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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아이들 - 외눈박이 세상에서 장애아와 살아가는 부모들의 이야기
게르다 윤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뭐 이 정도 속담이었던 것 같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다... 이런 말이다. 일견 이 말은 옳아 보인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들으면서 편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유태인들을 저질 인종이라고 청소하던 나치들에게(독일어로 Nation 나치온은 국가란 뜻이다. 그만큼 국수주의는 무서운 것이다.) 장애인들은 마찬가지 청소 대상으로 보였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가스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지게 된 부모들이 쓴 가슴 에이는 경험담들이 2/3가량 적혀 있다. 11명의 아이들은 앞을 못 보기도 하고, 다운 증후군을 갖고 있기도 하다. 뇌성마비이기도 하고 말을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 아이들은 가족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병신>으로 다르게 보았고, 그 가족마저 뭔가 다른 것으로 대우받았다. 사회, 경제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 뿐 아니라 그 형제와 부모까지도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경험담은 장애아를 가진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에 기록된 선진국 독일의 형편이 그러했으니, 복지 후진국인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을 심화시키는 상처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변화해가야 하는 것인지를 이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장애란 타고난 것만 아니고, 삶의 과정에서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부정적 견해 역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삶의 길목에서 습득된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교정할 수도 있으며, 장애인들과 벗이 되어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적응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이의 장애를 감추지 말라.
아이가 장애를 가졌음을 전달하는 방식 역시 가족들의 용기를 잃게 해선 안 된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통합 교육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학교에서도 통합 교육의 미명하에 장애인들이 일반 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겪을 마음의 고통, 신체적 불편함,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 신체적 언어적 폭력은 온전히 장애인인 아이가 감수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학급의 담임이나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특수 학급 입급 대상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물론, 특수한 학생에게 몇 명의 정의감 넘치는 아이들을 친구로 붙여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더 아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다양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통합 교육인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정도가 개인차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현재의 특수 학급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일이십 년 전에 비한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단 것도 느껴지지만, 아직도 장애인이 세상을 자유롭게 활보하기엔 공기가 너무 차갑다.
몇 년 전 오아시스란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못생기고 뒤틀린 뇌성마비 <공주>를 진정한 인간으로 보았던 한 남자는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가게 된다. 오아시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문소리가 갑자기 장애가 풀려 예쁘게 웃는 장면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지금 비록 조금 우리와 다른 모습과 몸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은 온전한 사람들과 여실하다는 것을 그처럼 잘 나타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에게까지 장애인을 가졌다는 것은 <슬픔을 강요>당해야 할 현실로 오해받는 이 억압의 시대에, 이런 책들은 <질병>이란 객관적 환경을 <손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장애>에는 이미 사회적 편견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선 장애인 것이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선 장애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뇌성마비>라는 일그러진 형상을 환기하는 단어에 비하여 <뇌병변>이란 단어는 훨씬 객관적으로 그 <손상>만을 지적할 수 있듯이 말이다.
병을 가진 몸 자체가 <병신>이란 욕으로 통용되었고,
얼마 전엔 이런 병신들은 자손을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80% 이상의 '병신후보자'들이 응답한 사실은 아직도 <손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장애>를 차별하는 의식을 드러낸다.
한센씨 증후군(문둥병)으로 소록도에 감금되어있고, 일제 강점기 죽음에까지 이른 역사를 본다면,
내가 미래에 갖게 될는지도 모를 신체적 <손상>에 대하여
편견을 갖지 않도록, 편견을 극복하도록 이제는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 반의 특수학급 입급 대상 학생을 바라보고 친구들에게 가르칠 것이 명확해짐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사람들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