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알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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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떠돌이 개를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다른 두 권을 발견하다.

반가운 마음으로 봤는데, 역시 떠돌이 개가 최고 낫다.

거대한 알이 하나 들판에 서 있다. 사람들은 신기한 발견에 대해 갖가지 행위를 한다. 방송을 하고, 기어 오르고...

그 알의 어미가 나타나 품는다.

부화가 되어 새끼가 기어나오지만, 죽는다.

인간들은 그 새끼를 십자가에 매달고, 어미새들은 다시 떼를 지어 날아와 알을 떼로 낳아 놓고 떠난다.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들이, 인간이 행하는 개발이라는 것들이, 몰고올 결과는 뻔한 것일까?

어머니 대지인 가이아가 비명을 지르고, 온 몸을 꿈틀거려 스스로 정화 작용을 시작할 때라야 인간은 자신들의 죄악을 알게 되는 것인지... 좀 무서운 책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학생들의 <브레인 스토밍> 시간에 실물 화상기를 통하여 보여주고, 이야기를 꾸미거나 창의적 발상을 유도하기에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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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홍희담 지음 / 창비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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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인 아들과 착한 며느리,
손녀들이 오면 마냥 웃는다. 딸내미는 또 얼마나 고운가.
적적해지면 편하게 앉아 눈을 감는다.
온갖 상념들이 들끓지만 문득 정적이 찾아올 때도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가을날의 잠자리처럼 투명해지지 않을까.
늙어가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작가 후기 중, 가장 깔끔하고 담백한 글인 듯 하다.

이렇게 담담한 심경을 가진 듯 하지만, 이 소설집은 지난 20년 한반도를 달구었던 그 5월을 이야기한다.

88년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상당히 도식적인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광주에서 지식인들의 모습은 용기없었고, 기층민중들의 살아 번득이는 눈동자는 아름다웠다고 그린 이 책에서, 그래도 잠수함타고 찾아온 강학에게 삼천 원의 돈을 나눠줄 줄 아는 사랑은 왠지 작가의 구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십 년이 거의 지난 지금, 다시 읽은 이 글은 도식적이긴 하지만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글을 아는 자들'을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라고 한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결국 문제는 계급의 문제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개혁이 계급의 문제를 혁파하지 않고는, 계급을 불문한 인재 등용, 명분을 생각하지 않는 실리주의... 이런 것만이 올바른 미래의 방향이란 것이다.

아아... 아니다. 결국 사람은 계급 없이 생겨난 것이었고, 모든 사람이 인재이며, 서로 이익을 따지지 않는 존재여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계급에 따라 차별과 차이가 생겼고, 다시 나라를 갈라서 이익을 따지고 있다.

올바른 미래는 잘못이 잉태된 순간,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는 싸움일텐데... 사태를 관망하며 각자 소신껏 행동한다."는 지도부의 결정은 얼마나 비겁하냐.

다시 광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싸아--해 진다. 광주를 형상화 한 <박하 사탕>으로 장관이 된 사람도 있고, 무명에서 최고 스타가 된 두 배우도 있다. 그러나, 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최루탄 냄새 가득한 대학 시절로도 아니고, 가난해서 버스비 20원을 아껴 걸어오면서 과자를 사 먹던 어린 시절로도 아니다. 오천 년 전 인간이 문명이란 걸 만들기 그 이전,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 먹기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민 정부 들어서도 부조리는 끊이지 않았다. 참여 정부에 들어서도 국민의 참여보다는 정부의 참여가 강하다. 찢어죽이자던 전모씨는 아직도 건재하며, 총맞아 죽은 박통의 딸은 아비의 기일을 맞아 전국 보선에서 4군데 모두 승리했다.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감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너무 늦게 자란다.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에, 날마다 옥바라지 해야하는 가족들이 있고, 광주민주화 항쟁의 <국가 유공자>라는 미명의 뒤안길에는 날마다 우울하고, 날마다 아직도 80년 5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퀭한 눈으로 살아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학살 치고는 너무도 잔인했다.

광주의 십자가는 아직도 망월동의 골고다에서 부활을 기다린다. 그 깃발은 이제 내릴 수 없는 깃발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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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문화 읽기 청년에세이
최혜실 지음 / 소명출판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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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3,4년 전에 읽었으면 적어도 별표 세 개 정도는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버린 지금, 이 책의 가치는 별표 하나로도 너무 많다.

국문학자로서, 카이스트라는 특이한 체제에 맞춰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인 저자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쓰기도 한 분이지만, 그 글이 인터넷 세상을 내다보고 적은 책이 되다 보니, 몇 년 지난 지금은 별로 의미가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일반인이 글을 올리고 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포털 사이트들이 커지지도 않았고, 비디오, 오디오의 발달로 인한 작품의 내용 자체가 아주 미미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가 되기도 전에 디지털 시대를 읽으려 했으니, 앞으로 올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디지털 도서관에서는 e-Book을 빌려 볼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인터넷 안에 온갖 잡문이 다 떠돌아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신문을 굳이 구독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뉴스는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떠 다니며, 익명으로 보도를 하더라도 금세 실명이 거론되어 버린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아둘 만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모습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이란 타자와 지배계급이란 타자에 의하여 강하게 억압받는 모습이란 것을 저자의 미국 교환교수 시절 경험을 통하여 실감나게 적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무리한 의도였던 것 같다. 내용이 충실한 부분이 있는 것에 비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허술해 보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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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 김숙희 옮김, 이은주 감수 / 풀빛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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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좀 묵직하게 오래 잡고 읽게 될 줄 알았다. 좀 진지한 책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런데, 책을 잡고 읽으면서, 정말 유쾌했고, 가벼운 기분이었다.

우선, 문체가 정말 경쾌하다. 난지 얼마 안 된 새 잎사귀처럼 보드랍고 향그럽다. 번역이 잘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진지해 보이는 내용을 정말 즐겁게 읽도록 쓴다. 과학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리라. 식물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든 것 같다.

빛을 낚아챈다고? 빛은 공이 아니잖은가... 그러나 빛이 접수되면 전문가들은 그것을 흡수된다고 말한다... 엽록소 속에 포함된 여러 다른 생체분자들은 전자들이 이동하는 동안 내는 이 에너지를 이용, 새로운 화학 결합을 만들어 낸다. 이제 태양에너지는 돌고 있는 분자들 속에 들어가는 대신 두 원자들 간의 화학결합 속에 숨는다. 엽록소가 진정한 의미에서 태양에너지를 낚아챈 것이다.(이렇게 재미나게 광합성에 대해 설명해 두고, www.eduvinet.de/mallig/bio/Repetito/Bfosyn2.html 이라는 홈페이지까지 주를 달아주는 친절한 수잔네다.)

난 이런 친절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 주변에 너무 친절한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물분자는 전기를 띠고 있으며, 다른 물분자들과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몇십 분의 1 나노미터다. 그러더니 물 분자의 편에서 보자면 일반적인 뿌리털 하나는 약 2백킬로미터 높이에 몇천 킬로미터의 길이쯤 될 것이다. 이 작고도 작은 물분자들은 뿌리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분자들은 뿌리털의 얇은 세포벽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그 안의 틈서리와 찢어진 곳을 따라 비틀거리며 들어갔다가 다시 둥근 천장 같은 곳으로 나온다. 이곳은 뿌리 껍질의 세포들 사이의 공간이다., 뿌리의 중앙에는 물관이 일렬로 놓여있다. 이 물관들의 바깥쪽 끝에서는 태양을 흡수하고, 물분자들은 그 소용돌이를 아랫쪽까지 느낀다. 이 때문에 물분자들은 뿌리 중아으로 미끄려져 가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물분자들은 일종의 왁스층인 내피를 향해 부딪친다...

물 분자가 어떻게 해서 뿌리를 통해 물관으로, 다시 식물의 신진대사에 연결되는지, 그녀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귀찮은 과학을, 어려운 과학을 내 곁에서 수다떠는 재미있는 공부로 바꿔준다.

식물들도 외부의 해악에 대해서 반응한다든지, 식물 안의 화학 공장과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각종 향료나 약물들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적고 있는데도, 재미있고, 풍부한 비유를 느낄 수 있다.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데도, 간혹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한 책이다.

지구라는 푸른 별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늘 지구를 해치는 해충이다. 수천 년 살아온 나무들이, 정말 무서운 생명력을 지닌 풀들이 이 푸른별의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를 겸허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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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논술 사고력을 키워주는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 글동산 비문학
한철우 외 지음 / 문원각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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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하다가, 일반계 고교로 옮기고 처음에는 긴장을 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그 바쁜 와중에 대학원도 다니게 되었고, 보충수업 때문에 늘 세 권 정도의 문제집을 병행해서 예습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문학 작품도 많이 읽게 되었고, 특히 3학년 수업 시간의 읽기 지문 수업은 나 자신이 신선한 글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 즐겁기도 했다.

이제 실업계 아이들에게 이런 책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읽어본 책이다.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면서 틈틈이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수학 면에서는 좀 재미가 없었지만, 예술과 과학 측면의 글들은 좋은 읽을 거리들이 많았다.

요즘 아이들이 읽을 거리가 부족하다는데, 그건 다 상황을 탓하는 소리다.

물론 지식이 중요하던 우리 세대에서는 종이로 된 시험(PBT, paper based test)가 중시되었고, 아이들에게도 종이로 된 책을 보는 것이 간접 경험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식보다 지혜가, 지식의 가공과 넓은 시야가 필요한 요즘 아이들은 시험 조차도 컴퓨터 기반 시험(CBT, computer based test)으로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아이들에겐 읽을 거리보다는 롤플레잉 게임이나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의 실제감이 종이책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나도 아이를 길러 보면서, 독서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고 실업계 아이들의 낭독 수준을 보면서 많은 좌절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학생이라면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화보가 좋아도 그 그림만 가지고는 공부가 되지 않음은 당연한 일.

앞으로 우리 나라도 점차 대학 입시가 개선되겠지만...(점차 될 가능성보다는 혁명적으로 뒤집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논술을 버리고 학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논술의 힘, 사고의 힘, 그리고 종이책의 힘을 가르쳐주기엔 좋은 책이다. 다만 수준이 조금 높아서, 고1이나 고2 여름방학때 읽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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