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간의 우화 여행 70일간의 여행 시리즈 3
박광수 지음 / 새터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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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여자를 찝적거리다가 못생겼으면 이런 소릴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이 책은 십년 정도 전에 ** 여행 시리즈가 유행할 때에 나왔던 책이다. 그 당시엔 책 사는 데 그렇게 돈을 많이 투자하지 못했고, 학교 도서관엔 아주 인색하던 시절이었고, 서울에 살았건만, 동네에 도서관은 없었다. 이런 가벼운 책은 읽지 못하던 시절...

어느 반 교실에 주인 없이 이 책이 뒹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도서실에서 빌려왔던 책을 반납하지 않고 뒹굴리던 책. 우연의 이름으로 날 찾아 왔으리라.

짤막한 이야기가 70편 실려 있다.
70일이면 하루 한 편씩 읽는다면 10주의 코스다.
그 코스를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명상에 잠긴다면 도를 통하고도 남을지 모를 기간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하루에 30분 정도,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텔레비전에서 살을 빼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고요히 명상에 잠긴다면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 아침부터는 꼭 실천에 옮길 법도 한데...
아침에 추워서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우리 식군 아침잠이 많아 나 혼자 일찍 일어난다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얻기 쉬운 일이다. 조용히 혼자 거실로 나와 볼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이야기는 "그래요?"만 하던 선사다.
덕이 높은 선사가 있었다. 마을의 처녀가 애를 배서 애비가 누구냐 물었더니, 마지 못해 선사라고 둘러댔다. 처녀의 아비가 선사에게 마구 욕을 퍼 붓자, "그래요?"하고 대꾸했단다. 마침내 처녀가 아기를 낳아서 기를 수 없자 선사에게 기르라고 가져다 버렸다. 그랬더니 선사는 다시 "그래요?"라고 했다. 나중에 처녀는 죄책감을 못이기고 실토하였고, 아비와 같이 선사에게 죄를 빌었단다. 선사의 말. "그래요?"

명상이란, 나를 찾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에 관심을 두는 것 말이다.
게을러서 나에 관심을 둘 시간 갖지 못하면서, 디립다 읽기만 하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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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2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김광자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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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란 뜻이라는데,

이번에 채점 들어가서 해질 무렵 저녁을 먹고는 저물어가는 남한강을 보며 기탄잘리를 읽었다.
누가 나에게 하느님께 바칠 것을 내 놓으라고 한다면, 한 톨의 티끌도 없이 바칠 수 있을까?

불우이웃 돕기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행위가 아니었는데...

그의 경건한 어조와 고요한 마음은 오직 드리기만 하는 마음을 잘 나타낸다.

기탄잘리를 읽으면서 한용운을 떠올리는 것은 한용운이 그만큼 나에게 친숙하기 때문이요,
기탄잘리가 또 그만큼 한용운에게 친숙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기탄잘리같은 시를 우리 말로 읽는 것보다,
타고르가 쓴 그 말로, 그 보드라운 언어로 읽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글일 것인가.

일본어 공부 10년 한 것을 별로 써먹을 기회가 없다가도,
간혹 일본어로 된 간단한 시를 일본어로 읽으면서 깜짝 깨닫는 순간을 느끼고는
원어로 시를 읽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많이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란 것을 알게 된다.
아침이면 따뜻한 이불 속을 그릴 것이 아니라, 우주와 나를 생각할 시간을 즐겁게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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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2-1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암사에서 나온 걸로 읽었는데...
나는 신의 입김에 의해 불리워지는 악기...
신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없이 나를 통과하도록
나의 집착과 아상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논술.토론.교양의 심화를 위한 43개의 주제와 43명의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8
김용석.이재민.표정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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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면 소위 교양과목이란 것이 있다. 전공과목과 상대적으로 쓰는 말이다. 대학 2학년부터 전공을 주로 배운다면, 1학년에서 배우는 것을 교양과정이란 말로 쓰기도 한다.

그럼 교양이란 무엇일까? 표준어 규정에도 명확히(?) 규정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란 교양.

이 책은 급조된 느낌과 얄팍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야말로 대학 생활을 맘껏 놀면서 즐기라는 과정이 '교양 과정'인 것처럼 착각하고 대학 생활을 했던 내 과거처럼, 지식을 가볍게 얄팍하게 건드리면서 돌아다니는 독서 행위가 교양인 것처럼 착각하게 할 수도 있단 기분으로 읽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퇴계와 고봉>의 대화를 읽고 싶어 졌고, 히딩크가 말한 대로 <기초가 중요하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을 읽으면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황교수의 문제를 생각했다. 임용고시 채점 들어가서 틈나는대로 읽으면서, 인문학이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이 문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철저하게 인간을 사적 개인으로만 설정하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공적 영역에서 자본과 권력의 지배를 정당화시킨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이 사회가 오로지 '경쟁, 경쟁'으로만 치닫는, 단 하나의 원리에 따르는 <생지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시험은 대학 입학 시험인데 주관식으로 쓰는 시험이다. 백지에 쓰게 만드는 시험으로 대학을 가게 만드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사고력과 논리력, 글쓰는 힘까지 가르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처럼 얄팍한 수능 하나 봐서 대학가는 경우엔 사실 교양이 있을 필요가 별로 없다.
더군다나 작년이나 올해처럼 언어 영역이 애들 장난처럼 나는 경우엔, 교양이 많은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싸구려 영어 실력이나 좀 기르고, 인터넷에서 쌈박하게 정리해주는 탐구과목 좀 잘 하면, 언어는 그저 시험치는 날만 열심히 읽으면 좋은 성적 얻게 되어 있다.

시험에서 복수 정답이 한 번 나왔다고 대학 시험을 이렇게 장난치듯이 내는 나라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란 것인지, 말란 것인지...

대학에서 논술을 치르는 꼬락서니는 더욱 가관이다.
논술을 치른다고 한들, 과연 그것을 채점할 수 있는 교수나 교사 집단이 객관적으로 있을 수 있기나 한 것인지...

그렇지만, 형식적으로 논술을 치른다고 하니, 아이들은 칠삭팔삭 뛸 수밖에 없다.
알라딘 바탕화면에도 논술 교재가 주루룩 나열되어 있다.
안 읽는 것보담은 읽는 것이 낫겠지만, 역시 독서의 힘은 <독서력 讀書歷>에 있다.
어떤 책을 얼마나 읽어 왔느냐가 그 사람의 독서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책읽지 않고 논술 준비한다는 것에 대해서 난 비웃음을 보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이면서 약일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책을 통해서 독서의 앞길을 제시받을 수도 있으며,
이런 얄팍한 책이 독서의 앞날을 가로막을 수도 있기에...

더 공부할 문제라는 논술 거리 제시 의도는 좋았는데, 거기 번호 붙여논 꼬라지라니...
휴머니스트, 실망이야.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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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12-2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용고사, 사법시험 이라고 합니다.
고시는 행정고시, 입법고시, 외무고시 이렇게 합격하면 공직에 임용되는 시험이 고시라고 합니다. 리뷰하고 아무 상관 없는 얘기이긴 하는데 다들 모든 시험에 '고시'라고들 하셔서...

글샘 2005-12-2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글게요. 교육은 사실 행정부에서 월급은 받지만, 행정부에 속한 공무원이라고 보기엔 어려운데 말입니다. 암튼 신분은 공무원 신분이고, 요즘 워낙 시험이 어려워서리 다들 고시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요즘 공무원 시험준비하는 분들이 정말 힘든 경쟁 속에서 고생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슬픈 현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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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하얀 가면'은 서문에 밝힌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이 글을 밝힌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가면을 쓴 그들. <그들>의 정체는 알기 어렵다.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특히 우리처럼 살색 누리팅팅한 인종에겐 <백색 가면>의 정체는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그 백색 가면을 존경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씹는 것을 옥시덴탈리즘이라고 하고, 백색 가면들이 유색 인종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 한다.

요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폭동이 유행이다. 젊은 여성이 중동 출신 남성 위에 올라타고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백호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유색인종은 너희네 땅으로 가라고 하면서...

무서운 세상이다.
고은 선생이 노벨상 타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얼마나 큰 역설이냔 말이다.
우리의 것, 우리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시들을 구슬처럼 엮어내신 선생이, 서양놈들이 다이너마이트 만든 돈으로 주는 화약냄새 나는 상을 못 받았다고 실망하는 것처럼 웃기는 이야기도 없지 않은가.

보수꼴통 도스도예프스키는 존경하면서, 살티코프 시체드린(시체? 난 첨 듣는 이름인걸)에 대해 모른다는 이야기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 신선하다. 제정 러시아 관료층의 위선, 아첨, 철저한 인간성의 말살을 풍자한다는 살티코프가 읽고 싶어 졌다.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 그리고 돌대가리들(스톤 헤드)이라 스스로 일컫는 폭력집단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흑인들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에 비해 <비교적 하얀 가면>을 쓴 한국 제국 말이다.

같은 살빛을 가진 종족인데도, 황우석의 연구 태도를, 의혹에 싸인 문제를 풀어가는 그의 허풍만점인 자세를 비판하는 사람을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빨갱이>로 몰아 붙이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자세는 <가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에서 <하얀 가면> 뿐 아닌 <비교적 하얀 가면>, 또는 <빨갱이를 싫어하는 가면>들의 집합은 얼마나 명확하게 선이 그어지는가 말이다.

박노자를 읽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세상 어디나 있는 비리와 부조리를 낱낱이 까발리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천국>은 어디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박노자를 미적거리면서라도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부정직한 나를 스스로 일깨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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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 사람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나
문화영 지음 / 수선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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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난 책인지 우리 집 서가에 한 일년 얹혀 있었다. 그 동안 명상 서적, 요가나 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빌려다 읽었건만, 막상 손만 뻗으면 될 이 책에 눈길을 안 둔 것은 나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고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들고 욕탕으로 들어갔는데...

제목 <무심>에 비해선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나... 하는 부제를 달았는데, 이 글을 풀고있는 저자는 도무지 '한 생각' 얻었다고 볼 수도 없었고(수준 낮은 나의 판단이지만), 사람들에게 뭔가를 자꾸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몇 권 안 되는 명상 서적들은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이 책을 내가 골라 읽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내게로 왔다는 느낌.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

감명 깊은 명상 서적들은 우주의 진리에 대해,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해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도 여느 명상 서적들과 유사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리고 명상이 별 것인가. 마음 비우는 것. 무심해 지는 것이 소중하단 것 깨달으면 명상이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아직도 욕심이 많구나... 이런 느낌이 계속 든다.
명상 관련 서적들을 줄줄이 엮어낸 노력을 크게 사 줄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욕심일 수도 있다.
틱 낫한 스님도 책을 참 많이 만들지만, 그 분의 글에선 욕심이 한 점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글에선 왠지 세속의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틱 낫한 스님도 플럼 빌리지란 명상 센터를 운영하시고, 이 글의 저자도 명상 센터를 운영한다.
그런데 왜 이 저자의 글에선 장사꾼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일까?
틱 낫한 스님의 글에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반면,
왜 이 글의 명상은 가진 자들의 명상이란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인지...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 글의 저자는 명상 센터보담은 글에서 드러낸대로 <카페 마담>이 더 어울릴 성 싶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의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쓰기가 뭣하지만,
책을 읽은 느낌을 상세하게 적어서 이 책을 살지 말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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