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 - 돌아올 수 없는 사막
브루노 바우만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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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때던가? 에베레스트를 오른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생각은 왜 하지?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강하게 든 생각은 '왜 그렇게 많은 희생을 감수해 가면서 이 짓을 하지?'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순례의 길을 떠난다면 나는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스벤 헤딘의 여행단이나, 오지리(중국 통행증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브루노 바우만은 충분한 물을 실을 낙타와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낙타 위에 타고 심지어는 GPS 까지 동원하여 사막을 가로지르려 한다.

아, 그 속에는 인간의 오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인간의 <발견> 뒤에는 학살과 살육과 파괴가 뒤따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서양인의 눈으로 중국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행하는 개발에 따른 사막화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클라마칸을 그냥 놔 두는 것이, 그 주변의 사람들을 그냥 살게 놔 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호지 여사가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적은 후로 라다크는 급격하게 개발되면서 몰락해 가는 것을 읽은 일이나, 이런 사막 기행을 읽으면서 읽는 것은 마찬가지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혼자서 열사에 도착하여 인간 본질의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성인들이 다다른 마음의 끝을 배우고는 싶을지언정, 많은 자본과 식량과 대규모 탐험단을 이끌고 오지를 <개발>하는 인간의 오만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그 종족의 멸종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사막의 모래 먼지 냄새 가득한 사진들은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도 하지만, 거기 그대로 사는 사람들의 사진과 저자의 사진이 빚어내는 불협 화음은 이 책을 별 넷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다.

인간의 명예욕과 지적 허영심은 이 푸른 별을 점점 사막화시키고 있다. 우리 마음 한 구석부터 바삭거리는 건조 지대가 넓어지는 이유는 바로 명예욕과 허영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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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라는 책 제목이 있다. 아직 읽지 않아서 왜 달리는지를 알 수 없지만, 나는 읽는다... 는 말은 요즘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가을의 눈부신 햇살이 창가에 가득하고, 교무실엔 간혹 먼지가 그 햇살에 비추이면서 브라운 운동을 하고 있다. 투명한 대기 속에 미세한 먼지는 공기의 흐름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부드러운 율동을 보여 준다.

하늘은 눈부신 날, 가만 앉아서 책장을 넘기노라면 책 속의 사람들과 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교무실에 빌려다 놓은 책은 여섯 권 정도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을 읽고 있는데, 빨리 많이 읽을 것도 없이, 조금씩 읽고 있다. 정원에서 발견하는 파란 나비나 깨진 유리의 금, 거미줄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 흙의 내음 가득한 책이다. 천천히 읽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도 반쯤 읽었다. 오로지 모래 언덕만 가득한 사막을 그저 그 사막을 건너려는 일념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궁금하게 한다.

<근원에 머물기>를 조금 읽었다. 헐떡거리며 살지 말고, 고요히 근원에 머무는 삶. 영혼의 안개층을 산산이 부숴버린 비베카난다의 <자기 사랑>을 조용히 읽을 생각이다.

십자군 이야기 1을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빌려다만 놓았는데, 2권은 없단다. 부제 그대로 <충격과 공포>로 이어질 것 같아서 선뜻 읽기가 두렵다.

<비치 : 음탕한 계집>은 여성 문제 책 같은데, 엄청 두껍다. 전에 누군가의 리뷰를 읽고 언젠가 읽어 봐야지...했던 책 같아서 일단 빌려 두었다.

미셸 트루니외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그리고 <씨이오 영어를 읽어라>를 간혹 조금씩 읽고 있다.

<타클라마칸>의 사막 먼지 냄새가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이다.

월요일부터 출장이 있는데, 기찻간에서나 숙소에서 비베카난다와 미셸 투르니외를 조용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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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으시는군요.

글샘 2006-11-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캐릭은 참 귀엽습니다.^^
네. 저는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책을 늘어 놓고는 조금씩 읽습니다.
그래서 이거 저거 다 까먹으면서... ㅋㅋ

역전만루홈런 2006-11-06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데요..동시에 여러권을 읽어나가죠..
예전엔 한권을 다 읽어야만 다른 책을 읽곤 했는데, 그러다보니..너무 오래 걸리더라구요..^^;
 
낯선 길을 비추는 오래된 꿈
최갑진 지음 / 작가마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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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어지간하면 댓글을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어쩌다가 매력적인 제목에 낚여서 글을 읽다보면 댓글까지 보게도 된다. 특히 교육에 대한 기사의 댓글에는 전교조를 박살내면 이 국가의 교육의 악은 일소되는 것같은 댓글이 반드시 있다. 마치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유신 시대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공산당, 인민군을 미워하는 것이 애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 사랑은 당연한 것이고, 매일 오후 6시면 길거리에 가만히 서서 애국가를 경청해야하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극장에 가서도 애국가를 듣는 일이 없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애국가가 흐른다.

최갑진 선생은 해직교사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이다. 초창기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가지는 투쟁성을 합법화 시기 이후에는 담보해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합법화로 인한 대중 조직이 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이념의 시대에서 자본 획일화의 시대로... 무한 경쟁의 시대로...

그래서 0교시 철폐나, 불법 모의고사, 찬조금 고발, 강제자습 반대, 보충수업 참가 거부 등의 투쟁은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참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학교 안에서도 두발 자율화, 주번 폐지, 교문 지도 폐지 등의 사안은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교사들의 낡은 인습의 틀에 묶여, 또 경쟁에 나서는 아이들에게서도 <참교육>은 아닌 듯 하다.

그럼, <참교육>이란 무엇이며, 전교조는 이제 어떤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교육부는 아니, 인적자원을 교육하는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제 국민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전교조>를 매도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국익이란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내세운 정치인들처럼...

해방과 함께 우리에겐 미국이 왔다. 미군정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은 <국립서울대학교>였다. 국립종합대학교설립안(국대안)의 의도는 기존의 사학의 개성을 죽이고, 유일무이한 특급 대학을 만들어 미국인의 시녀로 종사하게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원대한 포부는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서울 대학교를 들어가고 싶어하며, 서울 대학교가 주는 꿀단지를 맛보고 싶어한다. 서울 대학교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늦었지만, 이미 이 나라의 상층부를 다 차지해 버렸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대는 돈이 많이 드는 인문대, 자연대를 기르고, 나머지는 사학에 특화시켜 줘도 무방하지 않은가?

지금 전교조는 교사평가제 반대, 차별성과급 반대, 연금법 개악 반대를 두고 총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참교육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제도들은 교사들의 밥줄을 옭죄고 있는 것으로 중요한 당면 현안이다. 그러나, 비극적으로도 이런 정당한 싸움들이 일반인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게 매도할 수도 있는 측면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교육부가 저지르는 사업들이 <인적 자원 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것들로 일관되어 있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정당한 싸움이라고 해서 늘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무한 경쟁 궤도에 올라있는 아이들을 방패로 삼아 교육청은 <교육>을 방관하는 <관청>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현실에서... 날마다 광포해지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대로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열고, 시달리는데도 지쳐버린 관청에서 어떠한 교육적 지시도 내려올 수 없지 않겠는가.

리영희 선생님이, 자신은 과거의 사고 방식으로 미래를 읽기 어렵다는 논조의 말씀을 하셨듯이, 과거의 조직인 전교조가 미래에 어떤 조직으로 거듭 나야 할 것인지를 읽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일은... 지금 이 안개 자욱한 시기를 쓰러진 온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직, 독재의 시기처럼 온 몸은 만신창이지만 하늘의 별은 또렷하던 시기의 운동과는 또다른 뒷심이, 아니 더욱 강한 뚝심이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멀게 보고, 눈 앞의 싸움에 연연해 하지 말고, 별이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어느 날 문득, 내게 부끄러움으로 드러날 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온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엄중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최갑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부산의 골목들, 거기서 마시던 대선 소주들의 휘발성 단냄새가 진동을 한다. 엊저녁 마신 술이 목 뒤를 뻐근하게 만들지만, 술과 함께 희망도 가슴 깊이 심어둘 일이란 생각을 한다.

이제는 낯선 길이지만, 별로 비추는 오래된 꿈, 그러나 꿈은 이뤄진다던 소망처럼 그 오래된 꿈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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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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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도 많은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들이 등장하지만, 2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먹으로 쾅쾅 친다. 책을 다 읽고, 뒷부분의 음반 소개를 복사해 둔 뒤에도 먹먹한 가슴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클래식 코리아 사이트에서 클라라 하스킬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 flat Major D.960 를 틀어 두고 한참 듣고 있으니 먹먹한 가슴을 계속 통통 두들기면서 조금 잦아들게 만든다.

찰리 채플린이 처칠, 아인슈타인과 함께 천재라고 일컬었다던 클라라 하스킬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이 저리다. 다발성 경화증이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천재 피아니스트에게 근육이 굳어지는 병을 주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어떤 진리도 없음을 가르치시는 것일까? 인생이라고 인간이 이름붙일 그것조차 없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틈틈이 음악 공부를 시작한 카플란의 이야기는 나를 끝없이 부끄럽게 했다. 아, 그는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았구나. 나는 왜 살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 물음은 음악과 함께 이 가을에 내게 또 찾아왔다. 목표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저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째각거리는 시계 부속품처럼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라고 내게 보내주신 글로 읽었다.

성남 아트센터에서 역시 말러의 <부활>을 연주하기 전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두 가지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두고두고 부끄러워 할 것인가...

쇼팽을 즐겨 연주하던 늘 단정한 신사 리파티가 마지막 <화려한 왈츠>를 앞두고 거친 숨을 헐떡이면서 연주했다는 <주 예수는 나의 기쁨>을 읽을 때는, 인간은 운명에 순종하고 죽음을 맞아들일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과 막연한 환상의 세상이 뿌옇게 떠올랐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골라 연주했던 레온 플라이셔 이야기나, 백혈병을 이겨 내고 재기에 성공한 호세 카레라스 이야기는 이 책을 <인간 극장>처럼 감동스런 책으로 만들었다.

월드컵 중간에 올해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행사로 가득하단 뉴스를 들은 것도 같은데, 얄팍한 상술로 예술혼도 물들어버리는 세상이 야속하다. 울밑에선 봉선화를 연상시키는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2악장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지은이 말마따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듣는 기분도 황홀하다. 

내 삶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뭔지...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는 건지... 오늘 하루를 왜 살아 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교자의 발걸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는 비장하게 울린다.

그가 비록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 야화'를 '천날밤의 이야기'라고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음악들과 삶과 죽음과 삶의 굴레 이야기에 묻혀 용서할 마음이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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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 풍월당 주인 박종호의 음악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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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고전 음악을 뜻한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고전 음악이라고 하면, 모짜르트, 베토벤 같은 사람의 곡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은 한국의 고전 음악도 있고, 각 민족의 전통 음악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 책에서 일컫는 클래식이란 내 생각과 비슷한 범주의 서양의 악곡이나 성악곡을 뜻한다.

클래식은 중학교 때 처음 접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까지 음악 시간에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하숙집에서 만난 철이는 내가 연애하는 데 들이는 만큼의 비용을 클래식 음반을 사는 데 들여서 제법 얻어 들은 기억이 나기도 한다. 철이의 좁은 방에 들어가면 작은 뮤직 박스에서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가 80년대 젖은 서정을 물들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의 길을 걷다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풍월당이란 레코드 가게를 낸 이의 이야기이다. 어떤 쪽이냐 하면, 너무 에세이에 치우치지도 않으면서,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의 세계를 균형있게 적고 있다고 생각한다. 곡의 해석에 너무 치우치면 나같은 문외한이 읽기에 재미가 없는데, 음악인들의 삶을 주로 적고 있고, 그 시대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은 있으면서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듯 하다.

글을 읽어 나가면서 너무도 듣고 싶은 음악이 많았는데, 마침 집에 브루흐를 야샤 하이페츠가 연주한 곡이 있어 듣다가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가족들은 다 자는데 혼자 청승이었지만, 이제 내가 하고싶은 것도 좀 하며 살고 싶단 생각도 든다.

때마침 11월이고, 가을이다. 가을엔 독서가 젬병인 계절이다. 가을엔 낙엽 밟으며 산길을 걷는 것이 제격이다. 가을엔 파아란 하늘을 보면서 큰 숨 한 번 들이쉬고, 낙엽 밟히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안단테로 걷는 것이 어울린다.

책의 말미에 소개한 시디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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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1-0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여요 다른 책들도 문장력 있게 잘 써 가서 읽기 좋았답니다

글샘 2006-11-0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재주가 많은 사람 같애요. 글도 잘 쓰고 음악도 좋아하는 의사 선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