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차하 - 나라는 나의 힘 / 정민우 성동초등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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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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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차하 - 도라지꽃 /김태연 대교초등 6년
지난 여름방학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있는 외할아버지댁에 갔다. 어느 날, 슈퍼에 심부름을 갔는데 주인에게 버려진 개를 만났다. 나는 개에게 과자도 사주고 놀아주었는데 개는 자꾸 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개가 나에게 '가지마'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개 얘기를 해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것 봐라. 개도 주인을 잃으면 얼마나 슬프겠니. 개도 그런데 50년이 넘게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지 못한단다"하고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할아버지는 원래 북한에서 태어나셨다. 할아버지가 스무살 때 전쟁이 났다고 했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인민군으로 참가하셨다가 포로가 되셔서 다시 국군으로 전쟁에 나가셨다. 전쟁이 끝나고 북쪽으로 가지 못하신 할아버지는 지금도 친척이 한 분도 안계신다고 하셨다.

"전쟁이 나고 만약에 나라를 잃었다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불행하겠니? 지금도 남북이 분단되어 할아버지는 고향에도 못 간단다. 민우는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되어도 좋고 안되어도 좋다고 했다.

"그럼 민우는 아빠가 없다면 어떨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빠가 없다면 못살겠다고 했다. 아빠가 없으면 못살고 허전할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영화도 못보고, 세상 살기가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도 아빠와 똑같단다. 나라가 없다면 국민들은 살기가 힘들어진단다. 통일도 마찬가지로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한단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나라가 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많은 분들을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서 보았다. 그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같은 슬픔을 우리 할아버지게서 겪고 계신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계곡에 가서 올챙이도 잡고 가재도 잡았다. 냇물에 담궈 놓았던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할아버지께서는 전쟁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셨다. 소련과 중국이 잡아먹은 나라들은 지금도 고생이 많다고 했다.

지금도 작년의 그 강아지를 생각하면 불쌍하고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힘들고 춥고 배고플까. 그리고 얼마나 헤어진 가족이 보고 싶을까.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라의 소중함과 통일의 필요성을 느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몸 바치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올해, 여름방학에도 시골에 가서 할아버지께 많은 세상 이야기를 들어야지. 시원한 수박도 먹고 계곡에서 가재와 올챙이도 잡으면서….

<그래서 이 글이 국제신문 6월 10일자에 실렸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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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6-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써놓고 보니 그동안 글샘님을 당연히 남자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거가 전혀.....내맘대로^^)
통일 글짓기 하면 애들 쓸말 없어서 맨날 버벅대고, 한말 또 하고, 뻔한 얘기만 하는데 아주 신선한 글이네요^^

숨은아이 2005-06-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그런데 민우군에게, 소련과 중국이 잡아먹은 나라들뿐 아니라 미국이 잡아먹은 나라도 고생이 심하다는 걸 좀...

미설 2005-06-1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은 저도 아빠이신지 엄마이신지 조금 헷갈려하고 있었는데.. 깍두기님의 댓글을 보고 아빠라고 생각해도 될 것같네요..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네요.. 그런데.. 아드님 이름이 제 아들 이름과 같아요. 민우. 성은 다르지만요^^

글샘 2005-06-1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민우의 아빠랍니다. ㅎㅎ
깍두기님... 통일 글짓기는 우리도 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애가 1학년 때, 일기쓰기를 싫어해서 제가 매일 불러준 적이 있답니다. "너 오늘 뭐 쓸래?" "친구" 그러면 좀 꾸며서 불러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숨은 아이님... 그렇네요. 은연중에 아이들도 편벽된 사고를... 감사합니다.
미설님... ㅎㅎ 민우. 예쁜 이름이죠?

심상이최고야 2005-06-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참 좋으시겠어요^^ 글샘님 닮아서 글을 잘 쓰나봐요^^

글샘 2005-06-1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지나친 칭찬이십니다. ㅎㅎ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지음, 함유선 옮김, 루이 조스 그림 / 밝은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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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우울, 슬픔, 죽음, 퇴폐적인 시를 썼다고 알고 있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전에도 읽은 적 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지 않고, 별로 읽지 않았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사랑에 관한 시와, 고 김남주씨가 소개한 전투적인 혁명가의 시를 애독했던 적은 있었지만...

대학시절, 연애 박사이던 친구가, 늘 랭보(이 녀석은 웃찾사에서도 제비로 등장), 보들레르 등의 시집을 안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난 읽어도 별 감동이 없는데, 녀석은 진심인지 <작업의 일환>인지 좋다고 난리였다. 인석은 일찍 결혼했다가, 결국 이혼도 했다. 그 녀석의 바람기는, 여성에 대한 집착 보다는 우유부단함에서 나오는 여러다리 걸치기가 병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내겐 겉보기엔 멀끔해 보이지만 읽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외국 시들이다.

이 시집의 가장 큰 장점은, 루이 조스의 그림이다. 퇴폐적인 시인 만큼(그 퇴폐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식민 시대에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는 그것이지만, 낭만주의 유럽에서는 자유분방한 질풍노도의 표현이다) 자유분방한 붓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그 색채감도 검붉은 톤의 매혹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악의 꽃이라고 했지만, 상당부분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들을 담아낸다. 읽는 나의 심리가 그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의 <시체>, 그때, 오 나의 미녀여,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말하오. 썩어 없어진 사랑이어도 그 모습과 고귀한 본질을 간직했노라고. 같은 글이나

<가을의 노래>, 잘 가라, 이제 곧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너무 짧은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벌써 돌 바닥에 장작 부리는 불길한 소리 들리네... 겨울은 온통 내 존재를 파고들어 오리. 분노, 증오, 떨림, 두려움, 고된 노역, 북극 지옥의 태양처럼 내 심장은 붉은 얼음 덩어리...

퇴폐주의... 이런 거 보면, 우린 늘 원본을 감상하지 못하고, 일본을 거쳐서 두세 단계 번역된 것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불어로 읽는다면, 얼마나 브드뤄울까이유~~~.

이래서 프랑스 시를 읽으면 불어를 배우고 싶고(예전에 독학으로 하다가 포기함), 하이쿠를 읽으면 일어를 공부한 보람을 느끼고, 소네트를 읽거나 영시들을 만나면 짧지만 영어를 읽을 줄 안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독일 시를 만나면 독일어의 투박하면서도 쌈박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러시아 문학의 맛을 어떨 것이며, 중국의 한시들을 원시로 Ÿ슷떳는 맛을 어떨 것인가. 그 절제된 형식미와 운율, 리듬감을 함축한 시들을 번역한 맛 말고, 원어로 느긋하게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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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
이승헌 지음 / 한문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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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해골 속엔 누구나 비슷한 용적의 두뇌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모든 활동은 바로 이 <뇌>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리고 살아 간다. 사람이 <살 + 암>인 것은 바로 이 뇌의 작용으로 <살아 있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이 뇌를 너무 혹사한다. 술을 마시면 '골'이 빠개지려고 한다. 낮잠을 오래 자고나면 '골'이 띵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골치'가 아프다.

뇌를 사랑한다면, 이런 <골때리는> 상황을 종료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아니, 오히려 <골>을 사랑하고, 기를 북돋아 줘야 인생이 풀린다는 이야기다.

뇌에 관한 연구로 상당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으로는 <마인드 맵>이 있다. 인간의 뇌는 둥글기 때문에 직선보다는 둥근것, 이미지... 이런 것들을 쉽게 기억한다는 것.

이 책은 뇌호흡으로 뇌의 기능을 높인다는 것인데... 긍정적인 힘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힘을 길러주고, 뇌의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는 것은 신뢰도가 높아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어린이들은 누구나 그 어려운 언어의 기제를 별 지장없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 인간의 능력은 대개 대동소이하다는 가설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모가 깨어 있어야 한다.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훌륭해야 한다.

난 이 대목에서 좌절한다. 부모가 못났고, 부모가 가난하고, 부모가 무식하고, 부모가 막돼먹었으면... 아이들은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인가.

교사가 뇌호흡 같은 지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자꾸 비관적이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한다고 해서, 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책의 효용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희한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맞출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나를 믿는 기회를 주는 것.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자기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누구나 천재임을, 그래서 아이들을 인정해 주는 교사가 필요함을 특히 초등 교육에서 교사들이 인식하고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도 천재성을 닳고 닳려서 지금 저 모습으로 자랐나 생각하니 괜히 안쓰럽기만 하지만, 이제라도 그 <마야>의 천재성을 짓누르지 않도록 나를, 내 뇌를 깨우자. 그리고 <나는>이라고 말하자. 아이 메시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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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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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편을 읽으면서, 김훈이 참 유려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이런 유려한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허벅지에 가해지는 체인의 무게만큼 가혹한 정신적 압박을 동반했을거란 생각도 했다.

2편에서는 그의 유려한 문장 보다는, 그의 생각이 폭넓고 다양하다는 데 감격하게 된다. 일편만한 속편은 없는 법이라지만, 본편에서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면, 속편에선 유려한 문장보다는 유장한 사고로 독자를 잡아챈다.

1편의 기행이 아름다운 곳을 찾은 것이고, 2편은 서울 주변의 분단의 현장, 갯벌처럼 삶과 밀착된 것이어서 이런 차이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강과 김포평야, 일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원래 수평의 삶, 2차원의 개미같던 인간의 삶이, 수직의 삶, 3차원의 삶으로 수직상승하는 변화를 바라보면서 아스라하게 좁아진다. 평야를 보며 그는 헤아린다.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아,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주관적이냐.

남양만 갯벌 이야기는 목이 메이려 해서 말할 수가 없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런 부분이리라. 지금 내 배 불리자고 세상을 망쳐먹는 작태 말이다.

등대를 보면서 항해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은 감명깊다. "항해술의 핵심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며,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가 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부유하는 생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호는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슬픈 울음과도 같다."고 하는 글은 인간의 언어의 부질없음에 대한, 그러나 언어로밖에 살 수 없는 그 역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바다를 보며, "기미는 작은 조짐이다. 조짐은 거대한 현상을 이끌고 다가온다. 사소한 기미는 거대한 전체성을 예고한다. 조짐을 파악한 사람만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주역의 말과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의 주제 의식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준다.

숲을 보면서, 숨과의 상통점을 찾아내는 점도 신선하다. 식물의 자족 앞에서 느끼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슬픔은 그의 예민한 촉수를 감지할 수 있게 하고, 부러진 노목의 나이테를 보며 인생을 읽는 안목을 보여준다. "나무 밑동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지름의 1/10 정도의 바깥쪽이다. 그 안쪽은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인데, 무위와 적막의 나라이면서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수직으로 버티어 줌으로써, 무위는 존재의 뼈대"임의 역설을 생각하는 그의 뇌 구조는 아무래도 천재적인 <특이 체질>인 모양이다. 여름의 연못을 인상주의의 낙원이라고 하는 면에서는 그는 낭만주의자기도 하다.

수원 화성을 바라보면서, 수원화성의궤에 밝혀진대로, 임금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의 눈은 슬픔과 아픔으로 시리다. 이 부분을 읽는 나의 마음도 따라서 시리다. 정조 임금이 죽지만 않았더라도... 그 세도정치 혼란의 60년은 예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연스런 근대화에 편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도 하며...

"성벽을 쌓는 일도 말하자면 올해 쌓아도 될 일이도 내년에 쌓아도 될 일이고 10년을 걸려서 쌓아도 될 일이지만 백성은 하루를 굶겨도 안 되고, 이틀을 굶겨도 안 될것이며, 한 달을 참고 지내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혹심한 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현장에서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찌 잠이 편하겠느냐. 척서단(더위먹은 데 먹는 알약) 4천 알을 보내니 한 알이나 반알씩 정화수에 차서 먹이라. 병을 치료하는 방편에 각별히 유의하고, 더위를 씻을 수 있는 약재를 넉넉히 마련해서 한 사람의 기술자나 일꾼이라도 더위 먹는 일이 없도록 하라."
"동지가 내일이라 추위가 심하다. 일하는 저들을 생각하니 저들의 추위가 나의 추위다. 솜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한사람 한사람의 고통을 일일이 물어서 그 연유를 보고하라. 석수들에게 옷감과 모자를 보내주겠다."
"이제 듣자하니, 여장의 용마루에 사용할 벽돌을 아직 구워내지 못해서 내달 20일 후에야 비로서 구워낼 수 있다하니 그렇다면 내달 10일께 공사를 마치겠다던 경들의 말은 나를 기만한 것이냐! 어찌하여 이같이 해괴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경들은 다시 복명하라."

아, 든든하지 아니한가. 정조 임금의 그 든든한 목소리는 마치 강희제나 옹정제의 우렁차면서도 꼼꼼한 목청이 울리는 듯 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는 우리말을 통하여,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작가임에 분명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에게 소설보다는 이런 고통스런 고행을 통한 기행문의 기록이 어울리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글을 적으며 얼마나 하얀 밤을 많이 새웠을까를 추측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의 글맛은 유홍준에 버금가는 걸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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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6-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장 넘 매력적이죠???

글샘 2005-06-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김훈의 문장 읽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좋아서 천천히 읽게 돼요.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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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영웅이 있는가?

옛날에 신화의 시대가 있었다. 신화는 신성하고 위엄있는 이야기로, 조금 황당하더라도 믿게 되는 이야기다. 단군부터 시작하더라도, 최근의 박정희까지는 신화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현대도, 삼성도 다 신화 속의 기억들이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뭔가는 덧붙여지고, 도색되었지만, 신성하고 위엄이 서려서 감히 뭐라고 건드릴 수 없던...

인간의 시대로 넘어오는 르네쌍스의 시대가 되면, 신에게서 인간은 뚝 떨어진다. 신과 멀어진 인간은 출산의 고통을 얻게 되고, 배고픔의 시련을 사게 된다. 제5공화국 이후, 우리는 최초로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라는 자부심도, 수출 백억달러 달성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으로 중진국으로 도약했다는 긍지의 신화도 아득한 안개 속으로 놓치고 만다.

인간의 시대에 전설이 태어난다. 전설따라 삼천리처럼, ~~~라 카드라... 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속에는, 실패한 영웅들과 함께 조악하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피비린내가 비릿하게 녹아 있다.

간혹 민담들은 삶의 향취도 묻혀 내고, 우스갯소리도 지어내지만, 시대를 뒤덮은 쇠항아리의 어둠을 찢을 수는 없다.

이 소설이 전설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비릿한 피내음이 주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전설은 구체적인 증거물을 채택하여 신빙성을 높여 준다. 촉석루의 의암에서 실제로 논개가 뛰어든 것처럼 느끼도록 말이다.

20세기의 현대사를 <슈퍼 특공대>를 중심으로 패러디하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뼈대만이긴 하지만, 20세기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란 본부와 영국과 지-쎄븐이라는 똘마니들, 그리고 겉은 노랗지만 속은 흰둥이가 되고 싶은 동아시아의 <바나나들>... 이 었었다나 뭐래나...

어느 새, 공산 주의에 대한 피끓던 열정도, 평등 세상에 대한 희망도, 혁명과 순수의 시대도 모두 전설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냉전의 시대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표방하는 <스타워즈>의 역설적 제국, 강포 미국의 21세기인 것이다.

21세기가 오면 <인류 형제애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던, 잭 런던의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피비린내 나는 전설을 조용조용 읊조리며, 바나나맨이 되고픈 슬픈 하루하루가 이어질 뿐이다.

이 소설은 재미가 별로 없다. 나도 어린 시절 슈퍼 특공대를 정말 감명깊게 보았다. 그 노래는 아직도 한 소절도 잊지 않았다. 람보와 슈퍼 특공대로 세계의 평화를 희구하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음모는 이제 만화 영화가 아닌 현실로 이루어졌다. 적군들이던 세력은 모두 섬멸된 채로...

비참한 바나나맨의 최후는 장렬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처절한 버림받음 그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싶다면, 새로 피비린내를 덮을 아스라한 신화의 시대로 회귀하고 싶다면, 이제 바나나맨의 껍질과 속을 모두 뒤바꿔야 한다. 우리 패러다임은 키위나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하나로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것으로 말이다.

슈퍼 특공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들을 추종하던 말로가 영어로 입에 풀칠하는 바나나맨이 된 것을 직시해야 한다.

뭔가 주제 의식을 전달하려 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흐르지는 못한다. 확실히 삼미 슈퍼스타의 전작이라 그런지 좀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 심사평에서 말한 것처럼 매끄럽게 흐르긴 하는데,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조금은 어정쩡한... 그러나, 작가의 자각하는 힘은 확실히 보여준 소설이다.

그의 가능성이 좌르륵  펼쳐질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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