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우리교육 펌] 가난과 교육 - 이계삼

가난과 교육
           - 이계삼
1.
김진경 박복선 선생님께

<우리교육> 2월호에 실린 두 분의 대담을 읽고 제법 오랫동안 머뭇거리다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경남 밀양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두 분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대학 시절부터 저는 두 분의 성함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두 분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1학년 무렵 두 분이 함께 엮어낸 <꽃이 사람보다 따뜻할 때>라는 산문집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을 접했던 기억이 거의 없던 제게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산문’이라는 부제가 너무나 신선했거든요. 그 책에 실린 글들도 참 좋았고, 그래서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때 저는 박복선 선생님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선생님일 거라 혼자 상상하기도 했지요). 또 이런 기억도 있네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늘 과 학생회실에서 빈둥거리던 저는 선배들이 기타로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곁에서 따라부르곤 했는데, 김진경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하는 부분의 그 아름다운 선율과 서늘한 서정이 얼마나 좋던지요. 군대 다녀와서부터는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우리교육>은 도서관 잡지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읽었는데, 그 앞머리에 실린 편집장 박복선 선생님의 짧은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우선 그것부터 먼저 펼쳐 읽기도 했어요.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서신 형식으로 쓰려고 맘먹은 것도 그 대담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새삼스러운 반가움 때문입니다. 교직에 들어 조금씩 경력을 쌓아갈수록 커져만 가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무언가, 우리 교육이 처한 이 상황을 분명하게 진단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제가 마음으로 기대고 또 삶의 사표로 모시는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다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가능성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마도 그분들 또한 이 상황에 대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의 대담 기사를 숨죽이며 읽었습니다. 그 신랄함과 날카로움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 기사를 두 번째 읽었을 때 저 또한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이른바 ‘밀양 고교생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떠들썩한 소용돌이를 현장에서 겪은 뒤끝이었습니다. 언론에서 익히 보셨을 테지만, 근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이 사회는 밀양의 고등학교들과 지역 사회와 그 속의 ‘패악한 아이들’을 실컷 두들겨 팼습니다. ‘맞을 땐 맞더라도, 토론 좀 하자’는 내 속의 열망에 대해선 ‘잠자코 맞고 있어!’라고 윽박지르더니, 분이 좀 풀릴 무렵에는 총총히 다른 곳으로 떠나가더군요. 때린 자나 맞은 자나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커다란 상흔만 남긴 실로 기묘한 한판 소동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학교는 언제나처럼 다시 문을 열었고, 저는 ‘비평준화지역 2등그룹에 속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평반(우수반 아닌)’이라는 긴 꼬리표가 달린 학급의 담임으로, 도서관/학교신문 담당자로, 일주일 도합 스물여섯(보충수업, 야간 특별수업 포함) 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학교와 집을 오락가락합니다.


2.
선생님,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저는 야간 자율 학습을 감독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과 차례로 면담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열명 중 세명이 편부/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중학교 내신 성적 50~60%대에 속하는, 그래도 성적향상에 대한 열망은 포기할 수 없어 노동하는 부모들의 ‘고래심줄’같은 돈으로 심야 학원까지 다니지만 모의고사를 치르면 절반을 채 맞추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수시모집으로 부산 경남권의 사립대학에 근근이 입학할, 그래도 졸업하고 10년쯤 뒤에는 파출소 순경으로, 포크레인 기사로, 국밥집 젊은 사장으로 스승의 날 꽃다발을 들고 옛 담임을 찾아오기도 하는 아이들 말입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 둘 번호 순으로 복도로 불러내 공부 방법을 조언하고, 신상의 변화를 물으며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아이들은 수줍어 말이 없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끝에 녀석들의 말간 얼굴을 쳐다보다가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에 손등에다 제 손을 포개어도 봅니다. 이 아이들 중 또 얼마는, 주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일 테지만, 가난과 외로움에 몸을 떨다가는 결국 ‘즐기고 저지르는’ 어떤 삶의 길에 접어들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제가 근무하는 이 조그만 시골 고등학교 안에도 남김없이 아로새겨진 이 세상의 모습을 느낄 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학교와 세상의 담장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려서 우리는 ‘학교’ 아닌 ‘세상’ 속에서 근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의 학교 안에는 이른바 ‘교실 붕괴’라는 교육적 불가능이, 입시라는 꼭지점을 향한 가없는 질주가, 천박한 중산층 의식에 깊이 물든 교사 집단의 안일과 무기력이, 초고속 성장의 단물을 흠뻑 빨아들인 소비문화의 광풍이, 풍요와 빈곤, 이 둘로 딱 쪼개진 한국의 경제가, 양심과 도덕을 제멋대로 조롱하는 타락한 한국 사회가 모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 안에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들더니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분출합니다. 가까이는 작년 연말의 대규모 수능 부정행위 사건과 우리 지역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만성질환자가 되어 잠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도 어느새 제 자리로 주저앉습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거기 있고 성장기 아이들이 12년의 시간을 거기서 보내다가 스무살이 되어 빠져나오는 것만이 분명할 따름, 이제 우리 교육의 장에 ‘확실한 그 무엇’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3.

선생님. 최시한 선생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겠지요. 저도 그 소설의 주인공 선재처럼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9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해직된 선생님이 나오진 않았지만, 한동안 온 학교를 팽팽하게 감돌던 그 긴장된 공기와, 몇몇 젊은 선생님들의 긴장된 결연한 얼굴만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사회의식이란 전혀 없는 촌무지랭이였지만, 저는 그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더니 선배들이 저희들을 ‘전교조 세대’라고 불러주더군요. 눈물이 흔한 편이기도 하지만, 저는 학교 민주광장에서 전교조 결성 전후를 기록한 사진전을 둘러볼 때마다, 거리 집회 와중에 대오 한편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뛰어나오는 해직교사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가르치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면, 싸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리라’던 백무산 시인의 싯구절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그때 선생님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선하고 약한 자들의 번민과 그것을 뚫고 나온 용기는 늘 보기 애처로웠습니다만 그것으로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전교조 교사! 나도 저런 존재가 되리라, 마음 속 깊이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있었습니다.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 햇살이 교실에도 가득한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것’. 돌이켜보면, 전교조 선생님들과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은 20대 초반의 제 위태로운 자의식을 지탱해준 최선의 도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 또한 전교조 교사로 살아갑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여전히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 밀양지회에서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은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또한 정의롭습니다. 올해 초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내내 발을 동동구르며 함께 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던 것에서 보듯, 전교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순수한 조직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늘 이런 질문에 시달립니다. 과연, ‘지난 16년간 전교조는 아이들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혹은, ‘전교조는 지난 16년간 이 땅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크기를 얼마만큼 줄여주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자명하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따름입니다. 전교조는 10만의 조합원에 전임 상근 활동가들의 인건비로만 연 50억원을 지출하는, 시민사회의 가장 크고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었지만, 교실의 상황은 더욱 나빠져갑니다. 두 분 선생님이 대담에서 거듭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운동은 지난 십수년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다만 방황했을 따름입니다. 그 방황의 뚜렷한 증거는 작년 전교조 위원장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거에서 대립했던 주장은 평범하게 요약하자면 전교조를 ‘아래로부터 복원하자’는 입장과 ‘강력한 투쟁을 통해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주장들이 모두 ‘교실 바깥’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을 뿐, 정작 ‘교실 안’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입장은 제겐 한 사물의 다른 두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두 입장은 모두 ‘전교조 복원’을 이야기했고 방법론의 차이를 지나서 결국 같은 결론-교육공공성 수호-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전교조 조직 복원을 통해 교육공공성을 둘러싼 참호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때, 이것이 ‘교실 안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때 어느 책에서 읽은 부처님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아시겠지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은 거친 땅이고, 반대편은 좋은 땅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그는 뗏목이 너무나 소중한지라 강을 건너 산길을 가면서도 뗏목을 이고 다닙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뗏목을 이고 가지요?”라고.


저는 이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이 바로 지금 전교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전교조 운동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커다란 덩치의 조합 대중조직 ‘전교조’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전교조는 아이들의 변화를 교육적 성과로 이어가는 일보다는 스스로의 존립과 유지에 더 큰 동력을 쏟아부어야하는 조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이야기겠지요. 전교조는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사랑에 기초한 조직입니다. 그 사랑을 가로막는 힘과 싸우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직(시스템)에 자신의 교육적 열정과 사랑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내면이 없는 물질이므로, 물질은 자신의 운동법칙에 따라 굴러갑니다. 전교조가 구축한 교육운동 시스템은 그 속에 담긴 교사들의 교육적 양심, 사랑과 뒤섞여 존재하지만, 물질이 정신을 밀어내는 인간사회의 법칙 속에서 시스템은 결국 어느 순간 자기 존재를 위해 운동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전교조는 지금 교육운동의 한 뗏목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요. 전교조는 교육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그래서 대개의 양심적인 교사들은 전교조에 기대는 것 이상의 교육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정작 이 조직은 자기 존립에 더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역설적인 상황 말입니다. 결국 전교조는 모든 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틀로 ‘교육 공공성’을 설정했지만, 실제 이것은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결과한다는 김진경 선생님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지만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 빙자해서 교장하고 월급 타먹는 운동’으로.


4.
선생님. 교육운동의 경험이 일천한 제가 운동조직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가난’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 정신이 가장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이라고 믿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가난’했던 시절에 가장 아이다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사회의 경제 성장 이후로부터 아이다움을 잃었습니다. 교육운동은 ‘힘’은 없었으되 열정과 사랑만으로 존재했던 시절 가장 강력했고, 그 ‘힘’을 갖춘 지금 가장 무기력합니다.


아이들은 왜 변했는가. 학교는 왜 붕괴되어 가는가. 왜 교육운동진영은 방황하고 있는가. 저는 결국 이 모든 현실을 ‘경제 성장’이라는 물질 환경의 변화의 산물로 여깁니다. 아이들의 변화는 김진경 선생님의 말씀처럼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이성의 의지’가 약해지고 ‘몸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만 경제적인 풍요가 낳은 정신의 타락을 흡수한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요즘 아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사유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를 가능케하는 ‘결핍’의 요소가 덜해졌기 때문에 그러할 뿐, 아이들은 지금도 스스로 결핍을 느끼는 요소-우정, 진정한 교육-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맹렬하게 사유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느낍니다)


전교조의 성장은 물론 그간 치열했던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단체교섭 등을 통한 교사 집단의 물질적 환경 개선이 더 크게 작용했고, 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이 정치적 상부구조의 개선을 추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경제 성장 자체가 한계 상황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리고 ‘빈곤’이 우리 교육의 중심으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 즉 ‘빈곤’을 ‘가난’으로 풀어가야 하는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김진경 선생님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 이전에 삶이 붕괴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뚜렷한 경향에 대해 집중하는 길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대안학교나, 혹은 매우 합리적인 질서가 정착된 공교육 속의 학교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어떤 대안 학교는 100억원이나 되는 자금과 비판적인 교양인 양성이라는 이념까지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비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비교를 단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미학적 고려라고는 전혀 없는 낡은 건물에서부터, 속물적인 교육관, 비평준화 지역의 맹렬한 경쟁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감옥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청춘을 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가 이 학교에 대해 회의를 느낄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가 그저 ‘친구들 만나고 급식먹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입시 교육에 짓눌려 기계적인 교수․학습을 반복할지라도, 그 속에 가난한 아이들끼리의 평등과 우정의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반면교사처럼 이 억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빈곤’이 배려되고 보듬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육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적 성장’을 위시하여 개인 단위의 ‘성장’ 개념에 대해 갈수록 회의하게 됩니다. 교사는 다만 ‘우정’을 위해 존재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생산적인 담론은 무엇일까요? 우선 저는 전교조를 위시한 교육운동 진영이 ‘가난’과 ‘결핍’ 그리고 ‘힘없음’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라는 고추상적인 담론, ‘교육공공성’이라는 현재로서는 중산층의 가치에 기울어진 논리보다는 그저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현실을 부여안는 것이라 믿습니다. 가난에 대한 성찰, ‘빈곤’을 ‘가난’으로 보듬어안는 교육, 중산층의 자기 한계를 넘어 가난한 자들과 연대했을 때 우리 교육운동이 그 아름다움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복선 선생님이 대담 가운데서, 그리고 ‘하자작업장’ 소개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탈근대적 교육관에 대해 부담을 느낍니다. 이것은 결국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일부 중산층의 교육관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요. 그런 교육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과 어떤 연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의 분방하고도 거침없는 자기 표현보다는 무엇에든 서툴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웃에 대한 고운 연민이 제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5.

선생님. 글을 써 놓고 보니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제 스스로 막연한 느낌으로만 가두어두었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펼쳐놓은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펼쳐놓을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의 대담에서 던진 이야기들이 실마리를 던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우리 교육이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즉 전교조 결성 초기의 선한 열기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 시절 제가 보낸 고교 3년을 회상하는 것은 참으로 심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몇몇 젊은 선생님들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일생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나중에 여쭈어보았더니 그 무렵이 교협에서 전교조로 넘어갈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전 영어 수업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거의 않던 분께서 흑판에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쓰고 고요히 우리들에게 이 시의 속뜻을 물으셨을 때, 아이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서 수학 문제를 못 풀면 엄격하게 체벌하시던 선생님께서 어느날 수업시간에 1970년대와 전태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우리 학교에서 평교사 협의회의 핵심으로 소문난 어느 선생님이 빈 수업 시간 교정 스탠드에서 골똘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그 3년의 모든 암울한 기억에 값할 만큼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습니다. 그 시절 그분들은 아무 힘도 없었고, 학교는 말할 수 없이 억압적이었으며, 우리들은 모두 가난했지만, 그 모든 것을 일거에 넘어서는 귀한 배움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난’과 ‘결핍’, '힘없음'이 빚은 진실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힘’과 ‘시스템’이, 혹은 탈근대적인 담론으로 정연하게 완비된 어떤 틀도 결코 좋은 교육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교육은 그저 땀이자 숨결이고 사랑일 뿐, 그 정신의 가난함 외의 어떤 완숙한 물적 조건도 부차적이며, 오히려 해악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까마득한 선배 선생님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참으로 겸연쩍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들의 생각의 핵심을 잘못 짚고 이야기한 것이라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목말라했던 사람은 아마 저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고민이 우리 교육의 장에서 한 의제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겁도 없이’ 이 무모한 글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제게 던진 소중한 성찰을 내내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몇 발 앞선 자리에서 우리 교육의 길을 열어젖히고자 애태우시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저도 닮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두 분 선생님들께 반가움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월간 우리교육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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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 1
박형진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술자리에서 가장 좋은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다.

이 책에는 변산 모항의 농사꾼, 어부들의 모습이 구수한 뚝배기에 담긴 짜글짜글한 찌개처럼, 기름 잘 둘러 툽툽하게 구워낸 지짐 모양으로 맛갈지게 들어 있다.

쭈꾸미 통신보다는 입말이 살아 있지 않아서 박형진의 글솜씨를 함뿍 느끼기는 어렵지만, 시골서 살아가는 그의 삶 속에서 인간 냄새가 폭신폭신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운동>임을 깨달았던 그는 온몸으로 운동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줄포를 읍내로, 부안을 시내로 생각하는 변산 시골 사람들의 웃고 우는 삶들이 풋풋한 보리 물결 사이로, 위도 너머 불어오는 비릿한 앞장불 바닷내음을 타고 펼쳐진다.

어느 마을에나 있는 좀 모지라지만 인정 많은 고막녀,
늘 시대를 앞서 사는 봉구 형님,
뭇사내들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봉니 누님,
천하의 술꾼 서금용씨...

그들이 보고 잪어서 욕 들어 가면서도 찾아가는 그들의 삶은 도시것들이 봐서는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것인지 몰라도, 사람 내음 진동하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삶이 아니겠는가.

"오사 잡놈들 다 가버링게 잡년들도 다 가부렀어, 시방 어디 있가니? 그런 사람들..."
이렇게 살아있는 언어로 욕을 하는 주모의 말을 안주삼아 쓴 책은 막걸리 몇 통을 비우고도 남을 정도로 술맛 당기게 한다.

"삼형제 썩은 물(누럭, 밥, 물의 삼형제가 썩어 술이 된다는 우스개)도 주까?"
"엊지녁에 뭣 처먹고 놀았어? 아, 속푼담서 그것도 안 먹고 복쟁이만 처먹을라고?"

이런 욕쟁이 주모 한 사람쯤 인간 문화재로 남아야 막걸리 맛이 제대로 푸지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잃어가는 우리 것, 우리 곡식이 안타까워 기록으로 남긴 박형진씨의 글들이 소중하기만 한데, 고추장, 된장,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여인네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과연 우리 나라 아이들의 냄새를 얼마나 풍길는지... 요즘 아이들은 별로 사투리도 쓰지 않는데, 서울 공화국이 전국을 덮어 버리고 획일화 시켜버리는 거나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든다.

국립국어 연구원에서 매달 퀴즈를 내는데, 먹는 밥이 아닌 것으로 가래밥을 들었다. 가래질 할 때 나오는 흙을 가래밥이라는 설명인데, 변산에선 쑥, 덜 익은 보리 간 것, 송기 등을 갈아 죽밥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가래밥이라고 한단다. 보릿고개의 잔인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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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2 : 털 끝에 놓인 태산을 어이할까 - 삶의 등불이 되는 고전의 지혜 윤재근의 장자 2
윤재근 지음 / 나들목 / 200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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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쯤 전에 서울가는 버스 안에서 읽으려고 1권을 사 뒀는데,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책들을 요즘 다시 읽는 맛은 색다른 맛이 있다.

집에서 1권을 읽고 있고, 학교에서 2권을 읽었는데, 역시 바쁘게 일하는 중에 읽는 맛이 있다. 집에서는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장점은 장자라는 텍스트를 해체하여 나름대로 양념을 해서 우리에게 권해준다는 것이다.

장자의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들, 뭔가 비꼬이고 반어적인데 그 의미를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장자를 인물을 중심으로 의미를 슬쩍슬쩍 짚어 준다.

어느 시대나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하고 말한다고 하듯이, 춘추시대 그 옛날에도 분별과 시비의 병을 퍼뜨린 유가의 도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자는, 눈으로는 미인과 명품만을 추구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만을 밝히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한 텍스트임을 잘 풀어 준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인위는 욕심 자루 가득하게 교환 가치를 끝없이 따지는 것이다.

사람도 <좀 더 나은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면서 견적을 뽑아 수술을 하고, 학벌을 만들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끝없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서가 <인적 자원>으로 아이들을 파악하고 있을까...

<자연스러운...>과 <사람다운...> 사이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있는데, 갈수록 <사람다운...> 쪽으로 편입되기 위하여 많은 투입량이 소요되는 듯 하다.

목수가 선비의 글을 보고 <찌꺼기>라고 했다는 말은 참 통쾌한 맛이 있다. 중요한 것은 몸으로 터득해야지 글이나 말로 전할 수 없다는 진실을... 요리책을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도, 그 손맛의 대충대충, 적당히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치다.

편안하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은 대체로 덕이 아니다. 덕이 아니면서 오래 가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은 자꾸 나를 편안함과 즐거움보다는 질서와 체제 속으로 끌어 들이려 한다. 남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경쟁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날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기계를 가진 자는 기계에 따른 일이 반드시 생기고, 기계에 얽매이는 마음이 생긴다.

컴퓨터가 버벅거리면 짜증이 나고, 자동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속이 상한다. 機心(기심)은 인위적인 인간의 가장 큰 속성인 것이다.

건널목을 건너는 영감님이 강아지를 몰고 가는데, 개줄과 손잡이를 멋진 것으로 사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감님을 보는 순간, 강아지와 개줄과 손잡이에 영감님이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의 네 발로 걷는 자연스러움을 버리고, 인간은 자꾸 코뚜레를 잡는 것을 추구한다. 코뚜레가 아무리 아름답다손 치더라고, 소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거늘...

무슨 일을 하면서도 안 하는 것처럼 하는 것만큼 사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뛰어난 재주는 서툴러 보이듯이, 뭔지 서툴러 보이게 하여 남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자연주의 처세술이다.

입맛을 잃어가는 세상에, 씀바귀를 먹어 입맛을 회복하듯, 장자는 맛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밑바닥부터 반성하게 한다. 결국 장자라는 텍스트도 쓸모가 없다. 세상의 도는 <말할 수 있는 것>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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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책
김수덕 지음 / 한문화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에 산책을 나가 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지... 책제목을 만났을 때, 뜨끔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천천히 읽어야 한다. 조금씩.

마음의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과자먹듯이 야금야금 읽어야 좋다.

책이 얇아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화장실 같은 데 놓아 두어도 좋을 만한 책이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 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나의 단점을 콕 찔러 보여주는 한 마디가 아닐까.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툭 하면 놓쳐버리고 마는 나. 그러면서도, 가끔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될때면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버리는 한심한 나. 가끔은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독단에 빠져버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나...

나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지만, 또 나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늘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한심한 존재이지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음도 가르쳐 준다.

우주의 대생명력의 큰 강줄기 위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우리는 찰나찰나 항상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면 되는 존재. 그래서 그 사랑을 실천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조용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一始無始, 一終無終 이것은 시작이 없는 시작이고, 끝 없는 끝이다. <천부경>

내 존재가 그러하고, 내 삶이 그러하고, 내 죽음이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무시고 종무종이다. 마음을 비우는 사람만이 볼 수있는 말이다.

우리 삶에 예비되어 있는 보물을 믿지 못하고, 보물 찾기하는 어린이먀냥, '보물이 있긴 있는 거야?'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텔레비전에서도 무슨 비타민 하면서 웰빙, 건강을 외치는 이 상품의 시대에, 잘 사는 건 좋은데, 그 건강으로 다들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이 아닐까?

공부 잘 하는 건 좋은데, 공부 잘 하는 사람들, 다들 무얼 하고 있나?
돈 많은 건 좋은데, 돈 많은 사람들, 다들 무얼 하고 있나?

욕심에 빠지고, 어리석음에 갇혀 허우적 거리며 살고 있잖아...

새벽에 깨어나는 것조차 어려운 나에게... 새벽 산책은 언감생심, 어렵기만 하다.

그렇지만, 해가 뜨기 전, 동틀 녘의 갓밝이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를 나도 아는지라,
멀리 여행가기 전에라도, 고요한 아침을 느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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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온갖 번뇌가 머리 속을 떠니자 않아 괴롭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럼, 놓아라, 놓아 버려라."

제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는 번뇌를 떨쳐버리고 싶지만 번외가 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 구해오라고 일렀습니다.
"그 나뭇가지를 꼭 움켜잡아라. 손을 움직이지 말고 마음 속으로만 놓아라 놓아라, 소리를 질러봐라."

제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스승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다시 일렀습니다.
"이제 움켜쥔 주먹을 펴라."

이윽고, '툭'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나뭇가지가 너를 잡고 있었느냐, 네가 나뭇가지를 잡고 있었느냐."

제자는 스승 앞에 엎드려 통곡하고 번뇌를 벗었습니다.

                                                                김수덕 명상 에세이, <새벽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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