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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와 1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간 기와는 중학교고, 까만 기와는 고등학교다.
1권과 2권의 중간까지는 빨간 기와고,
2권에서 3권까지는 까만 기와다.
그러면, 산술적으로 두 권으로 편책하면 될 것을, 왜 세 권으로 만들었을까?
얄팍한 장사꾼의 상술이 속보인다.
이 책엔 간혹 오타도 많고, 탈자도 보인다.
소설이 재밌어서, 그런 걸 적어 두진 않았지만, 좀 짜증나기도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혼란기가 <문화혁명기>였던 모양이다.
십여 년전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밤을 새워 읽었던 추억이 있는데,
이 책에선 피해자 어른의 시각이 아닌 가해자 중학생의 시각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재미삼아 유람삼아 저지르는 군중 심리의 파괴 본능이 차츰 시들해지는 장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선, 하방(下放, 지식인을 강제 노역으로 몰아내는 일)당한 교장 선생의 모습.
그 교장의 하심 下心에 나는 자꾸 눈이 가는 것이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도 정말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아무 욕심없이, 그야말로 낮춘 마음으로
나를 버릴 수 있을까? 아니지, 이제 십년 정도 뒤면 나도 50줄에 접어드는데,
그러면 나를 비우고, 그야말로 하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곱씹었다.
꽃도 심고 나무도 돌보고, 우아한 퇴직자로서가 아니라, 할아버지같은 자애로서...
그리고 그토록 그악스럽던 홍위병의 야만적 폭력을 읽으면서 이십 년도 더 된 장면이 떠올랐다.
그 날, 나는 종로 거리를 선배와 같이 걷고 있었다.
시각은 저녁 5시가 가까워지고 YWCA 건물 앞은 지나가는 행인들로 복작거렸다.
선배가 내게 안내해준 직업은 구로공단 소켓공이었다.
5시가 되자, 어느 건물에서던가, 갑자기 "독재정권 박살내자"며 앙칼진 목소리의 여학생이 뛰어나왔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유인물을 공중에 뿌리면서...
그 여학생이 열 걸음도 걷기 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짭새들(사복)이 그 여학생을 끼고 어디론가 끌고갔다.
그 여학생은 끌려가면서도 다부지게 소리쳤고, 결국 입이 틀어막혔다.
앞 건물 옥상에서 현수막을 내리면서 두세 명의 마스크 쓴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린다.
유인물은 도로로, 버스 위로 흩날리고, 다시 수많은 사복들이 뛰어 가고,
다시 저쪽에서 고함을 치고, 시내 한복판에서 사과탄(사과만한 최루탄)을 터트려댔다.
이십 년을 잊고 있던 그 끔찍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야만성 때문이었을까?
비둘기를 기르고, 침대에 집착하는 여인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다소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교실에 가두고, 서로를 학대하는 모습은
결코 인간의 세계라 볼 수 없었다.
짐승만도 못한 야만의 세계 그대로였다.
내가 어린 시절, 그토록 감동하며 읽었던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를 요즘 아이들에게 읽히면 낯설어 하듯이,
이 소설은 중국 아이들에게도 낯설 것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중국의 현대사를 조금은 아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법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