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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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 포스터가 교무실 앞에 몇 달째 붙어 있다. 나는 그 강의를 들으러 가지 못했는데, 두고 두고 아쉽다.

신영복 선생님이 세계 스물 두 나라를 둘러 보시면서 쓴 글들이다.

자본주의가 승한 나라에 가서는 자본의 폭력성을, 통일된 독일에 가서는 우리의 통일에 대한 단상들을, 사라진 문명 마야에 가서는 마추빅추의 메마른 서러움을, 러시아에 가서는 기름진 가난함을 보면서 한국의 <나>에게 엽서를 보내고 글을 쓰셨다.

글들이 길지 않아서 읽기 편하다.

원래 1,2권으로 나왔던 것인데 이제 한 권으로 묶인 것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이십 년 감옥 생활과 출옥 후 십육년 아이들 가르치면서 느끼신 것들의 궤적을 따라 생각하는 일은 즐거움이고, 일깨움이고, 신선함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걷는 세계사 여행이고, 사상사 여행이며, 끝없는 대화를 통한 사색의 여행이었다.

어느 지역에 어떤 문명이 있었고, 어떤 유적이 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더불어서 숲이 되는> 관계란 것.

런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좋은 친구와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듯이, 여느 여행기와는 다르게 신영복 선생님과 잔잔하게 나누며 걷는 여행길은 길어도 짧았고, 오래였지만 금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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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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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경철이란 외과의사가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실린 책이다.

십 년쯤 전에 '종합 병원'이란 병원 드라마가 꽤나 재미있었는데, 그 전문성도 나름대로 재밌었지만 그 의사들은 맨날 연애나 해대기 일쑤였다.

의사도 인간이라 호오가 있겠지마는, 병원이야말로 가엾기 그지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천사의 마음을 가진 의사를 만나는 것과 돈 없으면 내쫓아 버리는 의사를 만나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결과를 낳기도 할 것이다.

잘못된 의료 제도, 의료 보험, 병원 제도, 의사들의 이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속에서 의사들도 나름대로 피해가 많다. 아직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직업이라 인기가 높지만, 싸가지 없이 공부만 잘 하는 종자들이 의대로 의대로 몰리는 데 나는 염증을 느낀다.

이 의사는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생각을 하고, 글로 옮겨 보는 사람이다.

이 책에 실린 그것들이 사실이든, 각색이든 그것은 상관 없다. 병원이나 법원만큼 많은 소설 거리가 등장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아프지 않으면 병원가지 않고, 사고나지 않으면 법원갈 일 없으니... 간혹은 감동으로 찡한 그 글의 이면에는 밤잠 설치면서 수술을 하고, 그러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도 하고 멱살을 잡히거나 의료분쟁에 휘말리기도 하는, 의사는 정말 더티하고 디피컬트하고 데인저러스한 삼디 직종의 대표격이다.

의사만큼 시체와 자주 마주치고, 온 몸에 피칠갑하고 다니는 직업이 어디 있으랴. 자기 직업임에도 늘 자신없는 일이 아닐까? 환자를 보고 아무리 궁리해도 무슨 병인지, 현대의 검사만 가지고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의료 서비스는 <실버 의료>라고 생각한다. 지금 거품처럼 늘고있는 많은 노인 병원들은 수용소 시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병원비는 댈 수 있어야 노인 병원에 가서 수용될 수 있다. 시골이나 도시 빈민들이 경우 그저 방에 누워서 햇볕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랜 기간 씻거나 활동하지 못한 채로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는, 수명이 백세 너머로 늘어난다는 몇 십 년 뒤, 더 심각해 지면 심각해 졌지, 지금으로 봐서는 해결책이 별로 없다. 노인 병원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큰 프로젝트다.

앞으로 가장 큰 의료 사업이 노인층(60대 이후에도 4-50년을 더 산다면...)에 대한 국가의 배려일텐데... 출생률은 낮고...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손주를 삶아버린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국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의사들은 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지...

의사회보다 약사회가 더 파워가 세다는 둥, 그래서 약대를 6년제로 하고 나면 약사들도 처방이 가능하다는 둥, 밥그릇 싸움만으로 환자들은 고달프고, 갑자기 오른 보험료로 의료보험 공단은 돈이 남아 처치가 불능이고... 정말 시급하게 필요한 약제들은 제도따라 처방하면 환자는 죽고난 후가 되어 버리는... 슬픈 병상의 에스프리.

세계화 시대에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될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 의료계도 황금알을 낳기만을 계속 요구하지 말고, 환자를 돌보는 데 국가와 의료인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은 일견 의사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따스한 회상으로 볼 수도 있고, 돈을 버리고 시골로 온 시골 의사의 소박한 경험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치열한 병원의 묘사에서 느껴지는 외과의의 쓸쓸함,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의 고독이 깊이 심어진, 삶을 절반쯤 살아버린 한 남자의 한숨 소리가 느껴지는 외로운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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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뵈요. 추천하고 갑니다. 그래도 아직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더 많아서 다행입니다.

글샘 2005-09-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으니까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공립 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오늘날까지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한 시간씩,
주말에는 두세 시간씩 책을 읽는다.
- 빌 게이츠
리더와 독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책을 읽는다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리더는 책벌레임에 틀림없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리더는 평생 여러 방법을 통해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인류의 모든 지혜가 녹아있는
책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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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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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같이 보러가야할 영화가 나왔다고 했다. 바로 이 책이 영화화 되었다는 것.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제목을 만났다.

다 읽고 난 느낌이라면... 뭐랄까, 초반부엔 정말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던 스토리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재미난 묘사 중심으로 바뀌면서 탄력을 잃게 된다는 느낌.

그래서 이 책을 나처럼 어른이 몇 시간만에 주루룩 읽어 버리면 아무 재미가 없다는 사실.

이 책은 찰리처럼 글을 더디게 읽을 나이의 아이가 느릿느릿 여유를 가지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매콤한 순두부 찌개 맛이 나는 껌을 씹으면서, 상큼한 배맛까지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은 오염된 먹거리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상상력을 유발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다소 도덕적인 편향을 가지고 있어서 인격을 모독하기도 하며, 안그래도 영양 과잉인 아이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에 대한 애정을 키워줄 수도 있는 단점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자라는 시절에 가장 필요한 영양소인 창의적 상상력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절묘하게 연결시킨 점은 재미를 한껏 자아낼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소인국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바지런히 일하는 장면도 환타지 소설의 일면이지만, 해리 포터의 집요정처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특히 영국이라면 해가 지지 않던 태양의 제국이었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거라고도 보이고, 세계적인 대형 자본주의 시장의 사장이 된다는 현실감 없는 설정은 신자유주의 시대 아이들의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인 듯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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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데 - 전우익의 세번째 지혜걷이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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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이런 제목에선 아무래도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전우익 선생의 생각들을 이렇게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 제목은, 정말 그럴 듯 하게 뽑았다. <사람이 뭔데...> 뭣도 아닌 사람들이 제 잘난 듯 살아가는 세상에서, 시멘트로 뒤덮인 지구가 숨을 못 쉰다고 걱정인데... 작년에 가신 전우익 할아버지는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임을 잘 가르치신다.

'깊은 산 속의 약초' 같으시고 '정돈된 아름다움, 정직한 세월의 초상'이라고 불리던 전우익 할아버지... 그 분의 마지막 책이다. 편지들을 묶었는데, 앞부분엔 나무, 풀들을 보면서 배운 것들이 주로 있고, 뒤엔 할아버지의 독서 일기가 적혀 있다. 주로 근원 김용준의 소박하고 가난한 삶들을 드러낸 들들, 도연명의 국화를 꺾다 남산을 바라보는 자연 옆에서 쓴 글들, 체 게바라의 전기를 읽다가 진실한 인간 아르티아 선생님을 만난 감격, 루쉰의 후기 저작들을 읽고 쓴 독서 일기들...

저수지의 물을 대단하게 보고, 숲의 나무들을 대단하게 보고, 사람을 아무 것도 아닌 줄 제대로 보는 할아버지의 혜안이 나이 들수록 밝다.

현대가 깔보고 뒤떨어졌다는 원시가 그렇게 마음 편하고 즐거울 수 없음을 아시는 분.

신영복 선생님 말씀마따나, 선생질 편하다. 머리로만 가르치면 되니깐. 열 반이래도 조금 다르긴 하지만 머리로만... 장인은 열 번 일할 때 열 번이 다 다르다고... 머리카락은 죽은거지만, 손가락은 열개 다 살아 있다고... 할아버지의 <장이> 정신은 투철하다. 옛날 젊은이들은 결혼할 때 "함께 고생해 봅시다." 했단다. 일거리에 귀하고 천한 건 없으나 삶의 모습에는 귀천이 있다고...

예전에는 목공 도구가 시원찮아서 나무의 결을 중시했는데, 도구가 발달하자 나무를 마구 썰어댄다는 무서운 이야기...

예전이면 오리 길은 충분히 걸어 다녔는데 타고 다녀 버릇하니 이제 귀찮아 졌다는 이야기들...

가정이란 말에는 집과 뜰이 있어야 하는데, 뜰은 없는 요즈음... 삭막해지는 건 아닌지...

빨랫줄에 제비들이 죽--하니 앉았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요즘은 벌레도 없고 제비도 없다는 아쉬운 기다림...

체 게바라 이야기에서(아, 이젠 체를 다시 읽어야 겠다.) 교육이란 세상에 따라가는 게 아니고, 세상과 맞서고 바로 세우는 거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할아버지를 추억한다. 추억이 되신 할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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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1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우익 할아버지. 저도 그립습니다.

글샘 2005-09-1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의 책을 다 읽어버렸다고 생각하니깐... 왠지 외로워지더군요. 책을 읽고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이 잘 없는 것 같은데... 님 말씀을 읽으니 더 새삼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