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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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가는 버스 안에서 불러제꼈던 노래다.

대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모모가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장면에 무척 매력을 가졌고, 대학 시절, 나도 친구들의 고민을 열심히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인간성 하나만 끝내준다는 실력없고 멍청한 대학생이 되었더랬다. 모모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내 대학 시절 내 의식을 지배했던 담론의 거대함과 다른 세계에서 나는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을 이제 알겠다는 이야기다.

이십 년 뒤, 다시 이 책을 읽다. 삼순이 신드롬이라는데, 하긴, 우리 나라는 독서 교육이 너무 안 되어 있어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이딴 상업성이 판을 친다. 종국엔 느낌푠지 물음푠지 하는 해괴한 프로그램까지 나서서 상업주의의 손을 들어 준다. 문화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에도 나름대로 좋은 책을 소개하기도 하던데, 전혀 아닌 것도 있어서 문제가 있다.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느낌표 도서로 안되고, 돈 안 벌어도 좋으니깐, 좋은 책은 독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새삼스레 읽은 모모에서는 내 모습이 모모에서 비추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회색 신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시간과 숨바꼭질하며 사는 나는 순수한 모모들의 대척점에 서서, 순수한 모모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기도 하고, 내 기준대로 시간을 정해 두고, 순수한 모모들을 프로그루스테스의 침대마냥 잡아 늘이기도 하고 재단해 버리기도 한다. 나는 어느새 그런 어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교사란 무한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사는 너무도 딱딱한 표정을 짓기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는 넓고 넓은 귀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했는데,
교사는 좁고 닫힌 그것들을 갖게 되기 쉬운 직업이기도 하다.
교사는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데,
교사는 날카롭고 접근하기 힘든 비수나 송곳이 되기 쉬운 직업일 수도 있다.
교사는 젊어도 파파 할머니같은 맘일 수 있어야 하고, 나이가 들어도 청년의 기백을 가졌다면... 했는데,
교사는 젊어도 노파처럼 고지식하고, 나이가 들면 다 줘버리고 시들어버린 나무 그루터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교사는 무지갯빛보다 다양한 아이들의 사랑의 언어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결국, 교사는 온몸이 너무나 지치고, 너무도 가지각색인 아이들의 요구와 불평에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창조적인 교사는 모모처럼 만만하고, 부드럽고, 그러나 별로 달콤하진 않은 무색 무미 무취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내 앞의 상대가 거인이든, 난쟁이든, 할머니든, 이주 노동자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천재든, 천치든 간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무언가를 터득할 수 있는 길을 터 주는 사람이 되려고 땀흘리는 이라야 할 것이다.

내 시간들을 어떻게 아름다이 장식할 것인지... 꿈처럼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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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pge 2005-10-0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가 김만준이 노래한 '모모'라네요.^^

글샘 2005-10-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반갑습니다.^^

토트 2006-01-0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샀길래 앞부분 조금읽다가 "모모에게 가보게" 이 말이 나오는 부분부터, '이게 뭐야, 필연성이 없잖아' 하면서 덮어버렸었는데 며칠 전에 다시 맘잡고 읽기 시작해서 하루만에 읽은 책이예요. 안읽었으면 후회했을 것 같더군요.. 시간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되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삼년이 저를 철저히 회색신사들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도..
 
만화로 보는 주역 - 상
이기동.최영진 글, 변영우 그림 / 동아출판사(두산)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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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역은 만화로 읽어도 쉽지 않다.

그래도, 주역은 역시 만화로 읽어야 한다.

주역은 세상의 이치를 말로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호 - 즉 코드로 세상의 이치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했듯이, 세상의 이치를, 진리를, 정답을 '도'라고 하고나 '이름' 붙이고 나면 이미 이치에서, 진리에서, '도'에서 멀어져 버릴 수 밖에 없는 것.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비유의 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될지 몰라도, 주역의 궁한 세상을 통하게 해 보려는, 그래서 막히지 않고 오래 가는 책을 만들려는 시도는 영원히 그 빛나는 후광을 받을 것이다.

이미 디지털 시대의 0과 1의 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 겁나게 빠르고 어마어마한 정보의 바다인 디지털 세계가 0과 1의 조합을 따름인 것이, 주역의 양효와 음효의 결합과 맞아들어가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주역은 쉽지 않다. 특히 그 64괘의 단사와 각 효의 효사(64*6=384개)를 읽다 보면, 통계학적 비유라 해도 좀 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

읽을 때는 이해가 가는 듯 하다가도, 괘 몇 개 읽다 보면, 앞의 것은 잊고 만다.

그렇지만, 이 만화로 주역을 읽는 일은, 다른 주역 읽는데 비해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일단 괘와 효가 부호이면서 상호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주해서처럼 글로만 되어 있으면 비교 대조하면서 보기 어려운 단점을 이 책은 다양한 그림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풀어 내고 있다.

주역의 괘를 공부하는 데 이보다 적합한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물론 더 자세한 공부는 더 상세한 책들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개략적인 학습과 처음 괘에 대한 설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참고서란 생각이 든다.(옥의 티라면, 그림에서 괘를 잘못 연결 시킨 곳이 있다. 상권 28쪽의 바람의 손과 물의 감과 불의 리가 뒤바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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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랄게 없는 삶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달팽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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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여름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달팽이님이 자기 서재 홍보를 해 주셨다고 했는데...

이 책은 마찬가지 작가인 야마오 산세이의 작품이다. 이번엔 이 책의 출판사가 <달팽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달팽이님은 야마오 산세이의 왕팬이어서 서재 제목도, 필명도 모두 그런걸까...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야마오 산세이 씨의 글인데, 정말 행복이 극에 달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쓸 때 그는 위암 말기여서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 끝에 나온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이 책에서는 저자가 훨씬 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느낌이다.

숲길을 걷다가 사람의 길을 벗어나서 사슴이 다니는 길로 접어들어 보는 저자는, 사슴처럼 납죽 엎드려서 낙엽과 흙의 냄새를 맡는다. 가끔 흙을 밟고 싶어서 학교 운동장엘 나가 보면, 오리 궁둥이를 흔드는 아주머니들의 다람쥐 쳇바퀴 돌기가 한창인데... 그 흙은 딱딱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흙 냄새는 자연의 냄새를 담은 최고의 물질이다. 작은 화분에서 풍기는 흙냄새도 얼마나 우리를 풍부하게 하는지...

그는 바위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 20세기가 진보의 시대였는데 21세기는 순환의 시대라는 그의 의견에서 진보는 조금 맞지 않은 용어같다. 그의 의도대로라면 개발이 맞지 않을까?

어머니로 상징되는 대지, 가이아를 흙에서 느끼고 바위에서 느끼고 숲과 하늘과 시냇물 소리에서 느끼는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 진다. 내일은 조용한 숲 속이라도 찾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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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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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춘 예찬이란 글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국어 교과서가 얼마나 안바뀌었는지, 국어 샘들이 국어책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선생들은 명문이라던 그 글이 나는 별로 맘에 내키지 않았고, 수능이 도입된 요즘, 그런 글이 교재에 나오면 나부터가 별로 가르칠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고교 시절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상춘곡과 관동별곡, 청춘 예찬을 명문이라고 가르쳤는데,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 글들이 명문인 이유를... 오히려 난 정비석의 산정무한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는데... 따뜻한 석탑 같은 글들...

뭐, 그런 거야 세대 차이라 치고, 난 청춘 예찬에서 지은이 민태원씨가 말한, 청춘의 시기는 무조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에는 이상이 있고, 애정이 있어서 좋은 시대라고 그이는 말했지만, 그가 살았던 식민지 시대에 정말 청춘이어서 좋았을까? 청춘을 불사르고 애정을 쏟고 마음을 부을 무엇 하나가 그에게 있었던지... 난 회의적이다.

내 청춘을 돌이켜 보면, 정말 청춘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회색빛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발적이겠지만, 난 마흔이 된 아직도 나를 중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내 청춘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결혼도 해 버렸고, 아이도 내년이면 중학교에 갈 정도로 생활의 기틀이 잡혔고, 교직에 들어온 지 만 16년 하고도 7개월을 보낸 지금, 나는 아직도 내 청춘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육신은 젊지만 영혼은 늙어 버린 <청춘 아닌 청춘>들로 고민이다. 그래서 일본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다치바나 씨가 <공부를 하지 않고 성공한 청춘을 11명 만난 글>이 이 책이다. 여기서 성공이라 함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거나, 사회적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된 사람들과 인터뷰한 것들이다.

그 직업은 예사롭지 않다. 칠기 장인, 나이프 제작자, 원숭이 조련사, 정육 기술자, 사진 작가, 자전거 프레임 빌더, 매 사육사(수할치), 소믈리에(와인 전문가), 요리사, 염직가, 레코딩 엔지니어 이런 것들이 직업이다.

직업의 세계가 독특한 만큼 그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순탄하지 않은 과정들이 당연히 개입한다. 외국어를 모르면서 외국에서 생활하고, 의사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동물들과 생활하며 동물의 언어를 익히게 되고, 쇠나 천, 음의 세계에 <나>를 녹여 넣기 까지는 상상을 불허하는 시행착오와 열정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당당하게 한 사람의 전문인이 된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변변한 학력이 없이 이런 일들을 이룬 것이다. 학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 직업을 완성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들이고.

자, 그러면, 이런 몇 사람의 청춘을 들려 준 뒤에, 공식을 만들 수 있을까?

변변한 학력 없고, 학교 다닐 때 탁월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성공했다. 그렇지 못한 당신은 <인생의 낙오자다?>, 내지는 <왜 당신은 이렇게 노력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충분히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청춘>을 논하기엔 제목과 내용사이에 뭔가 미끄덩거리는 이물감이 든다.

표류하는 청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좋지만, 작가는 표류하는 청춘들을, 노인보다 활력이 없는 청춘들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청춘은 청춘만으로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내 나이 불혹에 들어서야 비로소 청춘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청춘은 물리적인 기간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열정이 불타오르는 기간이라는 작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청춘이 그런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청춘은 정말 자기가 청춘인지도 모르고, 아니 청춘인 것이 너무도 비참하고 싫어서 빨리 노인이 되어 버리고 싶은 그것도 있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간의 불일치는 작가가 놓친,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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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

글샘 2005-10-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읽어 보세요. 삶에 좀 의욕이 생길 수도 있는 책입니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지음 / 푸른숲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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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처럼 뜨거운 안도현 시인이 전교조 초창기 싸늘하던 시절에 적은 따스한 시들이다. 연탄재처럼 가치없게 여기는 존재보다도 나는 나은가?를 묻던 그의 언어들에서 묻어나는 결기는 다소간 관념적이지만 따뜻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가 눈발이라면>도 있었고, 슬픈 <마지막 편지>도 있었고, 내가 조국으로 열려 가는 <그대>도 있었고, 사랑의 의미를 곱씹은 <어둠이 되어>도 있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뿌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함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마지막 편지


...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리라


그대


한 번은 만났고

그 언제 어느 길목에서 만날 듯한

내 사랑을

그대라고 부른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연히 떠나는 강물을

들녘에도 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송이를

고향 등진 잡놈을 용서하는 밤 불빛을

찬물 먹으며 바라보는 새벽 거리를

그대라고 부른다

지금은 반쪼가리 땅

나의 별 나의 조국을

그대라고 부른다

이 세상을 이루는

보잘것없어 소중한 모든 이름들을

입 맞추며 쓰러지고 싶은

나 자신까지를

그대라고 부른다


어둠이 되어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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