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천상병 지음 / 답게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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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도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까?

살아서 유고 시집이 나온 시인... 천상병.

그의 귀천은 삶의 인식을 가장 투철하게 읽어낸 시라고 생각한다.

소풍나온 삶에서 그는 동베를린 사건으로 고문 후유증을 심하게 앓지만, '괜찮다'고 한다.

뭐가 그리 괜찮을까.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다 <맥주 두 잔>으로 제한된 술을 즐기면서도, 막걸리 좋아하던 시인 천상병은 낙천적이다.

주로 술에 대한 이야기, 아내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잡문들로 이뤄진 이 책은 천상병이란 <천사> 시인의 주변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만든 책이다.

천상병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아리게 쓰라리면서도 따스하다. 그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따사로운 바이러스를 품고 있나보다. 그러니 고문 후유증으로 <바보>가 되어서도 <괜찮다>를 연발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 좀 더 따스한 맘을 품고 세상을 살고 싶다. 나도 괜찮다. 괜찮다고 바보처럼 웃으면서 말이다.

앞부분의 수필들은 재미있다. 뒷부분의 시인 평론으로 넘어가면 좀 평범한 글들이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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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22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걸리 한 병으로 살다간 시인
소풍나왔다고 자위하며 괜찮다고 하신건가요?
그 양반은 소풍나온 거지만 전 잠이 안와요

글샘 2005-06-2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kw wka이 과하셨던 건가요. ㅎㅎㅎ 허걱, 새벽 네시네요.
여우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겠나요? 그리고 소풍 가서 가시에 찔릴 수도 있지만, 뙤약볕이 싫을 수도 있지만... 우리 삶은 소풍이잖아요. 힘든 일 빨리 마무리하시고... 잠좀 자세요. ^^
 
어느 자폐인 이야기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 김영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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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라고 하면, 보통 외부 세계와 의사 소통의 길을 닫고 과잉 행동을 자주 보이는 아동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자폐아가 자신의 증상에 대한 자각을 통해, 극복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훌륭한 연구자로 다시 태어난 과정을 <관찰자>의 시점에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에서 기록한 획기적인 책이라 하겠다.

자폐아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던 <정상 인간>들의 세계를 향해서 자폐아들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바로 자기의 경험을 말이다.

자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긴 해도, <경우>에 따라서 너무도 다른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자폐에 대한 대증 요법을 기술하긴 어렵다.

이 글의 저자는 스스로 청각 기관의 회전 감각과 촉각의 특징을 연구하여, 소에게 낙인을 찍거나 예방주사를 놓는 <가축 압박기>에 스스로를 집어 넣음으로써 촉각적 경험을 통한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 실험은 자폐인에게 필요한 자극과 위축을 주어 긴장을 완화시켜 주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쾌적한 환경, 즉 애정을 주고 받는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흔히 자폐아를 <정신적 영역의 어딘가에 상처를 입은> 아이로 취급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자폐는 중추 신경계의 <장애>인 것이지 정신적 질환은 아닌 것이다. 이 장애는 적절한 극복 방법을 찾아낸다면 충분히 정상인에 버금가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시사점이다.

시끄러운 공간, 군중... 이런 것은 자폐아에게 너무도 벅찬 존재란다. 그래서 접근을 회피하기 위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자해를 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은 시각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에 강하며, 수학이나 어학등 개념적 사고에는 약하다. 특히 이 증상은 사춘기에 극도로 심해질 수 있다.

학교에 특수 학생을 받아 들이기도 하지만, 자폐의 경우에는 그런 요인들로 인해 학교라는 공간이 적합하지 않다.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경우마다) 적절한 요법의 적용만이 해결책일 것이다.

아, 정말 우리 나라의 장애우는 너무도 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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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5-06-2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적절한 극복 방법을 찾아내는 게 참 힘들잖아요.
사회적으로 부모에게 그 무거운 짐을 몽땅 지게 하고 있고, 그 부모마저도 아이가 그 아이 하나가 아닐 테니...
제가 아는 한 장애우는 그래서 이민갔어요.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집을 얻을 수밖에 없었는데, 학교에 수속하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바로 스쿨버스 노선 바뀌고, 하루에 몇 번 없는 동네 버스도 노선이 바뀌고... 그랬다더군요.

글샘 2005-06-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으로 뒷받침이 너무 부족하지요. 외국처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는지요. 저러니 이민갈 만도 하지요...
 

제가 음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지 꽤 오래 지난지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MBC에서 였나 밤에 음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했었습니다. 작년 말쯤에요.
( MBC 에 가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봐도 좋을 듯 )

우선 거기에서 주로 다뤘던 내용은
아날로그 음원에서 디지털 음원으로의 변화를 바탕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실험의 진행이 LP판, CD, Mp3 이 세가지를 비교한 형태인 거죠.

먼저 LP판.
우리나라는 급속히 디지털화 되면서
서양처럼 아날로그 문화를 누릴 기회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LP판을 오래 누리지는 않았지요, 우리는.
서양은 아직도 LP 시장이 디지털 시장에 밀리지 않고 건재하다고 합니다.
( 유럽시장쪽인 걸로 기억 )
이 LP판은 잡음이 많이 들리기 때문에 밀려났다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게 아닙니다.
LP는 소리 그대로를 녹음하는 형식이랍니다.
그래서 사람이 귀로 듣는 것과 같은 형태의 음악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전혀 피곤함을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소리의 파장이 물결무늬인데요, 음악의 원래 형태가.
LP는 이 파장 그대로 소리를 녹음한 거랍니다.

그런데 이런 LP가 CD에 밀려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LP는 1달러를 투자해서 10달러에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CD는 20센트를 투자해서 15달러에 팔 수 있었다고 하네요.
결국 장사꾼들의 이익이 단순한 이유였다고 합니다.
LP에서 CD로의 이행은 말이죠.

여기서 이 CD라는 놈의 문제점을 짚어 보게 되는 거죠.
CD라는 놈은 앞에 분들이 잘 설명하셨던데요.
디지털 음원입니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전부 다 녹음하는 방식의 LP와는 다릅니다.
소리의 파장이 물결무늬에서 약간의 계단화된 파장으로 바뀝니다.
결국 의식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우리 귀가 인식하는 그대로의 음은 아닌 거죠.
이것이 디지털노이즈 라는 용어로 설명되었던가 그런데요.
이것이 사람을 매우 피곤하게 한답니다.

이것이 Mp3로 넘어가면 더욱 극대화 되는데요.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Mp3는 CD보다 더욱 더 바이트 수를 줄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파장이 물결무늬에서 거의 계단화된 파장이 된 거죠.
소리를 다 빼먹었다고 봐야겠죠. 물론 귀로는 잘 못 느끼더라도 말이죠.
이것이 사람에게 엄청난 피로감을 준다고 합니다.

이 피로감이 단순히 피로감으로 그친다면 Mp3가 그닥 위험하지 않겠죠.

하지만 !!!!!
이 피로감, 단순함 피로감이 아니였습니다 !

이 세가지 음원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식물들에게 똑같은 음악을 이 세가지 음원으로 들려주고 비교를 했는데요.
소리 그대로인 LP의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들
( 식물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잘 큰다는 건 이제 다들 아는 사실이시죠? )
정말 잘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지 않고 자란 보통의 식물과 비교를 했을 때 말이죠.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하고 열매도 잘 맺히는 그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CD와 Mp3에서 여지 없이 나타났습니다.
CD 음악을 들은 식물은 발육에서 약간의 더딤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Mp3 음악을 들은 식물은 정말 애처롭게도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표시를 확고하게 나타냈습니다.
물론 발육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뒤쳐져 있었구요.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나는 증상을 이 Mp3 음악을 들은 식물이 보였습니다.

식물조차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사람이 영향 받지 않을까요 ?

미국의 음악 쪽으로 권위있는 교수가 나와서 설명을 해주더군요.
디지털 음원은 인간의 정신에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답니다.
단순히 피로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 면에 영향을 준답니다 !!!!!
의식하지 않은 게 더 무서운 법이잖습니까 ?

이 디지털 음원은 사람의 가치관을 뒤바꾼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거기서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보통 '사랑' 이라는 가치는 인간에게 '좋은' 가치지 않습니까?
'증오' 라는 가치는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구요.
이 디지털 음원은
이 두 가지 가치를 인간의 정신에서 무의식적으로 뒤바꾸게 한답니다 !!!!!
그러니까 '증오'는 좋은 거고, '사랑'은 나쁜 거야 !
이렇게요 !

얼마나 무섭습니까 ?
자기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나쁜 것들이 좋은 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니 !

디지털로의 이행이 편리함을 줄진 모르지만 절대로 좋지만은 않은 거죠.

제가 기억하는 걸 최대한으로 써봤는데요.
설명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디지털 음원 너무 가까이 하는 건 좋지 않을 듯 하네요.
밑에 분이 Mp3 때문에 피곤하다고 하셨는데요.
아마 예민하신 분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죠, 저 연구 결과 대로 !
편리함보다는 자본가들의 이익 때문에 생겨난 디지털 음원,
결코 곁에 너무 가까이 두고 누릴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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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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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신은 있다. 난 그걸 믿는 것이 아니라, 그걸 알고 있다. 산다는 것은 조금 더 알게 된다는 것인데, 살면서 그런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기도 하지만, 주기적으로 남구 도서관에도 간다. 갈때마다 세 권씩 빌려 오는데, 빨리 읽을 때는 이틀만에 다 읽기도 하고, 어떨 때는 기한이 다 되어 부랴부랴 읽고 반납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이번에 빌려온 것도 사실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 책을 <오늘> <내가> 읽으라고 연결해 주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빌린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에게 온 것이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오히라 미쓰요의 이 책은 상당히 유명하다. 어려서 왕따의 고통을 당했고, 불량청소년이 되었고, 중졸의 학력이며 술집을 전전하다 야쿠자의 처도 되었다. 그러나 스물 여섯의 나이에 정신을 차려 십년의 방황을 접고, 공인 중개사, 사법 서사, 마침내 사법 고시에 합격한 의지의 일본인의 표상이다.

지난 금요일 우리 반 특수학급 학생이 울면서 조퇴를 했다. 토요일 그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반 친구들이 괴롭혀서 죽고 싶다며 학교를 가기 싫어한단다. 퇴근후 가정 방문을 해서 부모와 대화를 나눈 결과, 부모님은 너무 흥분하여 경찰서로 사건을 넘기겠다며 진단서를 끊어 놓은 상태다.

어제는 너무 머릿속이 띵~ 하여 그저 깊게 호흡을 했다. 아내가 퇴근하고 나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좀 속이 시원하기도 하였지만, 해결된 건 전혀 없다. 오늘도 종일 생각이 난다.
괴롭힌 녀석들을 혼내주나.
아니지. 어쩌면 그녀석들의 나쁜 짓이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크게 되는 걸 막아야 해.
그래도 특수학급 아이를 괴롭히고 협박하다니 나쁜 일이야.
나쁜 놈들도 다 내 아이들인데...

그러다가 또 깊이 숨을 들이 쉬다가... 잊었다가, 생각나다가... 주말이 있다는 것이 지긋지긋한 일요일이었다. 마치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맞은 일요일처럼...

열두시가 다 되어 땀을 좀 흘리고 자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하느님을 만났고, 우리반 특수 학급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를 괴롭힌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또 우리반 꼴통, 센스 없는 복학생도 만났고, 자칭 깡패도 만났다.

아, 하느님은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내가 무슨 고민에 빠질 줄 다 아시고, 이렇게 책을 내 손에 쥐어 주시다니...

다른 책을, 예를 들면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 화를 줄이는 법 같은 명상 서적을 보았다 한들 내 혼란한 마음을 풀어 주진 못했으리라.

왕따와 이지메의 문제로 고민하는 내게, 오히라 미쓰요를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늦은 밤이지만 말똥한 눈으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평생을 다른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할 우리반 특수학급 아이, 그 아이를 괴롭힌 아이들 - 담임이 무서워서 절대로 이르지 못하도록 비겁한 협박을 하는 어리석은 녀석들, 복학해서도 학교에 재미를 못 붙이는 우리반 철이... 이런 녀석들에게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불행한 일, 재수없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들이 내 부처고, 예수님이고, 스승님임을 깨닫도록 이 책을 내게 보내 주신 신의 인도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런 일에 감사를 드리며 잠이 쉬이 들지 못하는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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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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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읽었던 '삼미... 팬클럽'에서 그는 유창한 이야기꾼이었다. 그 다음 읽었던 '우주영웅전설'에서 그는 독설가이며 세상을 날카롭게 읽는 풍자가였다. 드디어, 그는 이야기꾼에서 풍자를 거쳐, <이 시대의 지배적인 작가>로 발돋움을 시작한 듯 하다.

그를 읽으면서 이상을 생각했다. 본명 김해경. 예명이라 하더라도 성(姓)은 그대로 쓰던 것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특성일 것이다. 이름은 이름에 불과할 뿐, 이름에 묶이면 창조란 없다는 의미였을까, 이상은 본래의 성을 버리고, 무의미한 '상자 상' 자를 자기 이름자로 삼는다. 하하. 원래 이름이란 무엇이냐. 아무 것도 아니지 않던가. 내 이름이 나는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이상의 시를 읽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상은 '미친 놈들, 웃기고 있네.'하는 비아냥을 던질지도 모른다.

카스테라는 분명,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다른 작가들의 차가운 작품들과는 다른, 세계의 흐름을 담은, 소설의 변화를 담은 새로운 담론을 그에게서 읽는다.

이제 소설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 듯 하다. 80년대, 정의가 있고 우리는 날마다 아홉시 뉴스를 보면서 이를 갈던 불의가 있던 <서사의 시대>는 냉전의 종식,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건너면서 인기를 잃고 만다. 현대 노조가 투쟁을 해도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고, 정치권에서 아무리 첨예한 사안을 들고 나와도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광화문 앞에 모여 붉은 악마(레드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이런 기찬 방식은 감히 이십 년 전 나로서는 꿈꿀 수 없었다.)의 함성과, 미군 탱크에 짓밟힌 한국의 혼에 대한 촛불 시위, 최근 고교생 집회 까지 시대의 삶을 포스트 모던하게 바꿔간다.

요즘 가수들의 성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가 성이 무엇이든, '쥬얼리'가 무엇이든 알 바 없다. 벌써 80년 전에 이상은 자기 성을 버렸던 것과 같이...

냉전이 종식되고, 의미가 해체되는 시대에 소설의 양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최근엔 인터넷 소설 내지 환타지 소설이란 새로운 장르가 상업시대의 불량 상업 정신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감염시키고 있다. 젊은 작가들은 마치 김승옥이 <서울, 1964년 겨울>에서 그 익명성과 비정성을 갈파했듯이, 현대의 냉정함을 적고 있다.

그런데, 다른 형식 속에 녹아나는 그것들이, 난 무언가가 2%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 시대의 정신이 살아서 팔딱거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대를 아파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그 속에 너무 단편적으로 포함되었던 것이 내심 불만이었다. 그들은 끝없이 패배하고 있었으며, 지독한 삶의 비린내를 너무도 쉽게 팽개치고 있었던 것도 불만 요소 중 하나였고...

박민규는 냉혹하지 않다. 그는 따스하다. 그의 소설 속에는 냉장고가 탄생하여 숨을 쉬고, 개복치가 우주를 평정하며, 기린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사람의 눈물을 이해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존재들인 것이다.

시대의 정신을 담아 내면서도, 그의 작품은 충분히 <인터넷 세대>의 발랄함 - 디시 인사이드 행자들의 신랄한 그 패러디와 풍자 정신 - 을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가 쓴 소설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하려는 이야기가 어떤 방향인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았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땅땅거리고 땅을 많이가지고 잘 사는 나라, 고위층 자식들은 외국 영주권 가지고 우리나라 국적 따위 포기하며 잘 날라다니는 나라. 그런 나라에 살면서, 이런 작가를 만난 것은 통쾌한 일이고 상쾌한 일이고, 정말 유쾌한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새 시대를 여는 소설로서의 이런 작품들보다, 더 넓은 독자층이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박민규에게서 기대하고 싶다는 점이다. 그의 말발과 재치가 단편집이든 장편이든, 치열하게 얽힌다면 분명 새 시대의 새 작가의 큰 탄생을 축하라도 할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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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6-1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호평이 많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글샘 2005-06-2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에 대한 호평이라기 보다는 작가 <박민규>에 대한 칭찬이라 보시는게 옳을 겁니다.

poptrash 2005-06-20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은 책이긴 하지만... 이상이라는 말은 조금, 이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그냥 제 생각일 뿐이지만요. 어쨌든 박민규, 좋아요. 계속계속 정진했으면 좋겠어요.

글샘 2005-06-2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은 새로운 작가가 탄생했다는 의미로 단순하게 쓴 것입니다. ㅋㅋ 제가 무슨 전문가라서 붙인 이름은 아니지요.^^ 반갑습니다.

블루 2005-06-2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보경이 만나서 종로에 갔다가 박민규가 작가 싸인회를 하는것을 봤어요.힙합 가수같은 외모에 굉장히 순박한 표정을 갖고 있어서 소설에서 만난 작가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 2005-06-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게머리에 투박한 인상이지. ㅎㅎ 이 소설 뭐랄까... <베르베르의 나무>와도 비슷하면서 풍자 정신이 살아있는 독특한 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