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느림과 비움 -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
장석주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장석주, 얼마 전, <시인세계>란 시잡지에서 '마지못한 친일까지 중죄인 취급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하는 개념없는 이야길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줄 모르고,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제목은 <느림과 비움,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
내용은 노자를 한 페이지에 실어 두고, 자기 잡문을 써나간 것이다.
안성 땅에 집을 하나 지어 두고, 시를 쓴다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시는 내 취향이 아니기에 언급을 말자.
노자라는 텍스트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그의 시골 이야기는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왜 시골로 갔지? 시골이 시쓰기 좋으니까 갔겠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그의 삶은 별로 느리지도 비운 것도 없어 보이는데... 흙 내음을 맡으면서 땅에 코를 가져다 대는 모습은 드물고, 그저 시골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 6시간 읽고, 6시간 쓰고, 두 시간 걷겠다는 그의 욕심은 시골 생활을 팍팍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런 마음이 들게 한다.
다시 노자를 읽으면서 눈여겨 보고, 곱씹어 본 구절.
寵辱若驚.
칭찬과 욕됨에 깜짝 놀라는 듯하다. 인간의 심사가 그렇게 얕다는 것. 항심이 없는 것.
大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최고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그의 존재를 겨우 알고, 다음은 친하고 자랑하며, 다음은 두려워하고, 마지막은 업신여긴다. 나는 어떤 선생인가... 생각해본다. 모지아닐까? ㅠㅠ 모지라는 인간. 侮之.
絶學無憂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진다. 여기서 학문은 <相>을 갖는 것이다. 고정관념으로서의 상. 판단의 근거로서의 상. 어쨌든 잘난체 하려면 고민 많이 해야한다. 박사 과정 안 가니 근심이 전혀 없다. 공부하기 싫을 땐, 이런 핑계로... 이거 갈수록 노자가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요상한 방향으로 쓰인다.
장 루슬로의 시를 읽어 보는 일은 느림과 비움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섣불리 도우려고 나서지 말아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골나게 하거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지 말고 참아라.
별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