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 - 창비소설집
공지영 지음 / 창비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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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믿고 떠들던 때가 있었는데... 한국은 날로 퇴보하는 것 같다. 아니 모순이 명확해지면서 진보의 알맹이만 남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껍데기가 벗겨지는 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는지도...

선거를 볼 때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 역사의 진보를 말해줄 근거가 되지 못했다. 진보를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시 공화당-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수구 꼴통의 집단에게 민주주의란 어리석은 이름으로 투표를 통하여 권력을 넘겨 주고 마는 역사를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인류 역사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만큼 진보적인 역사관이 있었던가. 그러나, 그것들은 실험에 성공하지 못하고 인간의 어리석음 속으로 파묻혀 버리지 않았는가.

루카치의 말마따나 빛나는 별이 있던 그 시대, 그때가 행복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가슴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빛나는 별을 우러르던 그 시대에 비겁했던 이들이 이제는 금박 명함을 들고 헤헤거리면서 활개를 친다. 민주 투사가 권력의 자리에 들어가 본들 변할 것이 없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시 가슴을 옹송그리고 밥벌이에 지겨움 속으로 매몰되고 만다. 아, 이젠 빛나는 별을 지향할 수도 없게된 것인가.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시기, 많은 사람들이 싸구려 모더니스트가 되어 제 잘난 말들을 떠벌여대곤 하던 때, 이제 너희들의 잔치는 끝났다. 사랑 없는 러브 호텔만 넘쳐나고, 버블 경제를 틈탄 해외 여행에 청춘의 눈길이 동태 눈깔이 될 때, 공지영은 그 시대를 기록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그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소설집은 10년도 더 넘은 책이다. 그래서 지금은 광주만큼이나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좌절과 눈물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축구에 미친 나라, 축구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결여된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일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람을 몰아치는 운동권과 개혁 세력에서 그 결핍이 두드러진 것 같기도 하다. 이념과 머리는 진보이면서 몸과 세계관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엮어 내는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 그것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구 꼴통들은 원래 예의라곤 없던 것들이었으니 기대할 것도 없겠고...

그들의 실패와 좌절을 배우기 위해 '교활하게' 노력하고, 이 땅의 아픔들에 '순결하게' 귀 기울일 것이란 공지영의 후기는 순수함을 맛보게 한다. 옳다고 믿는 걸 버리는 건 죄악이야. 좀더 장기적으로 봐야 해...하는 그의 생각이 아직도 변치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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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6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6-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계기라 하시면... ㅋㅋ 얼마 전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 괜히 그의 책이 보고싶었던 게죠. 그러다 도서관에서 그 이름을 만난 것일 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네요. 음음... 소설 수업을 들으시다뇨. ㅋㅋ 뭔 공부를 하시는건지... 궁금해 지네요.
님은 충분히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살고 계십니다. 다만 공작가와는 살아온 연대가 다르다는 것 뿐.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정말 신기한 일이죠?
전에 제가 빨간 나무란 책을 읽고 리뷰를 썼더니 두 분이나 그 날 그 책을 보고 있었더래요. 세상은 좀 짖궂은 곳 같습니다. ㅎㅎ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일세
명정스님.정성욱 엮음, 김성철 사진 / 예문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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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스님이 쓰신 일기, 일기래야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선문답이요, 선일기라 해설이 필요하기도 하고 해설로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기도 하다.

통도사 극락암의 삼소굴에서 생활하신 그분의 허허허, 세 번 웃으신 뜻은... 우주의 극수인 3과, 목에다 염주를 걸고 염주를 한참 찾다가 목에 걸린 염주를 찾고는 허, 허, 허 하고 웃듯이 자기의 자성은 자기에게 있는데도 다른 온갖 것에서 찾아 헤매다가 그 자성은 비로서 자기에게 있음을 깨닫고 나서 허허허 웃는다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선문답, 선일기라 그럴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어느 한 구절 마음에 짠하게 남는 구절이 없다.

그저 바람에 스친 잎새가 사푼, 내려앉듯 그리고 그 가지에 앉았던 한 마리 참새가 포르르 날아가 버린 듯, 아무 자취 없다.

인간사 그런 것이란 가르침일까. 누가 이겼네 어쩌네 매일 싸우는 그 구렁텅이가 갈수록 더러워지지만, 삶의 속셈이란 그렇게 가벼운 것일까?

흑백이지만, 간명한 사진들이 마음을 더 바싹 마르게 하는데, 145쪽의 풍성한 문살은 내 눈길을 한참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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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대를 찾아오거든 가슴을 열어라
칼릴 지브란 지음, 이영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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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레바논이란 어떤 땅일까... 지도책에서나 만났던 레바논.

어떤 나라이기에 지브란의 이야기들이 방랑으로 점철하는지... 궁금함을 많이 갖게 한 책이다.

지브란의 글들을 모아 두어서 신비주의적인 글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책이다.

그의 예언자를 부분부분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이 단점이다.

칼릴 지브란의 책들은 오랜 동안 마음을 담으면서 조용히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은 너무 무거워서 오래 잡고 있기에 불편하다.

레바논의 거친 산들 사이로 오르고 내리는 천사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하지 않은 선들은 내 마음을 어린 시절로 되돌리기도 하고, 하느님 나라로 소풍 보내기도 한다.

선구자를 forerunner라고 한단 것도 들었다. <선구자>의 짤막한 이야기들과 <예언자>의 경구들은 따로 책으로 소장하고 싶을만치 아름다운 반면, 다른 소설들은 취향에 맞지 않은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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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5-3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이 있었군요. 서재를 정리하시다니...
좋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다.^^ 잘 지내슈~~
 
평화로운 마음이 미소를 부른다
툽텐 초드론 지음, 김성 옮김 / 리즈앤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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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공부도 아주 잘 했다. 내가 똑똑한 줄 알고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깐, 나는 바보다.

살다 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것들을, 나는 책을 통해서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마음 공부하는 책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바보란 생각이 커진다.

그렇지만, 또 위안을 받는 것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보다 조금 더 똑똑한 사람들도 '오직 모를 뿐' 같은 말들을 잘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그랬고, 부처도 그랬다.

마음 공부를 세상과 떨어지려는 마음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혼탁한 세상에서 떨어져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면, 매일 매일이 전쟁 상태인 그대로 마음을 닦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출신의 티벳불교 수행자이다. 인도와 네팔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며 책을 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상당 부분 초심자를 위한 불교 강좌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삶에서 나는 매일 매일 초심자가 아니냐. 어린 시절 어른들은 경험자라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살아 보니, 매일 매일이 초심자로서의 삶이다. 내 나이 마흔 하나이지만, 마흔 한 살을 살아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나이 여든 한 살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살생, 도둑질, 어리석은 성적 행위 - 세 가지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고,
거짓말, 분열을 일으키는 단어들, 거친 표현, 어리석은 대화 - 네 가지 험한 말을 조심하고,
살생하는 직업을 버리고, 독을 다루는 직업을 버리고, 사기나 속임수를 버려라.

나쁜 버릇는 길들이고, 좋은 버릇은 기르는 공부가 마음 공부다. 길들이다와 기르다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길들일 필요와 기를 필요가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타인의 칭찬>에서 얻게 된다면 날마다 얼마나 마음의 부침에 시달리겠는가. 스스로 길들이고 기르는 공부가 필요하다.

스스로 길들이고 기르는 생활.

우리가 불평할 때는 스스로 그 상황을 말로 듣고 싶어서 떠드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땐,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봤는가?'를 질문하라고 한다. 새기고 새길 일이다. 나도 얼마나 그 누군가를 대상으로 불평하는 일이 숱하게 많은가.

자만하지 말고, 스스로를 길들이고 길러서 '친절'에 이르는 길.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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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3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바보 아니시잖아요

글샘 2006-05-3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 맞아요.ㅠㅠ
 
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 푸른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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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 무릎꿇은 교사, 소리지르는 학부모, 고발하는 학생, 교원평가를 지지함... 교사가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본질이 흐려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의 핵심에는 <무지막지한 교육정책>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변해가는데, 그들을 맞는 교사들이 변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교사들의 역량에 달린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교육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어서, 교육 관료들이 우선 읽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교육 관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육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할는지, 현행 교육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이 책만큼 조곤조곤 적고 있는 책은 드물다. 김진경씨의 성격대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쓰고 있다.

교과서라는 마법의 돌에 얽매이고(2009년 8차 개정에선 국어도 검인정으로 바꾸겠다는데, 8차는 누구 맘대로 바꾸겠단 건지...) 아이들을 난쟁이로 만드는 작은 통, 학교에 대해서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이들은 마니아 속성을 드러내면서 왕따를 시키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거듭나는데, 우리 교육은 아직도 근대 교육에 머물고 있다. 사회가 이 메커니즘에 같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철저한 반성만이 희망이다.

경쟁, 줄세우기, 잘 살아 보세의 근대적 교육은 양적 팽창과 질적 저하를 예견했고, 신분 상승의 외줄 사다리는 추락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감과 맞물려 <과외>와 <사교육>의 왕국을 양산했다.

이에 내몰린 검투사같은 아이들은 오로지 경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비극... 이런 아이들에게 마니아로서의 속성은 성공에 방해가 될 뿐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찾아주어야 한다.
교사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 혼자 아이들을 이해하는 교사가 된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처럼 개인적 패배만이 돌아올 뿐. 힘을 모아 문제 제기를 하고, 조금씩이라도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교육을 바꾸는 것이 나의, 교사들의 할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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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5-3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추천 누르고 갑니다.

글샘 2006-05-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세상을 찾아줘야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할지가 막막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