 수능 마치고 인권 단체에서 운영하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 프로그램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는지... 그간 잊고 살았다.

한국인조차 품어주지 않는 가진자들의 법률, 가진자들의 국회, 가진자들의 국가에서 여권과 외국인등록증마저 빼앗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차가운 멸시와 범죄자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흰 눈자위 뿐이었다.

한국의 사장들에게 그들은 곧 돈이고, 공무원들에게 그들은 처리 대상이고, 뭔가 가로고치면 추방의 대상이며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불법을 자행하는 체류자들에 불과하다. 여차하면 정신병원에 6년4개월을 행려병자로 처박아 버릴 수도 있는,  한국에서 태어나 처벌받지 않는 쥐새끼보다도 못한 신세인 것이다.

불법천국 대한민국이 제발, 제발 인권에 대해,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해 <수직>적이지 않은 잣대를 들이대면 좋겠다. 장유유서나 부자유친 같은 수직 질서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나눌 수 있을 때 지옥은 비로소 천국으로 가는 다리를 놓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이란 나라가 가진 착취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지옥의 복사기를 파괴할 열쇠는 이란주씨처럼 낮은 곳에서 힘써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 힘에서 그 싹이 트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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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아래 뱃살로 만든 하트가 쥑여 줍니다.^^

어떤 하트가 맘에 드세요?

소주병 하트?

달러로 만든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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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살로 하트를 만들다니 대단하네요^^
 

[한겨레]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
찬바람이 불때마다 늘 깊은 회한에 젖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작업실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엇을 펼쳐들곤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너덧 시간이나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덕분에 책장 정리는 다음날로 미뤄지고 내 눈길은 망연히 허공만 붙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잊었다가 가을이 깊어지니 흩날리는 낙엽소리처럼 마음이 스산해지며 다시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은, 아니 지금은 어엿한 아가씨가 되고도 남았을 법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그녀는 지금껏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어엿한 아가씨라고는 했지만 그것을 세속에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성숙한 아가씨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속(俗)을 넘어 승(僧)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지누”라는 쪽지


2001년 늦가을, 후배가 그쪽 언저리로 간다기에 그 집은 어떻게 됐는지 가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다녀 온 후배는 불쑥 찢어진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 그녀가 쓴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이지누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지금 도혜(道慧)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해 수행정진 중이지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골소녀 영자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이랬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영자가 15살 때였다. 도계읍의 육백산 말기에 있는 황새터와 같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산골문화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그 무렵 육백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곡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곳에 영자부녀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해를 걸러서 서너 번 찾아갔을까. 그것이 전부다. 그리곤 그녀가 17살이 되던 1999년 이맘때에 모 잡지에 영자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주소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고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그 집요한 사람들은 이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들은 기어코 그녀에게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녀의 집에 전기나 전화가 없다는 것이나 혹은 그 집에 가려면 오로지 걸어서만 가야 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내세워가면서 말이다. 사람에 굶주린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무방비의 그 아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되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책을 보내주고 있었다. 시인 신경림이나 기형도 그리고 소설가 이순원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 했었고 또 잡지에 나간 기사를 보고 책이나 다른 것들을 보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그 아이의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보내려는 책을 모두 나에게 보내라고 했다. 도서목록을 만들어 서로 겹치는 것은 사양했으며 옷을 보내 주겠다는 것 또한 사양했다.

그렇게 작업실에 책을 쌓아 놓고는 한 달에 15권 이상을 보내 주지 않았다.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 한다고는 하지만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러 학용품은 보내 주었지만 굳이 옷과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양했던 것은 도회지의 옷이 그 산골에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습관에 견주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잘 어울리는 것이라야 한다. 차라리 몸에 걸쳐도 겉돌기만 할 도회지의 옷을 보내 줄 양이면 그 보다 그 아이가 날마다 끼고 사는 라디오의 건전지 하나를 더 보내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먼저 굳이 책 이외의 그 무엇들을 보내 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보기에 영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와 미미 그리고 꼬꼬라는 닭 두 마리면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간혹 아버지와 함께 도계읍이나 삼척으로 장도 볼 겸 나들이를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존중해야 할 문화의 생산과 소비양태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도회지 사람들 앞다퉈 책을 보내

그러나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과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라도 그녀에게 나눠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양은 생각지도 못한 채 서로 앞 다투어 그녀에게 책을 보내기를 원했다. 문학을 꿈꾸는 소녀이었기에 텔레비전 덕분에 공개되어버린 주소로 무지막지하게 책은 배달되었고 이윽고 그녀의 방은 책으로 넘쳐 결국 마당 한쪽에 책을 보관하는 광을 따로 지어야 했다. 과연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책을 보내려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까. 자못 궁금한 일이다.

나는 그 작은 마당에 만들어진 책 광을 보고는 아연실색해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직도 세상이 메마르지 않아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생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광에 쌓인 책을 모두 읽으려면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십년은 족히 걸리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는 상관없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각종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무리 모든 책이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 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살아 갈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실행한다는 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상대에게 지나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배려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것은 보약이 될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녀에게 독을 선물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곤 그녀가 처했을 입장과는 상관없이 나도 그녀를 도왔다는 자족감에 젖어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내 삶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소비했다는 말과도 같다. 이 말이 지나치기 전에 우리들의 행동은 이미 지나쳤다. 나는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고부터는 더 이상 책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나눴던 그 소박한 사랑의 마음들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했다. 영자의 얼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올 때나 그 후에도 영자의 순박한 미소는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을 아는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이미 달라진 것이었다.

자족감에 젖어 ‘독’을 선물한 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살가운 대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절이나 마당을 서성이자 그제야 곁을 주었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사진기에 대한 호기심을 영자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대뜸 자기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사진기를 보기는 했지만 자기가 만져보기는 처음이라고 했었다. 조물조물 사진기를 만지던 그녀가 찍어도 되냐고 했고 이윽고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놀라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간혹 렌즈를 바꿔 끼워주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사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다가 나를 보며 짓던 미소는 지금껏 내가 본 미소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날 영자는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36장짜리 흑백필름을 예닐곱 통이나 찍고 난 후에야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 그녀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침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우리들 탓으로 연이어 불행한 일들이 생겨났다. 2001년, 잡지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은 슬픈 소식 앞에서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망연히 밖을 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앞에 놓고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외로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욕심으로 한 사람을 잔인하게도 난도질한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암담했으며 처연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나였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지금에야 고백컨대 난 그 이후로 우리 땅 골골샅샅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만난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겠다. 그 이후,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거나 돌 혹은 나무이거나 풀과 같은 것들조차도 제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그들이 있는 곳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문화적으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내 자리로의 이동이나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두고 볼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공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사람을 배우며 치른 수업료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라. 당신들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말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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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1-10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억납니다.영자.!! 그랬었군요.그래요....

글샘 2006-11-1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과 이름이 있는 법이죠.
그걸 인정해 줘야 살기 좋은 세상인데 말입니다.
 
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재미있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온 기록을 남기고, 그걸 읽는 것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역사에서 무언가 얻어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전쟁을 뽑으라면, 십자군 전쟁일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행한 추악한 전쟁. 하긴, 모든 전쟁은 추악했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느님의 이름을 주절댔지만, 그자들은 100% 추악한 놈들이었다. 20세기만 봐도 제국주의 전쟁인 세계대전이 그랬고, 거기 뒤늦게 뛰어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그랬다. 이 세 나라는 패전으로 죽일 놈 취급을 당하지만, 사실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등의 욕설을 붙여 봤댔자 이 셋을 합해도 어메리카 하나 당할 힘이 없다.

그래서 십자군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태권은 중세에 매몰되지 않고 부시를 끄집어 낸다. 나귀 새끼에 불과한 부시 녀석은 전쟁의 추악한 대목마다 튀어나와 썰렁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역사를 지껄이려고 쓴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훌륭하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 전쟁이 아니었음을 교회도 인정한 바 있지만, 그 더러운 역사를 손대기에는 한반도의 교회를 등진 골수 우익 집단은 십자가에 침뱉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

1권에서는 농민 십자군의 웃지 못할 행로가 그려진다. 그들의 뒤에는 항상 오리엔트를 '국'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었다. 역사를 모르거나, 알고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늘 '국'이 된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간첩을 오랜만에 만들어 내는가 싶더니(남한의 간첩죄는 큰 죄가 아니다. 김현희는 KAL기 폭파범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일주일만에 풀여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도로 교통 사정을 감안하여 집회를 금지하는 국가로 되돌아가고 있다. 전교조의 이기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교사평가제를 몰아붙인다. 이 모든 일의 축에는 <역사를 잊는> 사람들의 무뇌아적 동조가 뒷받침되는 것처럼 보인다.

툭하면 <국사>를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놈들은 그 국사책이 온통 <쇼비니즘>과 <내셔널리즘>으로 가득찬 <개구리 나라 우물의 역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자들이다. 거기 동조하는 이들은 무지해서 국사를 외워야 독도를 지킨다는 착각에 빠진다. 일본이 독도를 빼앗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전쟁. 일본의 극우가 자기네 <국익>을 위해 망언인 줄 알면서 지껄일 때, 한반도 남쪽의 우민들은 그저 부르르 분개한다. 냄비처럼.

십자군 이야기를 읽노라면, 유럽인의 유태인 학살의 역사에 치를 떨게 된다.
그 유태인은 다시 아랍인을 학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백인들의 오만한 눈깔에는 폭탄의 연기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아래서 국으로 얻어터지는 'gook'(먼지, 티끌) 같은 황인종들은 같은 인간이 아닌 '마루타'였으며 '죄인 번호'인 비인간화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일본에 터뜨린 두 발의 원자탄과, 베트남에 쏟아부은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과 고엽제, 북한에 가한 융단 폭격, 그리고 이제 21세기까지 이어진 부시 父子의 이라크 전쟁의 갤러그 게임처럼 당하는 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서양인의 눈깔로 그린 세계사가 '반편'의 기록이라면,
이제 동양인의 시선을 담을 세계사를 함께 읽어야 한다.

이런 책들은 역사에서 무얼 배울 것이며, 정말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책들이다.

제발 <국사>를 배워야 하고, 모든 시험에 <국사>를 넣어야 하고, <국사 인증 시험> 같은 국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난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러러면, 비행기를 타고 이 땅을 떠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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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전만루홈런 2006-11-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알게된 국사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읽어봐야지,하고 생각만 계속 했던 책입니다..읽어봐야겠습니다..)
국사라는 것이 근대에 '국민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참 몰랐던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저에게 쓰면 딱 맞을 것 같더군요..


여기저기서 시도되는 분과학의 영역의 경계 지워버리기의 시도를 좇아가볼 생각입니다..일단 책을 통해서..^^;

제가 최근에 읽은 '고미숙'선생님과 '박희병'선생님의 책도 방향과 방법은 다르지만 두분 모두 분과학의 영역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역사는 중요시하되 국사를 중요시하는 것은 피하도록 해봐야겠습니다, 둘은 같은 것 같지만 아주 이질적인 것이니깐요..

오늘은 날이 맑습니다..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글샘 2006-11-1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님... 학교에서 교사들이 하는 일은... 영어나 국사를 잘 가르치는 일이지요. 그런데 국사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국사 상식이 많아야 하는 걸까요? 아님, 세계관이 올바른 아이들일까요?
까망이님... 특히 한국의 국사책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더러운 책입니다. 현대사 부분에 할애된 그 사소함과 조선 시대에 바쳐진 그 기나긴 부분을 보면, 왕조를 그리워하는 넘들의 책 같기도 해요.

역전만루홈런 2006-11-22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자군 이야기 1, 잘 읽었습니다. 내용도 흥미롭고 필자가 꾸준히 시도하는 유머도 나중에는 피식하고 웃게 되더군요,
그리고 부록처럼 달려있는 뒷부분이 더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책을 소개받는 일은 매우 즐겁습니다.. 그렇게 제목만 얼핏 듣고 여기서 보니, 바로 이곳에 리뷰가 올라와있네요..^^;
정말 대단한 독서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에서 온 편지, 말해요 찬드라, 폭격의 역사, 팔레스타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저도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러가겠습니다.. 날씨가 꽤 쌀쌀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리뷰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역전만루홈런 2006-11-22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리고 저도 국사책에 대한 이야기는 동감합니다, 왜 해방후부터는 대통령 한 사람에 딱 한줄씩만 언급되어있던 그 국사책..

그래서 현대사 관련 책을 좀 뒤져 보기도 했는데, 추천해주실만한 책 없을까요?
전 최근에 읽은 역사책 중에 역사책이라 하기엔 좀 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강준만씨의 한국현대사 산책이 꽤 재미있더라구요..제가 태어나지 않았던, 2-30년전 이야기들을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글샘 2006-11-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은 무슨 역사적인 날인가요?
제자 한 놈도 오늘 멜을 통해서 좋은 역사책 소개해 달라고 하던걸요.
대한민국사1,2,3도 좋고, 현대사 산책도 좋고요.
제 역사 읽기 파일에서 골라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