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다빈치 art 2
앙드레 살몽 지음, 강경 옮김 / 다빈치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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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Modigliani. 철자를 보면 이탈리아 사람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름.

유럽의 남국 사람답게 꽤나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이 책의 원 제목도 <La vie passionnee de Modigliani> 이다. 모딜리아니의 열정적 인생... 정도일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보엠(라 보엠 생각도 나고)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보헤미안적 기질을 보엠이라고 한단다. 세상 참 좋아 졌다. 모르는 것 있으면 바로 검색이 되니 말이다. 며칠 전에 어떤 선생님이 <메리야쓰>가 어느 나라 말인지, 일본 말이아고 정확한 어원이 어딘지, 정말 속옷이란 뜻인지 갑자기 궁금한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다. 네이버 검색에서 멋지게 뽑아서 보여 드렸더니 좋아라 했다. 참고로 메리야쓰는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말로써, 한 방향으로 짜는 직조 방식을 뜻한다. 양말처럼 날줄과 씨줄을 쓸 수 없는 방식.

 파리로 건너가 그림에 빠진 그는 열에 들뜬 눈을 지니고 몽파르나스의 방랑자 생활을 하며 건강따위는 경멸하며 사는 가난한 화가의 삶을 마친다.

허약한 체질인데다 가난과 술, 마약에 빠져서 서른 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모딜리아니.

중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들은 사실적이기 보다는 <길쭉이 거울> 앞에 선 세계처럼, 긴 얼굴, 여섯시 5분 전으로 기울어진 머리, 기다란 사슴같은 목, 눈동자 없는 퀭한 눈에 가지런히 모은 손의 여인들을 그린 것들이었다.

오른 쪽의 잔느 에뷔테른느는 그의 그림치고 유난히도 명쾌한 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이탈리아 청년답게 검은 머리에 수려한 외모로 숱한 여인들의 심금을 울렸건만, 산업화 사회의 빈곤 속에서 죽어간 숱한 예술가들과 같이 그도 삶을 마친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모딜리아니를 통해 피카소도 만나고, 르느와르도 만나고 하는 것은 미술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그리고 중고교 시절에 보던 그림을 다시 만나면 뭔지 모를 신비로움을 느낀 그 시절의 감각이 살며시 되살아나는 듯도 하고...

여섯시 오분 전의 작가, 그 열정의 모딜리아니의 삶을 읽으며, 다시 달과 육펜스를 생각한다. 주려 죽을지언정, 6펜스에 기대느라 달님을 놓치지는 않으려던 고집스런 예술가들의 삶을...

 그 평전은 그럭저럭 평범해서 읽다가 졸기도 하고 했는데, 마지막에 모딜리아니의 죽음 앞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뛰어내린 잔느의 대목에서 목이 울컥 메이는 대목은 이 책의 돌연한 절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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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화당에서 나온걸 봤습니다. 그림과 글이 아주 좋았어요.
작지만 예쁜 책이었죠.
님하고 겹치는 책이 많아서 좋습니다.
님이 방학 하시고 제가 이사가서 여력이 생기면 더 많아질래나요?^^

글샘 2005-07-2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겹치는 책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취향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요즘 글 많이 올려 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방학을 맞아서 많이 읽지 않고 좀 어려운 책들을 읽어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
 
바우하우스 시공아트 20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이대일 옮김 / 시공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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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수능 지문을 가르치다 보면, 현대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면서 <바우하우스>에 대해서 간혹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우하우스가 현대 미술과 공예를 통합하는 기능을 했다는 정도는 들었어도,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좀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만난 김에 빌렸더니... 역시 전문적인 책이었다.

삽화를 보면서 굵은 제목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골라서 읽었다. 이름하여 발췌독.

이전의 실용성 위주의 공예와 미감 위주의 미술을 통합시켜 새로운 디자인의 시대를 열어온 바우하우스의 배경에는 20세기 산업 사회, 소비 사회가 작용하고 있다.

근대 디자인의 메카로서 기능했던 바우하우스가 나치의 탄압으로 문을 닫게 된다.

상업, 공업 디자인, 건축, 직물, 하다못해 체스판에까지 그 디자인 영향을 끼쳤던 <바우하우스>의 다음과 같은 철학은 <발상의 전환과 창의력>의 근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학생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며 '윗사람들로부터는 최소한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학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다...(나는 항상 학생들의 다음과 같은 농담을 떠올리곤 하다. 교수님, 교수님 바지 만드는 일을 마쳤습니다. 이제 수선해 볼까요?) 학교의 목적은 학생들의 공화국(선생이 없는)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사회학적인 가치를 갖는 학교. 선생이 없는 학생들의 공화국... 아,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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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혜덕화 > [퍼온글] [스크랩] 어린이와 함께 읽는 영상동화 108편

 출처 :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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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 당신 삶에 숨어 있는 '유쾌한 프로젝트'를 찾아서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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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은 힘들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다. 인생은 고(苦)다.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야 이런 제목이 나온다.

인생은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다고. 남들의 인생은 힘들고, 고들프고,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나처럼 살면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어. 근데 니들은 그것도 모르냐. 얼어죽을~~~

그는 프로젝트에 살고 프로젝트에 죽는다. 인생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숙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 숙제는 선생님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주제도 자기가 정하고, 참고 자료도 알아서 찾고, 연구 방법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프로젝트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아주 멋진 한 교수 방법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성공적이냐 실패작이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환경> 요인이다. 지도 교사가 다섯 반의 이백 명의 학생을 맡아서 프로젝트 학습을 계속 체크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자기 주도적 학습>이 실패하는 이유는 거기 있다. 그리고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아이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아이의 과정과 결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좋은 방법만을 외치면, 차라리 주입식 교육만도 못한 결과를 낳는다. 교실이 붕괴된다. 수업은 있지만 교육은 없다. 교사는 있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는 교사 노릇, 교사구하는 사람 노릇 해야 하는데, 그럴 부모 없으면 영원히 프로젝트는 수행 불능이다. 학교는 아이엠에프 이후로 다양한 연구학교, 시범학교 프로젝트를 운영하느라고 진이 다 빠져있다. 내가 연구학교에 삼년 주무를 맡으면서 다시 그걸 맡으면 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건이 되어있지 않은 프로젝트는 사람 죽이는 결과만 낳는다는 거다. 연구학교 3년 주무 뒤에 고혈압으로 혈압약만 꼴깍거리며 먹는다. 마흔도 안된 나이에. 쪽팔리게 말이다.

김진애의 프로젝트를 읽다보면, 그보다 내가 좀더 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남녀간의 사랑. 사랑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남편에게도 이기려 든다. 물론 남편에게 지라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의 나이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에만큼은 에너지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오죽하면 김진애너지라는 <슈퍼 에너지>로 각인되었으랴마는, 그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분명 한국의 평범한 환경 요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아, 이것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인가. 여자가 서울 공대를 나와서 엠아이티 공대 박사를 따내고, 많은 책을 쓰고, 정치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질투가 나서 하는 소리 아닌가.

그렇더라도,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라던 그의 이야기가, <나의 테마는 나, 나의 프로젝트도 나>처럼 바뀐 거 아닌가, 과연 그 사람의 <나>와 나의 <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교집합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태양*태양인일 것 같은 그와 소음*소음인일 것 같은 나 사이엔 아마 <여자>와 <남자> 사이의 <와>자 정도의 교집합이 있을 것 같다. 서글서글하고 잘 잊고 목청 크고 화끈한 그와 소심하고 쫀쫀하며 맥없고 실없는 나의 차이는 <비형여자>와 <비형남자>의 차이일까.

책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그가 예찬해 마지 않는 뜨겁고 밝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2002년 6월, 물론 나도 길거리에서 뻘건 옷 입고 걸어 보기도 했지만, 그의 책에는 그해 6월 13일 미군의 탱크에 치어 <죽어간 - 두 여중생의 주검을 사진으로 본 내게 그 사진은 그 아이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간 것이라고 보였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생각하는 정도의 다사로움이 없었다. 내가 바라던 것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광주에서 흘린 피에 분노한 것이 7년 걸린 반면, 두 여중생이 흘린 피에 대한 분노의 촛불 시위는 한 달 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 광란의 월드컵 내내 두 여중생의 주검을 떠올리며 소름 돋던 좀 특이한 체질이어서 그런 것일까.

박정희처럼 목청 높여 <새벽종이 울렸으니, 새 마을을 만들자>는 사람은 난 싫다. 조용히 하나의 촛불을 켜는 사람이 새 시대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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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7-1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지금같은 학교 따위 붕괴되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저 또한 때때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예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필요에 따라 다시 학교와 교실을 구성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인문계 고교 교사는 되지 않겠다고 15년전에 맘 먹었던 제가 인문계 고교 교사를 하고 있는 거 자체가 아이러니지요.

글샘 2005-07-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그 붕괴는 오게 됩니다.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서울대 총장의 말을 무시하는 정치권은 외국 대학이 들어와서 서울대가 붕괴되어야 그 심각함을 받아들이려는지도 모르지요. 외국의 명문 사립이 들아와서 연 1000만원 이상 받는 고등학교가 생겨야, 지금의 고등학교가 얼마나 저질이고 불량한 학교인지 깨닫게 될 거고요. 그 때는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는 게 명약관화한 일인데... 아무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야 한다고... 학교가 붕괴되진 않을테니... 이직을 생각해 보아야 할까요?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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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납량 특집!!!

귀곡 산장이나 여고 괴담, 전설의 고향보다 훨씬 이 책의 제목이 무서워 보여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서웠고, 그리고,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때, 그래서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가 너무도 많은 우리에게 날씬한 신명조체도 아니고, 견고한 헤드라인체도 아닌 세로쓰기 필기체로 굵게 박힌 이 책을 그래서 몇 번이고 외면하고 읽지 못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큰 맘을 먹고, 어차피 지나치지 못할 것... 맞닥뜨려 보자는 심사로 빌려온 책.

이 책은 이십 년 전 대자보와도 같고, 삐라와 같고, 벽신문과 같고, 지하 조직에서 등사한 잉크 냄새 물씬 풍기는 인쇄물과 같은 섬?함을 던진다.

가로쓰기 신문의 사회면에는 사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인종>들이 팍팍한 삶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다가> 궤도를 이탈하는 이야기가 숱하게 나온다. 무슨 무슨 날이 아니고는 미담이라곤 사회면에 있을 수 없다. 신문의 존재 이유가 마치 <견고딕체로 시민들에게 충격을, 신문명조체로 시민들에게 소름을> 끼치려는 납량 시리즈인 양 연일 계속되는 사건 사고는 우리를 무디게 만들기만 한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스스로 죽고, 가족이 해체되고, 홀로 살아가고, 버리고, 버림받는 이야기들... 정말 사는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신문은 <사회>면이라고 한다.

사회란? 인간들이 모여서 무슨 일인가를 꾸미며 살아가는 곳일진대, 왜 <사회면>에는 이런 골치아픈 일들만 가득 모여 있는 것이란 말인가.

공선옥이 세상을 보고 날카로운 비평을 들이댄다. 이렇게 학교가, 가정이, 직장이, 사회가 <사람>의 <삶>을 팽개쳐도 되는 거냐고... 사랑은 어디로 가고 <러브>만 튀어다니고, 그나마 희망이 숨쉬던 가난은 어디 가고 대책없는 <빈곤>만 허우적대는 세상이 되어 버렸느냐고...

 우리 사회의 무심함은 또 하나의 폭력임을작가는 시종 일깨운다.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한다. 내 나이 마흔. 100살까지 살게 된다는 두려운 미래에 남은 60년을 어떻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무심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살아낼 것인지를...

깊게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책.

대자보처럼 쿵! 하는 울림이 되어 마음에 남는 책.

공선옥의 여느 따스한 글들보다 아름다운 글들이 모여 있어 좋은 책.

그래서 소설가들이 잡문을 써서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겨내려면 이 정도 쓰라고 하고 싶은 책.

이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고 바라게 하는 책.

 

그러나, 그러나 끝끝내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서 외면할 것만 같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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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7-1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Thanks to 글샘샘~

글샘 2005-07-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 보세요. 우리 폐부를 콕콕 찌르는 메스와도 같은 글들이고,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레몬같은 글들이 가득하답니다. 레몬은 우리 정신을 응집시켜 탱탱하게 하니까요.

혜덕화 2005-07-1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님의 글은 너무 생생하고 처절해서 외면하게 되더군요. 이번 여름에 기회가 된다면 읽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불교쪽으로 빠져있어서 소설에 손이 갈지 모르겠어요. *^^*

글샘 2005-07-1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 자료는 잘 받았습니다. 언제 시간 나면 읽으려고 인쇄해 두었어요.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칼럼이라서 시간나는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