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남는 것은 오직 사랑뿐, 이아무개
웃음으로 넘기지 말고 대답해 주시게. 내가 그냥 한번 물오보느라고 묻는 게 아닐세. 정말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고맙네. 신랑도 신부도 여기 식장에 가득 찬 증인들 앞에서 각각 "그렇다" "사랑한다"고 대답해 주었네. 역시 기대했던 대답을 해주는군. 아무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오늘 이 자리에 이런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을 까닭이 없겠지. 그러면 내가 쓸데없이 공연한 질문을 한 것일까? 아닐세. 나도 그냥 한번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자,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한다니 이제 내가 달리 묻겠네. 대답해 주시게.
두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서로 사랑한다고 했는데 과연 시방 사랑이 어떤 건지 알고서 하는 건가?
대답을 망설이는군. 그럼 그럴테지. 내 보기에 자네들은 아직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네. 그걸 알 턱이 없지. 大學이라는 책을 보면, 처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법을 터득한 뒤에 시집가는 법이 없다는 말씀이 있네. 자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게 아닐세. 두 삶은 이제 겨우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라네.
가정(家庭)이란, 남녀가 만나 짝을 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러다가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세월과 함께 적당히 늙어가는 그런 게 아닐세. 가정이 그런 것이라면 세상에 누가 이른바 '성공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신체 건강한 남녀라면 크게 애쓸 것도 없이 그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아닐세. 가정이란 그렇게 통속적이고 만만한 물건이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가치로 보자는 것도 아닐세. 우리에게 서로 만나 결혼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면 경우에 따라 헤어질 권리와 자유도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흔히 말하는 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든 아내든 그 인생이 파멸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세. 나는 그런 논리에, 그런 억지 주장에 찬성할 수가 없네. 오늘같이 좋은 날, 헤어진다는 말을 입에 올려서 미안하네만, 내 생각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일세. 자네 두 사람 살다가 문제가 생기거든 망설일 것 없이 갈라서라는 이야기가 아닌 줄은 알고 있겠지? 다만 가정은 인간이 기필코 지켜야 하는 절대 가치가 아니라는 얘길세.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뜻 깊고 고상한 삶을 창조하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가정이란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인지를 배우는 학교라고. 물론 사랑을 학습할 만한 곳이 어찌 가정 한 군데 뿐이겠는가만, 운명처럼 만난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살을 섞으며 살아야 하는 가정이야말로 과연 인간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 아니겠는가? 가정이야말로 "사랑 있으면 천국, 사랑 없으면 지옥"이라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곳일세.
그런데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알려면 천국에서만 살아서는 안 되겠지? 지옥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살면서도 천국이 어떤 덴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것은 빛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어둠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일세. 어찌 생각하는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눈먼 상태로 태어난 사람이 과연 어둠이 어떤 것인지를 알까? 밤이 얼마나 어두운지를 그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번뇌가 없으면 열반도 없다네. 그래서 번뇌 곧 열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랑 있는 천국을 알고자 한다면 사랑 없는 지옥을 겪어 보아야 하네. 부부간의 갈등과 다툼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네. 그것 자체가 소중하다기 보다 그것을 통해 화해와 일치의 진가를 알게 되니까 그래서 소중하다는 얘기지.
부디 진지하시게. 헤르만 헤세가 말하기를, 신은 인간의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지만 진지하지 않는 자에게만은 등을 돌린다고 했네. 두 사람이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하네. 물론, 그대 둘이 왜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겠지. 아무렴! 왜 아니겠나.
그러나 아직은 아닐세. 아직 두 사람은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야 정직한 고백이 될 걸세. 그래야 이제부터 전개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희망과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종점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희망도 기대도 있을 수 없다네.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로 깨달은 사람이라면(자신이 '사랑' 그 자체인 사람이라면) "시집가는 일도 장가가는 일도 없는 나라"(예수가 말한 천국)에서 살고 있을 터인즉 그런 사람에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보겠다는 희망 따위가 있을 리 없잖겠나?
지금 자네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일는지 모르겠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이제 시작일세. 거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네. 두 사람은 우선 '빠져 있는 사랑'에서 나와 '존재하는 사랑'으로 들어가야 하네. 여기, 완전한 사랑으로 가는 오솔길에 대하여 대팩 초프라(Deepak Chopra)가 쓴 글(The Path to Love)에서 한 구절 읽어보기로 하세.
다음 단계는 로맨스(연애)는 흔히 결혼이라는 이름의 위탁된 관계로 들어간다. 여기서 오솔길이 바뀐다. 사랑에 빠져 있음(falling in love)은 끝나고 사랑에 존재함(being in love)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부부는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자기를 양육하는 법을 배운다. '자기를 내어줌'(surrender)은 모든 영적 관계의 열쇠가 되는 말이다.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이기적이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에고(ego)의 욕구들이 영(靈)의 욕구로, 성숙하려는 욕구로 바뀐다. 당신이 성숙한 그만큼 얕고 거짓된 (사랑의) 감정(feeling)이 깊고 참된 (사랑의) 정서(emotion)로 바뀐다. 그리하여 자비, 신뢰, 헌신, 섬김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될 때 결혼은 신성하다. 그와 같은 결혼 생활은 거룩한 바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결코 비틀거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그 결혼은 또한 순진무구하여 흠이 없다. 결혼 생활을 하는 유일한 동기가 사랑하는 것이요, 남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네. 그날의 화제가 부부 사이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어떻게 '틀어잡고 사는가'였는데, 한 신부가 첫날밤 자기 신랑 틀어잡은 사연을 자랑인 양 털어놓더군. 그 내용을 재구성하면 대충 이와 같았지.
첫날 밤 제주도 한 호텔에 들었는데 신랑이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신부에게 자기 양말을 벗기라고 한다.
"양말 좀 벗겨줘."
신부가 입술을 걀쭉하게 실그러뜨리며 내려다본다.
"양말 좀 벗기라니까!"
이윽고 신부의 앙칼진 목소리.
"자기는 손 없나?"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고 신랑은 신랑대로 신부는 신부대로 새삼 전의를 돋운다.
"정말 못 벗기겠어?"
"못 벗겨."
두 사람은 각자, 첫날밤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평생 고달프니까 절대 밀려서는 안 된다는, 선배 고참들의 충고를 되새긴다.
"안 벗기면 나 이대로 가버린다."
"맘대로!"
이윽고 성난 신랑,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데 신부는 오히려 딸깍 소리도 요란하게 문을 잠근다. 공방전은 자정 넘어 백기를 들고 돌아온 신랑이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그 뒤로 "아직까지는 남편을 확 틀어잡고 산다"는 이야기.
어떤가? 하기는 그렇게 살면서도 나름대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면 뭐라고 시비를 걸 것까지야 없겠지. 그러나 결혼 생활의 맛을 어찌 상대방을 틀어잡고 사는 데서 찾으려 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부디 오늘 입학한 사랑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우등생들이 되기 바라네. 그리하여 다른 것에는 몰라도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깊고 진실한 일가견을 이루시고, 그렇게 배운 사랑의 기술로 아무쪼록 기울어진 세상 바로 세우고 병든 사회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한몫 거드는 내외가 되시기를 바라네.
앞으로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일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목표를 세운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자네들 하는 일마다 옳고 바르고 아름답고 유익하고 기특하고 장하지 않겠는가? 부디, 주례자의 상투적인 잔소리라 여기지 말고 명심해 두시게. 사랑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요, 사랑이 없으면 인생사 제아무리 시끄럽고 거창해 보여도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끝으로, 두 사람의 앞날이 오직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귀결되기를 바라며 <베다 Veda>의 한 구절을 함께 읽어 보겠네.
생명 곧 사랑이요, 사랑 곧 생명이다. 사랑 아니면 무엇이 사람 몸을 하나로 통일·유지시키는가? 인간의 욕망이란, 자기 사랑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의 지식이란, 진리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방법과 모양은 잘못될 수 있겠지만 그것들 뒤에 숨은 동기는 언제나 사랑,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사랑이다. 나와 나의 것은 작을 수도 있지만, 혹은 우주를 깨뜨리고 껴안을 만큼 클 수도 있지마, 그래도 남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