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을 열며
윤석산 지음 / 동학사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서교와 같은 것으로 세상을 어지럽혔다.

이것이 수운 최제우의 사형 이유다.

조선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1824년에 태어나, 1860년 37세의 나이로 동학을 창시하였다가 1864년 41세의 나이로 참형을 당한다.

그의 일생을 용담유사를 통해 지은이가 복원한 전기이다.

용담유사라는 가사와 동경대전이란 한문 경전에 따라 전기를 기술하다 보니,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동학의 성립 과정이 여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동학과 수운, 해월 선생에 대한 소설을 써 본다면 더욱 풍성한 읽을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썩어빠진 세상과 물밑에 잠긴 용의 용틀임,

동학의 주문은 스물 한 자로 되어 있다.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동경대전에 풀이된 이 주문은 공부해 볼만 하다.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지기하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모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며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기에 접하게 됨을 안다는 것이고,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것이다.
대강은 기화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시는 안에 신령함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들이 각각 깨달아 옮기지 못하는 것이오
주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같이 섬긴다는 뜻이요,
조화는 무위이화요
정이란 것은 한울님의 덕에 합하여 그 마음을 정하는 것이요,
영세는 사람의 평생을 뜻하는 것이요
불망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요
만사라는 것은 그 수가 많은 것을 이르는 것이요,
지는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을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때 세종이 소리친 까닭은 - 쟁점으로 본 한국사
김육훈 지음 / 푸른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의 저자는 역사 교사이다. 교사로서 역사를 가르치다 보면, 왜 연대표에 집착하게 되고, 전체적인 맥락과 <쟁점>을 부각시킬 수 없을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펴게 된 결과물이 이 책이리라.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해, 그리고 독재자들의 관점에 의해 유린되었던 역사책. 그래서 이제는 그 용어들이 마구 헝클어진 역사책 속의 쟁점들을 정리하려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고 다양한 사료를 통하여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난 결과, 이 책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깊이의 한계일 수도 있고, 독자의 미흡함일 수도 있겠다. 해직 교사 시절에 이런 책에 몰두하였다는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것이 학술 자료로서 이 책이 가진 한계를 노정한 작업일 수도 있겠다.

과어에 4.19는 의거였고, 5.16은 혁명이었으며, 6.25는 사변, 동란이었고, 광주는 사태였고, 동학농민은 운동이었다.
이제 4.19는 혁명으로, 5.16은 쿠데타로, 6.25는 한국 전쟁으로, 광주는 민주화 운동으로, 동학은 혁명과 전쟁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간단하지만은 않은 용어들 속에는 집요한 <편가르기>가 숨어 있다.
혁명, 운동에는 긍정적 편들기가,
전쟁에는 객관적 관찰자 시각이,
쿠데타, 사태, 사변, 민란에는 비판적 공격하기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관이란 명확하게 편들기의 과정이다.

식민 사관이란, 식민지를 운영하는 자들의 시각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고,
독재 사관이란, 독재자들의 시각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 책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말하자면, 기존의 식민적, 왕조적, 독재적 사관의 반대쪽에서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조선, 임나 일본부설, 삼국 통일, 발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훈민 정음, 당쟁, 대원군, 동학 농민 운동, 3.1운동, 임시 정부 등을 제재로 해서 논점을 모으고 있다.

저자의 기술은 내게는 흥미를 끌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느낌이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으면서 심장을 펄떡거리게 만들던, 그런 역사 인식에 대한 비수가 이 글들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책이 나온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그만큼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많이 벗어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에서 10년은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역사책의 10년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게 된 경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 양철북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교사 초년 시절에... 그 시절엔 일본 문학이 우리 문단에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미국이 만든 국립서울대학교에는 일어일문학과가 없다. 그것은 미국이 부추긴 것이기도 하고, 일정 정도 국민 정서 반영이기도 할 것이지만, 일본에 대한 무지 또한 미국과 지배 계층의 조장 탓일 수도 있다.


그 때 읽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참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여느 한국 소설이 주는 뻔한 결말과 감동과 다른 시선이랄까.


이 책은 오로지 하이타니 겐지로 이름만 믿고 대출해 온 책이다. 그의 책은 두어 권 더 읽을 것이 있었지만, 그의 책이라고 뽑아 읽을 생각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나의 무심과 함께, 일본에 대해 무식한 증오심만 길러 주려는 <지배 이데올로기> 탓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태양의 아이는 한 마디로 <류큐>였던 오키나와의 상처를 감싸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아동 문학으로 처리하는 것은 등장 인물과 이야기 구성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아동 문학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그 고통과 시련을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어린 아이들에게 남의 나라 고통까지 들여댄다는 것은 자못 잔인한 일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전투를 치렀지만, 본토에선 전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이 오키나와에서만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전후 오키나와를 미군 기지로 주게 되고, 오키나와의 원주민들은 일본인들의 멸시 속에 죽어갔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상처투성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오키나와를 고향으로 둔 어른들의 상처투성이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삐뚤어지게 되고, 저항하며 자라나고, 그것을 보는 어른들은 더욱 상처 속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일본에서 가장 학력이 낮고 소득이 낮은 땅, 오키나와...라는 강박관념 속으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땅에서 벌어졌던 학살과 피비린내, 그리고 쉬쉬하며 숨겨왔던 징그러운 역사와, 아직도 그 역사를 반도들의 무리에 의해, 폭도들에 의한 반란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고있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전라도는 빨갱이와 같은 <적대적 존재>로 규정짓는 현실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모래 시계’나 ‘박하 사탕’ 등의 영상 예술을 통하여 <광주의 진실>이 얼핏 비추어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이 땅에선 진정한 의미의 <용서>를 경험하기엔 지난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죄를 지은 자들은 당당하게 대머리를 빛내며 돌아다니고, 그들의 징그러운 배암 껍질들은 전국 곳곳에서 범종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고, 각종 현판과 기념 조형물에 새겨져 치가 떨리게 하고 있다.


광주를 휩쓸었던 피의 망령들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살아남아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80년 광주와 06년 대추리는 명백히 다르다고.

그때는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민주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두 사건이 같은 맥락이냐고... 그들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80년 광주에서 시대의 어둠만이 가득하던 시절, 폭도들을 어쩔 수 없이 진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들이 가진 자들일 수도 있고, 못가진 자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지켜야 할 것은 자유 민주주의>이고 <막아야 할 것은 적화 통일>이라는 레드 콤플렉스.


한국에서 민주 노동당이 국회의원이 되는 데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56년이 걸렸다. 기회주의적인 가진 자들의 정당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다시 레드 콤플렉스는 국민들의 의식을 휘감을 것이다.


한국을 두 동강 낸 분단도, 정치를 두 동강 낸 지역 의식도, 원인을 따져 보면 오키나와와 다르지 않다. 오키나와라는 피해자 집단을 서로 미워하고 서로 욕보이는 본토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미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종자가 피아노줄을 놀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항에 미군의 제7함대가 입항하여 광주를 살려줄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믿었다는 믿기 힘든 전설을 들으면서, 나는 오늘날에도 그 피아노줄은 시퍼렇게 살아 이 땅에서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횡행하는 것을 본다.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고 외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그 껍데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하늘 덮은 쇠 항아리일 뿐이라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하늘을 보았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아직도 한국의 하늘에는 쇠항아리가 가득 덮여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은, 하늘이 아니다.


80년 빛고을에서 죽어간 형제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놓아버리고, 원통해서 마음을 빼앗기고 넋을 잃은 동포들... 그들의 넋을 위한 진혼곡은 아직 이 땅에서 울리지도 못했는데, 이 땅에는 다시 군홧발 아래 짓밟힌 땅이 생겼다. 그 방패로 간고히 막고, 군홧발로 짓밟은 농토에, 서리서리 서릿장보다 엄한, 북한과 대치한다는 휴전선보다 강고한 몇 겹의 철조망을 두르고, 그 안에 거주하실 분들은, 바로 그 피아노줄의 주인들이시다.


백 년 전,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조선 영토를 내준 이씨 조선 패거리들과, 을사 오적 같은 잡놈들은 죽일 놈이고, 이제 백 년 후, 다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는 코쟁이들이 여기 나섰는데, 거기 도장을 찍은 대한민국 정부 패거리들은 살릴 놈들일까? 과연 그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오키나와의 눈물은 약자의 눈물이었다.

빛고을의 눈물은 약자의 그것이었고,

대추리의 눈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누르는 자의 논리는 언제나 정의롭고 평화를 가장하며,

죽은 자는 말 없기를 강요당한 것이 <거짓된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역사는 말한다.

<말 없기>를 강요당한 존재들은 언젠가는 <진실>을 밝힌다는 것을.

<거짓된 역사>의 쇠항아리를 찢고, 태양 아래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진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리란 것을.


하이타이 겐지로는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겨내려 한다.

좋은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거지... 좋은 사람이란 자기 안에 남을 살고 있게 하는 사람이야... 하는 말로써.

용기란 싸움을 해서 이기는 일도 아니고, 용기란 조용한 것이란다. 용기란 것을 따뜻하고 착한 거야. 용기란 것은 서슬이 퍼런 거야... 하는 말은 어쩐지 빛고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란 착각이 든다.


바닥 위에 마루

마루 위에는 다다미

다다미 위에 있는 것은 방석

그 위에 있는 것이 안락

안락 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어서 깔고 앉으세요, 권하는 대로

안락하게 앉은 쓸쓸함이여.

바닥 세계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야마노구치 바쿠의 <방석>이란 시다. 오키나와 사람 바쿠의 시.


일본의 오키나와는 그렇게 내게로 왔고, 이제 막 18일이 된 이 아카시아향 진한 오월에, 핏빛 빛고을과, 군홧발에 유린된 미군의 땅, 한국 복판의 오키나와, 대추리로 사고는 헤매이고 다닌다.


역사는 끝없는 순환인가...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나는 너무도 안락하여.


하이타니 겐지로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불행이나 슬픔은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줄줄이 이어져 있는 것임”을 깨닫게 만들고,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는 컴퍼스”가 가슴에 묻힌 가난과, 지쳐 자살한 누이와, 불발탄을 건드려 죽은 아빠와, 집떠난 엄마... 이런 군상을 통하여 “슬픈 일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온다.”고 할 정도로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는 고리임을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날 내 담임 선생치고 어느 한 사람 제대로 된 선생이 없었어. 그저 ‘이런 것도 몰라?’하고 벌 주는 것밖에 모르는...”하는 푸념 섞인 어른들의 대화에서 그저 뜨끔하다가도, “선생님이 후유코는 기특하다고 하실 때, 후유코도 힘껏하고 있지만 저도 힘껏 하고 있다고 제 마음 속으로 말한답니다.”하고 편지를 쓰는 도키코의 마음도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이 소설을 통해 세계가 연결되는 고리와, 그 고리 속에서 힘없는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어떨 때는 원이 그려지다가, 어떨 때는 원이 그려지지 않는 나의 힘없는 컴퍼스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석란1 2006-05-1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고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마치 자기들이 희생자인양 그려진 부분에서 울분을 느꼈습니다. 그 전쟁과는 하등 무관한 우리는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가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진행형이지 않습니까? 하이타니 겐지로씨가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으로 <태양의 아이>를 쓰셨겠지만, 저는 한국인으로써 우리의 아픔을 느끼며 글을 읽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글샘 2006-05-1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키나와는 일본 내의 또하나의 속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전쟁을 일으킨 것은 본토 사람들인데, 오키나와는 완전 쑥대밭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이타니가 이야기한 것은 오키나와지, 일본의 옹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오키나와에 폭력을 행하는 일본 본토에 대한 비판이 강한 소설이지요.

balmas 2006-05-1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제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교과서를 만든 시인들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 3
송국현 지음, 박영미 그림 / 글담출판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은 시를 어렵게 생각한다.
그런데 문학을 설명하는 책들에선 이렇게 말한다.
"시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어렵지 않아요..."하고 감언이설로 꼬드긴다.

시를 십여 년 가르친 문학 교사인 나에게도 시는 여전히 어렵다.
그 시가 지향하는 바를 읽어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시가 지향하는 바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치환이 경남여고 교장으로 재직중, 한 교사가 그의 시 울릉도로 수업 연구를 했단다.
수업 마치고 평가회 시간에, '난 그런 복잡한 생각으로 시를 쓴 건 아니었는데...'했더라는 이야기는, 결국 시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도 상당하다는 것일게다.

유치환의 <깃발>은 내가 고등학생 시절, 가장 애송하던 시였다.
이상에 대한 동경과 좌절... 아, 얼마나 치열한가.
그렇지만, 유치환의 애정사를 알게 되고, 그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 대한 애타는 열정으로 가득함을 알게 된 뒤, 그 시의 주제가 <이성에 대한 동경과 좌절>로 바뀌었을 때, 그 허탈함이야, 아무리 <어>다르고 <아>다르다고 하지만, 엉터리 가르침이 시에 대한 느낌을 그토록 뒤바꿀 수도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에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학교 가면서부터 시를 접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시인을 어렵지않게 접하도록 기획한 책으로 높이 살 만하다.

각 시인의 대표작을 뽑은 안목과, 아이들이 흥미를 갖도록 쉬운 설명을 곁들인 것.
그리고, 필요에 따라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일화들을 실은 것이 좋은 책이다.

그렇지만, 결코, 이 책을 보았다고 해서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시를 <공부>해야할 중1부터 고1 수준 정도가 필요한 시인들을 뽑아서 읽게 된다면 공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기 좋은 책이란 뜻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석란1 2006-08-1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약용의 시론이 생각나네요.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그래도 시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