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녹음의 옷을 화려하게 치장한
포플러 나무도 좋지만
빨간 단풍 이파리 하나
던져진 손수건처럼
정수리에 얹고
그 아래론 노랑에서 풀빛까지 넉넉하게
그 깃발을 떠받치고 있는
가을 나무의 당찬 모습은
보는 나를 정갈하게 한다.
기찻간 맞은 편
턱 셋 거느린 아줌마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세 시간 동안 먹은 것들...
김밥
달걀
오징어채
찐빵
환타
물
아, 유부 초밥
홍시와 사과
보는 내가 배가 부르다.
서울까지 세 시간도 안 걸려 고마운
고속철.
내가 다 과식한 기분.
바지랑대 저 위에서
창백하게 말라가던
햇살 가득 머금은
광목 천같이,
세상의 산도 나무도
거구로 곤두박질러진 채
세상을 울고 있는
거울로 드리워진
너,
강이여.
네 삶의 눈물은 짜지조차 않누나.
노랗게 옷치장한 나뭇잎들과
바알갛게 화장한 잎새들이
눈에 시린 하늘과
한껏 어울린 가을날.
갑자기 만난 터널의 검정색 차단,
바로 뒤에서
산모퉁이 바로 동아
내 마음을 먹먹한 당황에 맞닥뜨린
무덤의 떼.
서울가는 고속철에서 휴대폰에 메모를 남기다.
완강한 철길과 철길 사이에는
어느 곳에나 변함없이
노란 민들레나
파란, 내가 그의 이름을 몰라서 미안한 풀들이
여지없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주소와 존재도 모르고 있던 게
오늘따라 미안하다.
11. 05 서울가는 고속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