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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가문의 쓴소리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이 시대에 되살려야 할 선비의 작은 예절
조성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간혹 어린 아이들에게 4자 소학 같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웅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 시대, 중국보다 더 꼿꼿했던 성리학의 전통이 가졌던 서릿발같은 선비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의식의 정조대>를 채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行勿慢步(행물만보) 걸어갈 때에 걸음을 거만하게 걷지 말고
坐勿倚身(좌물의신) 앉을 때에 몸을 기대지 말라
口勿雜談(구물잡담) 입으로는 잡담을 하지 말고
手勿雜戱(수물잡희) 손으로는 장난을 하지 말라.
膝前勿坐(슬전물좌) 부모님 무릎 앞에 앉지 말고
親面勿仰(친면물앙)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
몇 가지만 봐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로 가득하다.
어떤 교육학자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질문 조차도 부정적 사고를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소학을 가르치는 시절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삶이 40 정도에 끝날 때, 어린 아이가 집집마다 가득할 때, 웃어른이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웃어른이 가득하고 어린 아이 보기가 어렵다.
집집마다 아이를 예뻐하는 정도는 조금 다르지만 그 의식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엔 제 애도 고아원에 갖다 버리기도 했고, 남의 집에 식모로 주기도 했다.
봉순이 언니 세대가 금세 지나 버리고, 이젠 아이의 유괴는 평생 잊지 못할 악랄한 범죄로 친다.
여전히 입양 시장이 호황이라고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뭔가 넣는 시대는 아닌 듯 하다.
이덕무처럼 꼿꼿한 선비의 글을 만나러 갔더니, 조성기의 잡담이 판을 치고 있다. 실망이다.
그 말들이 함축한 바가 부족한 것은 아니로되, 이덕무의 무게를 조성기는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옛날 과거장에서도 게를 먹으면 해산(떨어져서 흩어짐)을 연상해서 먹지 않았다거나, 낙지는 낙제를 연상해서 금기시했다는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어떤 책을 읽고, 위인을 어떻게 대하며 바른 충고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이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나는 어느 정도 척도에 와 있는가.
병은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한다는 대목에서, 내 손가락에 찔린 가시 하나를 늘 담고 살아야 겠단 생각도 한다.
쓸데없는 말 마라. 같은 말 되풀이 마라. 이런 대목을 읽노라면 날마다 입이 아프도록 애들에게 반복하는 말, 쓸데없는 말들에 되려 미안하다.
관대함과 게으름, 강직함과 과격함, 좀스러움과 치밀함, 줏대없이 뒤섞이는 것과 화합하는 것을 구별하라.
이 말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두려운 말이다.
큰 사람은 촘촘하고, 작은 사람이 대범한 체 한다는 말도 있지만,
큰 사람은 마음씀이 자세하지만 용서에 대범하고, 사소한 데 무심하지만 불의에 불같은 강직함을 보이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릴 줄 아는 반면,
좁은 사람은 마음에 그지없이 좀스러우면서도 성질이 게을러서 촘촘하게 따지지 못하고, 줏대없이 성질내기 잘 하며, 공짜술에 헤헤거리며 음란한 자리를 즐겨하는 이들과 잘 뒤섞여 정신을 놓치고 산다.
나는 여지없는 작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어야 하거늘, 양약良藥은 고구苦口라고 이런 책을 읽으면 속이 뜨끔거려 영 자신이 없다.
이런 좁은 사람인 주제에 해마다 한 차례씩 아이들의 장점과 단점을 변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덕무의 지혜를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단점을 따라 장점을 보도록 하라는 말은 아이들의 특성 기록에 반드시 기울여야 할 노력이다.
정직과 고지식, 순박과 어리석음, 중개와 좁음, 민첩과 소홀, 사리분별과 방자, 믿음고 얽매임은 서로 대척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통한다는 것이다.
지각하는 아이가 느긋하고 여유가 있으며, 성질 잘 부리는 아이가 사리 분별에 밝기도 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어리석고 고지식하기도 하며, 수업 시간에 지나치게 떠드는 아이가 친구 관계가 좋기도 한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뒤집에 보면 이쁘게도 보이고, 둥글게도 보면 모난 구석도 이쁜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