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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 황대권의 유럽 인권기행
황대권 지음 / 두레 / 2003년 12월
평점 :
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이, 그가 옥중에서 서신을 주고 받았던 유럽의 앰네스티 회원들을 만나러 가서 환대를 받았던 이야기를 쓴 기행문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을 하느님은 험하게 쓰신다고 했던가.
재주 많은 사람이 편할 날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의 인생 역정은 전두환 정권 때문에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셈이다.
노동 현장에 들어가서 비참한 밑바닥 노동자의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서 도망간 유학길이 '간첩단 사건'의 빌미가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이 책을 통하여 그 숨통막히던 시절, 그 답답한 감옥 안으로 영어로 된 외국인들의(그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아닌데...) 편지가 한 송이 장미가 되고 생명수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국제 사면 위원회라는 앰네스티 활동이 폭압적 정치 상황에 놓인 세계의 많은 양심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활동의 한계도 훤하게 보이는 듯 하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경우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황대권씨도 미국에서 저널에 몇 차례 칼럼을 쓴 것이 사단이 되어 일이 터졌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저널에 글을 실은 덕분에 이런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지하처럼, 폭압적 정부 아래서 저항적 에너지를 결집시킬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 그래서 로투스 상 등 여러 상을 타 놓고는, 나중에 변절해 버리는, 그러면서 혼자서 생명 운동의 핵심에 서 있는 도사가 된 양 떠벌이는 세상에, 그의 '소나무가 좋더니 벚꽃마저 나는 좋아' 하는 시답잖은 시가 김대중 정권의 의도에 따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판국에, 아직도 한반도에 인권은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글들이다.
유럽에서 반가운 만남들을 갖고, 환대를 받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분명히 그 속에서 나는 보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을.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유럽 사람들이 이룬 정치적 성숙은 분명히 그들의 경제적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크스의 '하부 구조는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던 이론은 아직도 변치 않은 것이다.
굶어 죽는 나라에서 남의 나라 정치범, 양심수 걱정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먹고 사는 데 전혀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속박받지 않는 환경에서나 가능한 아름다운 활동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아, 황대권씨는 그 법같지도 않은 국가 보안법(친일파들, 그리고 빨갱이를 정말 증오하는 한나라당 수구 꼴통들, 친미로 돈벌고 잘 사는 이 땅의 부자들은 이 법이 없으면 기반이 없다.)에 따라 옥살이를 했고, 아직도 보호 관찰을 계속 연장해서 당하는 입장에 선 이 지랄같은 대한민국에... 법은 없다.
오늘 뉴스에선, 법관들은 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들이 오고 간다. 검찰이 기소해도 법관이 법관은 풀어준다는 법치주의 몰락의 소리. 그렇다. 한국에는 헌법은 없고 국보법만 있다. 소위 법치국가는 순 뻥이고 날라리 허풍인 셈이지.(한국은 민주 공화국이라고? 민주는 어디 있고 공화는 어디 있나? 금권 숭배 국가라고 하지 그래.)
오늘 뉴스에선 또, 소위 김현희 사건이 진상조사를 받는다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아, 생각을 해 보자. 그래 그 이쁜 김현희가 칼기를 폭파시켰든 말았든, 무슨 특수 교육을 받았다는 남파 간첩이라는데, 그년은 왜 감옥살이 시키지 않고 국가에서 감싸 안기만 하는가 말이다. 황대권 같은 피래미도 감옥에서 십삼년 여를 썩다 나왔는데 말이다. 도무지 이 나라 법은 법같지 않아서 무섭다. 그 고무줄 잣대는 아무데서나 오지랖 넓게도 발광을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날씨 더운데, 뉴스 보니깐 혈압이 올라서 잠이 올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