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밖에 살던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그 곳이 멀지 않다. 그 곳은 우리 사는 곳이고, 우리가 죽을 곳이다.

그곳이 멀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느 기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수녀님은 무어라고 기도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고개 숙이며 “저는 듣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수녀님이 들을 때, 하느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번에도 그녀는 “그분도 들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을 중시하라고,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인데,

입으로 쏟아내는 것은 홍수인데, 귀로 듣는 일엔 경솔하고 가볍지 않았던가.

돌이켜 볼 일이다. 입을 닫을 일이다.

나희덕의 시는 조용하다. 포도줏빛, 탱잣잎... 조용히 바라보고, 조용히 쓴다.

참 가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시집이다.

간혹 뜨거운 시대를 산 흔적도 남아 있지만, 대체로 투명하고 조용하다.

조용한 시 두 편, 조용히 적어 본다.


사랑


피 흘리지 않았는데

뒤돌아 보니

하얀 눈 위로

상처입은 짐승의

발자욱이

나를 따라온다.


저 발자국

내 속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와

한 마리 짐승을 키우리


눈 녹으면

그제야

몸 눕힐 양지를

찾아 떠나리



  부패의 힘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힌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그리고 저 너머에 - 아직도 가야 할 길 그리고 저 너머에
M. 스캇 펙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아직도 가야할 길>과 <거짓의 사람들>을 읽으면서 스캇 펙의 글에 재미를 붙였더랬는데,
그래서 그의 글이 갖는 찰진 맛을 느끼려 했는데,
이 책에선 전혀 그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명쾌하게 떨어지는 생각을 맛보고 싶었는데, 종합 선물 세트를 펼친 기분이다.
결국 1/3쯤 읽다가 술렁술렁 넘기면서 색도가 다른 부분만 읽게 된 책.

애초에 종교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더라면 조금 더 실망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자기에게 침잠하는 신경증(노이로제)과,
만나는 사람마다 화를 내는 성격 장애자들에 대한 탁견을 가진 스캇 펙의 신앙적 접근은,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이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고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겐, 반드시 목차를 찬찬히 살핀 다음에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아름다운 상처
애니 G. 로저스 지음, 권혜경 옮김 / 권혜경음악치료센터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트라우마 trauma란 말이 있다. 심리적 외상이라고 해석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이 상담 치료자와 자폐증 어린이의 이야기를 적은 책이라서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빌렸는데, 읽으면서는 재미보다 무서워졌다.

애니라는 치료사(저자)는 자기 내에서 해결되지 못한 무의식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폐 어린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치료자의 의식 세계로 역전이되었다는 이야기다.
유아기의 버려진 경험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아이와, 그 치료자 애느가 자신의 과거 문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상처없는 영혼은 없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접촉해야하는 직업의 경우엔 상처있는 영혼이 갖게되는 부담감을 더욱 크다.

그래서 사람을 다루는 직업, 교직이나 성직자, 의사를 천직이라고 일컫곤 한다.

그렇지만, 그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름대로 얼마나 큰 고통을 갖고 살고 있는지를...

어린이들의 상처를 돌보는 선생님이라면 비교적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교가 행복하고, 수업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환자의 고통을 살피는 의사라면 마찬가지 안정적 근무와 심리 상태가 필요하다.
갖가지 제도들은 의사가 의료 행위를 적극적으로 펼치는데 얼마나 장애를 주는 것인지 아름다운 동행 같은 책에 잘 드러난다.

가화만사성이란 구태의연한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해야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진리를 담고 있기에 집집마다 현판으로 걸어 놓았나 했는데, 살다 보니 그야말로 만고의 진리다.

집안이 편안해야 마음이 편안하고, 그래야 학생도 공부를 할 것이고, 직장인도 일이 손에 잡힐 것이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며, 무슨 일을 하겠는가 말이다.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를 빠지고, 지각을 하는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귀찮아서 "그냥 늦잠 잤어요."하고 한다.
그렇지만, 난 아이들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캐묻지 못한다.
열 일곱의 나이에 벌써 사회가 각인시킨 상처를 깊게 새긴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느끼기 때문이다.

사회가 입힌 상처, 빈곤과 그 빈곤의 악순환과, 빈익빈의 유전...
실업계 아이들을 만나고 이런 것들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요즘 부쩍 내 어린 시절의 가난이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상처를 밝히고 치료하려는 목적의 상담까지 가지 못할 바에는,
알고도 모른 체, 한 눈 감고 있는 법도 어렵지만 필요한 <중도>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루함을 많이 느꼈다. 중간에 오타도 제법 보이는데, 번역에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아마 번역 이전에 글 자체가 좀 지루했을 것 같다. 처음에 벤을 치료할 때는 조금 흥미가 있었는데, 애니 자신이 환자가 되면서는 글이 너무 산만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노독일처
정태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정태춘이 시인인가?
글고, 노독일처 老獨一處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서 집어본 시집.

안 그래도 날씨마저 뜨뜻해서 같잖은 겨울에 쌀시장 개방으로 전국 농촌이 쑥대밭인데,
정태춘의 시들을 읽으며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고, 그의 시가 뜨겁게 다가왔다.

70년대 후반이던가, 촛불이란 노래로 조용히 다가온 음유 시인, 정태춘.
박은옥과 같이 낸, 사랑하는 이에게, 봉숭아 같은 노래는 나의 청춘기에 사랑에 대한 갈망을 일깨워준 노래이기도 하다.
대학생이던 시절, 매일 맞닥드리는 딱정벌레같던 전경들과 등돌리고 소줏집에서 깡소주를 들이키며 불렀던 '떠나가는 배'도 잊을 수 없다.

그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집회 장소에 나타나서 노랠 부르곤 했다는 소문은 들었더랬는데,

이 시집을 보니, 정말 민중 시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노래부르던 음유 시인이, 그 세상에 동화 되어 가장 슬픈 자리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집을 낸 것이다.

80년대 유행했던 민중시, 저항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지만, 정태춘의 시는 시라기보다는 그대로의 <말>이고, <생각>이다.

가진 자들은 저희들끼리 통하는 메시지로 놀고들 앉았는 이 척박한 나라에서,
지방도로 작은 휴게소에 쉬고 있는 트럭 찬장에서 뽀뽀하고 있는 아빠와 딸의 사진을 바라보고,
미국이 전투기지로 쓰고 있는 남한땅에서,
가난한 농투산이의 목소리를, 그러나 결코 나약하지 않은 목소리를 그는 내고 있다.

뜻밖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뜻밖에 뜻맞는 사람을 만났다. 뜻밖에 속시원한 책을 만났다.
그러나, 속은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 답답할 따름. 그렇지만 답답한 속에 한 잔 소주와도 같은 시집.

국가는 국민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해주지 않았는데(쌀 개방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은 국익을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난리들인 이 나라.
그는 <노독일처>란 뜻도 모를 쭝국집에 앉아서, 쭝국 지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그의 시를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데로 가 버리고 싶었다.)

거기서 내가
어느 나라 국기에도 경례하지 않고
어느 나라 국가를 따라 부르지도 않고
그래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고

우린 여기서 너무 잘못 살고 있어
세상은 잘못 가고 있어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이
이렇게 강력했던 적은 없어
물샐틈없는 사회조직과
획일적인 이데올로기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거기 어디쯤
국가란 것도 없고, 정부란 것도 없고, 자본이나 그 하수인,
인간의 대표란 것들도 없는
그런
사람 세상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
권력이 사람들을 '국민'이라 부르며
택도 없는 애국심과
개인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더 이상의 폭력도 없는
그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11-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만나는 책입니다. 보관함에 넣었어요

달팽이 2005-11-2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태춘의 시집이라...저도 보관함으로..
댓글저장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너에게
알베르 자카르 지음, 김주열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지은이 알베르 자카르는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생물학자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의 인문학적 배경을 너무너무 부러워했다.

요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국익' 논쟁이 한창이다.
네티즌의 90% 이상이 황교수를 지지한단다.
PD 수첩을 난 보지 않았지만, 일반인의 대응을 볼 때 상당히 객관적이었던 모양이다.
국익을 생각해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난 좀 난감하다.

지금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식민지와 독재 개발 시대를 갓 벗어난 '세뇌' 상태 그대로다.
빨간 색만 보면 부르르 떨던 습관은 조금 벗었지만(월드컵 덕분에),
아직도 북한에 호의적인 발언은 큰일난다.
APEC 반대하면 바로 빨갱이고,
전교조도 아직 빨갱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세뇌당한 상태에서) 이 땅에 태어났다'는 명제를 1968년 12월 5일부터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진, 졸업식장에서 교감들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고 그랬었다.

민족 중흥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친일파를 그대로 살려 두는 것도 그 일환이었고,
일제 부역 순사들이 그대로 경찰 고위직이 된 것도 민족 중흥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앞잡이들이 정권을 잡은 것도 민족 중흥이 목적이었고,
군인들이 폭정을 가한 것도 그런 목적이라고 역사를 날조해 왔던 것이다.

그런 한국 국민들에게 '우리는'을 벗어난 사고를 하기는 정말 어렵다.
우리는... 하는 무의식적 집단적 광기에 매인 무의식은 이성적,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왕따시키기 십상이다.

난 속내를 알지 못하지만, 황교수 사태를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과학이 세계적으로 발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질병의 연구에 가장 어려운 점인 생체 실험은 분명 큰 돈이 될 것이긴 하다.
암을 정복해야 하고, 에이즈를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선 말이다.

민족 중흥을 위해서라면 윤리 정도는 우선 순위가 축 쳐저있는 한국에서 그런 실험이 적절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돈 되는 사업인데, 한국보다 과학 수준이 훨씬 발달한 나라들이 아직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가 아닐까?

원자 폭탄을 만들었던 최첨단 과학자들이 자기들의 연구에 통석의 한을 머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알베르 자카르의 책은 과학을 소재로 하지만, 그 사고는 정말 철학적이고, 인간의 인식에 다른 지평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아들에게 주려고 매일 일기 형식으로 책을 만드는데,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얄팍한 처세술이나 전해주는 책이 아니었다.

이 과학자가 바라보는 과학은 정말 <윤리적>이고 <세계 시민>의 입장의 시각이다.

자유주의 시장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씨앗은 농민들을 정말 편하게 만든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튼튼하게 자라는 벼를 개발하는 유전자 조작.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 이 벼들은 다음 해엔 씨앗을 맺지 못한다는 것.
결국 핵심 기술은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

매일 우리 농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언론은 걱정이 많아 보이지만,
정말 농민의 입장에서 걱정하는 철학자는, 과학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는 이유는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당장 쓸 수 있는 예비 식량은 있지만,
지역간 분쟁으로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 기아는 농업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여주는 과학자가 우리 곁엔 왜 없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민주 노동당이 처절하게 반대하고,
농민들이 탄압받는 현실에서,
내년이면 들어오게 될 외국쌀 앞에서,
도시에 사는 80%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불편만을 생각하며 집회에 불만을 표시한다.

지금의 쌀 개방 비준 반대는 농업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임을 간과하고 말이다.

황우석 교수 파동도 알고 보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임이 드러날 것인데...

우리는 민족 중흥의 이름으로 washing된 brain으로(씻어진 뇌, 세뇌) 굳이 그것들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위안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사회에 대한 통찰로 똘똘 뭉친 <교양> 서적 한 권, 강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