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Kiss & Tell'은 유명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라는데, 제목을 왜 이렇게 붙인 거지?

보통의 '왜... 사랑하는가'에서 얻은 감동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 예쁜 정장을 차려입은 '키센텔'을 빌려왔다.
그런데... 그의 어수선한 화법은 나의 차분하고자 하는 뇌세포와 일대 전쟁을 벌이고 말았다.
결국 차분하려는 뇌세포가 그의 어수선한 화법을 빨리 처치해 버리고는 몇 마디 기록으로만 남았다.

이 책을 소설이라고 하는 사람은, 보통이 보통 소설가라고 알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전기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의 심리적 관심사를, 연애라는 내용에 담아낸 복잡한 장르의 창작물.

누군가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전기'를 만들어 내지만, 그 누군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 의지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리고 전기라는 장르는 많은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된 장르임을 그는 폭로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보내거나 잠을 잔다. 그렇지만 전기에선 그럴듯한 시간으로 가득하단 거다.
그리고 어떤 자연인을 '하나의 정연한 총체'로 응집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누구나 나처럼 복잡하고 알기 힘든 존재를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전기 속 주인공들의 위압적인 이력은 다른 활동들에 대한 좀더 평범하고 기본적인 호기심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거란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 책을 읽고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개인은 누구나 독특하고 위대하다.>

마음 속에 그리는 지도는 개인적으로 다를 수 있고, 그렇게 그려진 지도가 상대방에게 드러나지 않은 채로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누구나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전기의 작가가 그려내는 것처럼 질서정연해야 하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이 불러내는 기억을 떠올려 본다.

**국민학교, 교장 아무개, 교육과정... 이런 공식적인 생활기록부적 기록물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단속적이고, 단편적이고, 감각적인 것.
껌종이, 지우개, 연필 따먹기의 장면들. 따갑기만 했던 아침조회시간의 햇살들.
라쿠카라차로 기억남은 음악 시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날을... 이것이 음악시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반복하던... 시간들.
오징어달구지, 라면땅, 말타기, 술래잡기의 철봉대, 미끄럼틀, 모래 사장들.
그리고 로보트 태권 브이의 황홀했던 충만감과 명상의 시간에 눈을 꼭 감았던 '타이스의 명상곡'의 엄청 컸던 음률. 추운 겨울날 돋보기로 태우던 먹지의 먹먹한 탄내.

하긴 내 전기를 누가 써 주어도, 나만의 유년기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지 않을까?
그의 이 글은 숱한 구절에 동감을 표현하게 하면서도, 이 글을 소설이라고, 보통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엔 '왜...'에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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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1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여적 서가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어흑~
대신! 님의 리뷰 중 제 닉네임이 언급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읽고 있거든요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전히 독서실에서 기운이 촬촬 넘치시는군요^^

글샘 2006-04-1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은요... 참 이쁘게 생긴 것이, 이쁘기만 합디다.ㅋ
제가 그 책 읽으면서 여우님 리뷰를 읽었다고 착각했었던거죠?
요즘은 시험 준비 기간이어서, 수업 중에도 자습시켜놓고 책을 읽는다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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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당신이 무엇인가 새로 배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 로버트 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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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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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 우리 모두는,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새로 태어난 자유에 대한 찬양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극심한 인간적 재앙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인류가 자랑스럽게 여길 사회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탄압이라는 경험이
절대로 절대로 그리고 또 절대로 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인간 승리 위에 태양은 계속 비칠 것입니다.
자유가 번창하도록 합시다. 아프리카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남긴 연설문이다. 아, 얼마나 뜨거운가.

이 책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공짜로 책을 받았고, 그래서 책을 읽기도 전에 이벤트까지 했건만,
정작 이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950쪽이란 분량도 만만하지 않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내 무지가 이유였다.

그저,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내고 27년만에 출옥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지식만으로 아프리카를 만났다.

이 두꺼운 책을 덮고 책에 손을 얹어 본다.
책 속에서 들끓는 함성들이 아직도 쟁쟁하다.
그 함성의 주체는 짓눌려왔던 갈색 피부의 인류이기도 하고, 원혼이기도 하고, 아직도 진행중인 용서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은 10년 전에도 아태평화재단에서 번역된 일이 있다. 독재에 저항하다 투옥되었다가 죽음을 넘어 노벨상을 타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심정적으로 만델라에게 마음이 많이 갔을 것이다.

만델라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의 의식은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따라 변화해 갔는데, 투쟁의 장면에서 쉽게 공산주의 혁명에 경도되지 않고 끝까지 민족의 자주성을 견지하는 태도는 인상깊었다. 공산주의의 최대 장점인 세계 동포주의가 역으로 가장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깨달았던 것일까? 세계 동포주의는 자칫 '부족'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적 전통과 대립된다면 또다른 피를 부를 것임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하면서 비폭력주의에 기대었던 초기와는 달리, 결국 '민족의 창 MK'이란 무장 단체를 결성하여 기소되고 만다.

그 자신이 변호사의 신분이어서 법적으로 상당히 유연하게 대응한 면도 있고,
'이 죄수의 말이 옳다!', '기소 내용의 법적 타당성을 찾지 못했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신선해 보인다.

진보가 머뭇거리고 퇴보가 뒤따르기 마련인 수감 생활 동안 그는 끝없이 토론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운동은 긴장을 해소시키고, 긴장은 평온의 적이란 그의 의견은 한국 사회에서 장기수 생활을 한 사람들과 상당 부분 통하는 듯 하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부당한 지배, 그리고 그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인종 차별과의 지난한 싸움 와중에도,
흑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는다.
보통 '주적'이 사라지고 나면 '내부의 적', '자신이라는 적'과 싸워야 하는데,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이 여기서 붕괴되기 쉽다.(한국 정치는 아직도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거나 아닌지...)
만델라는 상당히 유연하면서도 확고한 사유를 보여주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만델라의 업적 중 가장 탁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아니었을까?
forgivness without forgetting.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망각하지 않는 용서.
망각에 맞선 기억의 전쟁.을 표방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활동은 아프리카 적인, 그리고 가장 남아공적인 업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뉴른베르크의 나치 전범 재판과는 상황이 달랐던 살얼음 같은 현실을 제대로 꿰어 보았으며, 다시는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진실>이 규명된 뒤라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지난 2주간 넘나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머나먼 동쪽의 나라 한국과 오버랩된다.
로벤 섬의 감옥은 한국의 장기수들의 비참했던 실존과의 투쟁을 떠오르게 했으며,
<진실>에 대한 용서와 화해로 민족을 되찾은 그들과, <진실>을 외면하는 한국 현대사를 겹쳐 보게 하였다.

이 두꺼운 책에서 가장 나를 뜨끔하게 한 한 마디.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재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법무부 장관도, 교도소장도 아닌 바로 자기 동의 간수라는 말.
학교에서 생활할 때,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교육부 장관도, 교육 정책도 아닌 바로 자기 반의 담임이란 말로 내 가슴에 가시가 되어 남았다.

아, 한국에서 현대사를 읽는다는 일은 수많은 <거짓>과 만나는 일이다.
수많은 거짓들이 <진실>과 섞여 썩어가고 있어서, <거짓>이 진실 행세를 하는 일도 많지 않은가.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이제 시작단계에 있지만, <거짓>이 이미 <진실>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리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철학과 의지가 박약한 정권 아래서 <국민적 화해>와 <용서>의 그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밝지만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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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1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란한 아침 햇살에 거짓의 안개가 걷어지기를..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진주 2006-04-1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따끈따끈한 감동이 실린 리뷰네요.
이책 보내자면 서운하시겠어요^^

글샘 2006-04-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님... 안개라면 아침 햇살에 걷히겠지만, 저놈의 황사는 걷히지도 않고 심해지기만... ㅋㄹ콜록... 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인간을 아는 일... 나 자신을 알라고 하신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길 때입니다.
진주님... 서운하다기보다는 좀 시원한걸요. 어차피 놔둬도 두번 읽긴 힘든 책일 듯.ㅋㅋ 제가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성경책(군대 있을 때 세 번 정도 읽었음), 어린 왕자, 그리고 읽었단 사실을 잊고 두 번 읽은 책 몇 종류... 그렇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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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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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현상 중 하나는 종종 특정 단어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짧은 시기동안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 단어를 여러 번 듣거나 읽게 된다. 그 단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다만, 사람의 감각들이 열리고 나면 아주 신비하게도 언어의 조각들이 기호들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갑자기 두드러져보이게 되는 것이다.-15쪽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들은 자기 일과가 있었기 때문이다.-17쪽

전기 속 주인공들의 위압적인 이력은 다른 활동들에 대한 좀더 평범하고 기본적인 호기심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21쪽

우리가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25년간 알고 지냈던 남자 혹은 여자를 하나의 정연한 총체로 응집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고,
다른 이들도 우리처럼 복잡하고 알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여야 한다.-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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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되고 싶어요
야니크 하스트룹 그림, 스테판 프라티니 글,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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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라면 좋아할 이야기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재미있게 읽기 보다는,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이 북풍 한설 몰아치는 세상에 태어나서,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인생길을 살면서,
나는 누구인지,
내가 과연 인간인지, 곰인지를 곰곰 따져볼 문제임을 꼬집는 대목은 어린이책 같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열 살 남짓 아이들이라면, 삶과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이 생기기 시작할 나이다.

우연히 부모가 된 사람들로서 자식 사랑에 연연하는 모습과,
사실은 그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니라, 온 우주의 자식임을 깨닫기까지...

이 책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서도 동상이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다.

집에 빌려와서 잠들기 전에 읽으려고 했는데, 감사가 나왔다고 좀더 앉아있다 퇴근하라는 바람에,
미적거리면서 앉아 읽고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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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4-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에 계시면서 이런 동화는 어디서? ㅎㅎ

글샘 2006-04-1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학교는 실업계 고교라서 별 책이 다 있답니당.
사실은 특수 학급도 있어서 동화도 많아요. 그림책도 많고, 만화도 많지요. ㅎㅎ

하늘바람 2006-04-1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학교네요. 사실 아이가 없어도 그림책 보는 재미 아주 남달라요 요즘은 그림이 아주 뛰어나서 더욱 그렇죠

글샘 2006-04-1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은 학교입니다. ^^ 이 책은 그림 책이라곤 하기 어렵습니다. 동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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