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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을 비추는 오래된 꿈
최갑진 지음 / 작가마을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인터넷에서 어지간하면 댓글을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어쩌다가 매력적인 제목에 낚여서 글을 읽다보면 댓글까지 보게도 된다. 특히 교육에 대한 기사의 댓글에는 전교조를 박살내면 이 국가의 교육의 악은 일소되는 것같은 댓글이 반드시 있다. 마치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유신 시대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공산당, 인민군을 미워하는 것이 애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 사랑은 당연한 것이고, 매일 오후 6시면 길거리에 가만히 서서 애국가를 경청해야하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극장에 가서도 애국가를 듣는 일이 없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애국가가 흐른다.
최갑진 선생은 해직교사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이다. 초창기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가지는 투쟁성을 합법화 시기 이후에는 담보해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합법화로 인한 대중 조직이 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이념의 시대에서 자본 획일화의 시대로... 무한 경쟁의 시대로...
그래서 0교시 철폐나, 불법 모의고사, 찬조금 고발, 강제자습 반대, 보충수업 참가 거부 등의 투쟁은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참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학교 안에서도 두발 자율화, 주번 폐지, 교문 지도 폐지 등의 사안은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교사들의 낡은 인습의 틀에 묶여, 또 경쟁에 나서는 아이들에게서도 <참교육>은 아닌 듯 하다.
그럼, <참교육>이란 무엇이며, 전교조는 이제 어떤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교육부는 아니, 인적자원을 교육하는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제 국민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전교조>를 매도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국익이란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내세운 정치인들처럼...
해방과 함께 우리에겐 미국이 왔다. 미군정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은 <국립서울대학교>였다. 국립종합대학교설립안(국대안)의 의도는 기존의 사학의 개성을 죽이고, 유일무이한 특급 대학을 만들어 미국인의 시녀로 종사하게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원대한 포부는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서울 대학교를 들어가고 싶어하며, 서울 대학교가 주는 꿀단지를 맛보고 싶어한다. 서울 대학교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늦었지만, 이미 이 나라의 상층부를 다 차지해 버렸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대는 돈이 많이 드는 인문대, 자연대를 기르고, 나머지는 사학에 특화시켜 줘도 무방하지 않은가?
지금 전교조는 교사평가제 반대, 차별성과급 반대, 연금법 개악 반대를 두고 총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참교육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제도들은 교사들의 밥줄을 옭죄고 있는 것으로 중요한 당면 현안이다. 그러나, 비극적으로도 이런 정당한 싸움들이 일반인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게 매도할 수도 있는 측면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교육부가 저지르는 사업들이 <인적 자원 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것들로 일관되어 있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정당한 싸움이라고 해서 늘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무한 경쟁 궤도에 올라있는 아이들을 방패로 삼아 교육청은 <교육>을 방관하는 <관청>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현실에서... 날마다 광포해지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대로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열고, 시달리는데도 지쳐버린 관청에서 어떠한 교육적 지시도 내려올 수 없지 않겠는가.
리영희 선생님이, 자신은 과거의 사고 방식으로 미래를 읽기 어렵다는 논조의 말씀을 하셨듯이, 과거의 조직인 전교조가 미래에 어떤 조직으로 거듭 나야 할 것인지를 읽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일은... 지금 이 안개 자욱한 시기를 쓰러진 온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직, 독재의 시기처럼 온 몸은 만신창이지만 하늘의 별은 또렷하던 시기의 운동과는 또다른 뒷심이, 아니 더욱 강한 뚝심이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멀게 보고, 눈 앞의 싸움에 연연해 하지 말고, 별이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어느 날 문득, 내게 부끄러움으로 드러날 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온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엄중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최갑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부산의 골목들, 거기서 마시던 대선 소주들의 휘발성 단냄새가 진동을 한다. 엊저녁 마신 술이 목 뒤를 뻐근하게 만들지만, 술과 함께 희망도 가슴 깊이 심어둘 일이란 생각을 한다.
이제는 낯선 길이지만, 별로 비추는 오래된 꿈, 그러나 꿈은 이뤄진다던 소망처럼 그 오래된 꿈을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