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대답은 이 책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총을 쏘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심장을 겨냥해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가.
군대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을 사냥하라고 총을 맡기는 일은 얼마나 징그러운 일인가를...
다행히 내가 군에 있던 시절엔 베트남이나 이라크와는 엮여있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아직도 이라크에 파병되어있는 자이툰 부대원들 중에는 혹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몇이나 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주 반성한다.
수업 시간에 틈나는대로 아이들에게 전쟁의 무서움과 무식함의 공포스러움을 가르쳐 주고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온 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금할 수 없다.
다음 학기 부터는 무조건 아이들에게 세뇌를 시켜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터에 나가선 안 된다고. 상대방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총을 들어서도 안 되고, 누굴 죽여선 결코 안 된다고...
이 책을 사 둔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바쁜 정신으로 읽기엔 좀 복잡한 책이라 생각하고 묵혀 두었는데, 주말을 이용해서 정문태 기자의 서늘한 말발에 동화되어 내쳐 읽게 되었다.
예전부터 종군기라자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전선을 누비며 <군인>으로서 전쟁을 편향되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종군기자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전선기자>라는 이름을 쓴다.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행위임에도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하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기자들을 비판하면서, 기자들이 정부의 정치 행위를 거드는 것이 <애국심>이 아님을, 전선에서 본 그대로를 쓰는 일이, 민중의 편에서 기술하는 일이 올바른 일임을 그는 밝히는 과정인 것이다.
91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환상 게임으로 만들어 버렸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비인도적인 전쟁으로 기록해야할 걸프전을 모든 언론은 침묵했다. 그리고 국제 언론은 대이라크 경제 봉쇄로 백만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눈을 감았다. 전선기자 없는 전쟁은 그렇게 일방적인 피의 잔치가 되고 만다.
"미군은 모든 전쟁에 참여하지만, 미군은 언제나 정의롭고, 미군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것이 미국의 본질이다. 군산 복합체의 나라. 전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탄의 나라. 미국.
그 본질과 실체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악마의 그림자처럼 폭탄이 있는 곳, 전쟁과 전투가 있는 곳엔 얼른거리는 미국의 전투기, 항공모함, 군인들, 그리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학살의 흔적들을...
베트남과 버마, 이라크와 코소보, 라오스와 캄보디아, 아프간과 카슈미르, 팔레스타인과 인니의 자유아체운동, 발리 학살까지 악마들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다가왔다 화약 냄새 풍기며 사라져 갔지만, 남아있는 이들에게 공포의 추억은 영원히 남아있다.
이 책을 과거로 읽는다면 세상은 영원히 악마인 수퍼맨이 일 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하고도 반을 도는 곳이겠지만, 이 책이 우리의 미래로 읽힐 때, 세상에 수퍼맨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평화를 외치는 유일한 길은, 미국에 반대하는 길 뿐이다.
전선기자 정문태는 그래서 전선에서 사진을 찍고, 죽음과 삶을 꼭 끌어안고 달리고 또 달린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존경스러운 기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정문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