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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 김대유의 생활지도 딜레마
김대유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제목만 본다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억울한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 붙인 제목이다.
내용을 읽어 보면, 생활 지도 차원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겪는 <딜레마>에 대해서 다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실 안에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러면서 문자를 날리고, 쪽지를 보내고, 수화를 나누고, 바디랭귀지에 익숙한 아이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흡연이 질이 난 아이들, 공부 시간에도 핑계를 대고 보건실로 대피하거나 담을 넘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가하는 아이들, 심하게는 약한 고리를 골라 왕따를 시키거나 이지메를 행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아이들, 가난이란 불만을 도둑질을 통해 엠피3, 시디피, 참고서, 심할 경우엔 비싼 책가방, 운동화(20만원 짜리도 있다.)도 장물로 처리한다. 교사들에게 수시로 거짓말을 둘러대고, 아이들의 세계에만 통용되는 진실이 학교에는 왜곡되어, 결국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생활 지도는 가장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가장 복잡하다. 일반 사회의 범죄와는 달리, 죄질이 아주 경미한 다툼에서부터, 조직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나면, 이미 학생이나 교사 양편 모두 상처를 입은 후라는 것이다.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예방 주사로 모두 막을 수 있는 병은 병이 아니다.
몇 년 전 전국에 창궐하던 <가출>이란 전염병은 요즘은 사라져 간다. 아이들이 집 나가서 사서 고생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꼴통일수록 휴대폰은 필수품이 되어, 쉽게 노출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이 멀리 가서 짜장면 배달하며 집을 벗어날 정도로 강인하지 못한 것 같다. 여학생들은 어른들은 만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나머지 시간은 피시방 같은 데서 오천원만 내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찜질방에서 잘 수도 있고... 남학생은 동네 아이들 협박해서 몇 만원은 쉽게 뜯어낸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용돈이 전혀 없이 교통 카드만 들고 다니는 아니는 없다고 하니깐.
요즘 새로운 전염병은 <교실에서 꼴통짓 하기 - 곧 학교붕괴로 이어지는>와 <약자 괴롭히기> 정도가 아닐까. 아이들이 도망갈 곳이 있어서 집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 채야 한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쫓은 아이들을 <적응 교육>이란 해괴한 미명하에 학교로 들여 보낸 후,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혀 권위가 없어졌다. 언제든지 복학하고 전학가면 그만이지 퇴학당하는 것이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아이들은 상실하고 만 것이다.
빵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생활지도 팀에 걸리면 정학을 맞던 시대는 심했다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도 별로 죄책감을 못 느끼는 도덕 의식은 요즘 아이들의 새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오락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다가도 휴대폰을 압수 당하면 당연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학교가 <정의적 집단>이던 시대에서 <계약 집단>인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인 현재, 언론에서 교사들의 폭력을 과잉보도했으며, 교육청에 가서 심하게 오버하면 돈도 나오게 시대는 바뀌었다. 교사는 촌지나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알려 지고, 학생들의 가혹한 왕따나 이지메는 감도 잡지 못한채 교사가 폭행하는 장면이 공공연하게 인터넷에 유포된다. 이렇게 학교의 권위가 일방적으로 무너진 것은 <그들>이, 권력을 쥐고 시스템을 쥐고 흔드는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있다. 무조건 <열린 수업>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열린 공간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무조건 <보충 폐지>를 하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몰려 갈 곳이 없고, 결국 학원만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없다. 이해찬이를 단두대에 올린다한들 교육계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반 아이들이, 내가 수업하는 그 먹빛 눈망울을 한 열일곱 머시매들이 배울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학생 생활지도에서 <딜레마>는 언제나 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 딜레마는 어디에나 누구에나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법적인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롯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교사인 것이다. '교사가 딜레마에 빠져들지 않도록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신이 아니다. 사범 대학에서도, 1정 연수에서도, 기타 어떤 연수에서도, 생활 지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도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해 봤고, 원격 연수로 학생 생활 지도와 상담에 대한 연수를 120 시간이 넘게 받아 보았다. 그렇지만, 결론은 전혀 없다. 이론은 실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늘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관찰할 것. 그리고 즉흥적으로 관심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머리를 굴려서 아이들의 머리 위에 올라 앉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관계, 아이들의 흥미, 미래의 진로, 적절한 처치의 사례(최적의 처방전을 내리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다.)에 대한 탐구와 적용, 시행 착오...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교사(poor teacher)가 되어 지식의 빈곤, 철학의 부재, 소신 없는 가치관, 불의를 보면 잘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교사, 잡무 처리에만 빠삭한 유능한 교사로 나이들어가는 <나>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의 처방보다 훌륭한 교사의 한 마디 처방이 훨씬 특효약일 수도 있는 공간이 학교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문제아로 웬수같이 여기기 보다는 교사들이 상담 심리 시간에 배웠던 기법들을 활용하여 갈등 요인을 줄이려는 노력들을 힘겹지만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를 황폐화시킨 <그들>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책임질 사람은 <나> 뿐이기 때문에...