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의 감성이란...

시인의 촉수로 현대사를 사는 일이란... 참 팍팍할 것이다.

 

철거촌 망루에서 불타 죽고,

회사에서 집단으로 해고되고

파업의 벌금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줄을 놓고,

배가 뒤집어져도 국가가 없어 죽는 걸 번연히 보고만 있었던 하세월...

미국의 해군기지를 만든다고,

미국의 싸드를 배치한다고

싸드의 선결조건으로 한일정보협약을 맺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걍 돈으로 뭉개버릴 때도... 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 세월.

 

송경동처럼 펜 대신 메가폰을 들면 잡혀가는 시절.

클레의 '부상당한 천사'가 날개를 접고 눈물흘리는 그림이 남의 일이 아니던 시절,

김선우는 그 한복판에서 보고 듣고 참여하고 쓴다.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가 꼭 필요한 것인지를.(18)

 

이렇게 물어야 하는 시대가 있다.

싸드가 배치된 성주에서는 박근혜가 90%였는데 이번에 홍준표가 60% 이상 나왔다고,

그걸로 위안을 받아야 될 정도의 가난한 비판정신 앞에서,

시인의 눈과 귀는 하냥 떨린다.

 

언어는 피부다

나는 내 언어를 다른 언어와 문지른다

그것은 마치 내게 손가락 대신 말들이 있는 게 아니라,

내 말들 끝에 손가락이 있는 것과 같다.(21)

 

롤랑바르뜨의 말이란다.

우리가 언어를 읽고,

언어를 쓰는 것은,

외로워서다.

춥고 외로워서, 몸을 문지르고 싶은 거다.

 

정당이 헌재에 의해 강제해산당하자

유림인 아버지가

"세상이 뒤로 가도 한참 뒤로 가는구나.

이런 시국엔 언행을 함부로 하지 마라."(27)

 

나서지 마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교훈의 나라.

슬프고 무섭다.

 

용산, 4대강, 쌍용차, 강정 문제들에 걸쳐져 있는

정치라는 것이 결국 무소불위  자본에 유착한  공권력의 수호방식 아닌가.(30)

 

글쓰는 사람들이 눈감고 귀닫기 쉬운 시대.

이유로 돌리고, 후일담으로 숨기 쉬운 시대,

송경동처럼 모난 돌이 정맞는 시대,

이런 글들로 활동하는 김선우는 참 멋지다.

 

 

표준어나 맞춤법이라는 것이 참 무망하다.

언어도 변하는 것이어늘,

저런 것에 불평이 많은 것은

언어 정책에 너무 관심을 두지 않는 짧은 나라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이란 것들이 너무 연구에 모르쇠로 지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뜨거운 물과 찻잎과 시간,

이 단순한 조합이 끌어내는

대차로운 차 맛은

식물 한 그루의 삶이 그대로 하나의 우주임을 드러낸다.(256)

 

나는 녹차를 못 마신다.

그렇지만 커피든, 둥글레차든,

물에서 우주의 조화를 느끼는 차를 즐기는 것은 좋아한다.

멋진 일이다.

글을 읽는 일은.

물에서 시간과 우주를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분투...

사람다움...이라는 아프리카 말이다.

나와 당신이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므로

당신이 행복할 때 나 역시 행복한 우분투의 정서

우리는 인연이라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 응원하는 셈.(310)

 

그래.

마음 속에 우분투를 담고 살아야겠다.

 

짐승같은 삶 말고,

사람다운 삶.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아재 개그나 말장난 같기도 하고,

심오한 철학의 세계가 펼쳐진 것 같기도 한 우화들...

 

예술은 가장 높은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는 정신의 양식(275)

 

예술을 수단으로 통제하려던 인간들은 이런 것을 모른 자들이다.

블랙리스트는 예술의 암흑기를 조장하였을 뿐.

 

어제 박근혜의 그늘을 몰아내고 문재인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도깨비들의 평균 수명은 삼천 년이다.

그러나 오십 살이 되면 각자 화두 하나씩 배당받아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내가 받은 화두는

어디로 가십니까?(166)

 

날마다 물을만 한 화두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주변도 돌아보지 않고...

 

좀도둑은 만 개의 자물쇠가 있으면 만 개의 열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큰 도둑은 한 개의 열쇠로도 만 개의 자물쇠를 열 수 있다.

깨달음이란

천지만물이 간직하고 있는 진리와 사랑의 알맹이를

한 개의 열쇠로 감쪽같이 도적질하는 일.(89)

 

욕심이 과하다. ㅋ

그런 열쇠는 없다.

그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매 순간 나침반처럼 흔들리고 있을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네가와쿠와

하나노 모토니테

하루 시나무...

 

바라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카나리야라는 맥주집에서 도란도란 일어나는 이야기들...

조용하면서도

문학의 풍미기 가득하다.

 

아니, 맥주의 풍미와 겨자냄새 묻은 가지랄까...

맛깔난 안주가 한밤중 맥주를 부르는 소설이다.

 

어쩌면 심야 식당의 추리물이라 부를 만하다.

 

구도 데츠야로 불리는 마스터의 추리와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구도는 마시던 잔을 개수대에 넣고

냉동고에서 하얗게 서리가 낀 잔을 꺼내 비어서버에 갖다 대었다.(215)

 

아~

이런 구절을 만나면

맥주를 가지고 오지 않을 수 없다.

 

좀 슴슴한 맛의 추리물인데,

잔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긴박하지도 않다.

 

하이쿠라는 시의 형식과 내용이 그러하듯,

간결한 형식미 속에서 삶의 냄새가 뭉클 피어오른다.

그런 소설이다.

 

제목이 아주 멋져서 기억에 남았던 소설인데,

그의 '벚꽃 흩날리는 밤'도 유명하다 하니 한번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이외수 사색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곤충들에게는

자신의 몸이 각질로 화해서 고립되는

번데기의 과정이 가장 고통스럽지요.

그러나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시형 곤충들은

날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벼룩이나 빈대...

그들은 다른 동물들이 힘들게 마련한 먹이를 훔치거나

약한 동물을 집단 공격하거나

기생해서 살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67)

 

내일 드디어 선거일이다.

구세대를 밀어낼 수 있을지,

또다시 구세대의 부패에 당할지는 내일 개표함을 열고도 계속 싸워야 결과를 볼 수 있다.

 

훔치고, 공격하고, 기생하는 자들이 집권하는 한,

이 나라는 날아오를 수 없다.

그 날아오름이 제국주의에 편승해서

개도국을 짓밟은 것이 아닌 문화 민족으로서의 비상임을 이미 김구선생이 말한 바 있다.

 

수많은 종파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어라.

각기 자신의 모습대로 나를 향해 오고 있느니라.(202)

 

종교에 대한 생각도 해볼 만 하다.

 

진실로 예술이 기대하는 바는 동정이 아니라 감동이다.

진정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노동도, 예술도 아름답다.(193)

 

예술이 노동으로 전락됨을 우려하는 비판에 대한 항의다.

세상엔 참 노동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많다.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는 어불성설...

아이들도 안다.

노동자는 주체적이고, 근로자는 말 잘 듣는 대상에 불과한 것을...

 

이외수 글은 간혹 읽으면서

머리를 식힐 감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석구석 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박찬희 지음, 장경혜 그림 / 빨간소금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물관은 나이가 들수록 재미없는 공간이 된다.

어린 시절 처음 역사라는 것을 배울 때, 박물관엘 갔더라면 눈을 총총 빛내며 돌아본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결국 박물관 이야기의 핵심은,

애정을 가지고 오래오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고두고 보지 않으면 금세 알게 될 수 없다는 것.

 

이 책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관> 편에 해당한다.

다음편으로 <미술관> 편과 <민속박물관>과 <박물관 속 한국사>도 예정되어있다 한다.

 

상감청사 운학문 매병 같은 것이 간송박물관에 있다는 것도 놀랍고,

천대받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실측에 가까움도 놀랍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박물관처럼 수십만년 전부터 이야기를 그저 전시해놓은 불친절한 공간이야말로

알고 가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부조리로 일관한 근대를 통과해오면서 갖게된 박물관이야말로,

그 부조리가 그대로 새겨진 것임에랴.

 

박물관을 즐거운 역사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서는

박물관에 자주 가서 놀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일도 중요하다.

 

고려의 왕궁 만월대와 뒤의 송악산, 그리고 서쪽의 만수산 드렁칡과 동편의 선죽교를 본 것도 인상적이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부터는 역사를 처음 배운다.

역사를 시대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유물을 통해서,

또는 작품을 통해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체계의 존재를 아는 일은 신선한 경험이다.

 

어린이 대상의 이런 책들이 엉성한 내용으로 짜맞춰지기 쉬운데

전문적인 식견과 애정으로 쓰여진 책이어서 알찬 내용이 읽기 좋다.

초,중학생에게 권해줄 만한 인문도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