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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1
미하엘 엔데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미카엘 엔데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있던 나는, <모모>와의 가슴 떨리던 만남처럼 이 책을 읽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환타지 소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모모>의 재미는 탁월하다.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흥미를 느낀 부분은 녹색과 붉은 색으로 나눠진 활자다. 현실과 환상 속의 세계를 활자를 통해서 구분하고 있는 점은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임을 예고한다. 그런데, 현실보다 환상의 세계가 지배적인 구도를 갖추면서는 소설의 재미보다는 작가의 철학적 언술들을 맛보려 쫓아 읽는 느낌이 강하다.
해리 포터가 초창기에 아이들과 어른들의 상상력을 끌어올린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이 이야기처럼 평범하거나 오히려 평균 이하의 아이가 멋진 환상의 세계 속에서 파워풀한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람세스가 타고 난 영험함과 신의 도움으로 역경을 헤쳐 나간다면, 해리 포터는 절묘한 타이밍에 의한 구출과 막강하면서 너무도 분명한 악의 세력과의 대립 구도가 시야를 명확하게 한다. 람세스와 해리 포터의 싸움은 그래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라는 주인공이 환상 세계에 들어가서 <특별한 힘>을 갖게 되지만, 악의 세력은 앞의 두 소설처럼 명확하지 않다. 나는 그 점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명확하지 않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개 속같은 불명확 앞에서, 우리 인생을 돌아보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신비한 힘>을 가진 돌, 아우린의 뒤에는 "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 삶은 온통 무명(無明) 투성이라서 무엇이 옳은지 판가름하기 어려울 때가 너무도 많다. 내 무명을 밝히는 그 의지가 바로 <나의 뜻>이란 말일 게다. 정답은 없다. 다만 내가 뜻하는 바른 행하며 살 뿐...
이 소설에서 이름이란 것은 <아무 것도 아님>에서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탄생>임을 보여준다. 이름을 새로 붙일 수 있음도 이름의 탄생은 새로운 의지임을 보여준다. 나는 시인 <이상>이 본명 <김해경>임을 의아하게 생각해 왔다. 성까지도 버리는 수도자도 아니고, 성까지 <바꾸는> 의도에 대해서... 그것은 바로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님>과 <이름이 나 자신>이라는 역설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한다.
해리 포터에서 <적>들의 정체가 명확한 반면, 이 소설에서는 그 정체는 <텅빈 껍데기>라는 점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내가 불만을 터뜨리던 나쁜 놈들, 그들은 없듯이, 세상의 진정한 적은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타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무명이 생기고, 나의 어리석음, 무명이 세상의 적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나의 죄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잃어 버릴 것은 원래 아무 것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변화할 뿐...>
그래서 <이미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을 더 이상 소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모든 기쁨의 언어들이 모두 친척>임을 깨닫는 미카엘 엔데의 안목은 상당히 동양적인 시선으로 느껴진다. 코레안더라는 책방 주인의 이름이 마치 한국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듯이...
재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닥 권하고 싶은 소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