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이벤트 공지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혹시 이제라도 보시는 분들 참여해 주세요.

좋은 책을 공유하자는 거잉께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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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 말로 우리 삶의 진정한, 아름다운 멘토입니다.

멘토(mentor) : a wise and trusted adviser 지혜롭고 믿음직한 조언자

 그 전의 것은 잃어버렸다. 정리하지 않는 나의 습관 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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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라딘에 가입한 것이 만 오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처음에는 책 몇 권 신청해서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2년 전 부터는 독후감을 정리해 보려는 욕심이 앞서 부지런히 쓰다 보니, 책도 더 많이 읽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었다.

알라딘에 처음 왔을 때는 책 아래 리뷰(그 때는 '독자 서평'이었던 것 같다.)를 읽는 정도가 그만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서재> 기능이 추가되면서 자기가 쓴 리뷰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마이페이퍼'를 작성하는 기능도 생겨서 디카가 있는 사람은 사진을, 나같은 늦둥이 세대는 잡문들을 싣는 곳이 생겼다.

그렇게 알라딘이 진화해 나가는 가운데, 내 눈에 거슬리는 숫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우선,
Today 27 Total 10005
그날의 방문객 수와 총 방문객 수가 서재 하단에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는
서재지수: 54575점 <top 100>
마이리뷰: 474편 <top 50>
마이리스트: 23편
마이페이퍼: 7885점
***분께서 즐겨찾고 있음
이런 수치들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알라딘 마을이란 곳에 가면,
서재의 달인
리뷰의 달인
리스트의 달인
페이퍼의 달인
지식의 달인
Thanks to의 달인

같은 칸이 마련되어 각 분야별로 등수가 매겨지게 된다.

그리고 매주 서재의 달인 30명을 골라 적립금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서재를 관리하다 보면, 나는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자꾸 숫자에 눈이 가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빨간 벽돌 집에 넝쿨 장미가 어우러진 집에 사는 아이라면 좋아하지 않고, 62평 아파트에 의사집 아들이라면 좋아한다>는 투의 이야기가 나온다.

숫자 놀음에 미혹되다 보면, 저놈의 숫자가 마음에 자꾸 밟힌다. 오늘 들어오신 분이 적으면 괜스레 기분이 별로고, 많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것에 홀려 좋아한다. 어떤 날은 며칠 만에 들어와 보는 서재에 즐겨찾기 하시는 분이 두서너분 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내 의견을 열심히 적은 날에 그 수치가 줄어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놈의 숫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알라딘 화면에서 숫자를 보이지 않게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기면 좋겠다. 안 보면 멀어진다고, 불필요한 마음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가진다는 것. 보물 창고로서의 서재가 아니라 은근히 경쟁하는 공간이 되면서 얄팍한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그것을 관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서재에 좋은 글들을 채곡채곡 쌓아 두었다가 학급 일기에도 써먹고,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써먹는 것은 서재가 생기고 얻은 큰 수확이다. 그러나 그놈의 수치는 나를 자꾸 미혹함에 집착하게 하여 쓸데없는 욕심을 갖게 만들어 생각난 김에 불평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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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0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과 같습니다. 전 서재지수를 없애는 동시에 '다녀간 서재 주인장'의 발자국을 만드는게 낫다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기획안도 어느정도 위험하긴 한데요 요즘처럼 서재30위 적립금때문에 무차별적인 펌질로 도배하는 일보다 덜 위험한거 아니겠어요?...리뷰나 페이퍼를 몇 편작성했는가 하는 숫자는 주인장만 보게해도 될것을 말입니다. 경쟁을 시킨다는 발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작용으로 신음하고 있잖습니까.

stella.K 2005-06-05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샘님 생각에 동감이구요, 파란 여우님 말씀대로 타 싸이트 블로그처럼 '다녀간 블로그'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좀 친근해질 것 같아요. 정말 저 숫자놀음 실은데 헤어나질 못하는 걸 보면 정말 싫어요!
아, 정식으로 인사 드릴께요. 지난번 이벤트에 응모하느라고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정식으로 인사 못드렸네요. 사실 글샘님은 작년부터 알고 있었는데...(긁적 긁적) 로드무비님 이벤트 당선시키실 때부터요.^^


해콩 2005-06-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수치와 비교,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건 이미 세상에 너무나 충분하거든요..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이웃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그런 서재였으면... 글샘님의 의견에 동감.. 한 표!! (앗! 이것도 숫자..화들짝 --;)

글샘 2005-06-06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들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군요.(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의견이 다르신 분들은 아예 암말도 않고 지나가셨을테니... 세상 일은 이렇게 이뤄지는 거겠지요. 동의하는 몇 명이 옳다고 착각하고 살기...
요즘들어 수치에 신경쓰기 싫고, 귀찮아서,.... 왠지 몸무게 재러 체중계에 올라가기 싫은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요.
 
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 김대유의 생활지도 딜레마
김대유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제목만 본다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억울한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 붙인 제목이다.

내용을 읽어 보면, 생활 지도 차원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겪는 <딜레마>에 대해서 다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실 안에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러면서 문자를 날리고, 쪽지를 보내고, 수화를 나누고, 바디랭귀지에 익숙한 아이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흡연이 질이 난 아이들, 공부 시간에도 핑계를 대고 보건실로 대피하거나 담을 넘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가하는 아이들, 심하게는 약한 고리를 골라 왕따를 시키거나 이지메를 행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아이들, 가난이란 불만을 도둑질을 통해 엠피3, 시디피, 참고서, 심할 경우엔 비싼 책가방, 운동화(20만원 짜리도 있다.)도 장물로 처리한다. 교사들에게 수시로 거짓말을 둘러대고, 아이들의 세계에만 통용되는 진실이 학교에는 왜곡되어, 결국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생활 지도는 가장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가장 복잡하다. 일반 사회의 범죄와는 달리, 죄질이 아주 경미한 다툼에서부터, 조직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나면, 이미 학생이나 교사 양편 모두 상처를 입은 후라는 것이다.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예방 주사로 모두 막을 수 있는 병은 병이 아니다.

몇 년 전 전국에 창궐하던 <가출>이란 전염병은 요즘은 사라져 간다. 아이들이 집 나가서 사서 고생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꼴통일수록 휴대폰은 필수품이 되어, 쉽게 노출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이 멀리 가서 짜장면 배달하며 집을 벗어날 정도로 강인하지 못한 것 같다. 여학생들은 어른들은 만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나머지 시간은 피시방 같은 데서 오천원만 내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찜질방에서 잘 수도 있고... 남학생은 동네 아이들 협박해서 몇 만원은 쉽게 뜯어낸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용돈이 전혀 없이 교통 카드만 들고 다니는 아니는 없다고 하니깐.

요즘 새로운 전염병은 <교실에서 꼴통짓 하기 - 곧 학교붕괴로 이어지는>와 <약자 괴롭히기> 정도가 아닐까. 아이들이 도망갈 곳이 있어서 집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 채야 한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쫓은 아이들을 <적응 교육>이란 해괴한 미명하에 학교로 들여 보낸 후,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혀 권위가 없어졌다. 언제든지 복학하고 전학가면 그만이지 퇴학당하는 것이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아이들은 상실하고 만 것이다.

빵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생활지도 팀에 걸리면 정학을 맞던 시대는 심했다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도 별로 죄책감을 못 느끼는 도덕 의식은 요즘 아이들의 새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오락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다가도 휴대폰을 압수 당하면 당연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학교가 <정의적 집단>이던 시대에서 <계약 집단>인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인 현재, 언론에서 교사들의 폭력을 과잉보도했으며, 교육청에 가서 심하게 오버하면 돈도 나오게 시대는 바뀌었다. 교사는 촌지나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알려 지고, 학생들의 가혹한 왕따나 이지메는 감도 잡지 못한채 교사가 폭행하는 장면이 공공연하게 인터넷에 유포된다. 이렇게 학교의 권위가 일방적으로 무너진 것은 <그들>이, 권력을 쥐고 시스템을 쥐고 흔드는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있다. 무조건 <열린 수업>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열린 공간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무조건 <보충 폐지>를 하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몰려 갈 곳이 없고, 결국 학원만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없다. 이해찬이를 단두대에 올린다한들 교육계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반 아이들이, 내가 수업하는 그 먹빛 눈망울을 한 열일곱 머시매들이 배울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학생 생활지도에서 <딜레마>는 언제나 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 딜레마는 어디에나 누구에나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법적인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롯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교사인 것이다. '교사가 딜레마에 빠져들지 않도록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신이 아니다. 사범 대학에서도, 1정 연수에서도, 기타 어떤 연수에서도, 생활 지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도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해 봤고, 원격 연수로 학생 생활 지도와 상담에 대한 연수를 120 시간이 넘게 받아 보았다. 그렇지만, 결론은 전혀 없다. 이론은 실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늘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관찰할 것. 그리고 즉흥적으로 관심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머리를 굴려서 아이들의 머리 위에 올라 앉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관계, 아이들의 흥미, 미래의 진로, 적절한 처치의 사례(최적의 처방전을 내리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다.)에 대한 탐구와 적용, 시행 착오...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교사(poor teacher)가 되어 지식의 빈곤, 철학의 부재, 소신 없는 가치관, 불의를 보면 잘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교사, 잡무 처리에만 빠삭한 유능한 교사로 나이들어가는 <나>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의 처방보다 훌륭한 교사의 한 마디 처방이 훨씬 특효약일 수도 있는 공간이 학교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문제아로 웬수같이 여기기 보다는 교사들이 상담 심리 시간에 배웠던 기법들을 활용하여 갈등 요인을 줄이려는 노력들을 힘겹지만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를 황폐화시킨 <그들>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책임질 사람은 <나> 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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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6-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이런 고민이 사실은 본질적인 고민이지요. 그런데 우린 외부에서 들어온 잡념으로 더 고민하니 학교가 바로설 리 없죠. 맞습니다. 우울해요.
 
 전출처 : 사마천 > [퍼온글] 가혹한, 목메이는 사진 한 장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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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들다고 종종 투덜대는 나의 모습이 저 사진 한 장에 참혹하리만치 부서져 내립니다. 가난해서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방금전까지 불평불만으로 가득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사한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나, 미국의 팽창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일과, 철학적 산책이 어쩌고 하는 일이 굶주린 동생을 살리려는 눈물겨운 노력보다 더 대단한 걸까요? 지상 최고의 양식은 '밥'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헛소리들뿐이라는생각이 듭니다. 지갑에 천원짜리 한 장 남겨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 뒷산에 올라가 고사리 나물을 뜯어다가 쌀을 팔아와서 먹어본 사람만이 저 사진속의 가혹함을 온전히 이해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하지 마십시요. 이미 풍요로운 당신의 요설일 뿐입니다.

늦은 점심을 먹어야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고마운 밥그릇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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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이 메입니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