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5 - 5호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예술가에게…
우리 반 친구들에게 쓰는 네 번째 편지구나. 고등학교 들어온 지 이미 여덟 달이 지났고, 이제 두 달만 있으면 겨울 방학과 2학년 진급이 되겠구나. 오랜만에 잔소리 편지를 써 본다.
1. 너희는 <나>라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담임이라고 매일 아침마다 지각생 체크하고 벌세우고 쥐어박고 하다 보니 정작 상담을 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무 고통도 없이 살게 된다. 그저 엄마를 만나면 즐겁고 행복하며, 배고프면 울고 금세 방긋방긋 웃고 살았다.
그러다가 말을 배우고, 지식을 익히고, 유치원,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배우기 시작하지. 그러면서 <선>과 <악>을 배우게 된단다.
어른들은 학교나 집에서 <선>한 것은 승자가 되는 것이고,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악>한 것은 패자가 되는 것이고, 나쁜 아이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사실 살다 보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조금은 <다르게> 태어났다. 머리가 좀 좋은 사람도 있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삶을 살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 사회는 우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려 든다. 그래서 자신을 완전하지 않다고 하는 심각한 <질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살면서 사회의 조종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제라도 이것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진리 속에 태어났지만, 거짓을 믿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톨텍이라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은 ‘영혼의 예술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는 모두 영혼의 예술가라는 것이지.
가장 훌륭한 예술이란 영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바로 이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예술>이고, 우리 모두는 <예술가>라는 거야.
우린 이제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다는 <거짓말>을 믿지 말기로 하자.
그림자 <WE>에 매이지 말고 나의 본모습 <ME>를 되찾자는 말이다.
2.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강력한 힘이다.
어제 학급 석차와 계열 석차를 가르쳐 준 것은 너희를 <좌절>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적을 매기고 석차를 내는 것 자체가 우리를 숫자로 파악하려는 일이다.
내가 너희에게 그런 숫자들을 제시한 이유는, 과연 <이 숫자에 만족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기회를 갖자는 것이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혈관 속에는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고, 그 핏속에서는 수많은 피톨들이 폐에서 산소를 받아 세포로 나르고 있으며, 수많은 신경 다발 속에서는 갖가지 자극에 반응하느라고 엄청난 에너지의 전류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완벽한 신의 창조물을 보고,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만든 <거짓말>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완벽한 인간이란 것을 믿기 바란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기 바란다. 정말 공부를 못했는지…, 내가 정말 바보인지….
어린 시절 어머니들이 너희를 기를 때, 모두들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사회가 너희를 완벽하게 기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너>라는 사람 자체를 믿는 일, 이것이 스스로를 높여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3. 책 속에 길이 있다.
마지막 부탁 한 가지.
1주일에 한 번씩, 국어 시간에 책을 읽도록 했는데, 간혹 보면 몇 달 전에 빌린 책을 아직도 내 놓고 졸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난 이 말을 믿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책을 읽으면, 또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 책을 읽다 보면, 하고 싶을 일도 생기고, 가고 싶은 곳도 생긴다. 이야깃거리도 많이 생긴다. 여자 친구를 사귀는 친구들이라면, 부디 책을 많이 읽어라. 너희처럼 학교에서 공부 스트레스 적은 환경은 어찌 보면 일반계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니?
우리 반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 본다면 피자라도 쏘겠다.
“선생님, 좋은 책 좀 소개해 주세요.”
삶이란 게임은 레벨이 오를수록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책이라는 벗을, 스승을 모시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게다.
나중에 대학에서 일반계 졸업한 친구들이 너희를 무시할 때, 이 말을 해 주는 것은 어떨까? 너희가 무의미한 수능문제 반복할 때,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고.
자기 홈페이지에 독후감을 간단하게 적는 습관도 좋은 방법이겠지.
남은 두 달, 행복한 교실이 되길 바란다.
召命 분수대가 차가워보이는 가을 날
너희가 <거짓말>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담임 선생님이 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진 않지만,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