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 1
이상각 지음 / 들녘미디어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이 페이지를 펴 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낙관주의자는 어디서나 푸른 신호등을 보는 사람이고,
비관주의자는 붉은 신호등을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색맹, 문맹, 이런 말들은 그런 것이 마치 '앞을 못 보는 것과 같은 장애'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반영한다.
앞을 못 본다면 장애인 건 맞지만, 나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글을 모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색맹이 우리보다 나은 것이 무얼까?
그것은 불필요한 <분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일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제목은 멋지게 붙여 두었지만, 과연 이 책을 읽었다고 인간관계가 열릴까? 하는 의문이 드는 책이다.
저자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 하나하나는 삶에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고, 각 페이지의 처음에는 명언을 하나씩 얹어 두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이 쏙 빠졌다.
마치 도덕교과서처럼...
바른 생활을 하라고는 하는데, 그 책을 읽고는 무미 건조함에 목이 마르다면, 바른 생활로 글이 확산되긴 힘들지 않을는지...

중국의 고사에서 지나치게 많이 빌려온 것도 흠이라면 흠이다.
우리 역사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터인데, 그랬더라면 이야기가 좀더 감칠맛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저자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싶은데, 왠지 감동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차라리 이렇게 토막글로 책을 내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조금 섞어서 이야기체로 썼더라면...하는.

현명한 이는 남의 경험에서 배우고,
평범한 이는 자기 경험에서 배우며,
바보는 어떤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한다.
(바보가 되지 말자!)

작은 생선은 달래가면서 쪄야 한다.
(일을 할 때, 이런 자세는 얼마나 중요한가.
연애를 시작할 때 ㅋ 역시 난 연애 박산가 보다.
부조리를 없애려고 할 때,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
그러나, 쾌도난마의 자세도 필요하다.
실마리가 엉키고 엉켜 찾기 힘들 땐, 단칼로 베어 버릴 필요도...
(난 아무래도 쾌도난마보다는 생선 찌기가 적성에 맞다.)

사건이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초래하는 것이다.
(핑계대지 말자. 탓하지 말자. 내 탓이고, 내 덕이다.)

모두가 무식하다. 무식한 분야가 다를 뿐이다.(지당하다.)

좋은 구절들, 놓치기 싫은 구절들이 많은데, 맛있게 쪄내지 못한 저자가 조금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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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현대송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야스쿠니 신사. 뉴스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라면 머리를 한 고이즈미(난 小泉 고이즈미를 들으면 故 이즈미란 상상이 떠오른다. 죽은 샘물이랄까)가 묵념을 드리는 신사.

한자로 쓰면, 靖國 神社인데 그 정자는 '편안하다. 다스리다. 조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 악장 중에 정도전의 정동방곡()이란 작품이 있는데, 거기 쓰이는 글자다.
동방이 우리나라의 이름이니 나라를 조용하고 편안하게 평정하는 노래... 이런 뜻이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일본을 싫어한다. 감정적으로 일본이 밉다. 우리 조상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한 역사로 볼 때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일본은 만화 영화와 각종 오락 캐릭터로 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일본 공포 영화가 수입되곤 한다.

일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본어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현충일에 대해서 일본어로 설명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난 현충일은 노는 날,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날로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현충이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충이란 ' 충성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드러내는 일'이 되겠다. 국가주의 애국심의 발로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국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일본놈들, 정신 못차리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A급 전범이 모셔져 있고, 일본군 외에도 조선인 21000, 대만인 28000명이 합사되어 호국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전쟁 찬양>, <애국 현창>, <죽음의 기쁨>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니라 은총이자 행복함이라는 <국가주의의 억압>으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의 기제가 <야스쿠니 신사>의 숨어있는 은유다.

과거 침략 전쟁을 긍정하고,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당당한 일본을 선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죽은 샘물 고이즈미'의 속셈이리라.

애써 전쟁 책임, 비전 명시, 추도 대상 과거에 한정하는 추도의식이라고 하지만, 전쟁을 부정하는 일본국 헌법을 굳이 부정하는 모습이 다시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둘러싼 정치적 혼네(本根)가 아닐까?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하잇, 소우데스카? 하는 다테마에(立前)를 갖고 있다. 그토록 상냥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다. 섬사람들의 조화를 중시하는 '와(和)'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을 공부하려면 혼네를 잘 읽어야 한다. 그들은 좀체 혼네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다테마에만 보고 '별것 아니군' 했다가는 된통 당한다.

한일 경제 수역 협약을 맺을 때도 된통 당했고, 지금도 동해/일본해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전사한 시점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 다시 일본인이 아닌 것으로 될 수는 없다.
일본의 군인으로 죽으면 야스쿠니에 혼령이 모셔질 거라는 마음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유족의 요구만으로 철회할 수 없다.
내지인과 똑같이 전쟁에 협력하게 해달라고 해서 일본인으로 싸움에 참가한 이상
야스쿠니에서 제사는 당연하다.
대부분의 유족은 합사에 감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조선출신 영혼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썩을 놈들.

일본에서 가장 인기를 얻기 좋은 정치 전략은 <국가주의 전략>이다.
축구가 아무리 일본을 이긴다 해도, 제 밥그릇만 움켜쥔 한국 정부로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감을 놓든 배를 놓든 상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 밥그릇만 움켜쥔 한국 정부로선 말이다.
오히려 제 밥그릇에 침이 튈까봐, 강제 징용, 위안부, 야스쿠니 합사 문제는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란 지랄같은 전망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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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4-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샘..흥분하셨네요. ㅎㅎ 요즘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글샘 2006-04-20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흥분했군요. 그렇지만 이 책 읽고 나니깐, 막 짜증이 밀려오더라구요.
일본과 우리 정부에... 정치란 것이 원래 짜증스런 것이지만 말입니다.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
문익환 / 사계절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말의 '선생'이란 말은 참 좋은 말이다. 교사는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가리키는 지시적 용어이지만,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 의미다. '억지로 가르치고 기르는' 사람은 학생이란 대상을 필요로 하지만, '먼저 태어나 지혜와 경륜을 갖춘 사람'으로서의 선생은 배우는 학생의 성장을 '지켜 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교육관에서 '선생'은 '아비, 군주'와 동렬에 올릴 만큼 1차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문익환 목사님은 노구임에도 감옥엘 제집보다 많이 들락거리신 분이다.
간도 명동에서 나시고 통일 운동에 앞장서신 분이다.

김영삼-김일성의 정상 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지만,
늦봄 선생도 바로 다음해, 유명을 달리 하고 만다. 이 땅의 통일에 노둣돌을 놓으신 분의 가심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다.

떨림이 없는 사랑은 교만이요, 사랑의 미명으로 짓는 횡포다. 건방진 정원사가 제가 나무를 자라게나 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주제넘은 사랑이요, 사랑 아닌 사랑이라는 말... 두고두고 새길 말이다.

[욥기]의 고난을 겪으면서 지르는 아우성에 대해 읽으면서, 그 수난사를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을 한다.

감옥에서 보내신 그분의 절절한 편지글에서 가득 묻어나는 향기는 <사랑>의 향기인데, 노년에 밝히신 그 사랑의 본질은 바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생명 사랑>이라는 것이다.

[묵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엔 성전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종교마다 뗏목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고, 이 곧 금강경의 진리가 아닌가... 아, 종교의 뗏목은 강을 건너면 모두 필요가 없는 그것이로구나.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휴전선을 베고 잠드신 늦봄 선생님.
남과 북의 차이는 파도에 불과한 것으로 바다 밑의 해류는 도저히 흐른다는 신념은 선생의 곧은 지조의 중심을 느끼게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작품을 연기하는 배우 아들에게 '모든 가치를 상실한 시대의 인간상'을 드러낸 생명 모독, 멸시로서의 포스트모던이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훌륭한 아버지.

그분은 모든 생명의 모범이었고, 모든 종교인의 귀감이었다.
그런 분들을 감옥 안에 모셔 두고, 가르침을 외면했던 어두웠던 시대가 진정 어둡기만 했던가.
어둠 속에서 온 몸을 불살라 스스로 빛이 되신 그분들께 감사드릴 일이다.
늦봄 선생을 따라 장준하까지 흐르는 여정은 힘겹지만 즐거운 길이었다.
선생의 목소리가 워낙 다정다감하고 논리가 해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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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의 명강의 노하우&노와이 희망의 교육 5부작 5
조벽 지음 / 해냄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적인 교수법의 권위자, 미시간 공대 최우수 교수... 이런 것이 조벽 교수를 피알하는 표지의 선전 문구들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교육 공학이다.
20세기 말부터 한국의 교육학을 휩쓸고 있는 '변화'에 대한 준비는, 지나치게 '컴퓨터와 영어'라는 도구적 측면에 중시된 듯하다. 영어로 수업이 되는 교수, 프레젠테이션이 능수능란한 교수...

이 책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법과 고민을 담은 책이다. 신규 교수나 강사들이 읽을 법하지만, 워낙 중등교사들이 읽을 교수법도 드물기 때문에 눈여겨 봐둘 점이 많다.

학기 단위로 진행되든 연간 계획으로 진행되든, 교육에는 '계획성'이 있어야 한다거나 학생의 창의성을 계발하는 3A(anytime, anywhere, anyone)식 학습 전략 등은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다.

이 책은 수업 전 준비, 학기초, 중, 말의 순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우선 수업 전, 자기의 교육 철학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 놓치기 쉽다.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어떻게 줄 것인가! 그리고 유능한 교사의 조건(학생들을 위한 배려, 지식, 흥미 유발, 학생에게 충분한 시간 할애, 토론 장려, 명확한 설명, 열의, 준비)을 얼마나 갖추었는지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결국 수업은 전문적 지식과 유창한 강의기술과 열의를 가진 마음 자세의 삼위 일체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기초 강의 기법도 차근차근 다루고 있는데, 수업중 교수는 지식권위, 직책권위, 권력권위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가면 갈수록 지식 권위의 네트워크성(지식을 판단, 통합, 전달하는)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간혹 교생의 수업을 관찰하다 보면, 수업중 주의력이 산만한 학생도 전 시간을 모두 산만한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주의력은 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상에게 저절로 가게 되어 있으며, 옮겨 다니는 주의력은 생리적 행위임을 안다면, 주의력을 끌려는 노력을 더 기울이게 된다.
한 시간의 강의에 집중하는 비율도 첫 15분에 75%정도 기억하고, 점차 떨어지다가 마지막 15분에는 20%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잔소리로 수업을 시작하지 말 지어다!

지식사회에서 주의력은 '자원'으로까지 인식된다.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으며, 한정되어 있으므로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생산성을 높이려면 <주의력을 주 업무에> 모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강의 기술이겠다.

학생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100명의 학생 중,
26명은 불안감이 높은 학생(불안 초조형)이고,
20명은 입다물고 아무 말도 않으며(침묵형),
12명을 딴 짓을 하고(독립형)
11명은 호의적이고(친절형)
10명은 시키는대로 하고(순종형)
9명은 영웅심리를 보이며(영웅형)
9명은 늘 뭔가 불평거리를 비판하고(불평형)
4명은 동기 유발이 전혀 되지 않는다.(동기 부족형)

이렇단 것을 알고 나면, 수업에서 너무 상처받을 필요는 없을 듯 하오.
그리고 강의 기억에 남는 비율을 생각해 본다며 다양한 수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읽기 10%, 듣기 26%, 보기 30%, 보기와 듣기 50%, 보기와 말하기70%, 말하기와 행동하기 90%라니 학생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추동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란 소리다.

수업 중에도 질문하고 반드시 대답을 요구하는 기법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다.
기다린다... 나올 때까지... 나는 반드시 답을 받는 교수임을 주지시킨다.
안 나오면 다시 세분하여 질문한다.
그리고 말의 물꼬를 틔워준다.(특히 옆사람과 1,2분 의논하게한 후 질문하면 부담을 덜 수 있다.)

학과 공부란 논리, 수리, 언어 능력 측정에 불과하지만 실제 인간의 능력은 공간, 음악, 운동, 내적 통찰력, 대인 관계 등 다중적 인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교육도 획일적 불변적 강의에서 가변적 쌍방향 소통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스 커스터 마이제이션이란 기법도 괜찮겠다. 매 강의마다 몇 명의 학생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

인간의 욕구는 생존, 안전, 인정받기, 자기 존중감, 자아 실현의 단계로 진행되는데,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엔 생존위주의 3D 직종에도 지원자가 많았다. 그러나 배부른 세대로 변화하면서 '자기 존중감, 자아 실현'이 중요한 동기 유발원이 되고 있다는 변화도 읽어 내야 한다.

문제학생을 다루는 법이나, 규칙은 엄하지만 대인 관계는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생활 지도 측면도 전통적 교육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책에서 평가를 다루면서 오픈 북에서 더 발전하여 미리 페이퍼를 준비시킨 후 답안을 작성시키는 것은 학습의 밀도를 높이는 좋은 수행평가 방안의 하나인 듯 하다.

그의 책은 다분히 도식적이고 딱딱한 측면이 많다. 별로 재미도 없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일은 꾸준한 자기 변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고인 물처럼 썩기 쉽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교사의 덕목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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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통신 2006 - 2호                                   부산공업고등학교 2학년 금속과 2반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반갑다. 

옛말에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있다.

봄이 왔지만 봄같지 않다는 말이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렴.

봄이란 건, 따뜻하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겨울부터 여름으로 넘어가는 스펙트럼의 다양한 지점을 봄이라고 한다. 그런 걸 분절적으로 일컫는 말이 ‘봄’이다.

‘봄’은 ‘보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볼 만한 꽃이 학교 곳곳에 만발하는 계절이다.

운동장 아래 벤치 위로는 벚꽃이 만개하였고, 이름도 잘 모를 붉은 꽃송이들이 교정에 가득하다. 저희들을 보아 달라고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내세우고 있는데, 좀 봐 줘라.

우리 위로 푸른 하늘이 열려 있고, 바로 내 등 뒤에 푸릇푸릇한 새 순이 손짓을 하는데, 모른 체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2학년이 된 것도 한 달이 지났다.

올해 우리반은 아직까지 결석이 한 번도 없는 훌륭한 반이다.

선생님은 요즘 아침 조회 들어올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다. 깨끗한 출석부.

좀더 욕심을 낸다면, 일년 내내 결석이 없는 학급을 만들어 보자. 그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이루는 것이니깐. 결석은 진학과 취업에 좋은 것이 없으니,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바란다.


시인 엘리어트의 ‘황무지’란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첫 구절은 아주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4월이 왜 잔인하다고 했는지는 사람들이 잘 모른단다. 겨울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는 봄비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왜 가장 잔인하다고 했을까? 이 시인은 말한단다. 겨울은 오히려 하얀 눈에 덮여 포근했던 휴식의 시간이었다고. 이제 봄이 되어 온 세계의 생명들은 힘든 일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 삶은 고통으로 일관된 것이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쓰는 편지글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제목을 붙였다.

너희가 알아야할 대부분의 상식은 열 살이 되기 전에 다 익혔단다.

부지런하게 살아라. 책을 읽어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 지각하지 마라.

선생님이 열 여덟 너희에게 그런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되겠지?

오늘은 46년 전, 이 땅에서 있었던, 잔인했던 4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너희가 4.19라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건.


1960년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의 부정 부패, 언론에 대한 탄압, 미군원조 축소에 따른 경제적 붕괴, 학생운동 탄압 등의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시기였단다.

그런데, 간크게도 자유당 정부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여기에 저항하여 전국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일어났단다. 그러던 중, 4월 11일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마산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떠올랐고, 시위는 급격히 확대되었지.

그런데도 이승만은 시위를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체 했고,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는 사건 이후, 19일 서울에만도 3만 이상의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대통령 집무처 경무대로 수천 명이 전진하자 경찰이 발포하여 이날 자정까지 서울에서 약 130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지.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결국 이승만은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도망치고 말았어.


부정을 저질러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는 독재자의 종말은 언제나 비극적이란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잘 살자는 것도 있지만, 올바로 살자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월급 많이 받으며 편안하게 사는 삶? 예쁜 아내를 맞아 아이들을 잘 기르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삶?


어른들이 너희에게 꿈이 없다고 야단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 않니? 요즘 아이들은 영 ‘꿈’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2,30년 전, 가난하던 시절엔 은행원, 회사원이 되어 <먹고 사는> 꿈이 있었단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이제 좀 부자가 됐잖아. 그래서 <먹고 사는> 건 꿈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 그럼, 너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봤니?


너희도 알겠지만, 너희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긴 어렵고,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하는 공무원이 되기는 정말 어렵단다. 앞으론 공무원도 점점 줄어들테고, ‘비정규직’ 자리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단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은 한정되어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도 많은 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미래의 한국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신 성적을 높이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거야. 물론 시험 준비도 잘 하고, 수행 평가도 열심히 내고, 수업에도 잘 참여해야겠지만, 너희 나름대로 ‘실력있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이제 잔인한 4월이 오면, 신문에 ‘데모’ 소식이 자주 실릴 것이다. 인터넷 뉴스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프랑스에서는 ‘노동 시장 유연화’(노동자를 쉽게 자르는) 법안 때문에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길거리에 나서서 난리가 아니란다. 한국은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 비해서 상황이 훨씬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미리 대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너희가 할 일은, ‘바로 사는 길’에 대해 공부하는 일이다. 무슨 공부냐 하면,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연예인 뉴스나 읽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공부하란 말이다.

세상은 아주 빨리 변하는 것 같지만, 참 바뀌지 않는 측면도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기는 측면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지만, 이미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많은 재산을 가진 자들 중심으로 모든 제도가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바뀌지 않는다.


작년에 APEC이란 회의 이후로, 외국 쌀이 들어오게 되었고, 한국 영화 상영 의무도 줄이게 되었다. 앞으로 엄청난 파도가 밀어닥치면, 작은 일자리들은 그 파도에 쓸려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선생님이 게시판에 붙여주는 읽을거리들이나, 뉴스를 읽으면서 생각을 키우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4월은 잔인하다는 둥, 하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멀리 봐야 하는 이야기고...

날마다 교실에선 ‘항상 웃자.’


2006년 벚꽃 만발한 소명 동산에서


너희의 행복을 비는 담임 선생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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