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놓은 스타킹

                                   나 희 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 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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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아이들 - 외눈박이 세상에서 장애아와 살아가는 부모들의 이야기
게르다 윤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뭐 이 정도 속담이었던 것 같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다... 이런 말이다. 일견 이 말은 옳아 보인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들으면서 편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유태인들을 저질 인종이라고 청소하던 나치들에게(독일어로 Nation 나치온은 국가란 뜻이다. 그만큼 국수주의는 무서운 것이다.) 장애인들은 마찬가지 청소 대상으로 보였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가스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지게 된 부모들이 쓴 가슴 에이는 경험담들이 2/3가량 적혀 있다. 11명의 아이들은 앞을 못 보기도 하고, 다운 증후군을 갖고 있기도 하다. 뇌성마비이기도 하고 말을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 아이들은 가족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병신>으로 다르게 보았고, 그 가족마저 뭔가 다른 것으로 대우받았다. 사회, 경제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 뿐 아니라 그 형제와 부모까지도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경험담은 장애아를 가진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에 기록된 선진국 독일의 형편이 그러했으니, 복지 후진국인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을 심화시키는 상처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변화해가야 하는 것인지를 이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장애란 타고난 것만 아니고, 삶의 과정에서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부정적 견해 역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삶의 길목에서 습득된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교정할 수도 있으며, 장애인들과 벗이 되어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적응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이의 장애를 감추지 말라.
아이가 장애를 가졌음을 전달하는 방식 역시 가족들의 용기를 잃게 해선 안 된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통합 교육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학교에서도 통합 교육의 미명하에 장애인들이 일반 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겪을 마음의 고통, 신체적 불편함,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 신체적 언어적 폭력은 온전히 장애인인 아이가 감수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학급의 담임이나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특수 학급 입급 대상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물론, 특수한 학생에게 몇 명의 정의감 넘치는 아이들을 친구로 붙여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더 아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다양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통합 교육인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정도가 개인차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현재의 특수 학급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일이십 년 전에 비한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단 것도 느껴지지만, 아직도 장애인이 세상을 자유롭게 활보하기엔 공기가 너무 차갑다.

몇 년 전 오아시스란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못생기고 뒤틀린 뇌성마비 <공주>를 진정한 인간으로 보았던 한 남자는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가게 된다. 오아시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문소리가 갑자기 장애가 풀려 예쁘게 웃는 장면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지금 비록 조금 우리와 다른 모습과 몸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은 온전한 사람들과 여실하다는 것을 그처럼 잘 나타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에게까지 장애인을 가졌다는 것은 <슬픔을 강요>당해야 할 현실로 오해받는 이 억압의 시대에, 이런 책들은 <질병>이란 객관적 환경을 <손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장애>에는 이미 사회적 편견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선 장애인 것이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선 장애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뇌성마비>라는 일그러진 형상을 환기하는 단어에 비하여 <뇌병변>이란 단어는 훨씬 객관적으로 그 <손상>만을 지적할 수 있듯이 말이다.

병을 가진 몸 자체가 <병신>이란 욕으로 통용되었고,
얼마 전엔 이런 병신들은 자손을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80% 이상의 '병신후보자'들이 응답한 사실은 아직도 <손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장애>를 차별하는 의식을 드러낸다.

한센씨 증후군(문둥병)으로 소록도에 감금되어있고, 일제 강점기 죽음에까지 이른 역사를 본다면,
내가 미래에 갖게 될는지도 모를 신체적 <손상>에 대하여
편견을 갖지 않도록, 편견을 극복하도록 이제는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 반의 특수학급 입급 대상 학생을 바라보고 친구들에게 가르칠 것이 명확해짐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사람들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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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11-2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고 하는군요. 워낙 영어가 짧아서...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택
앤디 앤드루스 지음, 서남희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란 책을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교사라면 특히 국어 교사라면 읽어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이런 책들을 생각보다 많이 읽기 때문이고, 독후감을 자주 써 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폰더씨보다는 좀 낫다고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앤드루스의 글에 실망이 크다. 폰더씨에서도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에 비해서 소설 형식의 이야기가 겉도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선 좀 더하단 생각이 든다.

뭔가 알듯 모를듯한 소재를 다룬 추리물 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실상 그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앤드루스씨, 좀더 내공을 기르시길...

이 글에서 작가가 <주제>라고 썼다고 생각해서 메모지에 적어놓았던 구절이,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에 보니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한편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음에 반가웠고, 한편 쓸데없이 적어 뒀던 것이 아쉽다.ㅎㅎ 그 말은 이런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변화를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어떤 변화를 만들지 결정하려면 선택을 해야돼.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선택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좀처럼 자신의 삶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려고 선택하질 않아.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야. 잃어버린 선택.

그래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요구를 한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뭔가 특별한 일을 하겠다고 서약하라.

우리 삶의 작은 동기가 특별한 일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나비 효과를 기대한다면.

그의 '나비 효과'에 대한 정의는 기억할 만 하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 그래서 마음 먹는 것이 중요하단 것이다.

마지막에 매단 아버지의 편지는 잠언집을 연상케 한다. 앤드루스의 어설픈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읽는 이유는 한 구석에 감춰둔 이런 잠언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 낭비는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었다.
지상에 너와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나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네 영혼, 네 생각과 느낌, 네 판단력, 이 모든 것은 너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네 두 눈은 위대한 작품이며, 어디에도 비할 데 없고, 온전히 너의 것인 영혼을 여는 창이다.
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너를 위해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네 이전에 있던 많은 사람들, 또는 네 뒤에 올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너를 만들었던 대로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다.

나는 너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었다.
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내가 선택한 사람의 심장을 통해 흐른다.
너를 특별하게 만든 그 진귀함은 단순한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운명의 급변으로 인한 것도 아니다.
나는 네가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너를 만들었다.
너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너의 선택 하나하나가,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 반대의 경우 또한 그러하다.
네가 하지 않는 선택 하나하나가, 네가 하지 않는 행동 하나하나가, 역시 그만큼 네 삶을 바꿀 것이다.
너의 행동들은 쌓아놓을 수도, 나중을 위해 남겨둘 수도,
골라서 쓰일 수도 없다.
바로 오늘 네가 시작한 일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나니,
네 손으로 수백만 명의 운명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또한 그러하다. 완전히 다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수백만 명의 운명이 변화될 것이다.
만약 네가 선택을 미룬다면...

너는 선택의 힘을 갖고 있다.
자유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네게는 행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졌지만,
선택은 오롯이 너만의 몫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 네가 시작한다면, 너의 선택은 현명할 것이다.

자, 가거라. 이제 다시는 무력감을 갖지 말아라.
네 선택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목적없이 양처럼 방황하지도 말고, 길을 잃지 말아다.

너는 힘이 있다. 너는 중요하다. 너는 네 자신을 발견했다.
너는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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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어 옮김 / 창비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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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 불꽃놀이를 본다고 제법 걸었더니 발이 아파서 잘 걷지를 못하겠다.
몸이 이렇게 시원찮다. 운동 부족이기도 하겠지만, 난 어려서부터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누구나 잘 하는 것이 있고, 못 하는 것이 있겠지만, 나에게 몸을 놀리는 것은 힘쓰는 것이나, 재주를 부리는 것이나, 균형을 잡는 것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책읽고 혼자 놀기는 내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장승순가 하는 청년이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책을 썼더랬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다.
나도 아직도 고스톱보다 책 읽기가 쉽다.

작년까지 대학원을 어쩌다가 다녔는데, 계속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대학이란 사회에 몸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교수들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학문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갖가지 외압에 적당히 춤추는 일이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날마다 책 읽기가 취미인 내게 이 책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나 개인적으로나, 교사직을 가진 직업인으로서나,
취미로 하는 독서이기도 하고, 전공을 공부하는 전문직의 일종이기도한 독서에 대해서...

이런 책의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나열만 해 두어서, 공부를 하기 전의 청소년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 좀 아쉬움이 남는다.

 

공자
공부는 특별한 것이 아니요. 일상생활 속에서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죽을 때까지 해나가는 것.
공부의 즐거움.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

장자
공부하는 사람은 뜻이 작거나 기가 가벼워서는 안된다.
뜻이 작으면 쉽게 만족하고, 쉽게 만족하면 발전이 없다.
또 기가 가벼우면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고, 배우지 않은 것을 배운 체한다.

정자
오늘날의 공부하는 사람은 산등성이를 오르는 것과 같아서
산 아래의 구불구불한 길에서는 활보를 하다가도 높은 곳에 이르면 물러선다.

암기 위주의 공부와 박식을 추구하는 공부는 물건을 갖고 노는 것과 같아 본심을 잃게 만든다.
한국 입시 교육의 문제점

주자
학문하는 것은 비유컨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먼저 몸체를 세우고, 그 다음에 속으로 들어가 벽을 만들어 견고하게 해야한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집을 크게 지을 줄 모르고 조그만 방이나 지으려 하기 때문에 일을 이루지 못한다.
공부는 선약을 구울 때처럼... 뜸을 들이듯이 해야한다. 많이 읽기를 탐하고 빨리 읽고자 해서는 안되며, 푹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공부는 푹 익은 데서 나오는 것이다.

왕양명
학문은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우쳐 주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는 못하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一當百)의 공부가 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우쳐 주어도 잘 안된다.

퇴계
학문은 거울을 닦듯이. 처음에는 표시나지 않지만, 꾸준히 하면 발전.

조식
그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보지 못했는가? 잠시라도 방심하면 멀리 떠내려가고 만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놓아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맹자)

홍대용
오늘날은 비록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년 내내 부지런히 힘쓰는 건 글줄이나 찾든가 이것저것 참조하여 고증하는 일에 불과하다. 차라리 실천은 그만둘지언정 오직 글을 널리 읽지 못할까하는 것만 걱정하고, 차라리 마음을 닦는 공부는 날로 황폐해질망정 오직 저술을 많이 못할까 하는 것만 걱정한다. 이런 까닭에 옛날의 학자는 책이 없는 것이 걱정이었고, 지금의 학자는 책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옛날에는 책이 없었는데도 훌륭하고 어진이가 배출되었지만, 지금은 책이 많은데도 인재가 날로 줄어드니, 이는 혹 고금의 운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까? 실은 책이 많은 까닭에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

고요히 앉는 것은 공부를 진전시키는 데에 가장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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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1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정자의 말에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