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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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느 기행문을 읽다 보면, 나도 저자처럼 떠돌아 보고 싶은 감상에 젖게 된다. 드라이브 하면서 만나는 낙조도 좋고, 이른 아침 갑자기 닥치는 일출도 좋고... 한비야의 중국, 우리나라 기행도 좋았다. 나도 그이처럼 걷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읽으면서는 '아, 난 이건 안된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러면서 한비야가 참 억척스런 여자란 생각도 들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너무 대단해서, 나는 도저히 도전해볼 염을 낼 수 없단 것이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 참 주관적인 글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주관적이지 않은 책이 어디있으랴마는, 그의 기행문에서는 사진도 만나고, 여정을 따라 다니며 새로운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갖기 어렵고, 그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우선 나오다 보니, 여느 기행문과 다른 독특함을 갖는다.

만약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 책이 정말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에 와 닿고, 매 장면이 마음에 아로새겨 질 것이고... 마치 유홍준의 우리문화 답사기를 읽으면서, 다음에 가면 꼭 봐야지... 하던 심정으로.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먼짓바람 이는 사막에서 그미가 휘젓고 다닌 길들의 고충이 잘 드러나 있어서 도전의 염을 품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의 경험담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차라리 예쁜 사진으로도 좀 설명해 주지...

그리고, 아내와 우리 아이는 벌레를 질겁을 하는데, 나는 좀 나은 편이지만, 이렇게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즐길 자신이 솔직히 나는 없다.

그래서 이 기행문은 보기 드물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기행>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2,3,4권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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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5-06-3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약한모습... 무서워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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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석제의 수다가 잘 반영된 소설집이다.

그의 장점은 진지하고 무겁고 힘든 세상을, 한낱 수다의 대상으로, 수다를 떠는 재주가 없는 남자들이라면 술주정의 수준이고, 전화세에 얽매이지 않고 수다를 즐길 줄 아는 여성들이라면 본격적인 섬세함으로 수다를 떨 줄 안다.

그의 소설에는 주제 의식이랄 것이 별로 없다. 어떤 이미지, 또는 감상을 떠올리면 그걸로 바로 소설 한 편이 된다. 그것이 그의 수다의 힘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재미고...

성석제가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면 '스승들' 같은 소설이 탄생한다. 정말 보잘것 없는 추억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떠들어대는지, 마치 내가 그의 동창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4.5초다. 화자가 깡패라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최근 군바리 독재의 나라였고 폭력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정치 깡패들의 힘이 컸다고는 해도, 영화도 깡패, 소설도 깡패, 코미디도 깡패인 이런 세상을 나는 혐오한다. 솔직히 깡패 영화를 보면 감동보다는 지긋지긋하다. 남들이 그 재밌다던 영화 '친구'를 보면서도 난 지겨웠고, '가족'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런데 그 깡패 녀석이 떨어져 죽는데, 약 100 높이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며,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까지 걸리는 그 4.5초의 시간에 성석제는 엄청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초 간격으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1/70초 단위로 이야기를 한다. 역시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하다.

바흐친이라는 비평가가 있었다. 소설은 <축제>의 장에서 들리는 <다중 음성>이라고 이야기했던가...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석제의 소설에 적합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 성석제의 이야기는 항상 좀 시끌벅적하면서도, 그 시끌벅적하고 지지부진함에 지긋지긋해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누구나이기도 하고, 누구도 아닐 수도 있다. 허구의 인물인 셈이니까...

성석제의 이야기는 가볍다. 가볍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난 그 장점이 단점을 아우를 수 있으면 좋겠다. 황만근에서는 조금 나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고 친근한 수다쟁이 성석제가 조금 더 우리 삶에 가까운 수다를 떨어 줬으면 좋겠다. 도로의 난간을 들이 받고 떨어지는 깡패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지만, 일어날 법한 허구라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라고 읽기 쉬우니깐... 깡패 말고, 우리 이야기를 좀더 개그 수준으로 풀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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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2005-07-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소설에는 깡패가 참 많이 나오더라구요.잘 넘어가고 잘 읽혀서 좋은데 말이죠...

글샘 2005-07-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아니라도, 우리 나라 영화에 깡패 안 나오는 영화가 어디 있어야 말이지. 원래 깡패는 어디나 있었다지만, 21세기 우리 나라의 코드는 깡패인 거 같아서... 불만이지.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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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재생지로 만들어 가볍다는 거다. 책을 책상에서만 읽지 못하는 나는 소파에 기대서도 읽고 침대에 누워서도 읽는데, 무게는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요소다. 이 책은 가벼워서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6000원이라는 가격도 맘에 든다.

그리고 제목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인 것도 맘에 든다.

이 책 안에서는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권정생 할아버지의 종교관, 환경관, 그리고 인생관 내지 세계관이 잘 담겨있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백년만에 우리의 전통과 습속을 왕창 뒤집어 버린 <기독교>에 대한 할아버지의 생각은 어떤 이들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할지 모를 정도로 개방적이다. 그래서 '하느님'이라고 하시는 그분의 생각이 따뜻하고 포근해 보여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촌에 오래 사셔서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현대인의 파괴적인 삶에 대한 지적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전우익 할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영위하시는 권정생 할아버지의 삶과 생각은 말 그대로 신토불이다. 몸뚱어리가 흙덩어리와 하나로 얽혀 살아가는 것이다.

많이 누리려고 하지 않는 소박한 삶. 자동차를 타고 돈을 펑펑 쓰면서 세상을 즐겁게 산다는 이들의 삶이 결국 세계를 파괴하고, 자식에게 뭉개진 지구를 물려주는 것에 다름 아님을 할아버지는 잘 들려 준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가장 높은 가르침, 종교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정말 깊게 생각하며 사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기능한 기독교에 대해서... 물질 문명의 이기로 태어나서 우리에게 멸망의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현대의 말세적인 문명에 대해서... 그리고 날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우리 삶의 통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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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2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글샘 2005-06-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권정생 할아버지랑 같은 나라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자랑스럽다고요. ^^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우테 에하르트 지음, 홍미정 옮김 / 글담출판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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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멋지게 해낸 일을 드러내지 않고, 과시하려 들지도 않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기만을 속태우며 기다리다가 아무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우울증에 빠지거나 기껏해야 히스테릭한 사람으로 변한다.

이 책의 저자는 여자를 옭아매는 뿌리깊은 편견을 7가지 제시한다.

1. 아름다운 여자가 사랑받는다.

2. 강한 여자는 외롭다.

3. 모든 여자는 ‘엄마’가 돼야 한다.

4. 여자에게 ‘남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5. 여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해야만 한다.

6. 화내는 여자는 매력적이지 않다.

7. 여자는 약한 존재다.


서양에서도 페미니즘이 앞서 주창된 독일에서 이런 책이 나왔을 정도니, ‘홧병’ 전매 특허인 대한 민국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다. 이영애는 여자라서 행복할지 몰라도, 난 여자로 살아간다면 정말 불편할 것 같다. 매일 얼굴에 0.1mm에 가까운 콤팩트를 떡칠하고 살라면 정말 하루도 살 수 없다. 직장 생활 하면서도 아이가 참관 수업 하면 조퇴하고 쫓아와야 하고, 급식 당번 돌아오면 와야 되고, 청소도 하러 가야되는 파출부 엄마 노릇을 나는 할 수 없다. 아이의 학원을 돌아다니면서 알아 봐야 되고, 은행의 갖가지 잡무를 하는 여자 노릇을 나는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기를 희생하고, 양보하면서도 전혀 티내지 않는 <착한 여자>들이 <이 땅의 원더 우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한다.

나도 아내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을 분담하지 않고 미뤄버렸던가. 은행에 갈 시간이 나라고 없었던가? 아이가 6학년 되도록 참관 수업을 한 번도 못 갈만치 시간 내기가 불가능하단 말인가? 학교 급식 도우미까지는 못가더라도, 남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은 그래서 여성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남성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또 모든 자식 가진 부모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학생들에게는 ‘이해하고 순종적이며 협조하고 희생하는 겸손한 여성상, 바로 현모 양처’인 여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고, <당당한 여성>으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사가 필요하다.

자식들에게는 가사 노동을 분담하고, 자식 양육에 같이 힘을 기울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곧 교육임을 몸으로 가르쳐야 한다.

“착한 여자는 하늘 나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이것이 이 책의 독일어 원 제목이다. 공지영의 착한 여자란 소설을 읽고 화가 났던 적도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는 반드시 치열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학생 교실은 깨끗해야 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깨야 한다.

다른 사람과 결별하면 했지, 자기 자신과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각오로 사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마는... 자신의 가치를 발전 시티고, 능력을 인정하며 욕구에 관심을 가지는 당당한 여성, 싫을 때 싫다고 할 수 있는 여성... 이것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여성일 것이다.

그러나, ...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좋은 책인데 비해, 11,800원이란 가격과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 강해보이는 사진과 두꺼운 종이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책 같지는 않다. 여성 문제와 환경 문제는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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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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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을 천재라고 할까? 아니면 왕관심쟁이라고 할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물리학 책을 쓰기로 널리 알려진 파인만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기조는 아주 유쾌하다.

장난꾸러기 같고,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열쇠 풀기를 좋아하는 사내, 파인만.

그러나, 끝끝내 미심쩍은 부분은 그가 개발한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졌다는데, 핵폭탄 개발에 몰두하면서 겪은 일화들은 잘 쓰고 있으나, 과연... 그가 참여한 일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일언 반구도 의견을 내비치지 않은 의도에 대해... 나는 생각하게 된다.

늙어서 일본을 두 번인가 방문한 것은 그가 저지른 연구라는 미명의 범죄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을 리 없음을 보여주는 여행인데, 이 책의 기획 의도상 빠진 것인지...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아쉽게도 없다.

나는 한동안 대학에서 물리학과가 왜 인기인지 몰랐고,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이 냉전 체제에서 돈되는 학문이었고, 실용적인 학문이었던 것은 아닌지... 착각일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

친한 친구들이 물리학과 출신이 많은데도, 난 왜 못 물었던지 나도 모르겠다. 올 여름 오랜만에 물리학 전공한 친구들 만나면 한번 물어보고싶다. 물리학이 왜 인기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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