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샬로트 졸로토 지음, 김경연 옮김,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 풀빛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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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에 등장한 소녀. 그 그림에 이 그림책의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무언가 몹시 그리울 때...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귀를 기울여라. 간절히 간절히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소리는 귀를 통해 울리지 않지만, 마음 속에서 따스하게 밝아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 참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중학생 아들 녀석이 좀 이상하단다. 아빠가 왜 애기 책을 읽느냐고...

그러더니 화장실에서 제가 읽고 있다. 내가 물었다. 왜 중학생이 애기 책을 읽느냐고...

그랬더니, 짧아서 재미있단다.

그렇다. 짧아서 재미있음도 큰 재미다.

소녀처럼 고요한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 일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그리운 메이 아줌마란 책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에 읽는 책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책과 책 사이에서 혼자 흐뭇하게 구경을 한다. 책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이 책에선 아빠를 그리워하지만, <그리운 메이 아줌마>란 책에선 양어머니 격인 메이 아주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는 대상을 영적인 존재로 그리든 어쩌든 간에, 간절한 기대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임으로써 실현된다. 책을 통해 황홀하고 희미한 경지를 느낀다.

아름다운 밤이다. 비록 내 귀엔 폭주족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 도시고속도로에서 씽씽대며 차들 달리는 소리만이 슈-우, 쉬-이 들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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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6-21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아름답고 그림이 부드러워서 저도 이 책을 좋아해요.
근데 일곱살 울아들에겐 좀 이른가보네요.
이 책의 묘미를 공유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누미 2006-06-2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동화를 정말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흰둥이들아, 들어봐라! - 사모아 추장 투이아비의 이야기, 윤구병이 다시 읽은 책 1
에리히 쇠르만 엮음, 윤구병 옮김 / 장백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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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쯤 전에, 우연히 어느 반 학급 문고에서 '빠빠라기(하늘을 찢고 나타난 사람이란 뜻으로 문명인, 서양인을 뜻함)'란 책을 읽게 된 일이 있었다.

사모아 섬의 어떤 추장(투이아비)이 유럽의 백인 문명을 체험하고 나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서양인들의 생활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에리히 쇠르만이란 독일인이 기록한 책이었다.

그 생각의 위치가 우리가 높이는 가치를 완전히 깎아 내리고, 별볼일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게 만드는 자못 심오한 것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윤구병이 다시 읽은 책이라고 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꼭 읽어 봐야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상대주의>와 <자문화 중심주의>를 가르치지만, 자문화 중심주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르치지만, 날마다 살아가는 곳곳에 자문화 중심주의가 얼마나 속속들이 들어있는지를 그 문화 속에 사는 우리들은 모르기가 쉽다.

가장 가난한 인도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자문화 중심주의 때문이 아닐까.

흰둥이들은 온 몸을 천쪼가리로 감싸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자연인들은 살갗을 드러내 놓고 사는데 말이다. 살갗을 드러내 놓고 사니 여자의 살을 보고 미치는 정도가 덜하단다. 원투가 있는 말이다.

문명인들의 집이 얼마나 답답한 공간인지와, 문명인들의 돈이란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

거룩한 넋이 만드는 물건들은 파괴적이지 않은 반면, 문명인들이 만드는 모든 이기들은 얼마나 파괴적인지...

물신주의에 빠져있는 인간들의 파괴적인 삶을 신선한 눈으로 비판하는 글들이다.

지천으로 깔린 시간을 지혜롭게 맞이하지 못하고, 늘상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서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으냐... 그런 어리석음을 투이아비 추장 덕분에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국 흰둥이들의 삶은 눈속임 삶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에 주어진 <오늘>이란 선물을 놓쳐 버리고, 늘 미래에 오지 않을 <눈속임 선물>에 현혹되어 허덕이며 생을 소모하고 있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

십여 년만에 다시 읽었지만 문명 비평으로서는 <내 영혼이 따스했던 날들>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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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6-2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오래된 미래>의 감동과 비슷할 것같은 느낌입니다. 꼭 읽어 봐야겠군요.

글샘 2006-06-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빠라기를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번쯤 읽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오래된 미래는 현실이지만, 이 책은 문명 일반을 비판하는 <장자>의 눈이니까요.

몽당연필 2006-06-2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빠라기>...읽어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어요.
지금쯤 책장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텐데...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시간이 지난만큼 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궁금하고...
 
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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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소녀는 나무를 잘 타는 마야 소녀다.

중부아메리카의 과테말라를 침탈하는 라티노들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는 소설.

제국주의자들의 거짓되고 잔인한 행위들은 <역사>라는 거짓말 책에는 쓰여있지 않지만, 그 잔혹행위를 당한 사람들의 핏속엔, 유전자마다 피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게 되는 것 같다.

호주를 살해한 이야기를 적은 독수리의 눈.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학살에 대한 <운디드 니>와 <제로니모> 같은 책들에 비해 이 책은 훨씬 소름끼친다.

가족들을 모두 잃은 나무 소녀가 나무 위에 올라서 한 마을의 살육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장난처럼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사냥하는 잔인한 짐승에 불과한 두발로 선 짐승을 읽을 때 책을 읽으면서 메슥거리는 구역질에 시달렸다.

이 책은 중고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식민지의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은 왜 평화를 공부해야 하는지, 왜 파시즘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힘은 이런 것 아닐까? 할일 없는 부유국 남녀들이 짐승처럼 서로를 탐하는 느글거리는 글줄들은 문학이라고 하기에 추잡한 것이다. 약소했기에 평화롭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당한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통해 핏줄 가득 펄떡이는 잔혹 행위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설명문으로 가득한 역사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나무 소녀라는 <형상화>된 인물을 통해서, 시대 배경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 역사의 보잘것 없음을 배우게 되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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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6-2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일전에<나무소녀>를 읽었는데,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게릴라가 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더군요.

글샘 2006-06-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책이었어요. 아무 욕심 없는 사람들에게 욕심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 일들 말입니다.
 
녹색의 가르침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정택영 그림 / 들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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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십 년을 소설을 쓰던 여자가 갑자기 시력 이상을 겪는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밭으로 눈을 돌린다. 채소를 기르고 식물을 심으면서 느낀 것들을 천천히 써나간 이야기가 이 책이 되었다. 잡지에 연재했던 간결한 글들이지만, 욕심 많은 삶에 지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읽게 된 느낌을 잘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식물은 아무리 섞어 심어도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인간보다 훨씬 비겁하지 않다... 참 대단한 통찰력이다. 몇 가지 씨를 섞어서 심어 버려도 식물들이 제각기 싹을 내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소설을 쓴다고 짱구를 아무리 굴려도 얻지 못할 것들을 흙에서 얼굴 내미는 싹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아프리카는 가난한 나라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대륙의 식생을 살펴 보면, 예를 들어 바오밥나무나 아카시아 나무같은 생명력은 다른 대륙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는 그런 것들을 시력을 잃으면서 더 보게 되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개발이 될 수록 식물의 이름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공부해야 알게 되는 식물의 이름들.

식물을 기르는 재능이란 의미의 '그린 핑거즈'에서 조물주의 의미를 읽는다.

통풍이 잘 되지 않으면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나. 소노는 공산주의 국가에 비유했지만, 사실 공산주의 국가 외에도 통풍이 잘 되지 않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 일본도 그런 나라 중의 하나인데...

그는 <알맞은 정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달인'이라고 한다. 그 어려운 경지.

인간과도 물건과도 무리없이 헤어질 수 있는 지혜. 그것이 노년이 준 지혜라고 한다. 모으지 않는 삶. 버리는 삶. 버림으로 얻는 지혜... 그것이 녹색이 주는 지혜 아닌가. 마치 톡 쏘는 정도로 매운 고추 안에서 살고 있는 벌레처럼 불평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삶처럼... 햇빛이나 한 줄기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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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9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6-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님께서 선생님이라 하시니... ㅋㅋ
천천히 용기를 내시길... 괴테가 이런 말을 했대요.
without haste, without rest... 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라...
 
내 안에서 하나가 모두에 이르게 하소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존 맥레넌 베리지 외 엮음, 서율택 옮김 / 그림같은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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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88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가 둘이 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함을.
무엇이 어떻게 일어나고, 누가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이 어떻게 존재하고, 육체와 영혼과 정신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아직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늘 우주를 관찰합니다.
아무 말 없이 고요히.

다가설 수조차 없던 것을,
어찌
그 시작과 끝을, 그 의미와 이론을
한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는 것은 이뿐입니다.
우주는 아름답고, 위대하며, 범상치 아니하다는 것.
알 수 없이 다채롭고, 마음을 황홀케 한다는 것.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그것은
우주의 자각이 우리를 향해 흐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1901)

타고르의 시와 멋진 사진이 어우러진 명상록같은 책이다.
인간은 온 우주, 산과 강물, 나무와 음률, 리듬, 영감을 나누며 살아간다.
인도의 전통은 브라만(우주의 정신)과 아트만(개인의 영혼)이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타고르는 인간의 감성과 감수성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편이다.

만물은 조화를 이룬다.

날개처럼...
날개는 흔적을 남기지 못하나 기꺼이 하늘을 난다.

아, 삶이 이처럼 가벼웁다면 얼마나 좋으랴. 흔적 한 점 남기지 못하는 날개같은 삶. 그러나 기꺼이 나는 삶.

길 잃은 새.
나는 이방인으로 당신의 나라에 왔습니다.
나는 손님으로 당신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나는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의 문을 나서렵니다. 나의 대지여.

길 잃은 새.
삶이란 옹색한 조각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는 것.
죽음으로써 뭍에 도착하여 비로소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

요즘 인생 수업을 읽고 있다. 삶의 한 끝은 죽음이 있음은 자연의 섭리거늘...

나는 인생에서 내 역할의 의미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은 내가 다른 이들의 역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이)

나는 자주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교사가 되곤 한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부처임을 잊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내 역할의 의미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임을 잊고 말이다.

이 꽃 저 꽃을 자유롭게 노니는 나비는 영원히 나의 것이나,
나비가 내 그물에 걸리면 나는 그 나비를 영원히 잃는다.

아이들은 신이 아직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사원의 근엄한 어둠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이 맨땅을 뒹굴고, 신께서는 아이들의 놀음을 지켜보며 승려들을 잊어버린다.

아, 우리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나는...

이방인은 내 우주의 가장 먼 궤도에 등장한다.
그곳은 중요치 않은 허상들만 오가는 곳.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가 사람이라는 것 뿐.
...........
하지만 그의 세계 그 어디에도
나는 없다. 나도 단지 어느 무명씨일 뿐.

<당신은 누구인가>
오늘의 이름은 내일이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리라.

긴장하지 말고, 온 몸의 긴장을 풀고,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리라.
전투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온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곳임을 알고 한 순간을 살리라.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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