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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 당신 삶에 숨어 있는 '유쾌한 프로젝트'를 찾아서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인생은 힘들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다. 인생은 고(苦)다.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야 이런 제목이 나온다.
인생은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다고. 남들의 인생은 힘들고, 고들프고,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나처럼 살면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어. 근데 니들은 그것도 모르냐. 얼어죽을~~~
그는 프로젝트에 살고 프로젝트에 죽는다. 인생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숙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 숙제는 선생님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주제도 자기가 정하고, 참고 자료도 알아서 찾고, 연구 방법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프로젝트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아주 멋진 한 교수 방법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성공적이냐 실패작이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환경> 요인이다. 지도 교사가 다섯 반의 이백 명의 학생을 맡아서 프로젝트 학습을 계속 체크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자기 주도적 학습>이 실패하는 이유는 거기 있다. 그리고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아이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아이의 과정과 결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좋은 방법만을 외치면, 차라리 주입식 교육만도 못한 결과를 낳는다. 교실이 붕괴된다. 수업은 있지만 교육은 없다. 교사는 있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는 교사 노릇, 교사구하는 사람 노릇 해야 하는데, 그럴 부모 없으면 영원히 프로젝트는 수행 불능이다. 학교는 아이엠에프 이후로 다양한 연구학교, 시범학교 프로젝트를 운영하느라고 진이 다 빠져있다. 내가 연구학교에 삼년 주무를 맡으면서 다시 그걸 맡으면 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건이 되어있지 않은 프로젝트는 사람 죽이는 결과만 낳는다는 거다. 연구학교 3년 주무 뒤에 고혈압으로 혈압약만 꼴깍거리며 먹는다. 마흔도 안된 나이에. 쪽팔리게 말이다.
김진애의 프로젝트를 읽다보면, 그보다 내가 좀더 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남녀간의 사랑. 사랑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남편에게도 이기려 든다. 물론 남편에게 지라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의 나이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에만큼은 에너지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오죽하면 김진애너지라는 <슈퍼 에너지>로 각인되었으랴마는, 그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분명 한국의 평범한 환경 요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아, 이것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인가. 여자가 서울 공대를 나와서 엠아이티 공대 박사를 따내고, 많은 책을 쓰고, 정치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질투가 나서 하는 소리 아닌가.
그렇더라도,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라던 그의 이야기가, <나의 테마는 나, 나의 프로젝트도 나>처럼 바뀐 거 아닌가, 과연 그 사람의 <나>와 나의 <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교집합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태양*태양인일 것 같은 그와 소음*소음인일 것 같은 나 사이엔 아마 <여자>와 <남자> 사이의 <와>자 정도의 교집합이 있을 것 같다. 서글서글하고 잘 잊고 목청 크고 화끈한 그와 소심하고 쫀쫀하며 맥없고 실없는 나의 차이는 <비형여자>와 <비형남자>의 차이일까.
책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그가 예찬해 마지 않는 뜨겁고 밝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2002년 6월, 물론 나도 길거리에서 뻘건 옷 입고 걸어 보기도 했지만, 그의 책에는 그해 6월 13일 미군의 탱크에 치어 <죽어간 - 두 여중생의 주검을 사진으로 본 내게 그 사진은 그 아이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간 것이라고 보였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생각하는 정도의 다사로움이 없었다. 내가 바라던 것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광주에서 흘린 피에 분노한 것이 7년 걸린 반면, 두 여중생이 흘린 피에 대한 분노의 촛불 시위는 한 달 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 광란의 월드컵 내내 두 여중생의 주검을 떠올리며 소름 돋던 좀 특이한 체질이어서 그런 것일까.
박정희처럼 목청 높여 <새벽종이 울렸으니, 새 마을을 만들자>는 사람은 난 싫다. 조용히 하나의 촛불을 켜는 사람이 새 시대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