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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수잔 손택은 이름이 참 좋다. 손택은 독일어로 일요일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름에 일욜이 들어간 사람. 왠지 좋다. 나도 호를 일욜로 짓고 싶다. 그리고 그의 글은 재미있다. 책 전체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글을 쓸 줄 안다는 거다.
이 책은 삼십 년 전, 수잔 손택이 신문에 기고한 여섯 편의 에세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한국어 판이 나오기 전에 저자는 죽고 말았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쓰기도 했던 그는 그렇게 갔다.
수잔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난삽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의 위트가 번득이는 글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여섯 편의 에세이 중, 앞의 세 편은 읽을만 하지만, 뒤의 세 편은 읽긴 했지만 정말 난삽하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누구의 무슨 사진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도판으로 좀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서른 번 정도는 된다. 초현실주의 사진을 봤댔자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는지 몰라도, 지금처럼 읽고도 허탈하진 않을 듯 싶다.
사진에 대한 그의 번득이는 지혜의 눈을 따라가는 일은 좋은 친구와 나누는 여행담과도 같다.
재미나게 떠드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 여행을 떠나면 사진기와 필름, 요즘으로 치자면 디카와 메모리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진을 모으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세계의 모든 것을 우리 머릿속에 붙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 사진이란 거다.
그러니 값비싼 돈을 내고 떠난 여행지에서, 그 멋진 광경을 내 얼굴과 함께 한방 박을 수밖에...
2. 그리고 산업화된 사회에서 과거의 가족주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집착하게 되는 것이 사진이다.
자식들이 다 떠나버린 부모들의 집에는 벽에 가득 자식들의 자라는 과정이 사진으로 남게 된다.
결국 사진은 <유사 존재>이자 <부재의 징표>로 자리잡은 것이다.
기억이란 것은 결국 상실을 염두에 둔 것.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한 축일 수 있다.
3. 사진의 힘은 이데올로기에서 나온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혐오감을 느낀 베트남 전쟁의 폭파 장면은 훌륭한 기록 사진으로 퓰리처 상도 받지만, 공산주의와의 정의의 전쟁으로 착각했던 한국 전쟁의 기록 사진은 남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사진의 정직성을 왜곡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4. 현대인들은 사진을 통해 현실을 확인하고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를 키우게 된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이들이 중독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하나가 되었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복음일까? 재앙일까?
이미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요즘 텔레비전에 비추이는 신인 탤런트들은 거의 같은 꼴을 하고 있다.
개성은 없고, 획일화된 미적 기준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인물들인 것이다.
외모 컴플렉스로 자신감도 없고, 늘 꽁무니를 빼던 여학생이 간단한 성형수술로 자신감을 되찾는 경우는 많이 보았다. 그럴 경우 이미지 메이킹은 복음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선풍기 아줌마를 망하게 한 것도 이미지지만, 다시 소생시킨 것도 이미지이니깐...
요즘 아이들은 디카, 폰카로 찍은 사진을 싸이월드란 홈피에 올려서 서로 돌려 보곤 한다.
젊은 시절 제 얼굴을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어떤 아이들의 홈피에는 자기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경우도 있다.
기껏, 그림자 정도만 올린다. 그 아이에게 이미지란 재앙이 아닐는지...
수필이란 이런 것이다. 에세이란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에 가서 되지도 않는 것들이 학위를 받아 와서는, 되지도 않는 글들을 께적거려 놓곤 쪽팔리니깐, 수필은 자유로운 문학이라는 둥, 형식이 없는 글이라는 둥,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둥 헛소리를 떠벌여 댔지만, 실제로 수필은 그런 허섭쓰레기같은 글이 아니다.
수필은 물론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쓰는 글이지만, 결코 친일파들이 낙엽을 태우면서 커피 볶는 내음을 떠올리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란 소리다. 윤오영 선생처럼 문재가 돋보이거나, 박지원 선생처럼 뒤집어 말하는 기지가 보이지 않으면 수필이라 할 수 없다.
수잔 손택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위트 넘치는 비판적이고 신선한 시각,
와우~ 식상한데요... 하는 시선을, 살아 펄떡거리는 생선처럼 번득이게 만드는 글이 에세이란 글이다.
글은 좀 안 되고, 기존 문단에선 서로 좀 알아 주고, 나잇살이나 좀 먹은 이들이 경험 꽤나 했답시고 주절거리는 <수필집>이란 것들이 그들에게 종이를 제공하기 위해 죽은 나무들에게 미안해 해야 한단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