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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2009년부터 주5일제 수업을 하게 된다. 이걸 대비해서 새 교육과정을 판을 짜는 모양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내놓는 해법들은 하나같이 신통한 것이 없어서 미칠 노릇이긴 한데, 이번에 국어 교과서를 국정에서 이종 교과서로 풀어볼 셈산이다. 이제 국어 교과서도 시장이란 것이 형성되겠다.
이전의 국어 교과서가 한 종류여서 참으로 재미없는 글들을 실어두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가르쳐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면, 이젠 그 학교 국어교사들끼리, 맛에 맞는 교과서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 수구 꼴통들은 그러면 전교조가 세를 가진 학교에선 빨갱이를 기르지 않겠느냐고 난리를 떨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어떤 교과서의 특정한 단원을 가지고 색깔론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양한 교과서를 통해서 좀더 충실한 모습의 교과서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기대다.
내가 바라는 교과서는 이런 것이다.
우선,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도록 가르치는 책이 되어야 한다.
아무 시나 실어 두고 자유시, 정형시, 내재율, 외형률 가르치고, 아무 소설이나 실어 두고 단편, 중편, 장편 가르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주제에 따라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하고, 다양한 읽을 거리가 풍부하게 실린 교과서라야 한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는 <한국어> 교재가 아니므로(한국어는 아이들이 이미 능숙하게 구사한다.) 다양한 세계의 읽을 거리와 풍성한 인간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읽기 재료가 되어야 한다. 거기엔 분명히 지역 방언이 포함된 재료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적지 표준어로만 일관된 교과서를 배우면서 우린 늘 쪽팔림을 무의식적으로 각인시키지 않았나 말이다. 당당하게 우리가 쓰는 말들이 교과서 속에서 재미나게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올바른 우리말 쓰는 길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문법도 가르치고, 기타 국어 지식도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 지식은 나쁘고 기능은 좋다는 식의 교육은 또다른 폭력인 것이다.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의 리뷰를 쓰겠다면서 엉뚱하게 교과서론으로 흘러버렸다.
그러나, 박형진씨, 너무 불만을 갖지 마시라. 내가 교과서를 쓴다면, 이 책이나 모항 막걸리 책에서 한 꼭지를 실어 볼 생각이니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까지 총 8권의 교과서를 내가 쓸 수 있다. 한 권에 한 지방씩 지방색이 두드러진 글을 실으면 그 또한 재미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선 제주도 방언이 등장하는 글과, 전라도 방언이 등장하는 글은 많으니 찾기 쉽다. 경상도 방언이 재미나게 적힌 한티재 하늘 같은 글도 좋고. 충청도 방언이 구수한 책으론 역시 박형진의 쭈꾸미나 모항 막걸리가 좋다.
그 내용도 전통 문화를 계승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비판조 수필들이니 교과서에 실음직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좀 껄쩍지근 한 것은 부분부분 교과서에 싣기에는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인 전통 음식에 대한 애착이, 글 뒤로 가면서는 집착처럼 변하면서 앞부분에선 음식 이야기가 글맛을 돋워준 반면, 뒷부분에서는 음식이야기가 식상하게 보이는 것은 입맛 짜른 내 탓이리라.
입맛 구수하고 능청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중년까지를 늘어놓고 있는 시골 사람 박형진의 글을 읽게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황당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박형진씨, 당신 내 덕에 교과서에 글 한 꼭지 실리면 이담에 모항 가거들랑 막걸리 한 잔 사 주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