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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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또 토라또 사카나 다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보다 운율이 느껴지는 산뜻한 제목이다.

문학이란 이런 산뜻함 빼면 아무 것도 안 남는다. 그래서 번역의 한계가 큰 것이다.

나는 <조제와 물고기... >보다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쪽이 훨씬 좋았다.

자유분방하고 직선적인 여동생과 수줍고 암된 언니의 이야기.

이름도 미도리는 명랑한 반면 고즈에는 왠지 자격지심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듯 하다.

조제...는 영화로 만들어 졌더랬는데 보지 못해서 아쉽다. 이 단편으로는 영화가 어떤 것일는지 감도 잡기 어렵다. 모티프만 제공했을 뿐이겠지. 그래도 오아시스보담은 훨씬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즈에와 조제의 마음 속에 가득한 2% 부족한 열망을 무엇이라 이름붙이면 좋을까.
늘 자신이 없고 뭘 해도 기가 죽어 있고, 꿈만 꿀 따름인 사람들을...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겉으로 드러내 주어서 다나베 세이코씨는 인기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인의 욕망과 만족을 드러내는 글들을 대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좋은 글인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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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정말 좋았답니다. 무엇보다 두 남녀 주인공, 특히 조제역의 그 배우 (이름은 몰라요)가 너무 당차게 나와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지요. 꼭 보시길 권합니다. 개인적으로 '메종 드 히미코'보다 '조제~'가 더 좋았답니다.

글샘 2006-08-0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영화는 재미있었다던데요. 소설은 좀 별로였습니다.

파란여우 2006-08-0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도 별로였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도대체 영화에서라도 뭔가 되어야지!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영화는 재미없는거 맞죠?^^

글샘 2006-08-06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를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아시스가 멋진 영화 아니겠습니까? 문소리가 장애인에서 갑자기 호로록 일어서서 빙글빙글 돌고 하는 상상력을 제시하는... 그러면서도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졌어도, 가진 그대로 사람임을 보여주는 공주와 설경구... 영화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재미를 떠나서 부담스럽겠죠. 물론 재미도 덜할거구요. ^^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 황대권의 유럽 인권기행
황대권 지음 / 두레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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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이, 그가 옥중에서 서신을 주고 받았던 유럽의 앰네스티 회원들을 만나러 가서 환대를 받았던 이야기를 쓴 기행문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을 하느님은 험하게 쓰신다고 했던가.
재주 많은 사람이 편할 날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의 인생 역정은 전두환 정권 때문에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셈이다.

노동 현장에 들어가서 비참한 밑바닥 노동자의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서 도망간 유학길이 '간첩단 사건'의 빌미가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이 책을 통하여 그 숨통막히던 시절, 그 답답한 감옥 안으로 영어로 된 외국인들의(그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아닌데...) 편지가 한 송이 장미가 되고 생명수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국제 사면 위원회라는 앰네스티 활동이 폭압적 정치 상황에 놓인 세계의 많은 양심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활동의 한계도 훤하게 보이는 듯 하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경우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황대권씨도 미국에서 저널에 몇 차례 칼럼을 쓴 것이 사단이 되어 일이 터졌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저널에 글을 실은 덕분에 이런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지하처럼, 폭압적 정부 아래서 저항적 에너지를 결집시킬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 그래서 로투스 상 등 여러 상을 타 놓고는, 나중에 변절해 버리는, 그러면서 혼자서 생명 운동의 핵심에 서 있는 도사가 된 양 떠벌이는 세상에, 그의 '소나무가 좋더니 벚꽃마저 나는 좋아' 하는 시답잖은 시가 김대중 정권의 의도에 따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판국에, 아직도 한반도에 인권은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글들이다.

유럽에서 반가운 만남들을 갖고, 환대를 받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분명히 그 속에서 나는 보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을.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유럽 사람들이 이룬 정치적 성숙은 분명히 그들의 경제적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크스의 '하부 구조는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던 이론은 아직도 변치 않은 것이다.
굶어 죽는 나라에서 남의 나라 정치범, 양심수 걱정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먹고 사는 데 전혀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속박받지 않는 환경에서나 가능한 아름다운 활동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아, 황대권씨는 그 법같지도 않은 국가 보안법(친일파들, 그리고 빨갱이를 정말 증오하는 한나라당 수구 꼴통들, 친미로 돈벌고 잘 사는 이 땅의 부자들은 이 법이 없으면 기반이 없다.)에 따라 옥살이를 했고, 아직도 보호 관찰을 계속 연장해서 당하는 입장에 선 이 지랄같은 대한민국에... 법은 없다.

오늘 뉴스에선, 법관들은 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들이 오고 간다. 검찰이 기소해도 법관이 법관은 풀어준다는 법치주의 몰락의 소리. 그렇다. 한국에는 헌법은 없고 국보법만 있다. 소위 법치국가는 순 뻥이고 날라리 허풍인 셈이지.(한국은 민주 공화국이라고? 민주는 어디 있고 공화는 어디 있나? 금권 숭배 국가라고 하지 그래.)

오늘 뉴스에선 또, 소위 김현희 사건이 진상조사를 받는다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아, 생각을 해 보자. 그래 그 이쁜 김현희가 칼기를 폭파시켰든 말았든, 무슨 특수 교육을 받았다는 남파 간첩이라는데, 그년은 왜 감옥살이 시키지 않고 국가에서 감싸 안기만 하는가 말이다. 황대권 같은 피래미도 감옥에서 십삼년 여를 썩다 나왔는데 말이다. 도무지 이 나라 법은 법같지 않아서 무섭다. 그 고무줄 잣대는 아무데서나 오지랖 넓게도 발광을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날씨 더운데, 뉴스 보니깐 혈압이 올라서 잠이 올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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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6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 지음, 강혜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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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엘 가기 싫어한다면 참 골치아플 것이다.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유치원을 보낼 때, 아내가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직장이어서 유치원에 가는 날이나 빠지는 날이 절반씩 될 정도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가고 집에서 뒹구는 날엔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도 되었다. "학교엘 가기 싫어하면 어떡하나?"

그런데, 막상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엘 보내고, 야단 칠 때도 "그럴 거면 학교 같은 거 다니지 마!"하고 혼내키기라도 하면, 그날은 안 자려고 한다. 이유는 다음 날 혼자 일어나지 못하면 학교를 못 가니깐, 밤을 새고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럴 때, 휴~~하면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학교엘 안 가면 죽음인 줄 아니깐.

제깐에도 학교라는 제도에서 낙오하는 일은 큰일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학교는 다녀야 하는 곳일까? 왜 학교엘 가야 하는 것일까?

교육학자가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를 조카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짧고 명확하게 적으려고 한 글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의문 부호를 붙이며 읽었다. 정말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러 가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근대적 인간. 즉, 남의 밑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어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학교는 엄격한 규율을 제시했다. 그 시대에도 물론, 그와는 다르게 귀족 학교에서는 상당한 수준에서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근대적 인간상을 기를 필요가 없어진 지금, 학교는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르는 곳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으로 갈수록 학교는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고, 오히려 부정적인 일들을 겪게 되는 사회화 기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요즘 초등학교는 개근상을 주지 않는다. 각종 체험학습을 다니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정의 보통 아이들은 체험학습(소위 어학 연수 등으로 해외로 나가 놀다 오는 일) 같은 것을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다. 없는 집 아이들은 아직도 근대적 인간상을 기르는 데 학교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의 저자가 내세우는 이유들에 대해서 나는 수긍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온 것들은 그야말로 근대적 노동자를 기르는 하류 계층민들의 학교에 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학교에서 지식을 주입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
지식은 인터넷 속에서도 넘쳐나고 충분할 정도다.
학교에서 인성을 지도하기에도 환경이 좋지 않다.
사회가 갈수록 다변화 되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소위 계층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수목적고나 자립형사립고는 이미 가진자들의 아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일반계 고교 아이들도 먹고 사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실업계 아이들은 그야말로 실업 상태의 부모들을 둔 어둠의 자식들인 경우가 많다.
실업계란 이름이 지랄같다고 해서 내년부텀은 이름을 바꾼단다. 전문 고등학교니, 특성화 고등학교니 하고.
그런다고 아이들의 가슴에 지워진 멍에는 풀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하고 확고한 일이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을 학교 이름으로 획정해 버린다.

아직도 두발 단속 규정이 있고, 교복에 알맞는 양말 색과 구두 색과 가방 색깔이 있다.
등교 시간에는 학생 부장이 교문에 서 있고, 사소한 규정 위반이 쌓이면 벌점이 초과되어 징계를 받는다.

학교가 바뀌어야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한데도, 각종 소프트웨어는 그대로다.
아이들은 송두리째 바뀌어 있는데도...

그래도 학교를 가야 하는지... 하르트무트가 2001년데 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심각한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묻고 싶다. 난 이런 책을 써 보고 싶다.


학교엘 안 가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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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7-3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아들도 학교 안 가고 싶다고...노래를 부르는 통에 읽은 책이에요.
공감가는 내용도 있지만 역시....^^;;;
 
달려라 바퀴! - 제1회 바람단편집 높새바람 11
최정금 외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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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이들 동화에도 우정, 감동을 벗어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이나, 청소년기의 방황을 그리는 이야기들이거나, 장애인과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외연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뜻하며,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네거티브 사회에서 포지티브 사회로 넘어갈 수 있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얼마나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사회였던가.
옛날 이야기에는 유쾌한 사또 이야기 보다는 탐관 오리들의 강짜가 많이 등장하고,
부모와 계모에게서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효'의 이데올로기들이 가득하고,
임금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우물 속 개구리 이야기들로 가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장애인들을 병신이라고 놀리며, 직업엔 분명한 귀천을 아직도 달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이런 책들이 아이들 마음 속에 녹아 들다 보면, 장차 외국인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장애를 가진 것은 좀 불편하고 우리와 다를 뿐임을 이해하고 봉사활동에 적극적이며, 직업보다는 인간을 우선 하는 사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작품은 달려라 바퀴, 믿지 않겠지만, 우리 이모, 작은 집 이야기, 할아버지의 주문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해충이란 놈들에게 해로운 것은 인간에게도 해로운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바퀴를 통해 보여주고,
믿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서 어른보다 깊은 통찰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봉사 활동이 허식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 인간으로서 나환자를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하며,
작은 집에 살면서도 결코 비굴하지 않은 으네의 모습을 통해 당당한 인간의 삶을 보여 주며,
지장보살을 세 번 외는 할아버지의 주문을 통하여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아, 또 하나, 명랑한 블루에서 담배피우는 엄마의 마음을 힘겹게 드러낸 것도 큰 용기를 낸 동화로 보인다.

개죽음이나 고물성을 지켜라는 주제가 너무 드러나는 이야기이고,
기도하는 시간은 지나친 희화화로 동화의 재미를 덜하게 하는 듯 보인다.
바람이 머무는 자리는 다소 형상화가 덜 되어 막연한 느낌이기도 하고,
분홍빛 가출은 성 정체성에 대한 시도는 신선했으나 깔끔한 느낌이 덜하다.
빨간 지갑은 평범하단 생각이 들었고,
해적을 물리친 돌장군은 옛날 이야기 형식의 자유로움을 빌렸지만 이야기 자체는 별로 자유분방하지 못한 듯 하다.

아이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쓰는 사람들이 동화 작가라는 통념을 갖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통념을 깨기에 충분한 책이다. 세상에는 이쁘고 사랑스런 이야기들만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 그 간단하면서도 쉬운 진리를 이 책에선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 할는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런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띄워주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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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7-3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천사와 같다...는 생각이 때로 많은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동화공부할 때 샘이 그러시더군요. ^^

글샘 2006-07-3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아이는 천사와 같지 않죠. 그렇다고 아이는 악마도 아니고요.
아이도 우리와 같은 인격체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동화 공부... 재미있겠어요.
 
블루프린트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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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이 한 짓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황우석이 실패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황우석이 애초에 없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제 인간. 아무리 인간이 세포와 유전자의 단위까지 과학을 발달시켰다 치더라도,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식을 갖고 싶다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말이다.

이리스는 유명짜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데, 다발성 경화증을 앓게 되고 머지않아 자기가 피아노를 그만둘 운명에 처해있음을 알게 된 후, 자기의 복제품을 만들기로 한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자기의 모든 노하우를 쏟아 붓고 싶어하지만, 새로 탄생한 아이는 결국 <나는 나> 선언을 하게 된다.

<나는 너, 너는 나>라는 쌍둥이 놀이는 처음엔 재미있고 신기했지만, 시리가 자라나면서 <자아>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자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가능한 놀이로 발전한다.

이런 상상력은 충분히 현실화 될 것이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난 복제양 돌리의 이름이 가수 '돌리 파튼'의 가슴이 큰 것을 보고 붙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몸서리친 적이 있다. <복제>를 대하는 과학자들의 '태도'에서 전혀 경건함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난자를 어떻게 조작하여 인간을 만들려던 황우석의 시도가 한국에서나 가능한 이유는 이 책을 읽어 보면 잘 나와 있다.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는 나라. 돈만 되면 용서가 되는 나라. 빨갱이만 아니면 정치적 바람을 타고 학문도 구부릴 줄 아는 유연한 나라. 곡학아세가 판치는 매판 자본의 나라. 대한민국.

황우석이 <거짓 천사 가브리엘>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해 냈더라면, 그 번질거리는 얼굴에 얼마나 찬사를 보냈을 것인가 말이다.

어떤 사람을 둘로 나누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그것을 모르셨나요, 박사님?

이렇게 물어 보는 시리는 황우석에게도 이 말을 들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셨나요, 박사님? 하고...

황우석을 또 다른 누군가가 후원하여 실험을 하려 들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윤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이익, 또 이윤>만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다.

이 책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문제 제기로는 재미있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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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7-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읽어보고프네요

글샘 2006-07-3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사서 봐도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