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굳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은 희망이 있고 즐거워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론, 정말 옛날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살던 <죽지 못해> 사는 날들도 있게 마련이다.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나에게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저 사람들도 잘 살고 있는데...

빨간 나뭇잎의 존재를 지나치고 세상을 보면, 온통 시커멓고 어두컴컴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들 달팽이처럼 자기 등에 지고 있는 작은 집 안으로 자아를 밀어 넣어버리고 싶어하지, 자기 본색을 남들에게 조금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어른들을 위하여 숀 탠이 그림책을 선물한다.

네 안에 가득한 빨간 나무의 희망을 보라고.

네가 아무리 어두울 때라도 빨간 나무의 <단추>는 어디에나 있지 않느냐고.

힘들기 때문에, 서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세상은.

난 도서관 서고에 기대 서서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아니 그림책을 몇 번이고 다시 넘겼다.
힘들 때, 서점에 가서 5분만 아니 10분만 이 책을 들여다 보면, 입가에 쓴웃음이라도 일 일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6-03-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 이 책 읽고 있어요!

하이드 2006-03-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어제 책정리하다가 이 책 꺼내 읽었는데!

글샘 2006-03-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살다 보면, 우연한 데서 사람을 다 만난다니깐요.
여우님, 하이드님. 같은 책을 통해서 만나 무쟈게 반갑습니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런 애들이 있을까보냐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문과에서 정치, 역사 이런거 배우다가, 의대나 약대로 진학하는 애들 있다.

서울대에서 기초 학력이 안 갖춰진 아이들이 진학한다고 난리다. 고등학교에서 무얼 가르치느냐고...
그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학생들이 가는 학교가 서울대 아닌가.
그런 애들 모아 놓고, 과연 서울대는 바보 만드는 학교 아니던가.
과거 독재 정권 시기엔 애들 감옥 다 보내고, 이젠 취업 준비나 알아서 하지 않는가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의견은 이렇다.

도쿄대 아이들이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결여된 사람'으로서의 바보일 리는 없다.
콩도르세의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바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교양이 없다는 것>.

일본이 후진국이던 시절, 상부로부터의 획일적 관리 교육 시스템은 지적 수준 향상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지적 독립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자, 그 제도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어쩜 이렇게 한국과 같은지...

고등교육이 유비쿼터스(ubiquitous,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에는 대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고등교육 독점 시대>와는 달라야 한다.
한때, 지금이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고 한 때가 있었다. 제네럴리스트는 모든 분야에 사용할 수는 있어도,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대중적 지적 노동자로 폄하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낮은 차원의 제네럴리스트이고, 스페셜리스트보다도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네럴리스트도 존재한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제네럴리스트가 움직이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갈라서 교육하고, 대학 입시에도 불필요한 과목은 안 배운다. 그러면서 과학과 수학은 필요가 감소되고, 배우는 교과목이 전반적으로 감소한다. 그러다 보니 관심이 떨어지고, 이 관계는 사슬처럼 연결된 지식인의 재생산 구조에 맞물려 사회 전반을 무식의 나락으로 몰아 넣는다.

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입시에서 승리자는 될 수 있어도, 엘리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등학교 시절에 무엇인가를 희생한 결과, 입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가련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는 바람직한 교양인을, 지구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세계를 보는 사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이 그토록 목을 매는 외국어 습득은 한낱 기술에 불과하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왜 한국엔 이런 통찰들이 그토록 부족한가... 하는 아쉬움에 젖게 된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 입 달린 사람은 누구나 밤새도록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이십 년 전과 지금은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교육은 후퇴하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교복을 벗기고 머리를 자유롭게 놔 두었다. 왜? 맘엔 내키지 않지만, 외국인 보기에 쪽팔리니까..  올림픽 기간 동안 고궁 입장료에 청소년 youth 연령은 14-24세였다. 올림픽 마치고 그 연령은 다시 14-18로 줄어들었지만...

올림픽 마치고 다시 교복을 입히고 머리를 깎였다. 왜? 꼴보기 싫으니깐. 학생이 무슨 인권?
올림픽 마치고 전국에 골프장과 대학이 마구 들어섰다.
요즘은 바보들이 대학가기 더 쉽다. 고교 졸업 학력만 있으면 4년제 가는 건 문제 없다.

평준화가 학생들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난리들이지만, 같이 공부하면서 얻는 것이 따로 공부하면서 잃는 것에 비해서 더 많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그렇지만, 김영삼 시절의 제7차 교육과정과 함께 학교를 강타한 <열린 교육>, <교육 개혁> 파동은 학교를 분쇄해 버리기에 충분한 강풍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선 뚜껑열리는 상황이 연일 속출했다.
아이들은 통제되지 않았고, 자기 주도적 학습에선 배우는 것보단 베끼는 일이 많았다. 학습의 편중성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실험, 실습, 실기, 손을 움직이는 체험 학습은 전혀 없고, 인터넷 베끼기만 강조했다.

중학교 교실에선, 학습이 실종되었고, 그 결과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렸다.
사교육이 판을 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연합고사가 폐지된 것이다.
내신 성적으로 고교를 가게 되자, 학생들은 중간만 하면 되었다.
전처럼 모의고사도 없고, 연합고사 준비에 따른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졌다.
중3이 되어도 입시생으로서의 긴장감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수영장, 골프장, 테니스장, 야구장, 육상 트랙에서 특기 적성을 기르기엔 한국은 너무 후진국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간 곳은? 네. 학.원.

고등학교에선 완전 바보같은 중학생을 받아서 변함없는 입시 전쟁을 준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때맞춰서 도입된 선택중심 교육과정은 아이들을 <수학> 안해도 대학가는 바보로 만들었다.
<국어> 못해도 대학가는 멍청이로 만들었다.
내가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는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들로 교실은 가득하다. 솔직히, 학원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학원은 수능치는 과목만 들을 수 있잖은가.

어쭙잖은 <전인교육>의 모토를 달고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는 학원에 비해 입시에 있어서 그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누가 부정하는가.

그렇지만, 그게 교육은 아니다.
대학에서 아이들을 자주적으로 뽑게 선발권을 주고,
고등학교는 알아서 교육과정을 편성하게 국가에서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모든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일본과 한국의 교육 문제는 비슷할까?
그것은 한국 교육이 황국 신민 교육의 연장이며, 일본의 교육 제도는 전승국 미국의 본을 받은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변화의 시대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아이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만 잘 하면 돼. <컴퓨터>만 잘 하면 돼. 하는 식의 단세포적 미래를 보여준 우리 선배들은 사죄해야 한다.

영어는 잘 하면 좋지만, 모든 사람이 잘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컴퓨터는 잘 쓰면 되지, 자격증을 딸 필요까진 전혀 없다.
초등학생이 토익 만점을 받는 나라. 토익 응시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영어의 나라.
초등학생들이 워드 프로세서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소지한 아이티 강국.
초등학생들이 피시방 가득하게 모여 <살육전>을 벌이는 대~한민국.

과연 미래는 있는가?
서울대생은 누가 바보로 만들었는가.
정답은, 우리 모두다.
서울대생(엘리트 집단의 상징으로서의)을 바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답은, 없지만, 이제라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RINY 2006-03-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남의 탓 하기에 바쁘겠지요.

글샘 2006-03-0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학교에 문제 있는 줄 모두 알면서도, 누구도 나서지 않는 슬픈 현실.
 
자연치유력 -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자연의학의 비밀
이성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모든 자연은 스스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무에 상처를 내어도, 나중엔 어떻게든 살아 남는다.

그런데, 사람은 유독 조금만 아파도 약을 먹고 병원을 찾는다.
감기를 그냥 두면 일주일 가는데, 병원에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7일 만에 낫는다는 우스개처럼, 현대 서양 의학을 과신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원래 동양 의학에서 환자를 만나 낯색을 살피고, 대화를 나눠 보면서 그 사람의 특징을 알고,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환자를 대하던 것이 의사의 본분이었거늘,
요즘은 오히려 서양에서 그런 것들을 배운다.
한국의 의사들은 대개 넘쳐나는 환자에게 염증을 내서, 병이 날 지경이다.
낯색 살피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

이 책은 건강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필요한 부분을 찾아 발췌해 읽을 만한 책이다.

나는 연구 학교 몇 년 하고 나서 혈압이 높게 나와서 낮춰야지 하고 맘을 먹고 있는데 쉽게 실천이 안 된다.
고혈압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인 만큼, 젊은 나이부터 다스려야 하는데,
운동 많이 하고, 체중 조절 하고, 나트륨 적게 먹고, 칼륨을 많이 먹으란다.
다시마나 고구마, 감자, 호박 같은 음식이 좋단다.

아로마 요법도 도움이 되고...

물론 칼로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해서 금세 낫게 할수 있는 질환도 있지만,
우리 신체에게 스스로 극복하는 기회를 주는 법도 부정해선 안 된다.

법적으로 양의만 먹여 살린 외세 의존적 의료 제도의 그늘에서 말라 죽은 한의학의 뿌리를 이제라도 천천히 되살리고, 널리 알렸으면 한다.

이런 책들을 간혹 보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영적 평안>이 건강의 최대 관건이란 것.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누아 2006-02-2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적 평안!!

해콩 2006-02-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따듯한 봄이 오면 '요가'를 다시 시작하려구요. 작년엔 몸의 건강을 위해서였지만 올해는 '명상'을 맘먹고 한 번 도전해보려고.. 영적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글샘 2006-03-0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오랜만이네요. 건강엔 영적 평안이 최고래요.
해콩님... 담임 하시면서 요가 하실 수 있겠어요? 명상도 어려운디...
 
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역사서 중 가장 놀라웠던 책은 역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었다.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의 <베트남 전쟁>, <우상과 이성>, <전환 시대의 논리> 같은 책...

그렇지만, 그 책들은 이 책만큼 대한민국의 역사에 똥침을 놓지 못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불온 서적>이다.

성스러운 단일 민족, 단군의 자손, 민주주의의 성지 <대한민국>을 일거에 발가벗겨버리는 힘이 한홍구의 글에는 들어 있다. 그 근거는 지난한 공부에서 나온 것이고, 부지런한 발품에서 뒷받침되는 그것이리라.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이런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변죽을 울리던 책을 읽고도 분노하고 저주하며 음주로 보낸 시절을 생각하면, 이런 무서운 책을 그당시 읽었더라면,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을는지 모를 만큼 무서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국사>는 없다.

고조선이 있지만, 고조선은 없다.

내가 숱하게 읽었던 왕조 중심의 역사를 한홍구는 <시선, 주제 중심의 역사>로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도 아무 상관 없는
<그들만의 역사>를,
이젠 우리와 어쩌면 그리도 상관 없을 수 없는
<우리들의 역사>인지,
무서울 정도로 명징하게 들이미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분신하던 86년 4월 28일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고,
아직도 군부대를 경찰이 경호하는 쪽팔린 나라에 살 수밖에 없어서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그냥 쪽팔려 하는 역사를,
바로서지 못한 국가의 기강을,
밑바탕없는 수구 세력이 <보수>라고 착각하고 우기고 빨갱이들을 사냥하는 짓을,
더이상은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교사로서 또렷이 기억해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표가 수구 꼴통들에게 비수가 되고,
대한민국의 역동적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복사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실업계 아이들은 시간이 많으니 가르칠 시간을 내 보아야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쪽팔리지 않은 대한민국을,
축구나 잘하고, 쇼트트랙이나 잘 돌아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아니라,
당당한 내가 만들어가는 우리 역사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청사진이라도 그려 볼 수 있다면...

고교생, 대학생, 일반인들도 두루 읽었으면... 하는 바람 가득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지마할 2006-02-2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분신하던 86년 4월 28일, 이 날은 제가 군사 훈련 받으러 문무대 입소하던 날이었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글샘 2006-03-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방 아니었던가요? 무서운 옛날이야기였죠. 80년대의 젊음이란...

역전만루홈런 2006-10-1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빨갱이 냄새가 난다고 그랬습니다..
아직도 빨갱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도대체 개념은 군대에서 포맷하고 온 것 같습니다..
빨갱이, 한겨레, 좌익, 뭐 이런 것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알고나 하는 말일까요?

글샘 2006-10-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홍구씨는 빨갱이로 몰 수 있을 만큼, 진보적 역사학자죠.
이 책의 가치는 그런 거구요. 진보적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중립이 아니라, 이미 수구 꼴통들에게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라데요.
 
장자 이야기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조성진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철학적인 언명의 연속으로 이어진 <노자>가 글자와 구절의 풀이에 힘을 싣는 이론서라면,
우화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에 너무 무게를 두면 그저 우화집에 머물고 말고,
그렇다고 장자의 사상을 캐내기에는 이야기가 난삽하다.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 모로하시 데쓰지의 <장자 이야기>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장자의 사상을 공맹의 사상과 비교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두께가 두꺼운 책들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이 두려움을 불사하고 내가 봄방학동안 빌려온 책이 이 책과 <감각의 박물학>이다.
그런데, 사실은 두께가 두꺼운 것 외엔 별로 두려울 일 없는 듯 하다.
이 책에 얻어 맞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얽어주는 역할을 저자가 잘 하고 있다는 점과
사이사이에 장자의 이야기가 허황한 점을 공자와 비교해서 알려 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장자 이야기에서 얻어야 할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하기도 한다.
때론 노자를 인용하기도 하고, 절묘하게 이야기를 끌어 대기도 한다.

원래 장자란 텍스트는 사물에 빗대어 얘기하는 우언(寓言), 남의 권의를 빌어다가 자신의 얘기에 힘을 싣는 중언(重言), 비었다가 차는 술잔처럼 이렇게 얘기했다 저렇게 얘기하는 치언(梔言)의 형식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교훈적이라고 하기에는 변설이 강하고, 역설이 많아서 곤란을 겪게 된다.
동양의 고전들이 지나치게 교훈적인 측면에 완전히 파격을 부른 셈이다.
이 책에선 그 변설과 교훈의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해내고 있는 것이 저자의 힘이다.

<양생>의 방도로 장자를 읽을 수도 있지만, <삶의 철학>으로서 장자를 택할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치 필요없는 군살이나 혹이 붙어있을 뿐이고, 죽어야만 이것이 말끔히 사라진다.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은 없고, 삶을 살려고 애쓰는 자에게 삶은 없다.
이런 철학적인 측면은 불교에 닿아있다고도 하겠다.

그렇지만 보통 <장자>라는 텍스트는 노자의 후예로써, <소요유>에 처하며 <무하유의 이상향>을 지향한다고 읽히기도 한다. 무하유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아득히 넓어서 아무 것도 없는 세계. 크고 작음, 옳고 그름, 삶과 죽음의 차별이 없는 세계. 이건 불교의 <我相>을 없애라는 말과도 유사한 생각이기도 하다.

춘추 전국 시대는 <삶>의 시대라기 보다는 <죽음>의 시대였다.
고우영의 십팔 사략에는 얼마나 도너츠 표식을 단 주검들의 그림이 많이도 그려져 있는지...
이 죽음의 시대를 넘어 <살 수 있는 처세술>로서의 책이 장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을 때에는 굳고 강해진다. 살아있는 만물과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모든 것은 말라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이라는 노자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에서 풀어낼 따름이다.

마음을 거울과 같이 쓰면 至人이라 할 만하다. 거울은 지난 일을 좇지 않고 장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다.(不將不逆) 요즘 서양인들도 명상을 배운다고들 하는데, 마음의 다스림, 마음 공부의 요체는 이것 아닐까? 지난 일은 거울에 없다. 장래도 거울에 없다. 지금 여기나 살아라...

마음을 비우면(虛) 맑아지고, 맑아지면 고요해 진다.(靜)
한국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스포츠로 양궁과 쇼트트랙이 있다.
이들의 기예는 어찌하여 그리 뛰어난 것일까? 그 답은 장자에 있다.
진정한 경지에 오르려면 활을 쏜다든지, 칼을 쓴다든지 하는 생각을 잊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완전히 허심의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금메달을 따려고, 추월을 하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전을 연습처럼... 하는 말처럼, 연습에서 <지옥을 넘나드는 훈련>을 거친 자들이 아니고서는 이 허심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양생>이다. 영어로 웰빙이라 한다.
잘 먹고 영양이 과다하고 스트레스가 많아 생기는 질병들.
길어지는 노후 생활과 맞물려 <양생>은 최고의 지향이 된다.
장자는 말한다. 인생 전체를 보신해야 한다고.
보통 섭생이라 하면 건강을 지키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노장의 섭생은 그런 생각을 뛰어 넘어 <삶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고 유유히 살아가는 양생법이다.

내가 읽은 철학적 측면, 전국 시대 노장 사상의 측면, 처세나 마음 공부, 양생의 어떤 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장자>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우언들은 궤변으로 읽고 욕할 수도 있지만, 여느 철학서가 지닐 수 없는 <역설적 직관>이 장자엔 있다. 그래서 소요하고 싶을 때, 장자의 한 마디를 읊조릴 수 있을 것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 다리가 짧다고 덧대지 말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6-02-2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곧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로그인 2006-02-2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 노자 석가>보고 실망한지라 이 분이 쓰신 책 읽기 싫었는데, 이건 볼만 한가봐요~

글샘 2006-02-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함보세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답니다.
나를 찾아서님... <공 노 석>은 저도 실망이었답니다. 이 책은 재밌어요. 요 밑에 보니 <공노석>에 제가 별을 두개 줬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