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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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황석영의 객지가 갖는 무게는 밑바닥 인생들을 통한 인생의 씁쓸한 맛,
그러나 백화가 이점례가 되는 순간의 정념같은 들척지그리한 그 맛을 느끼게 한 그것이라면,

그의 장길산은 민중의 역동성과 역사의 비정함의 피비린내를 느끼게 하는 그것이었다.

이적지의 소설들이 느끼게 한 맛이 비교적 명쾌한 그것이라면,

이 소설은 황석영이 읊었던 불후의 명작, 한국에서 서사시로서의 마지막 노래인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에서 가졌던 5월의 낙인을 곱씹는 80년대 전체를 통찰하려는 <반추>의 소설이라고 하겠다.

소의 되새김을 인간은 느낄 수 없다.
사람은 위가 하나밖에 없어서, 일단 위에 들어간 모든 것은 pH2의 산도에서 시큼하게 소화되기 시작하고,
그 시큼한 맛을 기억하는 인간으로서는,
소의 되새김을 불쾌한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인데...

아직도 단죄하지 못하고,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70, 80년대의 핏빛 5월은 황석영에게 오래된 전설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나 보다.

역사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운동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잘 어울려 비빔밥이 되었는데,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난히 한윤희란 재료가 혀에 자꾸 밟힌다.
비빔밥에 골고루 섞이지 못하고 자꾸 입안에서 겉도는 건 왜일까...
한윤희를 생각하면, 그의 가족사와 연관지은 낭만적 순정은 '빨치산의 딸'보다 왜 진실성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 지식인의 노동 현장 투입이랄지,
광주를 껴안고 살아가는 <영원한 현재형>의 사람들 같은 기록은 광주에 대한 투철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서의 기록자인 저자의 소설이 필연적으로 갖출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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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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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사소절]

 

해는 묘시에 떠서 유시에 진다.

그 사이에 책을 읽지 않고 마음을 거두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마주하지도 않고,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망녕된 생각이나 하며,

비스듬히 기대 앉거나 벌렁 드러눕고, 바둑두고 장기 두거나 미친 놈처럼 술에 취하고,

한낮에 잠이나 퍼잔다면, 여유럽게 스스로 즐거워한다 할 만하다.

밤에 자다가 깨어 어제 내가 한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을 갖추지 못함이 마치 몸에 마비가 와 거동이 불편한 반신불수나 다름이 없다.

반나절을 허랑하게 보내는 것은 비유하자면 상란을 만나 결혼할 시기를 놓치는 것이나,

홍수나 가뭄으로 씨 뿌리고 거둘 때가 어긋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상란과 홍수나 가뭄이야 어찌 내 스스로 한 것이겠는가?

 

정민 선생의 '죽비 소리'라는 책에서 내가 스크랩해 두었던 글이다.

이덕무의 <하루>라는 글. 마치 수도자처럼 서늘한 정신이 느껴진다.

 

책만 보는 바보, 그가 이덕무라는데 나는 너무 안심이 된다.

조선 후기, 그 역동의 시기에 어찌할 줄 모르고 동료들과 토론으로 밤을 새우던 그 분들의 형상화가 정겹기 그지없다.

 

사람을 홀리려면, 세 가지를 하라고 했다.

첫째, 조명을 활용하고,

둘째, 음악을 활용하고,

셋째, 화장을 하라고...

간서치를 통해서 본 책읽는 광경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졌다.

창호지를 비쳐 들어온 은은한 조명과,

간결한 그 음악적인 글맛과,

사나이들의 굵직굵직한 만남의 선은 화장발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시원시원하다.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 테지만,(6학년 1학기가 되어야 국사를 배우니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읽거나 성인이 읽어도 참 멋진 책이리라 생각한다.

책에 대한 취향도 개인차가 크지만,

이 책처럼 어렵지 않고, 은근한 <한국의 멋>이 있고,

시대에 따른 고뇌까지 품은 멋진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방학을 이용해 동화를 사주고 싶은 사람이나,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산다면 후회없을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만나는 또 하나의 <덤>은 그림같지 않은 그림이다.

처음엔 그림이라고 보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에,

매혹적인 붓선으로 그려낸 멋진 그림들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는,

그림만 다시 훑어보기도 했을 정도로 그림에 매혹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을 보고 싶어, 도서관에서 빌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산 것에 대해서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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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답을 알고 있다 2
에모토 마사루 지음, 양억관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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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고 신비롭게 생각했는데, 그 2권을 만났다.

물이 이루는 육각형의 결정이 그럴 양이면,

사람을 이루는 70%가 물인데, 행복하고 희망찬 말을 듣는다면 온 몸의 물들이 반응할 거 아닌가 말이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섬찟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말을 들려주면 명확한 육각형으로 결정을 이루고,
저주의 말을 듣게 되거나 오염된 물은 검은 비정형을 보인다.

경쟁이 육각형 모습을 띤 것은 독특했다.

경쟁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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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1-0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편에 너무 실망해서 2편은 아예 보지도 않았어요. 별 한 개도 아깝다고 투덜거리며 야박하게 매겨서 리뷰 올린 기억나네요. 제 리뷰 중에서 유일하게 한 개짜리 책이었습니다...

글샘 2006-01-0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참, 거짓을 떠나서,
삶의 진실한 한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ㅎㅎ 진주님께서 별 한 개를 주신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조선희의 힐링 포토 -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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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 제목치곤 좀 거창했다. 힐링 포토.

사진을 보는 것으로 얼마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나... 했는데, 조금은 인정.

그 배경은 인도이기도 하고, 뉴욕이기도 하며, 한국이기도 하고, 나일강이기도 하다.

쌍둥이 자매의 같은 얼굴, 다른 표정도 재미있고, 물에 비친 햇빛도 너그럽다.

서점에 푹퍼져 앉아서 이런 책을 사각사각 넘기는 재미는 쏠쏠하다.

마음의 평안을 조금은 찾을 수 있을 법하다.

그 사막과 대자연의 일렁임의 무늬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길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길이 되었듯이,
희망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다 보면 희망이 된다는 말처럼,
사진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부자가 아니라서, 책을 사서 가지고 싶긴 하지만 갖긴 어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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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1-1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이 사진집을 사서 주었어요. 크게 감명깊어하진 않더군요^^ 조선희의 글과 사진이 어딘지 동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구요. 하지만 제목처럼 치유의 목적은 어느정도 달성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냥 아무곳에서부터 펼쳐보다가 덮어두었다가 그러고 있습니다. 방학이지만 여전히 바쁘시겠네요^^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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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가족... 제목만 보고는 유랑 극단을 떠올렸더랬다.
공선옥의 작품인 것을 보고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빌려왔다.

가족 해체의 시대.
21세기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경제 파탄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고,
농촌 총각은 연변 아가씨(라고 착각한 아줌마)와 결혼도 하지만, 이 아줌마 출신 아가씨는 또 도망가고,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서 눈물로 삐뚤어져 가고,
아이들 입에선 그저, 씨바, 욕밖에 안 나온다.

연작 소설의 형태여서, 여러 인물들이 바라본 시선이 다면적으로 조명되기도 하지만,
산만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20세기 절대적인 폭력의 굴레에서 <민중 문학>, <노동자 문학>이 득세했던 반면,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로 지표를 잃은 소설은 주제 없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격랑했는데,
공선옥은 아직도 <사람 냄새>를 맡아서 그 밑바닥을 끝없이 더듬거리는 촉수를 놓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휩쓸어 버리는 21세기.
그저 '돈' 하나만이 <신>이 되어버린 세기.
모든 가치관이 하나로 통일된 비극의 세기를 살아가는,
그것도 살맛나게 살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군상들의 더께앉은 눈물 속을,
이미 눈물도 말라버려 버짐핀 얼굴 아래 고통으로 얼룽이는 눈물 얼룩을
공선옥은 쓰다듬어 준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꼭 이런 건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끼린 가슴으로 안다.
공선옥은 이 아픔을 알기에, 형상화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많이 아프다.
갓난 아기부터, 꼬마, 어린이, 청소년(청-개구리라서 청-소년이란다.), 과부, 홀아비, 늙은이, 농부...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은 득시글거리는데, 과연 꽃보다 아름다운지...

조선 시대엔 4궁이란 게 있었단다. 환, 과, 고, 독.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 노인... 이런 순으로 불쌍하단 것인데,
공동체가 붕괴된 21세기 한국엔 오로지 '경쟁, 경쟁, 경쟁', '돈, 돈, 돈' 같은 구호만 울릴 뿐,
사람은 상실되어 버린 지 오래다.
여기 사랑도 같이 상실되어 버리고 만 소설 하나 유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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