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기 - 하루의 인연 만들기 샘터만화세상 1
이진이 글 그림 / 샘터사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취해본 사람은 자취의 서글픔을 안다.

추운 겨울 날, 손빨래하려고 물 데울 때, 블루스타 가스가 얼어서 물이 안 끓을 때... 그 서글픔.
혼자서 벽보고 밥 먹을 때.
주인집에 월세 내러 올라가는 계단에 큰 개 있을 때...
냉장고 안에 김치 한 통, 참치 두 캔, 계란 세 개, 소주 반 병, 시든 사과 두어 개.
내 냉장고와 똑같은 내용물을 담은 냉장고를 소지한 동지를 만났을 때의 의기투합이란...

이런 것이 자취의 낭만이고 서글픔이다.
낭만이란 말은 '로망'의 일본어다.
그렇지만 '낭만'이란 말은 참 낭만적이다. 로맨틱보다 더 낭만적이다.
추억을 아스라이 떠올리면 그 실루엣의 과거에 눈물이 어리기도 하고, 서글프면서도 멋쩍은 웃음이 피식 나는 그런 장면이 자취방 풍경이다.

하루의 일기는 그닥 즐겁지 않다.
일기란 것이 즐거울 일이 무엔가.
그 날이 그 날이고, 아무 맛도 없는 맹물 같은 게 매일인걸.
가끔은 쓰디 쓴 소주같은 날도 있고,
그렇지만 아주 아주 가끔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날도 있는 법.

이 책은 그렇게, 무미한 날들의 회색 그림들이 가득하지만,
쐬주처럼 짜릿하게 슬픈 날과,
솜사탕처럼 달콤한 날도 서려 있다.

'여자'를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만화의 캐릭터가 별로 맘에 들진 않았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에 하루를 보낸 일기를 읽으면서는 동감의 물결이 인다.
하루의 오빠(남편)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닭살 커플이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의 사랑 이야기는 30년대 사회상도 읽을 수 있고,
당시의 신식 사랑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야 여사의 옛날식 말투는 너무나도 재미지다.
멋쟁이 백석 시인의 깍아지른 얼굴과,
시인의 더도 덜도 없는 정삼각형같은 시들의 뒤에는,
자야 여사와의 뽀송뽀송하다 못해 영원히 신혼같은 풋풋한 내음의 사랑이 쉬고 있었다.

백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애절한 노스탤지어(향수)와,
막막한 절망감의 이면에 너무도 알려진 바가 없어 그 절절함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보인다.

자야 여사의 글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순애보,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언어가 지나치게 통속적인 것 같다.
역시 시의 뒤안길엔 눈물의 순애보가 가득하다.
3년 여에 얽은 사랑과 이별의 눈물이 이 책에 넘쳐 흐른다.
이제 백석의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를 품을 법하다.

자야 여사의 북관 체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적어 둔다.

처음 딸아이를 낳으니 '얼라'라고 합데.
크니 '체네'라고 하지 않슴메?
시집가니 '집난이'라고 하지비.
얼라를 낳으니 날더러 '아어미'라고 합데.
이렇게 늙으니 '아마이'라고 하지 않습메?

이 모습을 보고 웃자, "무스거 그리 웃붐메?"했다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북관의 아낙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3-3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에요.
절판된 줄 알았는데 있네요... ㅡㅡ;(어떤 근거로 그리 생각했던지...)
백석 시인이 좋아서 시집-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와사회) 오랫동안 끼고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진정으로 끼고만 ㅡㅡ;;) 얼른 사야지!

글샘 2006-03-3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백석 시인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 시 세계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해되는 점이 많습니다. 얼른 사 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자 (양장) -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김홍경 지음 / 들녘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홍경이라고 해서 텔레비전에서 한의학 강의를 한 그 사람인줄 알았다.
흔한 이름이 아니고, 한의학과 노자는 왠지 가까운 느낌이어서...
그런데 동명이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처럼 노자를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에게 적합한 책은 아니었다.
백서와 왕필의 주해서를 분석하는 책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부분의 해석들을 주로 읽어나갔다.
노자는 비유로 가득한 책이라서, 내맘대로 읽는 노자가 제일 좋다.

그리고 어린 왕자를 몇 번 읽을 때마다, 가슴을 치는 구절이 다르듯이, 노자도 그렇다.
한국에서 노자를 시장 바닥으로 내놓은 선구자가 도올이다.
그를 '돌'이라고 유사품을 만들어 강의한 코미디언도 있는데, 멋진 아이디어다.
도올과 돌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그의 강의록이 노자와 21세기란 책으로도 나왔는데, 지나친 현학과 천박한 어휘 사용으로 노자를 웃긴 남자로 취급당했다.
난 개인적으로 '도올'이란 말이 우습다. 올이 높다랗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도가 높다랗다고 하는 이름을 짓고서는 노자를 강의하다니... 수능 점수는 높다란 사람일는지 몰라도, 험담을 입에 담고 사는 그가 높다랗게 보이진 않았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노자>는
'전국 시대'는 지극히 '남성성'이 강조된 시대였다. 그래서 노자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이다.
노자란 이름, 즉 늙은이의 노래란 제목이 이미 남성적이기 보다는 여성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어로 가득한 노자에는 정언약반 正言若反(올바른 말은 마치 삐딱한 듯 하다.)의 수사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에선 덕도경의 순서로 해설을 달았다.
도는 좋은 삶의 길, 좋은 삶의 근거가 되는 <윤리적, 존재론적 범주>라면,
덕은 구체화된 무엇으로 도의 결과, 작용, 드러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덕은 도의 집인 것이다.
도가 만물을 태어나게 한 뒤, 덕이 그것을 기른다는 것에서 덕을 앞세운다.

이번에 덕도경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구절들은 이렇다.

나에겐 항상 세 가지 보물이 있다. 자애, 검소함, 천하에 감히 나서지 않는 것이다.

내 말은 무척 쉽고, 행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알지도 행하지도 못한다.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것 같다. 大巧如拙

爲學者一益 聞道者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也 無爲以無不爲 將欲取天下也 恒無事 及其有事也 又不足以取天下矣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를 들은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에 이르니 무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바야흐로 천하를 취하려 한다면, 언제나 일이 없음으로 해야 할 것이니, 만약 일이 있음이면 천하를 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성인은 모두를 어린이로 대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은 눈이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덕을 두텁게 머금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含德之厚者 比於赤子
억세지면 곧 늙어버린다. 이것을 부도라고 말한다. 物壯卽老 謂之不道

%%%%%%%%

이 책은 두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전문가가 만든, 전문가를 위한 책인 듯 한데,
'수컷 모 牡' 자와 '암컷 빈 牝' 자를 혼동해서 수컷 모 牡자만 잔뜩 적어 놓은 것을 보고 신경질이 났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狂人 2006-06-05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는데요. ^^ 도올의 뜻을 잘 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라도 찾아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슬픈 조국의 노래
조문기 지음 / 민족문제연구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부민관 폭파 사건의 주역 조문기 선생의 회고록.

부민관이라면 경성부민회관이니까,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시민회관 내지 세종문화회관 정도겠다.

거기서 열리는 친일파들의 독립운동가 때려잡기 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했던 운동가다.

그분의 인생 역정을 읽는 것은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읽는 일이었다.
그에게 조국은 슬픈 조국이었다.
그에게 조국은 삶이었고, 전부였지만,
조국에게 그는 가로고치는 인생일 뿐이었다.
각종 조작극으로 인한 고문, 투옥으로 독립운동의 결실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친일파의 나라.
그래서 그는 올바른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한 부끄러운 국민으로서,
친일반역자를 색출하지 못한 자로서,
조국의 독립보다는 진흙탕이 되어버린 조국에 동조하기 싫어서,
국가가 주는 쥐꼬리만한 혜택조차도 거절한 절개를 가지고 있다.

그분의 인생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사소한 부조리에 쉽게 타협하는 나를 볼 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중립은 진행되는 사태에 동조하는 것이란 하워드 진의 명제를 인정하지 않고도,
그는 방관은 동조고, 동조자는 부역자, 공범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계시는 보기 드문 분이다.

보통 조국을 위해 애쓰신 분들이,
과잉 애국주의, 국가주의에 매몰되기 쉬운데,
이분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할 뿐,
조국이 그를 버린 것도,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은 것도... 다 잊으려 한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