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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리처드 헌터 지음, 윤정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유비쿼터스... 언제부턴가, 네트워크, 인터넷 만큼이나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정확한 뜻도 모른채... <~~대학>, <~~아파트> 이런 식으로 광고에 인용되고 있다.
갈수록 지식은 우리를 무시하고 파고 드는 경향이 농후해 진다.
솔직히 나도 유비쿼터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엔 몰랐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유비쿼터스]이고,
영어판 제목은 [World without secrets : business, crime, and privacy in the age of ubiquitous computing]이다.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것은 영어판 제목이다.
비밀 없는 세상 :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의 사업, 범죄, 그리고 개인...
우리말 제목과 영어 제목을 합쳐 놓은 대로, 이 책의 내용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시대에는 감시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오십 년 정도 전에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내용이, 이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유비쿼터스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즉 우리의 모든 일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네트워크로 외부에서 집안의 등을 켜고, 냉장고 온도를 낮출 수 있으며,
자동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과속을 하고 있는지 관리할 수 있고,
카드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개인의 포지션까지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모 기업에서 개인별 인식 카드를 통해서 개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유비쿼터스 시대의 개인은 감시당하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네트워크 군대의 힘은, 월드컵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확인된 바 있지만, 앞으로 갈수록 사회 각 분야에서 위력을 떨칠 것이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과연 이 책의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그 품성이 선천적으로 선한 것인지... 의문은 떨어지지 않는다.
헌터는 두 가지 법칙을 제시한다. 하나는 네트워크의 증폭성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공개된다 하더라고 그것을 모두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보의 특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다만, 이 글의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인 중심의 사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기도 한다.
...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수사를 통해 테러리스트를 찾아내고 그들을 암살하는 방식으로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272쪽)...는 말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인권을 묵살하는 이스라엘의 처사를 좀 객관적인(빌어먹을 놈들은 늘 이런 말을 쓴다) 입장에서 바라본 말이다. 이것을 폭탄을 허리에 두르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놈들은 테러리스트를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혐의를 두고, 언제 어디서나 테러 용의자로 취급하며, 테러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난민들에게는 어떠한 조치도 법적으로 하자 없이 취할 수 있다.(비가 오는데 몇 시간이고 세워둘 수도 있고, 집 앞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가로막아 둘 수도 있고, 아무데서나 검문소를 만들고 제지를 할 수도 있다.)
... 왜 실제 전쟁에서는 충돌하는 두 국가의 수반들은 무사한 채 병사들만 목숨을 잃는 것일까? 왜 중요한 것은 소수의 지도자들이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적국의 지도자를 없애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까? (273쪽)... 아직까지는 국가간 전쟁은 영토 때문에 벌어진다. 사이버 범죄를 수단으로 부를 획득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 미국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가 유목민들처럼 영토 때문에 전쟁을 벌인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인류가 신석기 시대 이후, 그 빌어먹을 녹색 혁명 이후, 잉여 농산물이 생기고 노동력은 곧 힘이 되던 시기부터 벌였던 모든 전쟁은 영토 때문이라기 보다는 <부>를 획득하기 위한 전쟁이었음을 그는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둘러대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일까? 정말 9.11 이후에 부시가 '테러와 전쟁'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그의 9.11 이야기에 치를 떠는 모습은 이 책의 주제와 별로 상관없는 것인데 심각하게 제시한 걸로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같다.)
마이크로 소프트처럼 정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기업이 세계적인 맹위를 떨치는 이 때, 유비쿼터스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의 패러다임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난 뒤의 내 생각이다.
저자는 상당히 다양한 자료와 근거들을 들이대면서, 앞으로의 유비쿼터스 시대는 <낙관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단적으로 위에 나열한 이스라엘, 그가 두려워하던 네트워크 상의 진주만과 같은 전쟁, 테러, 그리고 Ms와 같은 폭력적인 기제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리고 가장 폭력적인 나라 미국이 힘의 우위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비쿼터스 시대를 낙관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별로 과학적 근거 없는 <낙천적이기만 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정보화 사회라고 떠들어대고, 아이티 산업의 핵심 국가라고 착각하는 우리 나라가, 유비쿼터스는 <철학>과 <자본> 없이는 금세 지나가 버릴 유행에 지나지 않는 반짝 경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철학>에서 우러나온 콘텐츠와 <자본>에서 발전한 신기술과 신제품만이 유비쿼터스의 미래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보 관련 학문에서 헤엄치는 법도 몰라 허우적대는 이들과, 정보화 사회가 뭔지도 모르고 대학에 진학한 많은 이들이 좀 읽어 볼 법한 책이다.
제목을 좀더 보정한다면, World without secrets FOR USA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