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 일기
김성칠 지음 / 창비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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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인가, 이 책을 처음 만났다. 그 때는 몇 페이지 읽고 글이 너무 잘아서 읽은 념을 못 냈던 것인데, 이제 고 1 교과서에 이 글이 실리었고, 마침 2학기에 이 책으로 수업을 해야 해서 읽어볼 마음을 내서 오랜만에 도서관 책을 검색해서 빌리게 되었다.

김성칠 선생의 일기는 눈물을 흘리며 쓴 전쟁 일기고, 아주 중요한 사료의 하나이다. 한국 전쟁이 가져온 민족의 비극의 단면을 제대로 담고 있는 소설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문단에서, 그 분의 일기는 생생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어서 귀한 글이 될 것이다.

전쟁 문학이란 것들이 전쟁의 참혹함, 전쟁의 비인간적임, 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 인간적인 삶의 고단함, 그리고 편향된 사상의 발현으로 기울어진 것들이 많은데, 이 글은 담담한 일기이면서 피난 생활을 통한 기록으로 전쟁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역사 학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남북이 대립하다 벌어진 전쟁의 살육상, 유언 비어의 치졸함...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얼마나 절창이었던지를 새삼 실감한다.

남한의 곪아터진 자본주의의 고름, 이것을 광장에서의 건강한 문화가 결핍된 밀실의 세상으로 간주하고, 건강한 북한의 공산주의를 지향했지만, 북한에는 개인의 인권이 말살된 <광장만의 도시>이며 권위주의적 계급주의 사회일 뿐이더라는 ... 그래서 제3국을 택한 이명준이 남양 한복판에서 주인 잃은 컴퍼스가 되어 몸을 던진다던 상징적인 이야기는, 이 사학자의 일기 앞에서 곱게 나래를 펴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극진히 성실했던 사학자였음을 이런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1950년 1월 1일의 맹세,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밖에 내거나 붓끝에 올리지 말 일, 남의 잘못, 학설의 그릇됨을 타내지 말고 제 바른 행동과 제 깊은 공부로써 이를 휩싸버릴 것, 약속을 삼가고 일단 승낙한 일은 성실히 이를 이행할 일,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해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할 일, 날마다 무엇이든 읽고 생각하고, 그 결과를 일기로 적어둘 것...

얼마나 섬세하고 자세한 사학자의 스타일인지...

그가 겪은 전쟁은 비참하고 비굴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오죽하면 <3만지>라야 살 수 있다는 말을 전했을까. 밖에서 보아 있는지 만지 한 마을에, 집인지 만지 한 집을 지니고, 사람인지 만지 할 정도로 처신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삼만지의 비극.

그의 글에는 자본주의의 부정부패도, 공산주의의 걍팍한 비정함, 폭력성도,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과 동족 상잔의 비극도, 외국 군인들의 행패도 모두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글은 아주 중요한 일차 사료의 하나가 될 것이고, 여타 문학에도 파급력이 큰 생동감을 불러 일으켜줄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얼렁뚱땅 선거를 치르고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자들을 앞잡이로 뽑아 쓰는 치졸한 모습들을 이 책만큼 선명하게 옮기고 있는 글은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즈음의 사학자들도 과연 이러한 정신으로 글들을 써 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본 많은 학자연 하는 자들은 술에 취해 계집의 품 속에서 놀아나기에 정신이 썩어나간 자들도 많기에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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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7-1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책이 교과서에 실렸군요. 그런데 표지도 참 세련되어졌네요.예전것 가지고 있는데 표지 촌스러운데...글이 참 담담하니, 잔잔하죠.

글샘 2005-07-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런 글들이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것도 상당한 진보라고 볼 수 있죠. 저도 촌스런 표지(칙칙한 연초록색) 책으로 봤답니다. 세상 풍파는 세차게 몰아치는데 글이 정말 잠잠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보는 이라서 그런지 모르죠. 더운데, 건강하세요.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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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산문집이다.

이 수필집의 글들은 류시화가 살아오면서 명상과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들이 잘 적혀 있다.

그에게 다가온 자연과 우주의 메시지들은 <류시화>라는 악기를 통해서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삶이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며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꽃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신은 내가 신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신은 내가 신의 말을 듣는 바로 그 귀로 내 말을 듣고 계신다.

그가 만나는 온갖 종류의 신의 존재는 형상을 나투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그에게 악상을 떠올려준다.

그러면서 삶의 온갖 번잡함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생에 대하여 떠올린 것들을 글로 읊어준다.

시간은 필요하다. 때로 그것이 어둠같고 길없는 길 같아도 이 삶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급함은 나비를 죽게 만든다. 나비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비의 삶을 사는 것이 애벌레의 길이다.

지구별에 여행온 우리가 주변의 여행자들을 바라볼 때, 빛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밤이라고 했다.

아, 방학을 그리도 간절히 기다리는 나는 지금 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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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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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O Zahir는 아랍어로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 탐닉,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 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라고는 <연금술사>밖에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문체나 취미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그에게서 흥미를 잃었다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을 익기 전에도 별로 기대한 것은 없었지만, 읽고 나서는 역시 내가 생각했던 코엘료는 이정도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정신 분열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부분, 그러니까 서술자가 사고로 쓰러지는 부분에서 정신을 잃고 며칠동안 혼수 상태를 겪는 부분은 역시 작가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어서 신선한 체험으로 살아있다.

그러나 책이 마치 그의 자서전을 읽는 듯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추억이라든지(그래서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산티아고였던지...), 얕은 경험들과 얽힌 이야기들은 왠지 쫄깃쫄깃한 <플롯>으로 응집되어있는 느낌을 주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에서처럼, 여러가지 경험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듯한 부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작가가 <사랑에 대한 오 자히르> 체험을 형상화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신비롭고 무속적인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이야기 전개가 난삽하다는 느낌.

코엘료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장편 소설을 쓰지 말고, 수필집을 쓰거나 단편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분부분 신선하고 명쾌한 부분이 살아 있을 때, 그의 재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인 글에 녹아들어 하나로 숨쉬는 유기체가 된 소설이 되지 못한 걸 보면, 그 좋은 부분 조차도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어서 내가 메모까지 한 부분은 성당 이야기다.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성당을 보며, <성당. 그것은 나였다. 우리들 각자, 우리는 성장하면서 모습도 변화한다. 고쳐야할 단점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늘 최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게 서려고 노력하며 계속 전진한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작가가 삶에 대한 통찰에서 이루고 있는 경지를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친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다. 가짜 친구들도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굳은 얼굴로 나타나 안타까움과 연대감을 느끼는 듯 행동한다>는 글에서 인간이 얼마나 알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더러 어떤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라면, 나는 참 힘들 것 같다. 우선 비평을 가하려면 3번 이상의 정독이 필요할 것인데,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면 모르되, 그닥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을 세 번 읽는 것은 고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올릴 수는 있되, 비평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가벼운 행복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표지다. 표지에는 왠지모를 우수가 담겨있다. 주황빛에서 노랑으로 번져가는 빛깔은 마치 부화중인 계란빛처럼 생동감이 느껴지고, 사막을 우러르고 섰는 여인의 비스듬한 실루엣은 아스라히 보일듯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신기루를 상징하는 듯, 그리고 삶의 막막함을 재촉하는 열사의 햇빛에서 치열하게 찾아나가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상징이라도 되는 듯 아름다운 느낌을 자아낸다.

달과 6펜스의 응집성, 열정적인 삶과 어긋남, 상징적 의미가 두고두고 읽히는 고전의 반열에 든다면, 저자의 명성에 <호의 은행> 역할을 하는 자본과 상업성, 베스트셀러라는 환경을 뺀다면, 이 책은 과연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는 작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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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7-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사랑에 대해 수준급이지 않을까?

이 소설보다, 이 만화를 읽을 때 내 감성은 더 전율했던 것은...


파란여우 2005-07-1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이거 써야 하는데,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는 코엘료의 글빨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들의 33가지 이야기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엮음, 노희성 그림, 김서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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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은 무한한 자료를 가진 분들이다.

그들에게는 101가지 이야기와 치킨 숩의 자료처럼 세상사는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쓴 사람들이 10대인 자료를 모으면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쉽게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 101가지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묶어낼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읽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고.

얼마나 내 시야기 좁았던가를 새삼 깨닫는다.

이제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은 지금, 아직도 사람 사는 모습을 바라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10대라는 것 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어떤 종류든 고난에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

그 고난에서 고통스런 인생을 읽어낼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로 그 고난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그 능력은 어린이들의 고유한 특성인지도 모른다. 어떤 불리한 조건도 여유롭게 이겨낼 수 있는 느긋함 말이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보다는 어려움에 닥친 수험생, 실업자, 경제파탄자들에게 어울릴 법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감사한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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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고친다
김홍경 지음 / 책만드는식물추장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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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에 이비에스에서 김홍경이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동양의 사상이 참으로 심오한 면이 있구나... 그런데, 대학을 나왔다는 나는 그 강의에 나오는 기본 개념들(음양 오행과 주역의 괘들...) 조차 모르는 문외한이었다니...

우리는 얼마나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인지...

우리 나라가 독립하고 나서는 양의만 의사 대우를 받았다. 한의사는 불법 시술로 취급했고... 중국에서는 부족한 양의를 전통 의술의 계승이란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는데, 우리는 그 훌륭한 전통들을 지금의 의사들의 선배들인 미국물 먹은 의사들에 의해서 제한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우리 의사들이 모두 자기 배 불리려 살아온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이룬 의학적 성과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녀석들은 모두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작금의 사태를 볼 때, 이건 아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 새삼스럽게 지금 로또가 걸려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해 보고 싶은 공부가 한의학이다. 한의학은 동양 사상과 인체를 우주와 하나로 보는 관점들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김홍경의 강의를 모두 들을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사 두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절반 읽었다가 이번에 완전히 읽었다. 물론 주역에 나오는 말들은 모르는 것들도 있지만, 이젠 더이상 맛없는 비스킷이라고 외면할 만큼 내 삶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이런 책을 통해 깨닫는다.

어린 시절, 치기어린 놀이로 친구들 손금을 본다며 까불던 친구들이 있었다. 간혹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것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이었다. 나도 미팅 나가면 손금 봐준다며 여자애들 손 깨나 잡았더랬다. 희한하게도 철학, 역사, 종교, 문학... 그 고매한 사상적 토대를 논할 때면 단답형으로 대답하던 수동적 여학생들이 손금을 봐준다고 하면 적극적인 질문 공세를 퍼붓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내 대답은 오히려 오리무중의 단답형으로 멎었고, 여학생들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맡긴 손바닥은 아랑곳 않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한다. 그러면 그 여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 한 두개로 또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하나 하고... 놀던 기억이 나지만, 주역은 몇 번 들척거리다가 괘와 효를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책이었다.

그렇지만, 요즘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불경을 접하며 한의학 서적을 뒤적거릴 때 이젠 더 도망가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역을 배우려는 것은 여학생 손바닥을 잡아 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내 사주 팔자를 읽어서 출세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는데, 그것은 외면하고 재미로 읽는 책, 얕은 마음을 즐기는 책, 맛있는 비스킷으로서의 책들만 읽어서는 이제는 안되겠다는 야릇한 위기감이랄까...

이 책은 절판되었단다. 그럴만도 하다. 한의대 생이라면 너무 개략적이어서 불필요할 것이고, 우리처럼 문외한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들도 나오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1/3 정도는 세상사에 대한 잡문들이 너무 많다. 한의사가 너무 재치를 부리려 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 과유불급.

이 책을 읽으면서 익힌 한 가지. 우리 몸에는 지적인 것을 강화하는 심포 경락이 있는데, 암기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수궐음심포경락을 강화해야 한단다. 지식욕을 촉진하기 위해 이 경락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궐음의 신맛과 심포의 쓴맛이 어우러진 레몬, 오미자, 모과 등이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지식의 배설과 망각을 주관하는 삼초 경락은 공부할 때 약화시켜야 하는데, 머리를 차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고, 휘발성 냄새와 담배처럼 흩어지는 성향을 기피해야 공부에 도움이 된다. 공부할 때 담배가 해로운 이유가 이것이다.

옛부터, 삼상사(三上思)라 하여 마음이 이완되어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베갯머리, 마차, 화장실을 논하였다 한다. 마음을 놓아 버리는 꿈의 고갯길을 넘나드는 자리에서, 가슴 가득히 초록을 담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는 여행의 길목에서, 그리고 아래위가 통하는 화장실의 쾌변에서 우리는 신선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한의의  기본인 망문문절, 기색을 살피고(望),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듣고(聞), 의심나는 것들을 물으며(問), 진맥하고 촉진하는(切) 단계는 학생들을 면담할 때에도 필요한 절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늘 관심을 가지고 살피며, 사건사고와 행사들을 듣고, 간혹 상담으로 물어보며, 필요한 경우 긴한 접촉을 하는...

부처님께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시는데 왜 나는 손가락만 보고 있었던지(見指忘月), 한나라의 강아지는 고깃덩이만 좇을 뿐이지만 사자는 그 고기를 던진 사람을 문다는데(한로축괴 사자교인 韓擄逐塊 獅子咬人), 이 한 권의 책을 읽고도 내가 얻은 것은 부처님 손가락이고 한 점 고깃덩이일 뿐이구나.

그렇지만, 김용옥이 예전에 동양학을 왜 해야했던가를 외쳤듯이, 왜 우리 것을 읽어야 하는지를 조금은 생각하게 해준 책이라 고맙다.

나처럼 몸이 차고 살집이 잘 잡히는 사람은 매운 것을 먹어야 기가 흩어지고, 산모처럼 응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신 것이 모으는 기운을 돋운다는 음양의 효과를 공부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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