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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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에, 김선우 글을 조금만, 정말 조금만 읽고 자려고 침대에 누운 채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책을 들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가, 혼자서 서성거리다가, 급기야는 맥주를 한 캔 들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다 털고 말았다.

그의 글에서 나를 사로잡는 힘을 어떤 것일까?

그의 글은 깊은 사유의 결과로 나온 것이지만, 나에게 그 사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글이 가진 힘은 사유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이가 엮어내는 글이기 때문에 우러나는 것일 것이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사고하고, 삶의 존재 양태에 대하여 생각하고... 산다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속세와 출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의 빛은 아무래도 햇빛 보다는 달빛에 가깝다. 불에 비해 물에 가깝다.

같은 문제를 맞닥뜨릴 때, 나는 혼자서 길을 떠나고 혼자서 물음의 밑바닥까지 훑은 습관이 들어있지 못하다. 문제를 회피하고, 술기운을 빌려 우회하거나 건너 뛰어버리는 것이 내 존재 양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부끄럽고, 한켠 그가 안쓰럽다. 내가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내 아픔까지 앓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다. 그는 그것을 매 순간 깨어서 느끼고 나는 문득 느끼다가도 거기 천착하지 못하고 생활의 종이 되어 바쁜 체를 하며 살아갈 따름이다.

나 대신 생각해 주는 그가 고마워서, 그의 글을 읽으면 그를 놓지 못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칠판에 콕 찍은 것처럼 작은 이 별에서, 다시 작고도 작은 한반도의 남반부, 그 땅위에 꼬물거리며 기생하는 존재들이, 대통령을 뽑는다고, 내년에 뽑을 대통령이 못미더워서 벌써 간첩단 사건을 만들고 난리다. 미국은 그 큰 나라가 그 작은 나라에서 뭔가를 더 뺏어가려고 난리다. 작고도 작은 것이 서로 존재를 확인하려고 부딪히는 꼴을 보면 가소롭고도 가증스럽고 가공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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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권정생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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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정도 전에, 중학교에 환경 과목이 중시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음악과 미술 교사들이 뽑기를 해서 환경 연수를 받고, 부전공으로 환경 교사가 되어 수업도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 과목을 별로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농촌 활동을 갔다가 3박4일만에 쫓겨난 일이 있었다. 대학생의 농활을 계속 받아주면 추곡 수매를 분리 수매하겠다는 둥, 이장 아저씨에게 협박을 가해서 우리가 물러나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대학생들에게 농민들이 의식화를 당할 법이나 한 일인가 말이다. 땅을 밟고 흙을 읽구며 사신 그 분들의 성정을 누가 하루 아침에 뒤집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당키나 한 소리인가?

어느 날, 세미나를 할 때면 논리도 정연하고 아는 것도 많고 소신도 강한 듯하던 여선배랑 같은 조가 되어 콩밭을 매었는데, 콩밭에선 새끼 손가락 굵기의 지렁이들이 얕은 흙 아래서 튀어나오곤 했고, 그럴 때마다 그 선배는 소리를 질러대서 지청구를 먹곤 했다. 지렁이가 호미질에 두동강 나는 일도 생기곤 했는데, 그 때 그 선배의 호들갑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흙에서 놀아보지 못한 서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단 것을 처음 겪은 경험이었던가.

우연찮게 농촌에서 살고 있고,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의 글들을 묶었다.

농사를 짓는 일은, 땅에 하염없이 가까이 가는 일이며, 땅에 발이 푹푹 파묻히도록 몸을 수그리고 땀흘리는 일이며, 논과 밭에 하나가 되는 일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같이 가슴팍이 갈라지고, 비가 너무 와버리면 같이 허리가 휘어지는 그런 일.

7,80년대 운동권들의 세대를 386세대라고 일컫는다. 그 세대가 가진 힘이 대통령까지 만들어 냈지만, 아직도 간첩단 사건의 주범들이 될 수밖에 없는 세대다. 그들의 일부는 흙에 가까이 가서 터전을 잡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또다른 감옥살이와도 비슷하여 읽는 마음이 아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감옥에 가는 일이나 흙에 발이 매여 사는 일이나 매한가지로 마음 둘 곳 없는 것은 현대의 인간이란 존재의 감옥에 갇힌 때문이 아닐까?

그토록 목청 높여 반대를 해도 삽살개를 닮은 미국 여자와 주름살이 멋진 한국 남자는 뭣이 그리도 좋은지 생글거리며 생지랄을 떨어 쌓는지... 이 땅에서 난 과일을 먹는 일은 이제 고소득자에 한해서 가능한 일이 되리라. 하긴 FTA를 찬성하는 넘들은 어떻게 되든 무농약 채소에 이천 쌀을 먹을 수 있으리라 안심할는지도 모르겠다.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논밭의 풀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일은 시처럼 사는 일이라고 하는 마음을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이런 책이 아니었던들 어찌 만나 보기만이라도 했으리오. 그렇지만,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이 살아가는 농촌은 가난하고 삶의 무게에 찌들린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 어디서 문제는 시작된 것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환경을 가르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환경은 곧 '나'가 사는 여기고, 내가 살아갈 땅과 하늘과 물... 그런 것을 생각하며 사는 일이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흙을 디디고 놀면서, 푸르른 숲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이 환경 공부다. 큰 도화지에 콕 찍힌 한 점 잉크자국같은 것이 지구인데, 환경을, 자신을 크게 생각할 것 무에 있을까? 지렁이도 생각하고, 핵폭탄도 생각하고... 그러며 사는 것이다. 지렁이가 죽어도 우리는 죽고, 핵폭탄이 터져도 우리는 죽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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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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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란 말 속에는, 인간으로 억압받는 계급으로서의 여성과 그 억압을 뚫으려는 투쟁성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요즘은 여성스럽다든지, 여성답다는 말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넓게 본다면, 대지를 어머니의 품으로 상징한다든지, 평화를 사랑의 손길로 나타내는 것처럼 얼마든지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하는 일이 우리말을 다루는 것이라서, 숱한 글들을 읽곤 했지만, 여적지 김선우처럼 우리말을 섬세하게 조물락거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 김선우의 글들은 그래서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눈길로 쓰다듬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문예 창작하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그미의 글을 그대로 손으로 베껴 적어 봐야 할 것이고,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그의 신선한 눈, 그 선명한 관찰력의 결과로 빚어진 통찰의 힘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소한, 너무도 작고 매일 만나는 것이어서 이야깃거리가 도저히 나올 수도 없을 것같은 단순한 사물을 붙들고 그미는 별 자잘한 수다를 다 떨고, 별 궁금한 생각의 날개를 다 펼쳐 낸다.

날마다 몇 번을 집으면서, 한 번도 관찰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 숟가락에서 오목한 포용과 볼록한 애정을 발견하는 김선우는 천상 여자고, 천상 시인이다. 그치만 김선우가 오목한 숟가락에서 거꾸로 맺힌 제 모습만 보고, 숟가락을 눈 바로 앞에 가져다 대면 나를 보는 더큰 내가 똑바로 나를 응시하는 것을 못 본 것이 좀 통쾌하다.

새 집에 이사를 오고, 벽에 못을 박는 일은 남자인 나의 일이었는데, 석고보드로 된 면에 나사를 박는 일은 크게 미안하지 않으나,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어 생채기를 내고, 피스를 박는 일이나, 펜치로 못을 잡고 망치로 텅텅거리며 못을 두들기는 행위는 언제나 낯설기만 한 것이었는데, 그런 걸 같이 느낀 김선우가 마냥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선우랑 만나면 하루 종일 재재거리면서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미는 나처럼 낯선 사람 앞에서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성격이리라. 그렇지만,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면, 남들의 이야기 속에 사사건건 끼어들고 싶을 정도로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리라. 다만, 차이점이라면 그미는 그 세세한 것들을 글로 남길 줄 안다는 것이고, 나는 아니란 것일 뿐.

에어컨을 좋아라 하지 않는 성벽이며, 휴대폰에 이물스럽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속성, 촛불을 켜두고 초의 눈물을 바라보며, 초가 태우는 공기와, 초를 밀어올리거나 끌어 당기는 힘을, 그리고 가끔씩 그 타,닥, 거리는 꿈깨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그미의 글을 읽는 일은, 아주 매력적인 친구와 마주 앉아서 끝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재거리고 또 그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우리 인류에겐 아주 오랜 습관이었으나 점점 사라져가는 그런 재미를 되살려주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누구에게 책선물 할 때, 1순위로 주고 싶은 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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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0-3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보세요.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그 감성이 얼마나 예쁘고 다정다감한지 모릅니다. 날카로운 통찰력도 돋보이고요. ^^
 
하노이에 별이 뜨다 - 소설가 방현석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여행
방현석 지음 / 해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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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과 마주선 곳은 서글픈 아시아의 전쟁터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그러나 두손 모아 진정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 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길


  전쟁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친구와 마주 손잡고 평화를 노래하고 싶어요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도와주면서
  눈부신 태양 아래 내일의 꿈을 펼쳐요

    (후렴)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 자욱마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러운 흔적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http://blog.naver.com/baramdori000?Redirect=Log&logNo=50009476501(노래 듣는 곳)

대학시절, 베트남 전쟁을 여러 번 읽었다. 그때만해도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교류가 없었던 탓인지, 응오딘디엠 같은 발음을 '고딘디엠'처럼 영어식으로 읽곤 했던 것 같다.

아시아의 문학적 교류를 위해 힘쓰는 작가 방현석의 안쓰러운 눈이 훑어보는 베트남. 거기에는 그들의 찬란했지만 아팠던 과거와, 고요하지만 잊지 못하는 현재와, 막연한 미래가 가득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가 금세라도 눈물로 흘러 내릴듯한 글들은 양심의 목소리였고, 호 아저씨와 베트남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애정을 담고 있었다.

대지는 인간보다 역사를 오래 기억한다는 말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담고 있다. 베트남에 삼십 이만의 따이한을 보낸 나라로, 민간인 학살로 아로새겨진 눈물의 역사는 열대의 나라 베트남에 자욱하게 남아 있었다.

호 아저씨의 말들은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집의 크기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서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무슨 의논을 하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국회 의사당에 대한 이야기다. 패싸움이나 일삼는 조폭 수준의 국회의원을 모신 나라에 살면서, 이런 지도자 하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프랑스, 미국, 중국과 전쟁을 하면서 독립과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배운 사람들.
신화처럼 싸우고 기적처럼 승리한 베트남 사람들.
"노동자, 인민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으면 혁명 사상이 아니다. 독립했는데 노동자, 농민이 못한다면 그건 독립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호 아저씨처럼 존경받는 지도자를 가진 사람들.

고엽제를 허옇게 뿌려 산 사람을 천천히 죽여가는 방법을 쓴 미국은 아직도 베트남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중이다. 과거는 저절로 닫히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 발언과 학교 지어주기, 그리고 미안해요, 베트남을 부를 줄 아는 마음으로 베트남에 조금씩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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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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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연수는 작가 이상에 대해서 경의의 염을 떨칠 수 없었나 보다.

불어에 오마쥬(hommage)란 말이 있다. 존경과 경의를 표하려 칭찬하면서 본떠가며 표현하는 방식이란다. 풍자의 목적으로 쓰인 경우에 패러디란 말이 쓰이는 것과 비슷하면서 대조적인 용어다.

김연수가 이상에 대한 오마쥬적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로 보인다. 이상이란 작가는 워낙 오컬트(Occult,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적인 언어를 구사한 작가였기때문에 그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은 해석자의 수만큼이나 많았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소설로 녹여내는 데는 존경과 경의의 염이 없이는 섣불리 손대기 힘든 것이 있다.

27세로 삶을 마감한 이상의 데드마스크로 시작해서 오감도의 16번째 작품 <실화 失花>까지... 이상을 좇아가는 길은 마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는 느낌이었다.

김해경이란 본명을 버리고, 이상한 이름, 이상적인 이름, 이상이란 이름으로 누구도 알아먹지 못할 글을 써댄 모더니스트 이상에게 바치는 찬사로 이런 작품 이상이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상을 너무도 동경한 나머지 이상을 모작하고, 이상처럼 일본으로 가서 목숨을 마치는 이야기... 다소 몽환적이지만, 이야기는 너무도 적실하게 진행된다.

전기라는 형식이 100개의 퍼즐로 1000개의 퍼즐판을 완성하려는 무모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작가는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나머지 900개 이상의 퍼즐 조각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상상 속에서 이끌려 갈 수도 있음을 파악하여, 인생의 운명과 우연 사이를 항해하는 교묘한 퍼즐 맞추기 놀이가 바로 이 소설이다.

'이상'은 '그'이면서 '그'가 아니기도 했던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은 늘 '나' 이면서 '나' 아니기도 한,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적 통합체임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다는 한용운의 역설과도 같이, 이상은 갔지만, 김연수는 이상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은 Good-bye 이상, 이면서도 그저 헤어지는 형식적 인사말인 굿바이가 아닌, 꾿빠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리라.

얽둑얽둑 얽은 사람을 나타내는 얽둑빼기란 말도 재미있고, 얼굴 턱선이 뾰족한 사람을 일컫는 하관이 빨다.는 표현도 오랜만이다. 김연수, 그는 주목해야할 작가라 생각한다.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진짜'냐 '가짜'냐는 의문은 무한의 앞에서는 애매해질 따름이라고... 무한한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발견은 그의 소설을 말장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 통찰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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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0-26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