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담 - 푸른 섬 비진도의 작은 스님 이야기
해만 지음 / 시공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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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해 너른 바다 복판에 비진도란 아름다운 섬이 있다.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섬.

그 비진도에서 스님으로 수행을 하신 '바다 넓은, 바다해 자, 넓을만자, 해만 스님'의 글들이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답게 벌레에 몸서리치지만, 불제자답게 지네, 노래기, 거미들을 걸레로 훔쳐 마당에 내던진다.

스님이 혈혈단신 비진도에서 사시는데, 혼자가 아님을 알게끔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계심을 보고, 역시 하느님이 세상을 내려다 보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장작 하나를 때는데도 초심을 놓치지 않는 해만 스님의 글이 따사롭다.

책 제목도 꽃이 활짝 피어오른 돌담을 떠올리는 아름다운 꽃담이지만, 스님의 하루하루가 소담스레 꽃송이로 피어 있다.

드시지 않던 저녁을 드시고 화장실에서 맞은 화안한 달님과,
빗방울을 보면서 깨달으시는 자기 그릇 이야기며...
몸소 푸성귀를 기르시지만, 너무 많더라는 이야기들...

그리고, 결국 건강에 못 이겨 비진도를 벗어나는 이야기는, 시절 인연 닿아 내게 온 하느님의 목소리였고, 자비의 가르침이었다.

비진도 가면 한번 찾아 뵈어야지... 했더랬는데 마지막에 떠나심을 보고는, 스스로가 우습다.

스님의 건강과, 비진도 양철지붕 낡은 암자와, 청운, 한솔 보살님들에게서 행복을 배웠고, 또 그 분들의 행복을 빈다.

책 한 권을 잘 만나면, 우연히 나리는 빗방울도 우주에 가득한 진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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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5-1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았더니 품절이라네요. 에구....

글샘 2006-05-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이면 보내드릴텐데... 빌린 거라서... 비슷한 책이라도 읽으세요. ㅎㅎ
 
목적이 이끄는 삶 (반양장) 목적이 이끄는 삶
릭 워렌 지음 / 디모데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빌려주신 분께 감사해야겠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시겠지만, 나처럼 나면서부터 교회 공동체 속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광신도들에 대한 저항감과,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오버액션, 반공 이데올로기로 뭉친 교회에 대한 반감이 더 큰 편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견을 버리려고 노력하였다.

이 책의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느 한 마디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가 진리고, 모두가 답이다.

우리 삶에 답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고,
이런 책을 쓰신 분게 감사드릴 일이고,
이 책을 빌려 주신 이께도 감사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은 크리스천 공동체의 대목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 교회 욕하는 것이 잘못이란 것을 알지만, 교회에 몇 번 나가본 나로서는 일단 자기 교회 신도로 얽어 매려는 그 끈적거림에 소스라친 나로선 교회에 나설 엄두가 선뜻 나지 않는다.

스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쓰신 책을 읽으면서, 삶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것이 내 독서의 목적이다.

사소한 몸짓이지만, 내가 선 자리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온 우주에 가득한 하느님의 복음을, 부처님의 진리를 빗방울 흩어진 그 수만큼 감사히 감사히 받아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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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이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1
바바라 파크 지음, 김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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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소득 수준이 높지 않으면서, 사회 복지가 결여된 국가에서, 대가족 제도가 사라진 지금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것은 한 가정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처음엔 건망증 내지는 실수처럼 보이지만, 곧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동화의 원 제목은 제이크 문의 졸업이다. 제이크는 할아버지의 치매로 인해 친구들을 집에 부를 수도 없었고, 방과 후 친구들과 즐거운 체육 활동이나 방과후 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를 돌보는 수고를 하면서도 제이크는 기특하게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길을 잃고 며칠 방황할 때에도 제이크는 온 마음으로 걱정한다. 결국 졸업식장에서까지 할아버지는 단상에 오르는 실수를 함으로써 제이크의 어린 시절의 마감과 함께 추억 거리를 하나 남겨 준다.

알츠하이머는 대가족 제도에서는 감당이 가능한 질병일 수도 있다. 가족의 따뜻한 정이 병의 진행을 늦추는 유일한 약이라고도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온 가족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대부분인 현대인들, 특히 한국처럼 아파트란 닫힌 공간에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살아가는 길은 얼마나 멀고도 험한 것인지...

아이들에게 알츠하이머에 대해 느끼게해줄 수 있는 좋은 동화란 생각이다. 이야기가 단락이 잘 지어져 있으면서도 쉬워서 술술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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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5-1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매를 보면서 하는 생각인데요,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되는 거잖아요.
부모는 자식이 아이일때 그 아이이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심지어 오줌 똥 싸는 것도 이뻐 하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아이가 되는건 너무나 힘겨워 하죠.
그걸 보면서 '아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맞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누미 2006-07-1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의 소재로 알츠하이머를 택한 것 자테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하면서 바르게 받아들일수 있게 하는 것 같아서요.
 
 전출처 : 돌바람 > 대추리 일대에 대한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은 법적으로도 원천무효이다.

대추리 일대에 대한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은 법적으로도 원천무효이다.

김승교 변호사(민변)


국방부는 평택미군기지확장과 관련해 대추리·도두리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지난 5월4일 그 경계에 군병력을 동원해 철조망을 설치했다. 그리고 5월8일에는 “앞으로 철조망을 훼손하고 초병을 폭행하면 군형법을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그에 더하여 “군사법원에서 재판받게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경고성 발표를 했다. 과연, 국방부가 대추리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한 것에는 아무런 법률적 문제가 없는가? 결론적으론 법적으로 원천 무효이다.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하면, 일정한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절차적 요건과 내용적·실체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형식적·절차적으로는, ① 관계행정기관의 장(평택시장)과의 협의, ② 국방부군사시설보호구역심의위원회의 심의, ③ 합동참모의장의 건의, ④ 국방부장관의 설정행위를 거쳐야 한다. 내용적·실체적으로는, “군사시설의 보호” 및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이라는 목적과 필요가 있어야 한다(법 제1조, 제2조 제2호). 그런데, 국방부가 대추리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한 것에는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실체적 요건’과 관련해서도 중대·명백한 흠결이 있다.

먼저, 이번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행위는 절차상 위법하게 이루어졌다. 국방부장관이 일정한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절차상 사전에 ‘평택시장과의 협의(평택시장 명의로된 의견서 접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평택시의 발표에 의하면 철조망설치와 대추분교건물철거가 한창이던 5월4일 당일에야 ‘평택시장의 명의로 된 의견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평택시장과의 협의절차를 마치기도 전에 앞질러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그 설정행위는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한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번 설정행위는 내용적·실체적 요건을 완전히 결여했다고 보여진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정한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군사시설의 보호” 및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이라는 목적과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법은 위 “군사시설”을 “진지·장애물 기타 군용목적에 직접 공용되는 시설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고(제2조 제1호), 위 “기타 군용목적에 직접 공용되는 시설”에 관하여는 이를 “군의 주요지휘시설 및 통신시설, 대공방호시설, 전쟁장비 및 물자의 연구·생산 또는 저장시설, 군용비행장 및 비상활주로, 군항 및 군용부두, 군용사격장 및 훈련장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시행령 제2조).

첫째, 중요한 군사시설이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그런데, 철조망으로 둘러친 대추리 일대에는 ‘보호할 만한 군사시설’이 애당초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농토와 그 관련시설이 전부인 곳이다. 여기에 그 무슨 군사시설이 있어 이를 보호한다는 말인가. 이 점만으로도 이번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은 실체적 요건을 결한 원천무효인 것이다.

둘째, 현재 대추리 일대에는 수행할 만한 군사작전이 있지도 않다. 군사작전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 어떠한 군사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있지도 않다. 아직 주민들에 대한 보상절차와 이주절차 등 수용절차가 완전히 종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러한 수용을 위한 절차의 진행을 군사작전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이번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은 실체적 요건을 결한 원천무효이다.

셋째, 이에 국방부는 ‘군사시설’인 것처럼 외관을 작출하기 위해 ‘군철조망’을 설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군천막 등 임시숙영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시행령 제2조가 열거하고 있는 군사시설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관련법의 실체적 요건을 잠탈하기 위해 편법으로 설치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그러한 잠탈·편법적 행위로써 ‘군사시설의 보호’ 및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이라는 군사시설보호법상의 목적과 필요가 충족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국방부의 태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러한 시설이 ‘군사시설 또는 군사작전수행’과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국방부가 대추리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한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며 실체적으로도 “군사시설의 보호 및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이라는 목적과 필요를 완전히 결한 것이어서, 법적으로 중대·명백한 흠결이 있어 원천무효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철조망을 훼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여 군사시설보호법위반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에 대해 군형법을 적용한다거나 군사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것이다. 국방부는 ‘위법·무효인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에 더 이상 연연해할 것이 아니라, 관련법을 준수하여 잘못된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을 자진 철회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주민의 생존을 위한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할 것이다.

 

>>맨손으로 철망을 끊겠다고 선언한 천주교 사제단의 기도와 같은 행동선언과 함께 각개의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법적인 해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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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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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왜 여자가 대머리지? 그리고 가수면 왜 가발이라도 쓸 일이지, 대머리람... 이런 논리적인 생각은 필요없다. 이 희곡은 부조리 연극 대본으로, 인간의 언어는 <논리의 근간>이라는 상식 자체를 부정하는 <언어의 비논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 있는 것'이라는 작중 인물의 말은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인간들의 막연하고 근거없는 집단적 믿음(조리) 앞에,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적나라한 현실(부조리)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회화된 인간들에게, 그래서 현실 앞에서 눈울 돌리는 사람 앞에 집요하게 진실의 거울을 들이대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도록 하여 해결책 내지 행동 방침을 마련하게 하는 <부조리 연극 The theater of the absund>을 읽는다는 것은 문제를 읽는 지적 행위는 될 지언정, 재미를 찾거나 감동을 얻는 정서적 행위에서는 거리가 멀다.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시지포스의 <부조리함> 만큼이나 우리 삶의 단편들은 무의미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언어가 가지는 공유 면적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것이다.
인터넷에서 특정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행위들을 보면, 사람들 사이의 공유 면적이 얼마나 상이한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댓글은 가능한한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알라딘에서 서재를 짓고 살림살이를 한 것이 어언 2년 반쯤 되었다.
알라딘에서 집을 짓고 살면서도 무의미함을 느낀 적도 많고, 수치에 휘둘리는 나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의 장점이라면 다른 공간에 비해 공유 면적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공간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하루를 산다. 부조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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