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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ㅣ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철이란 외과의사가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실린 책이다.
십 년쯤 전에 '종합 병원'이란 병원 드라마가 꽤나 재미있었는데, 그 전문성도 나름대로 재밌었지만 그 의사들은 맨날 연애나 해대기 일쑤였다.
의사도 인간이라 호오가 있겠지마는, 병원이야말로 가엾기 그지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천사의 마음을 가진 의사를 만나는 것과 돈 없으면 내쫓아 버리는 의사를 만나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결과를 낳기도 할 것이다.
잘못된 의료 제도, 의료 보험, 병원 제도, 의사들의 이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속에서 의사들도 나름대로 피해가 많다. 아직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직업이라 인기가 높지만, 싸가지 없이 공부만 잘 하는 종자들이 의대로 의대로 몰리는 데 나는 염증을 느낀다.
이 의사는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생각을 하고, 글로 옮겨 보는 사람이다.
이 책에 실린 그것들이 사실이든, 각색이든 그것은 상관 없다. 병원이나 법원만큼 많은 소설 거리가 등장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아프지 않으면 병원가지 않고, 사고나지 않으면 법원갈 일 없으니... 간혹은 감동으로 찡한 그 글의 이면에는 밤잠 설치면서 수술을 하고, 그러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도 하고 멱살을 잡히거나 의료분쟁에 휘말리기도 하는, 의사는 정말 더티하고 디피컬트하고 데인저러스한 삼디 직종의 대표격이다.
의사만큼 시체와 자주 마주치고, 온 몸에 피칠갑하고 다니는 직업이 어디 있으랴. 자기 직업임에도 늘 자신없는 일이 아닐까? 환자를 보고 아무리 궁리해도 무슨 병인지, 현대의 검사만 가지고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의료 서비스는 <실버 의료>라고 생각한다. 지금 거품처럼 늘고있는 많은 노인 병원들은 수용소 시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병원비는 댈 수 있어야 노인 병원에 가서 수용될 수 있다. 시골이나 도시 빈민들이 경우 그저 방에 누워서 햇볕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랜 기간 씻거나 활동하지 못한 채로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는, 수명이 백세 너머로 늘어난다는 몇 십 년 뒤, 더 심각해 지면 심각해 졌지, 지금으로 봐서는 해결책이 별로 없다. 노인 병원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큰 프로젝트다.
앞으로 가장 큰 의료 사업이 노인층(60대 이후에도 4-50년을 더 산다면...)에 대한 국가의 배려일텐데... 출생률은 낮고...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손주를 삶아버린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국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의사들은 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지...
의사회보다 약사회가 더 파워가 세다는 둥, 그래서 약대를 6년제로 하고 나면 약사들도 처방이 가능하다는 둥, 밥그릇 싸움만으로 환자들은 고달프고, 갑자기 오른 보험료로 의료보험 공단은 돈이 남아 처치가 불능이고... 정말 시급하게 필요한 약제들은 제도따라 처방하면 환자는 죽고난 후가 되어 버리는... 슬픈 병상의 에스프리.
세계화 시대에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될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 의료계도 황금알을 낳기만을 계속 요구하지 말고, 환자를 돌보는 데 국가와 의료인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은 일견 의사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따스한 회상으로 볼 수도 있고, 돈을 버리고 시골로 온 시골 의사의 소박한 경험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치열한 병원의 묘사에서 느껴지는 외과의의 쓸쓸함,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의 고독이 깊이 심어진, 삶을 절반쯤 살아버린 한 남자의 한숨 소리가 느껴지는 외로운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