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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640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린다. 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바다 대서양에서 서쪽 바다 태평양까지.
저자는 원래 마라톤도 하고, 수영도 즐겨 하는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번엔 나이 마흔에(아, 내 나이 마흔에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난 전혀 위기의식 없이 살고 있었는데... 배부른 돼지로...) 그는 내 나이에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거 여행이 <한반도>를 국한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로 보인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여서 아직도 이 좁은 땅을 도보 여행하거나 자전거 여행하는 코스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미국은 역시 풍부한 나라였다. 자전거 트레일이 여러 곳 개발되어 있었고, 많은 자전거 혁명 동지들이 있었다.
자전거는 혁명이다. 자전거는 지점과 지점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달리면서(걷는 것만은 못하지만) 속도보다는 경치를 보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홍은택씨의 자전거 타기는 하루 100킬로 이상 달리는 것으로 볼 때, 좋은 경치를 놓치는 자전거 타기이기도 하다.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정말 나는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무슨 일이냐. 이 책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 도중에, 부산서 서울을 열흘만에 걸어 가셨다는 선배님을 만나게 되는 일은... 강물은 빨리 가라고 등 떠밀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이렇게 내 등을 떠민다.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하겠다.
자동차를 가지면서 여행을 할 때, 트렁크에 온갖 잡동사니를 싣는 버릇이 생겼다. 쓸모가 있건 없건 트렁크에 베개, 이불까지 쑤셔박고 다니다 보면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보나 자전거 여행의 좋은 점은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것이다.
내 몸에서조차 불필요한 지방 덩어리들을 가득 달고 다니는 현실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조차 버리고 싶은 한계 앞에 마주서는 일은 여행자의 배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버리는 것의 소중함.
살다 보면, 세상은 왜 이리 힘든 거냐... 할 때가 많다. 그 때 주위를 둘러 보면, 남들은 참 잘도 웃고 행복하기만 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에서 만난 <로그 북>이란 단어는 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첫사랑과 이별하고 몇날 며칠을 속끓이고 있을 땐, 라디오 모든 노래가 내 노래고, 모든 사랑이 내 사랑과 일체형이었음을 깨닫게 되듯이, 통나무 집에 비치된 로그 북(우리 말로 방명록이랄까)에서 사람들의 흔적과 자취를 느끼는 일은 인생 역정에서 힘든 것들을 이겨내게 하는 비유가 될 수도 있겠다.
세상이 불평스러울 때, 힘들 때,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 펼쳐볼 수 있는 로그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 로그북 있는 사람은 정신병 걸릴 염려, 탁 놓아도 좋겠다.
자전거 혁명 동지들에게서 배운 여러 가지 중, 앨리슨의 이야기는 땀 철철 흘린 뒤에 맛보는 시원한 샘물처럼 독자를 명상의 숲속으로 이끌고 산림욕의 치톤향에 빠뜨린다.
바라는 것.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를.
정적에 싸인 곳을 기억하기를.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당신의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니,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 먹으니.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공허해지거나 잠시 기분이 나아질 뿐,
세상에는 항상 당신보다 낫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거늘.
앞일을 계획하는 것만큼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음미하길.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
사업을 할 때는 조심하기를. 세상에는 사기가 판치고 있으니.
그러나 이것 때문에 좋은 일들에 대해 눈감는 일이 없기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고 영웅적인 노력들로 세상이 가득차 있으니.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들이 벌어져도 사랑이야말로 잔디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이니.
젊음의 것들을 우아하게 단념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갑작스런 재난에서도 당신을 지켜줄 영혼의 힘을 키우기를.
그러나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기를.
두려움은 대부분 피로와 외로움에서 싹트나니.
엄격한 자기 수양을 넘어서 자신에게 온화하기를.
당신은 우주의 자녀이니, 나무와 별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니,
당신은 여기 있을 권리가 있거늘.
그리고 당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우주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끝없이 펼쳐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신과 융화하길.
신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리고 삶의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당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위해 다투고 있든 간에 당신의 영혼과 조화를 이루길.
세상은 거짓과 허영과 무너진 꿈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여진히 아름답거늘.
조심하기를.
행복하기 위해 분투하길.
내가 사는 하루 하루가, 이렇게 갓길로 가는 자전거 타기와 다름 없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톤의 트럭에 시속 백킬로 이상으로 씽씽달리고,
커브 한 번 잘못 틀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가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만나고, 힘든 사람들도 만나는 곳.
그러나, 결정적으로 외롭게 혼자 힘을 다해 달려야 하는 길.
높은 곳에 오르면 느낄 것이라고 혼자서 예상했던 쾌감, 성취감은 오로지 상상이었음을 깨닫는 것.
다 올라 보면, 다시 내려갈 일 외엔 아무 일도 없는 그것.
그렇지만 올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정말 대단한 일처럼 보이는 것.
고군분투 마무리 지었을 때, 이것이 마지막임을 깨닫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것.
중도에 그만 두는 이도 보이고, 중간중간 꾀를 부려 건너뛰는 이도 보이는 것.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도 만나고, 풍족하면서도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만나는 것.
세상은 직선으로만 달려야 행복한 것이 아님을 배우는 것.
종아리 힘이 빠지면, 발바닥 힘으로, 다시 대퇴부의 힘으로 달릴 줄 아는 것.
그렇지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것.
때론 미친 개가 달려 들고, 모기 떼에 시달리고, 잦은 고장과 펑크로 멈춰서지만,
임시 방편, 고식 지계로 잠시 따돌리고 앞으로 앞으로 묵묵히 혼자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임을 자전거 하나 타고 세상을 돌면서도 보여주는 책이 이 책이다.
디자인도 예쁘고, 홍은택의 이야기 솜씨도 유쾌하다.
나를 부르는 숲의 저자가 그 힘든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가면서도 잃지 않았던 그 유쾌함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내 나이 마흔에 다가온 이 책과 도보 여행자 김선생님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다다른 나에게 자꾸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너는 왜 사냐고...
그리고 체중 감량보다 더 중요한 욕심 감량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