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사람들
르 클레지오 부부 지음, 브뤼노 바르베 사진,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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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라는 작가가 아내 제이미와 함께 조상들이 떠나온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뿌리를 찾기 위해 사막을 여행하는 기행문이다.

모로코라는 낯선 나라에서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는 여행. 목이 턱 막히는 듯하다.

제목 하늘빛 사람들은 사하라에 사는 사람들의 옷 빛깔이다. 언뜻 표지에서 사람이 지나가는 그림을 본 듯했는데 그 옷이 밝은 하늘빛이란 생각은 못했다. 이 책 중간 중간에 황홀한 하늘빛 천들을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등장한다.

뿌리. 언젠가 어디선가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사람들로서는 그 뿌리에, 유전자에 새겨진 <태초의 땅>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본능에 의지해 떠난다.

단단한 햇빛에 찔리며 걷는 구도의 길, 나무와 물이 없는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집과 길과 마을들을 거쳐.

자동차의 차원과 낙타의 차원을 생각하게 하는 곳, 열사의 사하라 사막...

이승에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가장 고귀한 임무가 무형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란 격언도 곁들이는 이 여행은 사막의 모래에 새겨진 바람결마저 느껴진다. 물결에 모래 무늬가 새겨 지듯이 바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모래의 결은 <내 마음> <내 생각>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제재다. 오늘 여기 있던 모래 언덕이 내일이면 사라지고 저쪽에 생겨 있을는지도 모르는 사막은, 팍팍하고 딱딱하게 쩍쩍 갈라진 사막과 함께 <나>는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를 반추하게 만드는 스승님이시다.

유목민은 정착민과 달리 항해하는 뱃사람이나 빙상 위의 에스키모처럼,
다른 사람들은 허공밖에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주 작은 변화도 식별해 내고 그 다채로운 변화에 경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시력은 3.0에서 6.0씩이나 된다고도 한다.

남들이 보기 힘든 변화도 식별해 내는 혜안도 부럽지만,
남들이 다 보는 변화도 무시하다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나 범하지 말았으면 하고, 스스로 낮아지는 사막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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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의 친구들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현희 옮김 / 데미안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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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데츠코는 배우이자 <창가의 토토> 작가다.

창가의 토토가 참으로 톡톡 튀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재미로 기억되는 책이어선지, 토토의 친구들을 읽을 때 동화를 기대했더랬는데, 사실은 토토의 친구들이 아니고 데츠코의 친구들이다.

데츠코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부드럽게 적고 있는데,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율브린너다. 머리를 밀고 왕과 나를 수천 번 공연했던 사람. 강인하게만 보였던 그가 암에 걸려 마지막 공연을 하기까지 보여 주었던 철저한 연극인의 프로 근성. 가까이서 이런 것들을 전달해 주기에 데츠코는 참 적합한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미리 약속을 했건만 당사자는 없고 앞집 아저씨(미스터 스타)와 즐겁게 보냈던 추억은 세상은 각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란 생각과 함께, 조금은 넉넉해야 인심도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황우석이란 사람이 천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한국처럼 가난한 풍토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실적 위주의 결과물을 내는 데 조급하게 쫓겨 다니기 쉽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의 거짓말에는 분노가 일지만 황우석의 몰락은 한국 과학의 몰락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볼까.

60의 나이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릴리 스탄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환갑이 될 때 피아노 독주회를 열어볼까 하는 상상을 잠시라도 해 봤다. ㅋㅋ 힘들겠지만 재미있지 않을까? 아니면 정년 퇴직을 앞두고 제자들을 몇 불러 놓고 연주회를 연다든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삶을 살고 싶다.

데츠코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즐거웠거나 당황스러웠던 일화들이 담담한 필치로 드러난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으리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과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까지는 나름 부지런한 노력이 따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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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6-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가의 토토>를 읽고 반해서 이 작가의 책을 찾아서 보게 됐던데...
이 책도 읽어봐야 겠네요.
 

양편에서 각각 두 사람이 줄다리기를 하면 이들은
한 사람씩 줄다리기를 하는 것에 비해 93%의 힘을 쏟는다.
세 사람이 되면 두 사람 때와 비교해 85%,
그리고 팀당 8명이 되면 그 수치는 64%로 떨어진다.

팀 멤버가 8명만 되도 각자가 쏟을 수 있는 총력의 49%만 쏟게 되는 것이다.
- 뉴욕대 링겔만 교수 (GE Korea 이채욱 회장 강연중)

일반적으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이상이 됩니다(시너지 효과)
그러나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생산성이 비례해서 높아지지 않는 경험도 많이 하게 됩니다.
소위 역(-)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주인의식에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 주인의식을 갖게 하면
그 효과는 놀랠 만큼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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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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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을 읽고 나서 다시 공지영을 읽는다.

전에 착한 여자를 읽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참 시시한 작가란 생각을 해서 한동안 그미를 놓고 있었드랬는데... 간혹 무슨무슨 수상작 모음에서 한번씩 만났을 뿐.

얼마 전에 읽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별들의 들판'은 1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다만, 별들의 들판은 그 공간적 배경이 독일의 베를린이란 회색 도시인 것이 차이점이랄까.

지난 토고와의 경기에서 깜짝 놀란 것은, 온 관람석을 뒤덮은 붉은 색 때문이었다. 토고는 가난한 나라여서 거기 비싼 응원료 내고 표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겠지만, 한국인들은 이제 십여 만원 정도 내고 충분히 구경올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잠입하기 제일 좋은 루트 중의 하나였다. 베를린은 서독과 동독의 섬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동백림 사건도 일어났고, 윤이상처럼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결과적으로 생겼던 것.

70년대, 돈줄이 당긴 박정희에게 손을 내밀어 광부와 간호사를 마구 송출한 일이 있었던 나라. 그래서 그 간호사와 광부들이 아직도 가득 붙박이 별이 되어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는 나라.

광주에서 동포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이들의 <비극>을 온 세계로 알린 용기있는 사람(위르겐 힌츠페터)이 살던 나라. 결국 6년 뒤, 광화문 한복판에서 그 독일인을 죽도록 폭행해서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든 나의 조국, 대한 민국.

날마다 독일에서 송출되어 오는 전파를 받아 밤낮이 뒤바뀐 요즈음, 끝없이 꽃가루가 날려 화면에서 축구공인지 꽃가루인지도 모르게 시멘트로 칠갑이 된 나라, 백야라서 열 시가 되어도 훤하다는 북구의 나라, 초여름인데도 30도를 훨씬 웃돈다는 나라. 그 나라에서 살아온 한국인들, 베를린에서 천사가 되어버린 이들의 시같은 이야기 여섯 편이 단편으로 실려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없는 애환이 <독일>에는 있었다.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동양인을 경계하는 나라에 자국민을 보내 두고, 그 피를 빨았던 삼십 년 전의 한국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피땀흘리며 신분이 늘 불안한 동남아 형제들, 그 블랑카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공지영의 기록 정신은 철저하고 투철한 편인 것 같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치밀한 스탈의 영혼을 가진 여자. 그가 결혼 생활이란 장막 속에서 무던히 사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소설에 이혼 모티프가 유독 많은 것이 그런 것일게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 독한 기록자도 필요하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일일진대, 요즘 소설가들은 <현실>을 다들 잊어버린 듯 하다. 아직도 현실은 시린 칼날 그대로건만... 이육사 시대로 무릎 디딜 한 곳 없는 칼날 같은 현실이건만... 많은 작가들은 달팽이처럼 그 칼날을 두루뭉실 미끈덩 넘어가 버리고 만다.

달팽이처럼 점액질을 분비하지 못하는 공지영같은 이는 스스로 칼에 베어 고통스런 불면의 밤을 지새곤 하겠지만, 그의 소설의 힘은 그 불면의 밤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가 깨닫고 있기를 바란다. 그 상처입는 불면의 밤이 고통스러워 펜대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좋겠다.

연작소설이라고 하기엔, 각각의 인물들이 동떨어져 있고, 그저 단편집이라 하기엔, 공간적 거리가 극도로 가깝다.

요즘 내가 소설들을 보면서 불만스런 것은 이거다. 장편 소설, 연작 소설, 소설집 이렇게 정체를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처럼, 공지영 소설...이러고 하면, 좀 애매한 것이 사실이잖은가.

이 책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라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 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란 짠한 구절이 아닐까 한다. 여기 저기서 많이 읽어 본 구절. 어쩌면 공지영은 주워들은 데모 이야기보다, 이런 짠한 연애 소설에 더 적합한 감상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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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8-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 별들의 들판을 읽고 공지영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세대 공감이겠지요.
 
은하철도의 밤 - 양장본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선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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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마지막 은하수를 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그러니깐,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이론적으로, 은하는 두터운 부분과 얇은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구에서 볼 때, 그 두터운 쪽에는 별들이 몰려 있어서 마치 은빛 강물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평상에 누워서 본 은하수는 상상 속의 강물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은하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별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영원한 아동성을 추구한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어린이에게 미지의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키와 더불어 마음을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요즘 어린이들에겐 그런 자양분이 부족하단 생각이 자꾸 든다. 은하와 은하 철도의 꿈을 잊고, 그저 늘씬 미녀 메텔에 눈을 빼앗기는 어린이로 자라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은하수는 별로 이루어졌음을 알면서도 발표하지 못하는 조반니의 마음을 나는 안다. 같이 눈을 찡긋대는 캄파넬라의 마음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캄파넬라가 물에 빠져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반니가 느꼈을 충격, 그것조차 겐지는 녹여버린다.

하늘의 은하수로 여행하는 아이들과 강물 속의 여행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진정한 행복은 은하수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바르고 강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 안에서 은하계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 나아가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하계를 포용하는 투명한 의지, 그리고 거대한 힘과 정열...이란 겐지의 서문이 왠지 동화엔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썩 어울리는 문구 같기도 하다.

시어를 심상 스케치라고 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글을 일본어로 읽을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고 싶다.

그나저나 호두나무를 호나우두로 읽게 될 정도로 '축구' 신드롬에 걸려버린 요즘, 은하수 건너 휙 한 달 사라져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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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6-1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저 우주 속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별에서
내게 주어진 영혼의 약속들에 때로는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존재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고마운지...

조선인 2006-06-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전 은하수를 본 적이 없어요. ㅠ.ㅠ

글샘 2006-06-15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누워서 보던 은하수가 저랬지요.

조선인 2006-06-1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근사합니다. 글샘님. 사진인가요? 그림인가요?

BRINY 2006-06-1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년도 더 된 옛날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았드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거기 고등학교에 근무하셔서 방학 때 찾아갔었거든요. 화장실이 밖에 있는 오래된 농가가 할아버지 자취집이었어요. 밤중에 고모를 깨워 화장실 갔다가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별이 쏟아질 거 같다는 게 바로 이런거구나!하고 어린 맘에도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 2006-06-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나마 은하수를 보니 행복하지 않으세요?

조선인 2006-06-1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언젠가는 꼭 내 눈으로도 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