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 시절, 사범대 앞 비탈진 잔디밭에 붙여진 이름이 <페다고지>였다. 멋모르고 조금 높다고 -고지라고 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 이름이 페다고지였다. 실천적 교육을 일컫는 말.

교직을 선택한 친구들끼리 학습을 하면서 읽은 프레이리이 <페다고지>는 교육에 대한 눈을 번쩍 띄게 했다. 교육은 지배 권력의 재생산 구조에 포함된 것이어서, 은행 적금식 교육(한국의 문제 풀이식이 해당함)으로는 변혁에 앞장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 해결식 교육이 미래의 대안이라는 주장이었던 기억이 난다.

브라질의 선각자적인 교육학자 프레이리의 사후에 발간된 그의 마지막 저서다. 좀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교사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첫 부분은 교육자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네 가지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현장에서 가르칠 때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한 네 가지의 편지가 실렸고,
마지막 부분은 교육 현장에서 철학하기라는 이론적 글이 실려 있다.
앞의 여덟 개의 편지는 단속적으로 읽어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으며, 뒤의 두 편지는 철학적인 글이어서 비교적 딱딱한 글이다.

여느 사람들은 교사라고 한다면 교육 대학이나 사범 대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마치고 나온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졸업식과 함께 발령을 받으면 바로 유능한 교사가 되기를 기대할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범대나 교대에서는 별로 유기적이지 못한 단편된 과목들을 배우느라 허덕이고, 요즘은 임용고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다 보니 교사가 되어 있더라는 식이다.
진실로 아동에 대한 고민도, 교육 제도에 대한 철학적 통찰도, 역사적 비판의 안목도, 교과에 대한 전문적 식견도, 학생 지도와 상담에 대한 노하우, 노웨어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교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발령받고 나서 부쩍 자란다. 다행스럽게도 첫 발령지에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또래의 교사가 있으면 서로 이야기를 통해 어려움을 나누고 해결책을 건강하게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곤란한 상황에서 자아 존중감만 곤두박질한 채, 자책하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한탄하면서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브라질처럼 저개발국가의 교육 이론은 미제 교육 이론보다 촌스럽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 같다. 나의 가려운 점을 긁어준다는 것이다.

프레이리의 교육론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들을 적어 본다. 두고 두고 씹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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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과업은 진지함과 과학적, 육체적, 정서적, 감성적인 준비를 요구한다.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일에 포함된 과정에 대한 사랑도 개발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관료화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시도를 그만두는 것이 차라리 물질적으로 이득이 될지라도, 이 도전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밝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대상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며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도전하고 무릅쓰지 않으면 창조나 재창조를 할 수 없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교육 실천을 준비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임금은 결국 가르치는 직업에 어느 누구도 매력을 못 느끼게 합니다. 많은 장관들은 별다른 적성이 없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왔습니다.

진보적인 교사의 자질에 관하여 : 겸손(결코 자아 존중감의 결여나 체념, 혹은 비겁한 같은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 아니고, 반대로 겸손은 용기, 자기 확신, 자기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필요로 한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교사 직업의 부정적인 면들을 견뎌낼 수 없다. 용기, 인내, 능력, 결단력, 인내와 조급함, 말을 절제하는 삶.

교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기록하라.

우리가 말하지 말아야할 주제나 가치란 없으며, 침묵해야 하는 영역도 없다.

교육은 정치적 행동이다. 학습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이야기하게 해야 하며, 학습자들에게 귀기울이고, 그들이 귀기울이도록 하는 일. 이것은 의도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그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의 비중립성:
교육자들이 교육을 정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진보적이고 민주적으로 일관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과거처럼 권위적이고 반동적이거나 무의식적이고 무비판적인 선택을 하며 살 것인가,
즉 그들이 스스로를 민주적인 인간으로 규정하든지 아니면 권위적인 인간으로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용인하는 허용성은 때로 '자유를 지향하는 학습'이란 인상을 주지만,
결국엔 자유와 상반되는 활동을 만들어 낸다.
허용성이 말들어내는 무법천지의 분위기, 방종의 분위기는 오히려 권위적인 입장을 강화한다.
그런 반면, 허용성은 권위주의자들이 원하는 순종적이고 복종적인 사람을 만드는 <훈련>을 거부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그 투쟁을 통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한 훈련마저도 허용성은 거부한다.
허용적인 사람들은 자유에 의해서도 권위에 의해서도 일관되게 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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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2-1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못본 책인데...
언젠가는 읽겠지요..

해콩 2006-02-1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 교사들의 필독서라는 말에 쪼끔~ 긴장했는데.. 읽은 책입니다요. 캬캬
사실 프레이리 할아버님의 글은 좀 어렵게 다가와요. 대중에 대한 언어교육을 엄청 중시하는 분이니까 (원서는 쉽게 씌여졌을 것이나)번역과 어감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추천하고 퍼갑니다. 꾸우벅~

글샘 2006-02-1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다고지에 비해서 이 책은 좀 딱딱하더군요.
그래도 편지글이라서 되는대로 읽을 수 있을 듯 한 책이지요.

역전만루홈런 2006-04-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다고지는 읽어봤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시작하기 전에 15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
나중에 4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미리 하루의 일을 생각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루의 업무를 조직화한 사람은
생각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놓다.
그러므로 자신과 직원들의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15:4의 법칙을 따르라.
- 제임스 보트킨
 

성공하는 사람들은 늘 먼저 큰 그림을 그리는 반면,
실패하는 사람들은 생각없이 바로 일에 착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작을 패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8시간이라면,
나는 그중 6시간 동안 도끼날을 날카롭게 세울 것이다.’라는
링컨의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 성공에 가까이 갈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차이가 성패를 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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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글을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그림을 제가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그림을 소개한다는 의미는 단지 그림을 어떻게 그렸고, 색채나 구도가 어떤지를 설명하는 것 -회화미를 설명하는것- 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린 이유와 그 정신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진정한 그림의 해석이라고 했을 때  전문 미술사학자가 아닌 그저 옛 그림을 좋아하는 정도인 제가 감히 이런 그림을 설명한다는 것이 그림에 대한 불경스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 입니다. 

 

하지만 조만간에 온 국민이 매일 접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그 어떤 신문이나 블러그에서도 그림에 대해 시원히 설명하지 않기에 제가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이 그림이 내년도에 발행될 새로운 천원에 삽입되지 않았다면 저도 그저 감상하는 사람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부족한 글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길게 했네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에서는 새로운 천 원짜리 지폐도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새천원권도안>

 

 

먼저 앞면을 보면 명륜당과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현재 천원짜리 지폐 뒷면에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세운 지금으로 말하면 사립학교인데 사립학교를 세운 것 보다 성균관 대사성(국립대학 총장)을 지낸 부분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명륜당으로 교체한 것 같습니다.

 

매화는 겨울에 어떠한 시련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나무로서 권력에 추종하지 않고 언제나 학문과 수양에 온 생(生)을 바친 퇴계 선생이 생전에 너무도 좋아했던 나무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명륜당과 매화나무는 퇴계선생의 공적과 퇴계의 인품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그림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징성은 뒷면에 나오는 <계상정거도>에 비하면 참 부족하다 싶습니다.

 

조선 최고의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정성껏 그려낸 <계상정거도>.  중국풍의 산수화풍을 일소하고 조선 특유의 산하의 조선의 새로운 준법과 필치로 당대뿐 아니라 현재 누가 뭐라해도 조선 최고의 산수화가로 꼽히는 정선이 71살에 그린 <계상정거도>가 바로 오늘 이야기해보려는 그림입니다.

 

한국은행은 새 지폐도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계상정거도>를 선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은행이 모든 화폐의 도안을 변경하되 등장 인물은 바꾸지 않기로 결정을 하자, 담당부서인 발권국의 김두경 국장은 1000원권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앞면의 퇴계와 관련된 문양이 뒷면을 장식해야 되는데 기존 1000원권의 도산서원은 퇴계 사후에 확장된 모습이기 때문에 그다지 당사자와 관련성이 높지 않다라는 점입니다.  

 

특히 학문적 업적 외에는 유형의 유물을 남긴 게 별로 없어 달리 대안을 찾기도 어려웠는데 이런 저런 고심을 하던 김 국장은 2004년 마침내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현장까지 찾아가 서원 뿐만 아니라 일대의 자연 경관도 둘러보고 온 그는 인터넷에서 퇴계 관련 자료를 뒤지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도산서원 주위와 너무나 흡사하게 현장을 묘사한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였습니다. 

 

바로 <계상정거도>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에서 독서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먼저 한국은행 김두경 국장의 그 깊은 뜻과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지만 그와 못지않은 심각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의 사후에 제자들이 선생의 공덕과 학문의 업적을 기리고자 생전에 있던 도산서당 자리에 세운 서원입니다. 따라서 도산서원이란 이름은 그림을 교체하려는 취지로 볼 때 <계상정거도>에서는 붙일 수 없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더 큰 오류는 <계상정거도>의 퇴계선생이 책을 보고 있는 바로 그곳은 도산서당도 아니란 점입니다. 왜 그곳이 도산서당이 아닌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림 제목이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도원서당이 완공되기 전에 머물던, 도산서당과는 조그마한 야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계상서당이기 때문입니다. 

 

 

 

 

복원중인 계상서당  정면 과 측면

 

 

퇴계선생은 50세 한서당(퇴계초옥)을 짓고 바로 51세에 계상서당을 지어 거처를 옮깁니다. 하지만 거듭된 임금의 요청으로 관직으로 나갔다가 곧 사임하고 내려오길 반복합니다.  50세 이후 70세 서거하기까지 무려 29번에 걸쳐 관직을 내렸는데 관직을 받자마자 사직서를 내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고 7번이나 같은 교지를 내린적도 있었고 그 중 4번은 아예 취임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바쁘게 서울과 안동을 왕래 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계상서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워낙 단촐한 곳이라 제자가 늘어나자 비좁아 새로 공부할 서당을 마련한 곳이 바로 도산서당입니다. 퇴계는 도산 서당을 나이 60살에 완공합니다. 그 후 계상에 머물면서 도산을 오가면서 생활합니다. 일년에 반은 계상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계상정거도>는 퇴계 58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니 당연히 도산서당이 아닌 계상서당의 모습입니다.  

 

 

계상정거도 서당 부분 - 위의 사진과 닮지 않았나요?

 

 

자 그렇다면 그림속에 퇴계의 모습이 58세의 모습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제 그 답을 찾아가 봅시다.

 

<계상정거도>는 ‘퇴우이선생진적첩’(보물 585호) 이란 곳에 들어 있는 그림입니다.

 

‘퇴우이선생진적첩’ 은 명가(名家)의 글과 그림을 한데 모아 묶은 서화첩(書畵帖)인데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제(第)1엽(葉)의 표면(表面)에는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이라는 제첨과 부화(附畵)라는 표서(表書)가 있습니다. 

제2엽 뒷면에서 제4엽 앞면에는 퇴계(退溪)의 회암서절요서(晦菴書節要序)가 쓰여 있고 제4엽 뒷면과 제5엽 앞면에는 우암(尤菴)의 제발(題跋)이 있습니다. 제5엽 뒷면·제6엽 앞뒷면에는 겸재의 그림 무봉산중(舞鳳山中 )·풍계유택(楓溪遺宅 )·인곡정사(仁谷精舍)등이 그려져 있고 제7엽 앞면에는 정선의 둘도 없는 친구인 사천 이병연(李秉淵)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년기(年記 )·서명(署名 )·낙관(落款)등이 있고, 뒷면과 제8엽 앞면에는 임헌회(任憲晦)의 후지(後識)와 김용진(金容鎭)의 제서(題書)등이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퇴계와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 들어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송시열의 발

 

 

여기에서 회암서절요서(晦菴書節要序)는 바로 「주자서절요서」(朱子書節要序)입니다. 회암은 주자의 호입니다.

 

「주자서절요서」(朱子書節要序)는 한마디로 <주자서절요>의 서문입니다. 이 서문이 왜 중요하냐면 퇴계선생의 사상 중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주자대전] 중 서간문을 모아 <주자서절요>를 펴내는데 바로 그 책의 서문에 퇴계의 주자성리학에 대한 태도와 퇴계의 정신이 압축적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성리학자들에게는 거의 성경책 수준으로 전해졌던 글이 바로 「주자서절요서」입니다.

 

바로 <계상정거도>에 있는 그림이 퇴계 선생이 「주자서절요서」를 짓고 있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 발문에 설명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은 퇴계가 「주자서절요서」를 쓴 나이 58세때 모습이고 장소는 그때 거처인 계산서당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귀중한 친필이 어떻게 정선에게 전해졌으며 왜 정선은 자기의 4폭의 그림을 더해 서화책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다른 그림 3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림 순서는 계상정거-무봉산중-풍계유택-인곡정사순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무봉산중>

 

 

 화면 뒤에 우뚝솟은 산봉우리가 무봉산입니다. (전체 그림이 다 나온 사진이 없어서 위부분이 짤린 사진을 올렸습니다. 양해하시길)

우암 송시열이 1674년 갑인예송(甲寅禮訟)에 밀려 수원 만의촌 무봉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정선의 외조부인 박자진(1625~1694)이 여러 번 찾아갑니다. 송시열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박자진에게 감사의 표시로 박자진이 가져온 퇴계의 「주자서절요서」의 친필 원본 뒤에 발문을 적어줍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느낌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그림인데 사방관을 쓰고 휜 수염을 기른 사람이 송시열이고 갓을 쓰고 검은 수염이 있는 사람이 박자진입니다. 뒤에 많이 부드러워진 수직준으로 그려진 무봉산과 정자 옆에 강인하게 서있는 나무에서 우암 송시열의 강직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박자진은 어떻게 퇴계 친필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주자서절요서」는 퇴계 선생의 손자이신 이안도가 외손자 홍유형에게 전해주었고 그는 다시 그의 사위에게 전해주었는데 그 사위가 바로 겸재 정선의 외조부 박자진입니다.

 

 

    

 

<풍계유택> 풍계유택(楓溪遺宅)은 ‘청풍계(靑楓溪)에 남아있는 외가댁’이란 의미다.

 


겸재의 외조부 박자진(朴自振·1625∼1694)이 세상을 뜬 뒤 그 자손들이 물려받아 살던 집입니다. 박자진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내다 인조반정(1623)이 일어나자 자결한 퇴우정 박승종(退憂亭 朴承宗·1562∼1623)의 당질(5촌 조카)로 거부(巨富) 소리를 들을 만큼 부자였다고 합니다.

 

풍계유택(楓溪遺宅 )은 바로 청풍계에 있던 박자진의 집입니다.

겸재는 14세이던 해 부친 정시익(鄭時翊·1638∼1689)이 세상을 뜨고 이어 기사사화(己巳士禍)로 우암 송시열과 김수항(金壽恒·1629∼1689) 등 율곡학파의 중진들이 연이어 사약을 받고 죽는 참변을 맞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겸재는 후원세력을 모두 잃게 됩니다. 그래서 외조부 박자진의 그늘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겸재에게 외가의 의미는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현재 서울 종로구 청운동 89 경복고 경내에서 살던 겸재가 그 맞은편 개울 건너의 청운동 50 일대에 있던 외가댁을 조석으로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글공부와 그림공부를 하던 곳도, 외삼촌 외사촌들과 어울려 놀며 동네 친구들을 사귀던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그런 외갓집을 화성(畵聖)으로 추앙되던 71세 때 그리게 됐으니 아마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었을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정선의 둘째아들 정만수는 박자진의 증손인 박종상을 만나 「주자서절요서」를 넘겨 달라고 설득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설득하는 근거를 퇴계 이후 계속 외가쪽으로 전해졌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박자진의 외증손인 정만수가 집으로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그림이 당시 정선의 집인 ·인곡정사(仁谷精舍)인것입니다.

 

 

  

 

<인곡정사>

 

 

종로구 옥인동 20에 해당하는 곳. 당시 이곳의 지명이 한도 북부 순화방 창의리 인왕곡(仁王谷)이었기 때문에 인곡정사(仁谷精舍)라는 택호(宅號)를 썼던 모양입니다.

 

그림을 보면 행랑채가 딸린 솟을대문 안에 ‘ㄷ’자 모양의 본채를 가진 단출한 구조의 남향집인데 안채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랑채부터 담을 두르고 중문(中門)을 냈습니다. 이것이 사대부 집의 기본 구조라 합니다. 중문 안에는 헛간채 장독대 등이 구비돼 있고 나무 그늘 아래에는 네모진 좌대석이 놓여있고, 지붕을 씌운 김치막 곁에는 바위더미가 자연스럽게 쌓여있습니다.

 

정선이 둘째 아들이 받아온 자신이 평소에 흠모해온 퇴계와 우암의 친필들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 기쁨을 자신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과정 즉 계상정거(이황), 무봉산중(송시열), 풍계유택(박자진), 그리고 인곡정사(정선)을 그림으로 남긴 것입니다.

 

 

기쁨으로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켜가며 그린 그림인 이 4폭의 그림은 정선이 71살에 그린 그림입니다. 다시 말해 그림의 경지가 완숙의 경지를 넘어 천의무봉의 경지, 겸재가 이야기한 천취(天就)를 이룩한 후의 그림인 것입니다.

 

다시 <계상정거도>로 돌아가겠습니다.

 

 

 

<계상정거도>

 

 

4폭중 대표작으로 볼수 있는 그림인데 무엇보다도 붓의 속도감이 두드러집니다. 말 그대로 거침없는 붓놀림이라고 할 만큼 빠르게 그려낸 전형적인 겸재 수법인 구불구불한 T 자형 소나무 표현과 늘어진 버드나무의 표현에서 가히 조선 최고의 산수화가 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점을 찍듯이 표현한 미법에 의한 부드러운 산의 모습, 당당해 보이는 바위, 흐르는 물과 연동하듯이 리듬감을 보여주는 소나무들..

 

옛날 나이 71살 이면 기력도 많이 쇠약해졌을만도 하지만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려낸 물결 모양과 시냇물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 역동성은 방안에서 고요히 앉아 글을 쓰고 있는 퇴계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靜과 動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50~60 대 작품들보다 세밀함을 줄었어도 진경산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겸재 자신이 가장 소중히 생각했던 그림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한국은행은 제목에도 답이 나와있는 그런 오해를 했을까요?  사실 이런 잘못의 근본은 미술사학자들의 오류로부터 출발합니다.

 

문화재청장이신 유홍준 교수님의 화인열전1에서도, 미술평론가 조정육님이 쓰신 <이야기 조선회화사>에서도, 기타 인터넷의 여러 소개글에서도 도산서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오류는 원본인 정만수의 발문에서부터 시작된 오류인지도 모르겠으나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 의 원본을 들쳐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기에 다른 미술사학 전문가들의 명쾌한 해명을 기대합니다. 

 

저의 추측을 첨부하자면 도산서원 앞에 흐르던 낙동강이 안동댐이 건설된 후 호수처럼 넓어지면서 풍경이 그림의 모습처럼 변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도산과 계상이 멀지 않았기에 그냥 넓은 의미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도산서당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학문적으로는 정확히 규명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고 그곳이 계상이 확실하다면 많은 자료와 책들이 수정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율곡 이이는 어머니를 잃고 학문적으로 방황하다가 23세 때 퇴계선생을 찾아갑니다. 바로 그때가 퇴계 58세 입니다. 바로 「주자서절요서」를 지었던 해입니다.

 

 따라서 저 그림 속 방안에서 당대 최고의 대학자인 퇴계와 새파란 애송이 이이가 만나서 사흘간 대화를 나눕니다. 학문적 깊이나 연륜으로 보면 상대가 되지 않았을 터이지만 4살 때 부터 시를 지었고 20세가 되기 전에 벌써 과거에 수 차례 급제했던 천재 율곡 이였기에 가능 했었기도 하겠지만 용기 있는 젊은 선비를 아끼는 퇴계 선생의 마음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만남과 시간입니다.

 

퇴계는 이이와의 만남 후 ‘이이의 학문과 문장도 훌륭하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합니다. 그만큼 후진을 아끼고 사랑하며, 후학양성을 중요시하였기에  죽기 한달 전까지 강론을 쉬지 않았던 퇴계.

 

아랫사람이나 제자들에게도 항상 공손한 말씨를 사용하고 예의를 지켰으며,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한 까닭은 사화로 어지럽던 시대적 상황과 학문에 대한 열정도 있었지만 한 고을을 다스릴 만한 벼슬에 머무르라는 어머니의 뜻을 지키고자 하는 효성.

재물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학문과 유학의 근본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퇴계.

그런 퇴계를 존경의 마음으로 조선 사대부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붓을 놓지 않겠다'며 평생 그림에 매달린 겸재가 만년에 그려낸 <계상정거도> 

 

앞으로 많은 분들이 천 원 지폐에 그려진 <계상정거도>를 보면서 돈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마음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6 . 2 . 15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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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사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나온 지 2년이 넘었다.

나는 강준만의 글을 잘 읽지 않았는데, 서울대 죽이기, 노무현 죽이기 등의 논리는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 마디로 그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언론 공부를 하는 교수다 보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을 낸 이유는 1장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1장은 민주당을 버리고 나간 열린우리당 니놈들, 잘 되나 두고 보자... 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열우당은 잘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건 민주당을 버려서가 아니라, 그놈들의 출신이 그랬기 때문일게다.
내 생각에, 1장은 강준만의 오버였다고 생각한다.
헐리우드 액션! 경고 1회!!!

난 이 책의 2,3장이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그건, 강교수의 본령이 언론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강준만의 생각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그리고 한국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오버> 액션의 현장은 그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아이를 안 낳는 저 출산율 문제와, 급속한 노령 사회에 대한 준비의 부족.
세계적인 사교육비 지출국가로서의 교육 문제.
건강한 국가 에너지를 창출하지 못하는 구태 의연한 정치.
세계화에 발목잡힐 수밖에 없는 낡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어느 하나 만만한 것 없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버 액션> 하면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평범한 몸짓으로 살기 어려운 사회. 강준만은 그걸 읽어낸 것이다.

사회에서 아무 것도 담보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이도 못 낳고, 늙어도 연금이 없어 헤매고 있으며, 노후를 생각해서 연금보험이 날개를 단다.
내 아이는 잘 가르치기 위해서 사교육에 목을 매고, 기러기 아빠는 시들어 간다.
원정가서 출산을 하며, 조기교육과 조기유학, 전국민의 영재화에 엄마들은 생사를 건다.
오후 4,5시면 아파트 놀이터엔 석양의 그림자만 가득하고, 아파트 길목엔 학원 승합차로 길이 메인다.
정치가들은 날마다 개혁을 부르짖지만, 아직 진정한 개혁의 청사진을 이야기한 사람은 나올 기미가 없다.

날마다 오버고, 모두가 오버다.

여기 강준만의 존재 가치가 있다.

오버하는 사람에겐, "야, 너 엄청 오버해!"하고 용감한 말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스로 오버함을 깨닫고 덜 오버하려고, 좀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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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으랴... 하는 생각을 한 지 오래 되었다.

그렇지만, 한 해가 시작되고 마무리될 때, 새로운 감회를 갖는 것이 꼭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학교는 3월이 새 학년도의 시작이다.

올해는 어떤 책들을 읽어 볼까...

상담 심리 책도 읽고 싶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학 작품과, 교육 관련 도서도 읽어야 겠고,
틈틈이 가벼운 글들도 읽고, 무거운 글들도 읽고 싶다.
박노자, 홍세화 류의 시대를 읽는 글들도 읽어야 하겠고...

알라딘 서재에 읽은 책의 리뷰를 모두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써 보려고 노력한다.

00년 1권
01년 9권
02년 34권
03년 161권
04년 119권
05년 374권
06년 31권으로 지금까지 729권의 리뷰를 올린 셈이다.

올해도 앞으로 270권 정도 읽을 수 있을까?

하루 한 권 정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올해의 목표. 연말까지 1000권 넘기기로 삼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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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에는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
리뷰만 374니까.....안 올리신 것도 있다니...
읽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신가 봐요..

글샘 2006-02-1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속도는 책읽는 양에 비례해서 느는 것 같습니다.
속도가 느리면 꼼꼼하게 읽을 책도, 속도를 내면 건성건성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올해는 천천히 좀 읽으려고 합니다.

프레이야 2006-02-16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읽고 싶네요. ^^

해콩 2006-02-1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저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그나마 리뷰도 안(못)쓰고.. 참으로 대단하셔요. 그러니 이 시간까지 깨어있으신...

글샘 2006-02-1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네. 꼭꼭 씹어서 읽는 것이 필요한 책도 있잖아요.
해콩님... 전혀 대단할 게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읽는 것 같아요. ㅎㅎ

글샘 2006-11-0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현재까지 342권을 리뷰를 올렸다. 아직 60일 정도 올해가 남았으니, 400권 가까이 읽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